시간을 파는 토끼

세상의 모든 관식이에게

by 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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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이상한 나라에서 온 토끼. 시간을 판다. 단, 정당한 이유가 있는 사람에게만.

첫 번째 손님이 왔다. 얼굴에 이미 피로가 가득한 남자다. 수염을 깍을 시간도 없었나 보다.

“시간을 좀 삽시다. 한 이틀 정도만.”

손님이 말했다.

“뭐 하시게요?”

내가 말했다. 말했다시피 난 정당한 이유가 있어야만 시간을 판다.

“마감 기한을 좀 늘리려고 합니다. 이게 도저히 시간이 안 되네요.”

손님이 말했다.

“마감 기한을 늘리면 어떻게 되는데요?”

“마감 기한을 늘리면 내가 시간에 맞춰 납품을 할 수 있게 되고, 그러면 돈을 벌겠죠.”

“음… 결국 돈을 벌려고 시간을 사는 것이군요.”

“그렇죠.”

난 좀 생각을 해봤다.

“시간을 사려면 돈을 내야 하는데, 그러면 돈을 내고 돈을 사는 거네요?”

“뭐, 그렇게 되나요?” 손님은 생각도 못해봤다는 듯 머리를 긁었다.

“돈으로 돈을 사는 건 장사가 아니니까 시간을 팔 수 없어요. 이 소중한 시간이 단지 돈을 버는 데 쓰이는 게 너무 아깝거든요. 자, 다음 손님!”

남자는 한숨을 쉬면서 나갔다. 자신의 일이 가치가 있다면, 마감을 늘려달라고 하면 될 일이었다. 시간은 그쪽이 가지고 있었다.

다음 손님은 50대가 좀 넘은 여성이었다. 눈가에 보기 좋은 주름이 있었다.

“두 시간, 안 되면 한 시간이라도 사고 싶어요.”

손님이 말했다.

보기 좋은 인상과는 달리 눈 속에는 슬픔이 가득했다.

“시간을 어디에 사용하시려고 그러십니까?”

난 항상 하는 질문을 했다.

“아버지가 많이 아파요. 돌아가시기 전에 두 시간만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요.”

“두 시간을 이야기하면 어떻게 되는데요?”

“어떻게 되는 건 없어요. 그저 이야기하고 싶은 거예요.”

“어떤 이야기를 하려고 그러죠?”

“아버지는 무뚝뚝한 분이었어요. 그리 말씀을 많이 하시지 않으셨죠. 그래도 난 알고 있었어요.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그 무뚝뚝함이 사랑에서 나온다는 것을….”

“그런데요?”

“아버지의 무뚝뚝한 피를 이어받았는지 나도 무뚝뚝한 딸이었죠. 아버지의 그 근면성실한 사랑에 한번도 고맙다고 말하지 못했어요. 그리고 결혼을 하고 애를 낳고 나니 더 말할 기회를 놓쳤죠.”

손님의 눈은 이제 과거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면 고맙다고 말하고 싶으신 건가요?”

“네 그렇죠. 그동안 저를 사랑하신 것 다 알고 있었다고도요. 그리고… 쑥쓰럽지만… 사랑했다고 말하고 싶어요.”

“알겠습니다. 시간을 팔게요.”

“고맙습니다. 그런데 얼마를 드리면 될까요? 얼마를 원하셔도 다 드릴 수 있습니다.”

“무료입니다. 오히려 제가 돈을 드려야 할지도 몰라요.”

“그게 무슨 말이죠?”

손님은 의아한 얼굴이 되었다.

“손님이 지금 사랑한다고 말하지 못한다면, 아마도 후회하며 수많은 시간을 헛되이 흘려 보낼 겁니다. 지금 사랑한다고 말함으로써 그 많은 시간을 아꼈으니 시간을 파는 저에게는 이득이 된 거죠.”

손님은 내 말을 듣고 그제야 얼굴에 미소를 지었다.

“고맙습니다. 시간을 아주 소중히 사용하겠습니다.”

손님은 내가 건넨 시간을 아주 소중히 들고 나갔다.

“자, 다음 손님!”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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