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내가 잭에 대해 아는 것은 많지 않았다. 무척 사랑하는 개가 있어서 그 개를 보기 위해 방학에 미국에 갔고, 일렉 기타를 잘 치고, 필름 카메라를 좋아하고, 드론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시카고 출신이고 집에는 방어용 총이 있다고 했다. 마피아 게임을 하면 당황해서 자기가 범인이라고 먼저 말해버린 적이 있었다. 수업 시작하기 전, 적어도 30분 전에 도착하고 늘 맨 앞줄에 앉았다. 아침에 일찍 일어났냐고 물었을 때 그는 늘 일찍 일어난다고 했다. 한 시간 정도 커피를 마시고 샤워를 하고 면도를 하며 자신의 아침 리추얼을 즐긴다고 말했다. 맥북 스크린은 지문 한 점 없이 늘 깨끗했고, 실내에서도 가끔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다. 유난히 성실하고 열정이 많다는 것 외에는 그에 대해서 별다르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어느 날 저녁, 마트에서 장을 보던 중 나는 갑자기 그에게서 장문의 문자를 받았다. 그날은 영화의 가편본을 친구들 앞에서 보여주고 마지막으로 수정할 것은 없는지 피드백을 물어본 날이었다. 잭도 그중 한 명이었다.
[안녕 유조! 오늘 내가 너의 영화 가편본을 리뷰하면서 한 말에 대한 오해가 있다고 들었어. 데비가 그러던데. 내가 한 말을 네가 오해한 것 같다고. 아까 네 작품을 다 보고 내가 “너무 좋았다. 내가 쉽게 만족하는 스타일이라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흠잡을 데가 없었다 “라고 말한 것은 내가 평소에 쉽게 만족하는 스타일이기 때문에 네 작품이 좋았다는 뜻으로 한 말이 아니라, 정말 나로서는 아무 흠점도 찾지 못했기 때문이었어. 가볍게 ”내가 쉽게 만족하는 타입의 사람이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이라고 말한 것은 절대 너의 작품을 까내리는 것이 아니라 정말 좋다는 말을 하려는 문맥 안에서 농담처럼 한 말이었다는 걸 알아줘. 하지만 진심으로, 정말, 잘 만들었고 잘 봤어. “
문자를 보고 나는 처음에 무슨 말인지 몰라서 다시 읽었고, 다시 읽고 나서도 황당한 웃음이 나왔다. 잭이 한 말에 대해서 오해도 한 적 없고, 그의 말을 흘려들었던 터라, 도대체 이게 무슨 내용의 문자일지, 또 왜 그런 말을 데비가 잭에게 했는지 나로서는 알 수 없을 노릇이었다. 나는 문자를 읽었을 때 반응 그대로 ”하하하“를 보내며 답했다.
[하하하, 잭, 이게 무슨 말이야. 전혀 오해하지 않았는데, 데보라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모르겠네? 나는 네가 말한 그대로 알아들었고 고맙게 생각했어. 너희들이 나간 후에, 데보라가 ”지금 다들 너무 좋다고 한다. 잭도 흠잡을 때 없다고 하지 않았느냐 “라는 말을 하며 더 편집을 안 해도 될 것 같다는 뉘앙스로 말하길래, 아직은 수정할 게 많다는 경각심을 조금 주고 싶었을 뿐이야. 아직은 우쭐할 때가 아니다, 갈 길이 멀다고 얘기하고 싶은 마음에 가볍게 농담 식으로 ”하지만 잭은 쉽게 만족하는 스타일이라고도 했어”라고 덧붙인거였어. 절대 네 말을 다르게 들은 걷거나 오해를 한 건 아니야. 나는 네가 말한 그대로 칭찬으로 받아들였고 고맙게 생각해.]
[휴. 그런 거였구나 그렇다면 정말 다행이고. 그 말을 듣고 나는 정말 패닉 해서 젠장 어떡하지. 정말 망쳐버렸네, 그렇게 생각했지. 하루종일 그 말을 듣고 계속 생각했어. 잠깐 점심 먹으면서 잠깐 잊었다가 저녁이 됐을 때 다시 생각이 나가지고 머리가 터질 것 같은 거야. 그래서 문자를 보낸 거였어.]
옆에서 문자 내용을 어깨너머로 본 시우는 잭이 나를 좋아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내가 눈알을 굴리자 시우는 잭이 진실게임에서 가장 매력적인 이성으로 나를 꼽았었노라고 얘기했다. 나는 징그럽다고 말하면서 웃었지만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고, 곧 그것에 대해 까먹었다.
잭은 모든 학우들 사이에서 두루두루 평이 좋고 인기가 좋았다. 졸업작품을 위해 팀을 꾸려야 될 때가 되었을 때, 대부분의 연출들이 잭과 파트너가 되고 싶어 했고 그중에는 중국인인 시우도 있었다. 시우는 체구가 작고 마른 22살의 학생이었는데, 목소리가 여리고 영어가 서툴렀다. 실습 촬영을 하면서 시우가 미국인 학생들로부터 인종차별을 당하는 일이 있었는데, 그때 유일하게 그들의 의견을 존중하고 격려해 준 것이 잭이었다. 영국인 선생님들에게 항의를 해도, 선생님들은 시우가 목소리가 작고 자기주장이 약해서 그런 것이라고 말했고, 시우의 프로듀서였던 라모나는 이 일에 대해 “인종차별이나 괴롭힘이 아닌 문화적 차이였을 뿐이었다”라고 해명하며 가볍게 넘기려고 했다. 그 사건 이후로도 미국 학생들이 영어가 서툰 학생들, 특히 중국 학생들을 은근히 배제하고 선을 넘는 일이 빈번하게 있었고, ”문화적 차이“라는 단어는 연출 전공 학생들 사이에서 한동안 유행어가 되었다. 시우는 촬영전공들 중에서 자신을 존중해 주는 것은 잭밖에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다른 촬영전공 학생과 팀을 이루게 되었고, 잭은 시우의 프로젝트에 합류하게 되었다.
잭이 합류하게 된 프로젝트는 연쇄살인마인 중국인 여성이 틴더로 만나는 남자들을 살인한다는 이야기로, 블랙 코미디였다. 처음 아이디어를 들었을 때는 그 소재의 가벼움이 불쾌하다고 생각했지만, 미적감각이 뛰어나고 스타일이 독특한 시우가 에지 있게 연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재밌는 작품이 될 것 같던데. 특히 네 촬영 스타일하고 잘 어울릴 것 같아.” 도서관에서 마주쳤을 때 나는 이렇게 그에게 말을 건넸다.
“사실 나는 네 작품을 하고 싶었어. 이렇게 전면적으로 살인을 내세우는 주제는 사실 불편하거든.” 그는 눈알을 굴리면서 대답했다.
그럼 왜 다른 작품을 선택하지 않았어? 너를 원하는 팀이 굉장히 많았던 것으로 아는데,라고 물으려다가 관뒀다.
하지만 역시 모든지 열심히 하는 잭 답게, 그는 적극적으로 작품 준비를 했다. 3월 19일에 그들의 영화 인스타그램 계정에는 잭이 스튜디오에서 식칼을 코믹하게 들고 있는 사진이 올라왔다. 그들의 단편영화 홍보를 위한 사진이었다. 나는 그런 사진을 가볍게 농담 식으로 올리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사진을 보고도 “좋아요”를 누르지 않았다. 그런데 그 사진이 올라온 날 이후, 시우가 전화를 했다. 잭과 연락을 한 적이 있느냐는 물음이었다.
“잭이 연락이 안 돼. 잠수를 탄 것 같아.”
“잠수를 탔다니, 무슨 말이야?”
“스튜디오에서 홍보 사진을 찍은 이후로 전화도 안 받고, 메시지도 안 받아. 그래서 오늘은 데비가 집에도 가봤는데 아무도 없더래. “
“왜? 누구랑 싸운 거야? 무슨 일이 있었어?”
“아니, 전혀. 다들 즐거운 분위기에서 촬영을 했고, 몇 명은 펍에 갔던 것 같아”
“마지막으로 본 사람이 누군데?”
“펍에서 여러 명이서 당구를 쳤는데, 갑자기 피곤해 보이더니, 자기는 좀 쉬어야겠다고 하면서 갔대. 근데 그날 이후로 연락이 안 된 거야. “
“혹시 어디가 아픈 것은 아니야? “
“모르겠어… 학교에도 안 나오고 메시지와 전화도 안 받고. 잭답지가 않잖아.”
“그러네, 절대 수업을 빠질 리가 없는데.”
나는 인스타그램에 들어가 어제 올린 스토리를 확인해 보았다. 보통 스토리를 올리면 잭이 제일 먼저 라이크를 누르거나 보는데, 잭의 흔적이 없었다. 나는 진짜로 무슨 일이 있나,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그다음 날은 학교 안 시네마에서 영화 상영이 있는 날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교수들이 수업을 취소하더니, 긴급회의에 모든 학생들을 소집했다. 경찰들과 학과장들과 교수들이 우리의 시네마 안, 큰 화면 앞에 서서 한참 망설이더니 이야기를 꺼냈다.
“여러분의 학우이자 촬영전공 학생인 잭 데이비스가 경찰에 구속되어 있습니다. 혐의는 살인입니다.”
학생들은 혼란에 빠졌다. 영화나 미국 드라마에서 흔히 봤던 장면이었기에, 어딘가 친숙하면서도 낯선 상황이었다. 하지만 살인사건의 용의자가 다른 사람도 아니고, 체구도 작고 작은 오해도 견디지 못하는, 착하고 성실한 모범생 잭이 살인이라니. 학과에는 잭보다 훨씬 이상하고 괴팍한 사람들이 많았다. 다들 놀랐지만, 특히 충격을 받은 것은 잭을 좋아하던 여자애들이었다.
경찰은 지금은 아무것도 알려줄 수 없지만 차차 뉴스를 통해 밝혀질 것이라고 말하며 돌아갔다. 그들의 말대로 며칠간 뉴스에서 잭과 사건에 대한 정보가 조금씩 추가되어 나오기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살인사건이 일어난 동네가 밝혀지고, 잭의 이름이 공개되었고, 피해자의 이름이 공개되었다. 나를 비롯한 몇 명의 친구들은 끝까지 잭에게 무슨 일이 있었을 것이라고. 아마도 자기 방어이거나, 의도치 않은 실수였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살인의 피해자가 우리 학교에 다니는 서른한 살의 중국인 여자라는 뉴스가 나오자, 마음이 복잡해졌다. 피해자의 중국인 친구들이 나서서 적극적으로 중국 소셜미디어에 학교의 이상한 대처법에 대해 포스팅을 했다. 학교는 최대한 조용히 살인사건을 묻으려고 했고, 여학생의 가족에게 소식을 전할 때 구글 번역기로 돌려서 이메일을 썼다는 말이 학생들 사이에서 퍼졌다. 시우가 피해자인 여학생의 사진을 보여줬을 때, 목 뒤가 서늘해졌다. 사진 속의 여자는 체구가 작고, 머리가 곧고 길었으며, 눈이 가늘고, 피부가 하얗고, 나와 비슷하게 생긴 것도 같았다. 같은 동양인, 같은 나이대, 같은 성별의 이 여자는 나와 얼마나 다르고, 얼마나 비슷했을까?
조금씩 시간이 지나며, 학생들은 여유를 되찾았다. 농담을 하기도 하고, 가십거리로 삼으며 여러 상상을 펼치기도 했다. 누군가는 내 앞에서 “동양인의 나이 많은 여자만 좋아했던 것 아니야?”라고 말했다. 처음 접하는 살인사건에 모두가 충격을 받은 동시에 조금은 격앙된 것 같았다. 이렇게 드라마틱한 일이 내 인생에 실제로 일어났어, 하는 흥분감과 함께 조금 더 그 사건에 가까워지고 싶은 이상한 욕망이 일어났던 것이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이 사건을 이용해 졸업 작품의 촬영일자를 연기해 달라고 하거나 과제의 마감기한을 연장해 달라고 요청했다. 학교는 학생들이 “트라우마”라는 말을 입에 담을 때마다 몸을 떨며 원하는 요구에 즉시 반응을 했다. 학생들끼리도 말다툼이 벌어지기도 했다. 라모나가 모두에게 “다 같이 졸업작품 촬영일자를 연기해 달라고 요구해야 된다”라고 주장하자 누군가는 “다 같이 할 필요가 없고, 원하는 팀만 연기해 달라고 요청하면 된다고” 대답했다. 그에 라모나는 성을 내며, 다 같이 말해야 효력이 있다며, 이 상황에 다 같이 힘을 합치지 않는 것은 정말 이기적이라고 말했다.
“피해자는 우리와 똑같은 국제학생이었어. 이 상황에서 우리가 계속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은 말이 안 돼. “라고 말하며 변동 없이 계속 일을 진행시키는 팀들을 간접적으로 비난하기도 했다.
중국인 시우에게 “문화적 차이“를 언급한 것이 라틴계 미국인인 라모나였다. 그런 라모나가 살해된 중국인 학생을 자신과 동일시하며 “우리와 같은 국제학생”이라고 언급하며 드라마를 만드는 것은 코미디였다.
몇 주 뒤, 카페에서 졸업작품 이야기를 하기 위해 어거스트를 만났을 때 그는 경찰서에서 오는 길이었다. 어거스트는 미국인으로 잭의 친한 친구였고, 나와 함께 프로젝트를 하기로 한 촬영전공 학생이었다. 어거스트를 비롯한 모든 미국인은 모두 경찰서에 가서 잭에 대한 인터뷰를 한 모양이었다. 나는 왜 내가 경찰의 연락을 받지 않았는지 의아했지만, 학교 교수들이 참고인 목록에 미국인 학생들의 이름들만 올렸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무슨 질문을 했어?”
“그냥. 그의 가족 관계에 대해서 아는지. 형제나 부모나. 친구는 누군지.”
“알고 있었어?”
“아니, 근데 아는 게 없더라고.”
“친한 것 아니었어?”
“그렇다고 생각했는데. 돌이켜보면 술친구였지. 카메라를 좋아한다는 것과 술을 많이 마신다는 것 외에는 공통점이 없었어.”
“다른 질문은 없었어?”
“그냥, 살인을 저지를 만한 사람처럼 보였는지. 그런 전조가 전혀 없었는지.”
“그래서? 그래서 예전에 프로젝트로 잭이 아이디어 냈던 것 있잖아. 옥상에서 마네킹을 떨어뜨렸었잖아. “
“시우가 다른 여자애를 옥상에서 밀었던 그거? 그게 잭의 아이디어였어? “
“응. 근데 이미 다른 미국애들도 다 그 인터뷰에서 그렇게 언급했대. “
“근데 그건 뭐… 전조라고 하기엔.”
“그렇지. 무리가 있지. 학생 작품의 대부분이 다 살인에 대한 건데, 특이한 건 아니지. “
“그러니까.”
더 무슨 말을 더 해야 할지 몰랐다. 졸업작품에 집중할 수도 없었고, 잭에 대해서는 더 아는 것도 없어서 우리는 한참 동안 아이스 아메리카노의 종이빨대를 질겅질겅 씹고, 얼음을 뒤적였다. 영국의 부활절 휴일이 시작되자, 대부분의 학생들은 조용히 흩어졌다. 유럽 학생들은 제네바나 니스로, 중국 학생들은 상하이나 베이징, 광저우로 돌아갔고, 미국 학생들은 캘리포니아, 뉴욕, 오스틴에 있는 각자의 집에 돌아가 휴식을 취했다.
이 소식이 퍼지자 마크의 학교에서는 대대적으로 우리 학교의 모든 졸업작품에 참여를 하지 못하도록 공고를 내렸고, 우리 팀은 촬영을 2주 앞두고 미술감독을 다시 구해야 되는 상황에 놓인 것이었다. 급하게 구한 미술감독은 경력이 없는 어린 학생이었고, 열정적이지도 않았고, 결국은 모두에게 피해를 끼쳤지만 촬영준비는 무난히 진행되고 있었다.
김이 빠진 기네스의 쓴 맛이 입을 감돌았다. 차라리 위스키를 마실 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남자와 나는 시끄러운 펍을 나섰다. 유리문을 닫자 그토록 날카롭던 소리들이 둥그렇게 뭉개졌다. 그 작고 오래된 펍 안에서 귀가 얼마나 멍멍해졌었는지 그제야 깨달았다. 당분이 전부 다 빠져나가는 느낌에 나도 모르게 어깨가 축 늘어졌다. 마크는 괜찮냐고 물었고, 나는 당이 조금 떨어졌다고 말했다. 배가 고픈 것 같아.
“우리 집이 여기 근처인데. 내가 요리를 해주면 어때? “
나는 내 앞에 서있는 남자를 바라봤다. 검은 곱슬머리의 중국계 미국인 남자. 중국사람이지만 어렸을 때부터 미국에서 자라 영어 발음이 유창했고, 표정이나 태도에 자신감이 배어있었다. 모자랄 것도 흠잡을 데도 없는, 올바르게 자란 데다가 미적 감각도 훌륭한 것 같은 남자였다. 하지만 무스를 바른 물결 모양의 그의 머리를 보면서 나는 다시 잭을 떠올렸다. 사실 오늘 그를 만난 순간부터 나는 계속 잭을 연상하고 있었다. 전혀 닮은 점이 없는 두 사람이었지만 나는 어떻게든 무의식적으로 공통점을 찾고 있었다. 그날 펍에서 잭이 사준 허니 잭과 레모네이드는 달착지근하고 딱 내 입맛에 맞았다. 내가 주문하는 것을 보고 다른 친구들도 따라 주문을 했고, 나는 종종 그 후에도 펍에 가면 그 음료를 주문하곤 했다. 내가 그것을 마실 때마다 다른 친구들은 “완벽한 머리의 잭 추천?”이라며 놀리듯이 노래를 불렀고, 나도 그날 이후로 잭과 잭 다니엘에 대해 농담을 하곤 했었다. 그 사건이 있고 나서 내가 무의식적으로 펍에서 잭 허니와 레모네이드를 주문하자, 옆에 있던 친구가 놀렸다. 그건 논란의 소지가 있는 선택인데, 라며. 장난스럽게 받아치며 허니 위스키를 마셨지만 당황스러운 기분에 휩싸였다. 그날따라 위스키는 지나치게 달기만 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오늘은 조금 피곤해서. 집에 가서 쉬어야 할 것 같아. 다음에 기회가 되면, 또 연락하자.”
마크는 적당히 아쉬운 표정을 지으면서도 담백하게 이별을 고했다. 나도 적당히 웃고, 손을 흔든 후 돌아서서 아스널 역으로 향했다. 충분한 매력과 호감을 느낄만한 상대였지만, 지금은 매력적인 이방인이 주는 가벼운 도파민에 도무지 집중할 수 없었다. 그러기엔 펍이 너무 시끄러웠고, 내 머릿속은 범죄와 피해자로 가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