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바 1

단편소설

by 유조

다들 헤어질 시간이 되었을 때, 같은 방향으로 가는 것은 노바와 나뿐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같이 우버를 타기로 했다. 밤 11시가 넘는 시간이었다. 노바가 촬영장비를 내려주는 것을 도와줄 동안 나는 셀린의 집 안, 소파에 앉아서 기다렸다. 한 시간 넘게 앉아서 기다리다 지친 나는 일어나서 집을 나섰다. 불은 꺼졌지만 여전히 기름 냄새가 나는 작은 음식점들과 상점들을 지나 코너를 돌자마자 주차되어있는 커다란 하얀 벤이 보였다. 그 앞에서 노바와 스티비가 열쇠를 연신 눌러대고 밴의 뒷문을 열었다 닫았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노바, 무슨 일이야?”

“아, 유조. 정말 미안해. 많이 기다렸지. 키가 고장이 난 것 같아. 뒷문이 잠기지가 않아. “


노바옆에 있는 스티비는 50대 후반에 머리가 희끗한 영국인 남자였는데, 우리가 도와주러 온 단편영화의 프로듀서였다. 말하자면 그는 이 모든 프로젝트의 총책임자였다. 벤 안에 비싼 촬영장비들이 실려있기 때문에 뒷문이 열린 채로 밤새 둘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평소 같았으면 도와주고 싶었을지도 모르겠지만, 무분별한 촬영 스케줄로 인해 며칠간 잠을 제대로 못 자서 신경이 곤두서있었다. 게다가 다음 날은 오전 7시까지 촬영장에 와야 하기 때문에 어떻게든 빨리 집에 가서 자야 한다는 생각에 예민해져있었다.


“렌트한 차량이면, 전화해 볼 수 있는 데가 없나요? 고객지원센터 같은.”


스티비는 아마 이 시간에 받지 않을 것이라며 길게 설명을 늘어뜨렸고 계속 똑같이 키를 누르기만 반복했다. 나는 말을 끊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스티비한테 그래도 한 번 전화번호부터 찾아보라며, 24시간 지원센터 같은 것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방법을 전혀 찾아보지 않고 한 시간 동안 벤 앞을 서성이며 차 문만 반복해서 열었다 닫았다 했다는 것이 한심스러웠다. 나는 노바를 옆으로 불러내서 작게 말했다.


“노바, 가자.”


노바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혼자 그냥 두고 그냥 갈 수가 없잖아.”

”노바, 벌써 한 시간이나 지났어. 우리는 이 촬영팀의 감독이나 메인팀도 아니잖아. 촬영감독하고 연출하고 프로듀서들이 해결할 문제야. 우리가 없어도 그들끼리 충분히 해결할 수 있고, 그들의 일이라고”

“나는 그냥 두고 혼자 가버리지는 못하겠는데… 그럼 너 먼저 우버를 타고 가. 난 버스 타고 갈게. 정말 미안해.”

“노바… 이미 기다렸잖아. 같이 가자. 네가 있어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나는 그날 누구에게도 표출하지 않고 눌러왔던 예민함을 그에게 표출하며 투정하듯이 그를 설득했다. 긴 뽀글머리를 긁으며 노바는 난감해하다가 알겠다고 말했다. 스티비한테 인사를 하고 오겠다며 그에게 걸어갔다. 나는 본의아니게 짜증을 낸 것이 조금 미안해졌지만 한숨을 쉬며 핸드폰으로 우버를 불렀고, 그 사이에 영화의 감독인 셀린과 촬영감독인 루시가 벤으로 다가왔다. 나는 그들에게 벤의 오작동에 대해 설명했다. 셀린은 자기들이 알아서 할 테니 어서 집에 가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녀 특유의 활짝 이를 드러내는 웃음을 지으며 도와줘서 너무나 고맙다고 거듭해서 말했다. 오늘도 너무 고마웠어. 너 없었으면 정말 못했을 거야. 셀린은 늘 실제보다 조금 더 오바해서 상대방을 추켜세우는 습관이 있었다. 과한 반응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기분이 조금 좋아졌다. 그녀와 포옹을 나누고 나는 노바를 불렀다. 그리고 그와 함께 우버가 도착하기로 한 장소를 향해 걸었다.


스탠더드 우버를 요청했지만 우리 앞에 나타난 차는 6인승의 검은색 벤이었다. 큰 문이 열리자마자 노바는 껄껄 웃으며 우버에 올라타며, Hey, how you doing man, 하며 우버 운전자에게 큰 목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와, 정말 큰 차가 왔네요! 이런 큰 차가 올 지는 몰랐어요”

“그렇죠? 차가 정말 크죠?”

“완전 VIP가 된 듯한 느낌이에요!”


노바의 유쾌한 말투에 공기가 단 번에 달라졌다. 우리는 자리가 넉넉하고 쾌적한 차에 올라탔고 운전자는 기분 좋게 우리에게도 어떤 하루 보냈냐고 인사를 건넸다. 잠자는 시간을 쓸데없이 낭비한 것에 대한 스트레스가 조금 누그러졌지만 여전히 피로했다. 체력적으로, 그리고 감정적으로 많은 소모가 있었던 하루였다. 노바는 앉자마자 운전자에게 어디서 왔냐고 물으며 마치 오랜만에 반가운 친구를 만난 듯이 이야기를 이어갔다. 아는 사람에게도 딱히 할 말을 찾지 못하는 나의 눈에 처음 만난 사람도 가족처럼 스스럼없이 대하는 노바의 대화법이 경이로워 보였다. 창 밖으로 셀린과 루시, 스티비가 하얀 벤 앞에서 언쟁을 높이는 듯한 모습이 언뜻 보였지만 우리가 탄 차는 그들을 빠르게 지나치며 그곳을 벗어났다. 이미 노바와 운전자는 자신들이 온 나라의 문화에 대해서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운전자는 자신은 인도에서 왔다고 설명했다.


“아, 그럼 당신은 카스트 제도를 따르나요?”


그 말에 나는 고개를 돌려 운전자의 표정을 살폈다. 만나자마자 카스트 제도에 대해서 물어보다니, 무례한 것은 아닐까? 하지만 노바 특유의 순수한 말투 때문인지 운전자는 전혀 거부감 없이 술술 자신의 배경에 대해 설명했다. 아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자신이 사는 곳에서는 카스트를 거의 따르지 않는다고 했다. 카스트. 오랜만에 들어보는 단어였다.


”나는 티베트에서 왔거든요. 하지만 인도에서 학교를 다녔어요.“

”그래? 인도에서 학교를 다녔었어? “


나는 두 사람의 대화에 끼어들며 노바에게 물었다. 아마 언젠가, 처음 노바를 만났을 때 그가 말해줬던 것 같기도 했지만 그때는 그의 말을 흘러들었었다.


”응. 어렸을 때. “

”런던에는 언제 왔다고 했지? “

“7년 됐지.”

“가족들이랑 왔어?”

“혼자 왔어. 혼자 살고 있고. 고독한 늑대짓을 하고 있지. “


고독한 늑대. 어쩐지 노바와 어울리면서도 어울리지 않는 단어였다. 노바는 지나칠 정도로 외향적이고 누구와도 스스럼없이 말해서 전혀 혼자이지 않을 것도 같았지만, 그의 행동은 남들을 전혀 의식하지 않는 독특한 거침이 있었다. 확실히 그에게는 혼자 야생풀을 헤쳐가며 살아남는 아웃사이더의 느낌이 있었다. 노바는 티베트의 정치적 상황 때문에 인도를 갔다가 영국으로 오게 되었다고 했다. 가족과 떨어진 지는 10년이 넘었으며, 그 배경에 대해서는 자세히 설명하지 않았다. 하지만 망명 신청자였기 때문에 티베트로 돌아가서 가족을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나는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하는 노바의 얼굴을 살피면서 그의 나이를 가늠해 보려고 애썼다. 얼마나 어렸을 때 가족을 떠나온 것일까. 30대 중후반으로 보였지만, 왠지 보이는 것보다 나이가 어릴 것 같기도 했다. 머리는 전체적으로 꼬불꼬불하고 눈꺼풀까지 내려와 있는 길이에 기름져있고, 피부는 구릿빛이었다. 왼쪽 귀에는 비즈로 만든 귀걸이를 하고 있었고, 눈은 히스 레저처럼 처져있고, 얼굴은 선이 굵고 각진 오각형의 턱을 가지고 있었다. 키는 170cm 정도, 몸이 다부지고 역삼각형의 어깨를 가지고 있고 늘 하와이안 셔츠와 같은 화려한 패턴의 셔츠와 반바지를 입었다. 손목에는 나무염주를 비롯한 실로 만든 여러 개의 팔찌들을 겹쳐서 착용하고 있었다. 노바의 눈빛은 뭐랄까, 상대의 말을 하나도 허투루 듣지 않는 지나친 다정함과 경청에서 나오는 질긴 강인함 같은 것이 있었는데, 나는 그것이 이따금 부담스럽다고 느꼈다. 하지만 평소와 달리 나는 노바의 눈을 피하지 않고 그와 대화를 이어갔다.


사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나는 노바가 싫었다.

작가의 이전글논란의 소지가 있는 허니 위스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