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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누군가와 싸우고 싶다면

by 은빛영글

식탁에 앉아 책을 읽던 아이가 갑자기 째려봤다. 화가 났다거나 삐졌거나 하는 감정적인 상황 없이 가만히 앉아 있다 초점 없이 째려보는 순간의 눈길에 적잖게 당황했었다. 그것이 단순한 째려봄이 아니라는 걸 깨닫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사건이나 예고 없이 째려보고 찡그리며 고개를 비트는 모습은 유튜브나 티비에서 접했던 모습과 너무 같아 고민할 것도 없었다.

‘말로만 듣던 틱이구나.’


몇 날 며칠도 제대로 못 자고 인터넷과 유튜브를 뒤지느라 일상이 엉망이 됐다. 갈팡질팡하는 내게 스마트폰 속 전문가들은 초등학교 입학 시기쯤 겪는 흔한 모습이며 일시적인 현상인 경우가 많으니 스트레스 주지 말라고만 했다. 행동에 대한 지적은 절대 금지라고 하나같이 입을 모아 말했다. 시간이 지나면 좀 나아질까 했지만 눈에서 시작된 작은 행동은 코로 입으로 목으로 이동만 할 뿐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재채기와 함께 시작되는 비염 증상처럼 조금 덜 한 날은 있었지만 깨끗하게 사라지지는 않았다.


아이의 기질에 대해 걱정되었던 적이 처음이 아니었기에 시간을 끌지 않기로 했다. 멀지 않은 위치의 심리치료센터에서 상당한 비용을 지불하고 받은 검사에서 아이는 전형적인 틱의 증상을 보이고 있다는 말과 그의 예민한 기질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침착하게 듣고 싶었지만 떨리는 손과 빨개지는 눈가는 침착하지 못했다. 놀이치료 일정을 잡는 내내 끝을 알 수 없는 늪에 끌려 들어가는 것 같았다.




초등학교 갓 입학했을 당시의 아이는 급격히 변한 생활과 친구들의 문제에서 예민함의 절정을 보여줬다. 경력이 제법 많아 보였던 담임 선생님은 아이의 틱 행동을 보면 직접 지적하기도 했고 부모에게 전화해 아이와 부모를 비난하기에 바빴다. ADHD, 틱, 공황장애, 우울증. 쉽게 접할 수 있는 단어였지만 막상 우리 가족의 일이 되니 정신적, 육체적, 경제적으로 지쳐갈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계속 분출되는 아이의 예민함과 여러 상황에 지쳐 같이 화를 내는 날이 늘었다. 내 안의 또 다른 자아가 이런 미친년이었나 싶어 괴로워하고 있을 때 담당 치료 선생님께서 한 가지 제안을 하셨다.

“아이가 화를 내거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할 때, 어떤 상황이었는지 기록을 해 주세요. 그럴 때 부모님이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 혹은 아이의 반응이 어땠는지, 어떻게 대처했는지 같은 내용을 최대한 자세하게 기록해 주시면 좋아요.”

센터에 매일 올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어쨌든 가장 편한 공간에서는 긴장감이 풀어지기 때문에 격한 행동을 보이기 쉬우니 가정에서의 일을 기록하면 상담과 치료에 도움이 될 거라고 덧붙이셨다.



공부는 못했어도 비교적 선생님 말씀은 잘 듣던 학생이었던지라 그날부터 치료 선생님 제안대로 아이의 상태를 성실하게 기록하기 시작했다. 아이가 과하게 화를 내거나 이상 행동을 보일 때 함께 진흙탕에 빠져 범벅이 되기보다는 한걸음 물러 서 아이를 바라보고 차분하게 기다릴 수 있게 되었다. 다행인지 한꺼번에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할 수 없는 멀티가 안 되는 인간이 나였기에 최대한 많은 것을 정확하게 기록해 선생님께 전달기 위해서는 아이의 행동을 관찰하고 암기하는 동시에 화를 낼 수 없었다. 매번 그러지는 못했지만 웬만한 상황에서는 휩쓸리지 않고 최대한 꼼꼼하게 기억하려 애썼다. 덕분에 아이가 조금 진정이 되면 전보다는 차분하게 대응해 줄 수 있었다.

분위기가 한결 차분해지면 방에 들어가 간단하게 상황을 메모하고 밤늦은 시간에 자세하게 정리해 선생님께 메일을 보내곤 했다. 글로 상황을 정리하다 보니 아이가 어떤 상황에서 불편한 감정을 느끼고 반응하는지 조금씩 찾을 수 있었다. 비슷한 상황에서 가족들의 대응에 따라 어떻게 반응하는지도 읽혔다. 특히, 주 양육자였던 내 반응에 따라 상황이 어떻게 좋아지거나 악화되는지를 읽을 수 있어 잠든 아이의 손을 잡고 울며 미안해하기만 했던 것에서 한걸음 나갈 수 있었다.


내가 지켜보고, 기록하고, 다시 읽어봄으로써 상황을 이해하고 판단하고 깨달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메일을 토대로 선생님은 치료를 준비하셨고 치료가 끝나면 나와 많은 대화를 나누고 다독여 주셨다. 그 후로 몇 달이 지나고 치료는 종료가 됐지만 몇 년이 지난 지금도 아이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거나 긴장이 될 때는 틱으로 보이는 행동을 보인다. 다만 다른 사람들은 크게 눈치채기 힘든 행동을 보일 뿐이고 ‘긴장된다’ 등의 말로 자신의 마음을 표현할 수 있게 됐다.


아이의 행동을 기록했던 행위가 치료에 어떤 도움을 줬는지는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큰 도움이 된 건 분명하다. 이 경우는 일종의 보고서 같은 마음으로 쓰긴 했지만 일기를 쓰는 행위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일기장은 감정의 쓰레기통이라 부를 만큼 속상하거나 화나는 일이 있을 때 찾게 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습관적으로 매일 쓰는 사람도 많고 행복한 일, 뿌듯한 일도 많이들 적는다) 이런 경우 일기를 쓰다 보면, 더 나아가 일기를 쓰다 울기라도 하면 조금 마음이 후련해지고 차분해짐을 한 번쯤은 경험해 봤으리라 추측해 본다. 자신의 안에 가득한 응어리들을 글로 표출하는 것은 건강한 해소가 아닐까?

비단, 양육에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나를 화나게 하는 상황, 사람, 그 무엇이라도 순간 휩쓸려 대응하려 하지 말고 ‘내가 지금 당신의 만행을 글로 남길 거야’라는 마음으로 한 템포 멈출 수 있다면 상황이 슬로모션으로 움직이듯 흥분이 가라앉게 될 것이다. 나만 볼 수 있는 일기장이든, 손으로 쓰는 게 싫다면 SNS나 커뮤니티 (공개 혹은 비공개 그건 본인의 판단이겠지만) 심지어 나에게 메시지 보내기라든가 스마트폰 메모장 등 형태는 다양하다. 단순히 상황을 기록해도 좋고 못 견디겠으면 욕으로 잔뜩 채워도 후련해진다.



어째서인지 행복한 이야기보다 괴로운 이야기는 입 밖으로 꺼내기 힘들어진 사람들이라면 한 템포 쉬며 글로 남길 수 있기를 그리고 그 글을 다시 읽어 볼 용기를 가져보길 추천한다. (그렇다고 내 안의 화가 모두 사라진 건 아니라고 조용히 덧붙여본다)


기억하고 기록하자. 작은 글자들이 모여 마음을 다스려 줄 것이다.





신기하게도 글에는 치유 능력이 있다. 아무래도 글을 쓰려면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히고 자신의 내면을 물끄러미 들여다보는 순간이 필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편성준의 "살짝 웃기는 글이 잘 쓴 글입니다" 중에서




+ 이미지 출처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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