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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창과 출신도 맞춤법은 어려워요

by 은빛영글

자주 들어가는 커뮤니티에 "카톡 오타 가득한 채 보내는 건 왜 그러는 건가요"라는 제목의 글에 달린 여러 개의 댓글들을 읽다 보니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어쟤는 잘 들어가셨어요?”

어? 쟤는 잘 들어갔대?라고 주선자의 안부를 묻는 뜻이었을까? 소개팅한 상대에게 받은 첫 문자 치고는 맞춤법이 상당해 한참의 시간이 지난 지금도 기억이 난다.
호감 있는 이성에게 받은 맞춤법 틀린 메시지나 어울리지도 않는 과한 이모티콘 사용에 긍정적인 마음이 부정적으로 바뀌었다는 글이 떠올랐다. 공감하는 댓글이 꽤 많았던 걸로 기억한다. 나름 맞춤법에 대해 예민하게 생각하던 당시였기에 줄줄이 들어오는 맞춤법 엉망인 그의 메시지에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오타라고 귀엽게 넘기기에는 너무 다양했고 쉼 없이 반복됐다. “재가 대리러 갈까요”라는 문자에 더 이상 답하기를 그만두고 휴대폰을 닫아 버렸다. 초등학교 받아쓰기 시간의 그의 모습이 어땠을지 충분히 가늠해 볼 수 있는 수준이라 그에게 마음이라도 있었으면 난감할 뻔했다.


BLUE - 파란색. 파랑색. 바다색. 하늘색. 푸른색. 시퍼러둥둥. 시퍼런. 새파란, 진한 파랑, 연한 파랑, 청색 등 같은 단어로 표현할 수 있는 말도 너무나 다양해 가끔 한글의 현란함에 놀라곤 한다. 욕은 또 얼마나 다양한지 ‘Fuck’ 앞에 대응할 수 있는 요란한 욕설은 뜻을 모를 상대방을 충분히 위협할 수 있을 것이다. (차마 글에 담지 못하겠다) 뿐만 아니라 먹는 배, 타는 배, 신체의 한 부분 배 처럼 같은 소리를 가진 뜻이 다른 단어들도 많다. 찌개 찌게, 설겆이 설거지처럼 제법 헷갈리는 것들은 여전히 어렵다. 오래전에 한글을 배운 분들은 지금도 가끔 “읍니다”라고 글을 쓰듯 시간의 흐름에 따라 형태도 조금씩 변하고 있어 지금 맞다고 생각하고 있는 맞춤법이 정말 맞는 것이라고 확신을 갖기도 어려워졌다. 초등 저학년 아이가 받아쓰기 시험 준비한다고 들고 온 종이를 보며 고개가 갸우뚱 해졌던 적도 몇 번 있었다. 이런 내가 무슨 자격으로 타인을 힐난했던 건지 그때의 오만했던 고개를 눌러 숙여주고 싶다.


비단 글쓰기나 책 읽기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유튜브는 물론 케이블이나 공중파 방송에서 조차 출연자들의 멘트에 따른 자막을 소리 나는 대로 쓴다거나 신조어 혹은 줄임말을 사용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오히려 이해하지 못하면 늙었다고 웃음거리가 된다. 예능을 보며 왜 다큐를 찍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장면에서 찌푸려지는 건 어쩔 수 없는 문창과 출신의 꼰대력일 수도 있겠다. 강아지의 마음을 자막으로 옮기며 “행복하개”라고 적는 건 맥락상 성인들은 이해할 수 있겠지만 특히나 어린아이들도 함께 웃고 즐기는 방송을 볼 때면 학교 맞춤법 시험보다 방송국의 자막 검열이 더 급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다양한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들을 읽다 보면 말도 안 되게 글을 작성한 경우도 있지만 반대로 맞춤법이 엉망인 누군가를 비웃는 글들도 종종 보인다. 때로는 이런 비난 섞인 댓글에 울컥해 맞춤법 틀리는 게 대수냐며 옹호하는 글도 쉽게 볼 수 있다. 음성으로 텍스트를 입력해 오타가 자주 생긴다거나 큰 손에 비해 크기가 작은 아이폰으로 작성하다 보면 오타가 왕왕 발생한다고 대신 변명해 주는 댓글들도 있다. 이런 댓글 한두 개에 설득당하는 나라는 인간도 세종대왕님이 벌떡 일어나 “너도 별반 다를 거 없으니 너나 잘해라.”하고 꿀밤을 내리실 수도 있겠다. 때로는 한국에서 40년 넘게 살아온 나보다 외국인들이 더 정확하게 사용하는 모습을 보기도 해 혼자 민망해진다.



초등 5학년 아이의 학급에서 받아쓰기를 보기 시작했다. 받아쓰기는 1, 2학년 때나 하는 게 아닌가 의문스러웠지만 요즘 아이들이 책도 안 읽고 맞춤법이 심각하다는 것이 담임 선생님의 의견이었고 충분히 동의한다. 이미 각종 매체에서 이상하게 쓰인 맞춤법에 노출된 아이들이 걱정되는 건 나만이 아닌가 보다 싶어 안심도 됐다. 맞춤법을 잘 안다고 해서 우월한 존재는 결코 아니다. 맞춤법 좀 틀린다고 당장 삶에 큰 지장 따위 없을 수도 있겠다. 단지 뜻만 통하면 된다고 생각한다면 맞춤법이 왜 존재해야 하는 건지 존재의 의미부터 생각해야 되는 게 아닐지 조심스레 생각해 본다.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한 요즘 발행하기 전 호기롭게 ‘맞춤법 검사’ 버튼을 누르면 떠오르는 빨간 줄은 어린 시절 한글과 산수를 가르쳐주던 선생님의 무자비한 빨간 색연필과 흡사했다. 이게 내 주식시장이었으면 정말 행복하겠다. 단톡방에 글을 쓸 때도 sns에 글을 올릴 때도 맞는 표현인지 맞춤법이나 띄어쓰기 검사를 하게 됐다. 그런 기능은 믿어도 되는 걸까 의심도 해보지만 의존하게 되었다.

오늘도 빨간 줄이 수없이 그어질 글을 쓰며 자만했던 나는 떨고 있다.


덧) 맞춤법, 띄어쓰기 오류 46개. 저부터 잘하겠습니다.



(이미지 출처 : 언스플래쉬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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