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끝 무렵 동네 목욕탕은 평소보다 더 소란스럽다. 명절 전날 남탕이 친척들 만나러 가기 전에 때를 밀고 준비 하는 모습이라면, 명절 다음 날 여탕은 명절 동안 쌓인 뭉친 근육들을 뜨거운 물에 풀어내고 헐벗은 채로 수다를 떠는 모습이 아닐까 싶다.
언젠가부터 슬픈 날에는 목욕탕에 갔었다. 따뜻한 물에 얼굴이 벌게진 건지 울어서 코가 빨개진 건지 아무도 내게 관심도 없었다. 얼굴에 가득 머금은 물기는 땀인지 눈물인지 눈치 볼 필요도 없어 좋았다.
특히나 추운 날씨에는 따뜻한 물에 들어갈 때 발끝에서부터 느껴지는 찌릿함이 온몸으로 퍼져나가는 기분에 살아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숨이 턱턱 막히는 한증막에서 모르는 사람들과 헐벗은 채 나란히 앉아 땀을 뻘뻘 흘리며 쏟아져 내리는 모래시계를 노려봤다. 무언의 경쟁을 하다 지고 나와도 괜찮다. 찬 물에 조심스레 한 발씩 들어가 벌게진 몸을 식히면 괜히 피부가 탱탱해지는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했다.
머리가 유난히 복잡한 날에도 목욕탕에 갔다. 목욕탕 특유의 웅웅 거리는 공기에 맞춰 차갑고 뜨거운 물줄기가 털어져 으깨어지는 소리가 더해지면 머릿속 구석구석에 있던 것들도 함께 으깨져 흘러가는 것만 같았다.
목욕탕은 휴식처였고, 쉼터였다.
명절 끝 무렵의 목욕탕에는 뜨거운 물에 코끝이 벌게져 있는 사람들도 있었고, 멍하니 모래시계만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뭐가 그리 화가 났는지 온몸이 벌게지도록 벅벅 문질러대며 씩씩 거리는 사람과 그의 등을 밀어주며 맞장구 쳐주는 사람으로 소란스러웠다. 비단 오고 가는 고속도로만이 명절의 풍경은 아니었다.
작은 아이가 뒤뚱거리며 걷는 모습에 어느새 할머니들과 아주머니들의 시선이 쏠린다. 손주가 오는 게 좋지만 가는 건 더 좋다며 명절 내내 손주들에게 시달렸을 할머니들 앞에 선 아이는 오늘 여탕의 한류스타임이 분명했다. 혹여나 넘어질까 기우뚱 거리는 발걸음을 모두 함께 숨죽여 지켜봤다.
“아이고, 귀여워라. 아가, 할매한테 와 봐.”
낯선 할머니의 손길을 보고 획 돌아서는 새초롬한 볼살에 사춘기 소녀들처럼 까르르 소리를 내며 웃는다. 발갛게 달아오른 홍조 띤 볼은 어린 소녀 못지않다.
“우리 며느리야.”
함께 몸을 담그고 있는 낯선 이에게 묻지도 않은 며느리를 소개한다. 딸도 아니고 며느리와 함께 목욕탕에 온 본인의 권위를 자랑하고 싶은 건지, 속살까지 공유하는 두 사람의 친밀함을 자랑하고 싶은 건지 목적을 알 수 없는 자랑에 빨갛게 달아오른 하얀 얼굴의 며느리는 세신사의 부름을 받고 총총히 사라졌다. 부러움과 질투가 적절히 섞인 온갖 어머님들의 목소리만 뒤에 남겨놓은 채 그렇게 사라졌다.
누군가에게는 자랑의 장소였고, 또 누군가에게는 부러움의 장소였다.
잔뜩 젖어있는 공기에 덧 씌워진 웅성거림을 뒤로한 채 문을 열고 나온다. 소란스러운 라디오를 꺼버린 것처럼 주위가 조용해졌다. 윙윙대는 드라이기 소리와 딸랑딸랑 냉장고를 여닫는 소리만 들린다. 분명 1시간 전까지만 해도 훈훈한 공기에 선뜩 잠바를 벗어던졌는데 어쩐지 썰렁한 기분이 들어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하지만 약간의 시간이면 적응하는 데 충분하다. 뚝뚝 떨어지는 물기를 닦고 후덥지근한 여름 바람 같은 드라이기에 머리카락을 말리다 보면 어느새 괜찮아진다. 조금 전의 으스스함은 흘려버린 비누거품처럼 사라져 버렸다.
목욕탕 문이 열릴 때마다 라디오가 다시 켜지듯 소리가 밀려 나왔다가 다시 갇혔다.
소란스러운 아주머니 두 분이 씩씩하게 몸무게를 재 보더니 깔깔깔 큰 소리로 웃는다. 그녀들의 웃음소리가 가득 차 다들 무슨 일인가 미어캣처럼 쫑긋쫑긋 바라봤다.
“이 언니는 살쪄서 52kg인데, 나는 살 빠져서 62kg이야!”
뭐가 그리 좋은지 숨넘어갈 듯 웃어대며 식혜를 들이마시는 살 빠진 아주머니 곁으로 웃음이 묽게 번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