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해서 걷다 보니 글을 쓰게 됐습니다.

by 은빛영글

불이 켜진 집 보다 꺼져있는 집이 더 많은 시간, 첫 운행을 시작하는 버스의 소리만 간간이 들려오는 새벽은 숨 막힐 정도로 고요했다. 대충 눈꼽만 떼어 낸 얼굴에는 마스크를, 부스스한 머리에는 모자를 눌러쓴 채 그림자의 소리조차 들키지 않으려고 현관문을 조용히 닫는다. 눈치 없는 도어락의 알림음이 얄밉다. 후드티에 달린 모자까지 덮어쓰면 언뜻 도둑과도 같아 누군가는 흠칫 놀라기도 하겠지만 채 데워지지 않은 공기에 서늘한 뒷목이 견뎌 내기에는 충분했다.

후-

내뱉는 깊은숨이 안경을 뽀얗게 만들어 마스크를 살짝 내려본다. 밤새 내려앉은 공기의 냄새들이 내 몸 깊은 곳까지 삼켜져 들어왔다. 살아있음을 온몸으로 들이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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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이나 무기력증 그 사이 어디쯤에 있었던 것 같다. 마침 코로나가 심할 때라 사람들과의 만남도 쉽지 않은 시기였다. 아이들은 학교에 가지 못했고 회사도 재택근무로 방침을 변경했다. 마트도 직접 가기보다는 배달을 주로 이용했고 집 밖을 나가는 일은 최소한으로 했다. 교도소에서 가장 힘든 것이 독방에 갇혀있는 거라고 하던데 그만큼 외부와의 단절이 주는 정신적인 외로움은 사람을 미치게 만들 수도 있었나 보다.


그래서 그랬었나 보다.

하루하루 숨을 쉬고 있는 것조차 힘겨워 살고 싶지 않았다. 병아리처럼 쉬지 않고 삐약대며 돌아다니는 아이들의 텐션을 쫓아가기도 버거웠고 특별히 힘든 사건이 있던 것도 아니었지만 지쳤다. 살고 싶지 않았다.

'죽고 싶다'와는 조금 다른 무엇이었다. 죽고 싶다는 욕망조차 가질 수 없을 정도로 그냥 단어 그대로 사라져 버리고 싶다는 상태였다. 밤마다 불을 끄면 어둠 속에 녹아내리고 싶었다.

당시 직장을 그만두고 프리랜서로 일을 시작한 친구와 이야기를 할 기회가 있었다. 누구나 던져 버리고 싶은 것이 회사라는 굴레라지만, 사실 그 목줄을 끊어내고 나면 닥쳐온 무소속의 현실은 생각보다 거칠고 막막했을 것이다. 덕분에 번아웃과 우울증을 오가며 위태로운 줄다리기를 하고 있었다. 언제 끊어질지 모르는 친구의 숨 막힘과 형태도 없이 존재 자체가 사라져 버릴 것 같은 나의 무기력함은 지독하게 뒤섞여 서로를 잡아 끌어내려가며 구렁텅이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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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위험했다. 이 상태로 두면 스스로를 망가뜨리게 될 게 뻔했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식구들이 잠에서 깨어나기 전 시간에 스르륵 빠져나와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언제였던가 새벽에 어학원을 다니겠다고 첫 차를 타고 강남역을 오갔던 기억이 떠올랐다. 첫 차에 가득 차 있는 사람들에 놀랐었다. 내심 뿌듯해하며 나왔는데 이렇게 부지런하게 살고 있는 사람이 많았었다니 민망함에 괜스레 부끄러워졌다. 그 시간의 강남역은 늘 그렇듯 사람이 많았다. 밤새 술을 마시고 제 몸을 가누지 못해 비틀대는 사람들과 첫 시간부터 강의를 듣겠다고 혹은 운동을 하겠다고 나온 사람들이 부딪히며 섞여있었다. 그 분위기를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활기가 생기다니 인간의 뇌는 생각보다 단순하고 미묘하다.

스물몇 살 때 강남역을 걷던 그 시간에 동네 산책로를 걷기 시작했다. 떡케이크를 만들어 파는 카페 사장님은 벌써부터 나와 떡을 찌고 있었고 어디론가 출근하는 사람들을 태우는 통근 버스는 요란하게 시동을 걸고 기다리고 있었다. 밤새 어둠 속에 빛을 내고 있던 편의점은 잠에서 깨지 못한 동공 풀린 눈빛으로 오고 가는 사람들을 맞이했고 그들 사이를 스쳐 지나가고 있노라니 새삼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열심히 살고 있는 그들을 보며 조금씩 살아날 수 있었다. 서늘했던 공기가 시원하게 느껴질 때쯤 되면 하늘이 불타오를 듯 붉게 물들며 새빨간 해가 동그랗게 떠오른다. 산 너머로 빼꼼 내민 얼굴을 살짝만 보여주다가 순식간에 솟아 오름에 눈이 부셨다. 오늘도 해냈구나 몸속 깊은 곳에서부터 벅찬 무언가가 순식간에 채워진다. 그 모습에 무엇인가 하고 싶다는 욕구가 생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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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할 수 있는 게 있을까? 방송통신대라도 들어가서 공부를 시작해 볼까? 자격증은 뭐가 있지. 자격증을 따면 수익으로 연결시킬 수 있을까? 스스로 묻고 답하고 거절하기를 반복하다 보니 어느 순간 ‘글을 쓰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글을 어떻게 쓰는 거지? 분명 나는 문창과를 나왔지만 글을 쓰지 못하고 있었고, 쓰지 않고 있었다. 어떻게 썼었는지 내가 대학을 나왔다는 게 현실에서 있었던 일인건지조차 헷갈렸다. 그저 꿈이었나 싶었다.

안 되겠다. 우선은 책을 읽어야겠다. 그런데 무슨 책을 읽어야 하지? 하, 또 벽이다. 우선은 쉽고 재미있는 책부터 읽어보자 싶어 베스트셀러라든가 유명한 작가의 소설을 빌려 읽기 시작했다. 난독증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책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흰 것은 종이요 검은 것은 글씨로구나 라는 말을 온몸으로 느끼며 시간을 보냈다. 그래도 계속 읽었다.

간단하게 일기라도 써볼까 싶어 다이어리를 샀다. 건조하기 이를 데 없는 재미없는 일과의 나열이라도 혹은 감정의 쓰레기통이라도 괜찮았다. 일단은 적어 내려갔다. 이른 산책을 하는 동안에는 글쓰기나 책 평론 관련된 팟캐스트를 듣기도 했다. 그들이 추천해 준 책도 읽고 지내다 보니 마음에 들어오는 구절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중에 울림이 남는 구절은 따로 메모해 일부러 sns에 인증하는 수고로움까지 덧붙였다.

재밌고 즐거웠다. 다시 글이 쓰고 싶어 졌지만 여전히 어떻게 어디에 그리고 무엇을 써야 할지는 머릿속에 백지처럼 맴돌기만 했다. 블로그에 일기라도 써야 할까 생각하다 브런치스토리를 도전하게 됐고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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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깜한 동굴 동굴 속을 박차고 나와 걸었던 어둑했던 길이 지금은 내게 목표를 만들어주었고 기쁨을 주고 있다. 도전하고 노력할 수 있는 용기를 주었고 글을 쓰는 행위에 즐거움을 느낄 수 있게 해 준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 욕심과 노력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나를 위한 시간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글쎄, 이 행복함이 얼마나 유지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다만 새벽에 걷던 시간이 선물해 준 지금의 시간을 조금 더 즐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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