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은빛영글 Jan 31. 2024

노트북으로 짓는 밥.  주방에서 쓰는 글.

평소에는 집 가까운 작은 마트에서 필요한 것만 조금씩 사다 쓰는 편이고 재래시장이 가까이 있는지라 퇴근길에 종종 이용하곤 한다. 냉동실에 그득한 화석 같은 냉동식품들만 녹여 먹어도 한 달은 거뜬히 살아낼 수 있을 것 같아 바쁘다는 핑계로 그마저도 소홀했던 요즘이다.

시댁에 김치를 가지러 다녀오는 길에 모처럼 대형마트에 들러 잔뜩 장을 봤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과자부터 과일이며 식자재를 카트가 토해낼 정도로 잔뜩 채워 넣고 캐셔가 찍어주는 바코트에 띠링띠링 올라가는 숫자들을 보니 한숨이 푹푹 나왔다. 카트에 있던 물건들을 장바구니에 옮겨 넣으며 보니 막상 당장 먹을 반찬 재료는 몇 개 없는데 도대체 뭘 산건가 물음표가 맴돈다. 이상하다. 



새벽 5시 15분. 온 세상이 잠든 것 같은 고요함 속에 울리는 알람 소리에 같이 잠들어있는 가족들이 깰까 더듬더듬 스마트폰을 찾아 버튼을 누른다. 어젯밤 마신 맥주 때문인지 쉽사리 떠지지 않는 눈으로 일어날까 말까 고민하다 까무룩 다시 깊은 잠에 빠져든다. 이런 상태를 어찌 알았는지 5분 후에 다시 재촉하는 소리에 무거운 몸을 일으켜 빠져나온다. 한 순간만 이겨내면 되는데 이불 밖을 빠져나오는데도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

어둠 속에 빛을 뿜어내는 노트북에 하얀 화면을 멍하니 바라본다. 몸은 나왔지만 뇌는 아직 이불속에 있는 건지 커서의 깜빡거림은 내 눈꺼풀의 움직임보다 빠르다.

뭘 써야 되나.

새벽을 함께 여는 이들의 단톡방에 올라오는 채팅창은 빠르게 움직였지만 내 눈은 여전히 느리다. 뭘 써야 할지 무엇을 위해 써야 할지 갑자기 멍해졌다. 분명 생활 속에 소소하게 떠오르는 상황들이 있었다. 당장 급하면 카톡으로 나에게 메시지를 보내거나 여유가 있을 때는 구글킵에 메모를 해두기도 한다. 이걸 잘 버무려서 글로 옮겨봐야지 싶었다. 글쓰기에는 메모가 필수라고 하니 한 순간 떠오르는 것들을 쉬이 날려버리지 않겠노라는 비장함도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하얀 모니터 앞에 앉아 뒤죽박죽 한 머릿속을 아무리 헤집어봐도 떠오르는 게 없었다. 마치 카트에 가득 담긴 물건들 중 당장 먹을 반찬은 할 게 없던 그 상황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상하다.



누군가는 집밥, 집밥 하던데. 직접 집밥을 매일 해 본 적 있느냐고 묻고 싶기도 하다. 예전에도 크게 집밥을 선호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지금은 특히나 엄마가 해 준 집 밥 따위 싫어한다. 내가 하는 집 밥은 더 싫어한다. 그냥 사 먹는 밥이 좋다. 배달도 아니고 가서 먹고 그냥 몸만 나오는 게 좋다. 나름 K엄마인지라 밥이며 반찬이며 골고루 차려주려고 노력은 하고 있지만 맛을 떠나 내가 한 밥 나도 먹기 싫은데 아이들이 골고루 먹지 않는다고 타박하는 것도 참 아이러니 하다.

아침밥 먹으면서 저녁 메뉴 물어보는 그 입! 저녁 먹으면서 다음 날 아침 메뉴 물어보는 그 입! 그 입 다물라! 어린애들도 아니고 특히 다 큰 어른인 너는 좀 주는 대로 먹어라! 하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꾹꾹 참아본다.

돌밥돌밥이라고 하던데. 아침 먹고 돌아서면 점심. 점심 먹고 돌아서면 저녁. 저녁상 눈 감았다 뜨면 또 아침이다. 사장님의 배려 아닌 배려로 방학 기간 동안 오전 시간 재택근무 중이라 점심까지 챙겨주고 나올 수 있음에 감사하지만 차라리 모른 척 눈감아버리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일하는 것도 아니고, 아이를 돌보는 것도 아니고, 살림을 하는 것도 아니고, 글을 쓰는 것도 아닌 정말 단어 그대로 엉망인 상태다.




장을 보고 돌아와서 몇 시간을 엉덩이 한번 붙이지 못하고 낑낑거린다. 요리에 소질이 있는 편이 아니라 블로그를 검색해 레시피를 보고 흉내 내는 정도이지만 나름 최선을 다해 비장하게 칼질을 해댄다. 지지고 볶고 찌고 데치고 끓이고 썰고 버리고 채우고 비운다. 한국인들은 왜 이렇게 밥에 반찬에 찌개 국까지 가득 올려놓고 먹는 밥상에 대접받는 느낌을 받는 건지 가짓수도 많고 손도 많이 가는 반찬. 4인 가족이 둘러앉아 기껏 젓가락질 몇 번이면 헤집어 빈 그릇이 될 반찬통을 채우기 위해 쏟아 낸 노력을 알아주는 이 하나 없어 괜스레 서운해진다.



책을 많이 봐야 글을 잘 쓴다고도 하던데 글을 읽을 일이 요즘 얼마나 있을까. 일부러 시간을 내지 않는 이상 특히나 종이책은 보기 더 힘든 바쁜 일상이다. 그 와중에 글까지 쓰려니 내가 쓴 글 다시 봐도 별로인데 누가 읽어주나 싶어 차라리 잘 만들어진 책을 읽는 게 나을 수도 있겠다 하는 생각이 가득했다. 뚜렷한 목적도 성과도 없는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아 허공에 대고 허우적대는 심정이었다.

머릿속이 복잡해 버스 손잡이를 잡고 비틀대는 내 앞에 앉아있던 여학생의 손가락은 무척 민첩했다. 빠르게 휙휙 넘어가며 피드 따위 제대로 보지도 않고 무심히 하트만 꾹꾹 눌러가며 넘기는 손가락은 기계의 움직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누군가 열심히 고민하고 올렸을 수도 있는 피드라든가 지금 이렇게 브런치에 쓰고 있는 글도 무심한 누군가의 손가락 놀림에 빠르게 스쳐 지나갈 거라고 생각하니 조금 씁쓸해졌다. 분명 나도 그러고 있음에도 서운함이 솔직한 심정이다. 하루에 내가 쓸 수 있는 시간은 제한이 있으니 그럼 잠을 조금 줄이자고 일찍 일어나 고민하며 적어내고 신중하게 읽어보고 다시 수정하고 또 읽어보기를 반복한 정성은 나만 알고 있겠지 싶은 마음에 외롭기도 했다. 식구들이 다 먹고 제대로 치우고 가지 않은 식탁에 덩그러니 앉아있는 그 마음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청소기 돌리고 돌아서면 발에 밟히는 레고 조각이나 어딘가 들러붙어있는 슬라임의 끈적함 따위 문 안에 두고 닫고 돌아서고 싶다. 그럼에도 오늘도 점심을 준비하며 저녁 고민을 할 것이다.

반찬투정을 하는 아이라도 정성껏 반찬을 준비하듯, 읽어주는 이 없어도 정성껏 한 줄 한 줄 늘려가겠다. 집밥이 싫다고는 하지만 아이가 언젠가 먼저 정성 담긴 반찬을 집어먹어줄 때의 희열처럼 조회수에 연연하지 않겠다고는 하지만 조회수 알람에 소소한 행복을 느낀다. 말끔한 밥상을 위해 주방은 전쟁터처럼 초토화된다. 고작 A4용지 한 장 반 정도의 분량을 위해서는 내 머릿속도 초토화되고 컨디션 안 좋은 날엔 어깨나 손목도 시큰거린다.


그래도 우리 가족의 건강한 밥상을 위해 오늘도 레시피를 뒤져 가스레인지에 불을 켜본다. 그리고 나를 위해 내일 새벽에는 또 노트북을 열고 글을 써야겠다.



(이미지 출처 : 픽사베이)

매거진의 이전글 우울해서 걷다 보니 글을 쓰게 됐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