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선수가 되고 싶다던 어린 시절 그에게 단단한 징이 박힌 축구화 대신 운동장 몇 번 뛰고 나면 앞코가 닳아버릴 싸구려 운동화를 쥐여 주셨다. 줄이 세 개 그어진 것도, 엄지와 검지를 펼쳐 로고의 형태를 흉내 낼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반찬거리를 사러 갔던 시장에서 축구화를 사 달라 조르던 아들의 말이 떠올랐겠지. 명치끝에 콱 걸린 칭얼대던 목소리에 잡았던 사과를 내려놓고, 고르고 골라 꾸깃한 지폐와 교환했을 그것을 품 안에 소중히 안고 돌아왔을 것이다.
부모님의 사정 따위 알 턱이 없었을 그는 검정 비닐봉지에서 축구화 대신 꺼낸 운동화를 보며 기뻐했을까, 어쩌면 원망했을까. 30년이 훌쩍 넘은 지금에도 한 번씩 꺼내지는 기억인 걸 보면 아마도 기쁘진 않았나 보다. 아이의 설렘 가득한 표정이 굳어가는 과정을 바라봐야 했을 그의 어머니는 아들이 아무렇게나 구겨 던져버린 검정 봉지를 돌돌 말아 한구석에 정돈해 놓았겠지. 지금도 그러하듯이.
기억을 떠올리면 재래시장 같은 건 쳐다보지 않을 법도 한데, 어느 지역으로 여행을 가도 시장부터 찾는 그다. 혹여 오일장과 일정이 맞는 날은 너른 갯벌에서 오백 원짜리 동전을 주운 꼬맹이처럼 행복하기까지 했다.
이른 시간부터 활기가 넘치는 재래시장은 온종일 사람들로 붐빈다. 배달도 해주고 카드 결제가 수월한 마트를 선호하는 이도 있겠지만, 여전히 바퀴 달린 바구니를 돌돌돌 끌고 다니며 가격 흥정 끝에 덤까지 얻어 낸 두둑한 검정 봉지를 하나씩 채워가는 이들도 있다. 덕분에 늦은 시간까지 불이 밝은 대형마트보다 재래시장의 불빛은 빨리 꺼진다.
"복숭아 있어요! 어머니, 딱복 한번 드셔봐."
대체 어머니가 몇이나 되는 건지. 울림통 좋은 야채가게 총각은 서글서글하기까지 해 그의 어머니들은 과일을 사는 건지 그를 보는 건지 하하 호호 바쁘다. 마주 본 생선가게 아줌마의 매서운 칼날이 박력 있게 칼춤을 추는 동안, 꼬마들은 호호 입김을 불어 꿀 호떡의 열기를 식힌다. 꼴깍 삼키는 달달한 그것에 입천장이 까지지 않도록.
하나씩 팔던 반찬을 두세 개씩 묶어 팔며 하루를 마감하려는 그들 사이로 주섬주섬 새빨간 불이 밝혀진다. 빨갛거나 투명한 비닐 천막 사이에서 빠져나오는 훈훈한 열기가 지나가는 바람에 실려 코끝으로 훅 들어온다.
초밥집 계산대에서 앙증맞게 오므린 주먹을 흔드는 고양이 모형처럼, 분명 나의 엄마 또래 돼 보이는 사장님은 '언니, 삼촌' 먹고 가라며 인사를 건네기도 한다. 호적도 엉망이고 위계질서도 뒤집어진 종일 분주한 곳이다.
사실 파는 음식도 가격도 고만고만하니 적당히 한산한 곳을 골라 엉덩이를 밀어 넣는다. 딱딱한 플라스틱 의자가 삐걱대며 반겨줬다. 버선발로 마중 나온 사장님의 손가락은 찰랑대는 홍합 국물에 살짝 흔들리며 우릴 보고 웃는다.
"어서 와."
크고 둥근 머리에 비해 가냘픈 몸을 가진 잔을 꽉꽉 눌러 채우지도 못하고 얼마나 채워야 할지, 어디부터 손을 대야 할지 고민할 필요도 없다. 손바닥에 살짝 힘을 줘 작고 가느다란 초록색 머리채를 휘어잡으면 우두둑, 종일 굽어있던 목을 돌릴 때 나던 소리가 손바닥 안에서 울린다. 떨어지는 계곡물이 커다란 바위에 부딪혀 튕겨 나가듯 맑고 투명한 녀석들이 우르르 쏟아져 내렸다. 빈 공간을 꽉 채운 작은 잔은 고작 한 모금이면 꿀꺽 사라져 버릴 것이기에, 손에 닿는 대로 쥐어 입에 털어도 괜찮다.
삐뚤게 뜯어진 모양새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나무젓가락은 작은 가시를 세우며 성을 낸다. 괜찮다, 괜찮아. 두 개의 마른 몸을 살살 비벼 가시를 떨어뜨리고 나서야 편안해진 눈치다.
플레이팅 따위 알게 뭐람. 대충 던져놓은 것 같은 오이를 쌈장에 푹 찍어 오물대다가 무심하게 내려놓은 새빨간 오돌뼈를 씹는다. 별다른 이야기가 오가지 않아도 괜찮다. 오도독오도독. 소리는 공간을 채웠고, 길쭉한 어묵을 낑낑대며 한입에 쑤셔 넣는 아이들로 시간이 채워졌다.
장사를 시작하는 이들과 마무리 짓는 이들이 분주하게 맞물린 시간, 그리고 공간. 꿀꺽 삼킨 소주 한잔이 담긴 빨간 포장마차는 우리의 쉼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