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럼 소리가 왜 좋은 줄 알아? 쿵, 쿵, 쿵 울리는 게 사람의 심장 소리 같거든. 바이크 소리, 드럼 소리, 이런 게 진짜 사람 미치게 한다니까.”
경아가 남편과 결혼하기 전에 만났던 남자에게 들었던 이야기다. 사람들의 환호성으로 가득 찬 콘서트장에서 그녀의 귓가에 소리치듯 속삭이던 그의 목소리와 잔뜩 흥분한 숨소리가 생생하게 기억난다. 대단한 소란함 속에 오직 둘만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 그렇게 영원한 사랑을 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찰나였다.
둘은 오래가지 않아 서로에게 등을 돌렸다. 어쩌면 당연했다. 둘은 너무 달랐으니까. 아마도 밴드에서 드럼을 연주하고 바이크를 타던 그의 자유로운 모습을 사랑했던 것 같다. 그의 손을 잡고 있는 동안에는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 것 같았다. 자신을 옭아메고 있는 모든 현실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빠르게 달릴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결혼은 현실이라고 했던가. 결혼식장에 함께 들어간 건 온몸으로 자유를 말하던 그가 아니라 안정감을 주는 지금의 남편이었다.
철없던 시절이라 치부해버린, 단지 기억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는 것 뿐인 그의 말이 왜 하필 지금 떠올랐을까.
경아의 등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움찔거리는 그 소리는 발정 난 고양이의 울음소리와 닮았다. 추억 팔이 따위 할 시간이 없다며 재촉하는 것 같았다. 부르릉. 다급하게 시동을 걸어 자동차의 심장을 뛰게 하고 오른쪽 발끝에 힘을 주며 무게를 실었다. 자동차의 심장만큼 경아의 것도 빠르게 뛰었다. 다행히 한산한 도로 사정 덕분에 조금씩 속도를 올릴 수 있었고, 속도가 빨라질수록 등 뒤에서 들리는 소리는 줄어 들었다. 평온해짐에 따라 경아의 심장 박동 수도 안정을 찾아가는 듯했다.
룸미러에 비친 뒷좌석에 있는 건 발정 난 고양이도 콘서트장에서 사랑을 속삭이던 전 남자 친구도 아니었다. 결혼식장에 함께 들어간 남자를 닮은 얼굴의 어린아이가 있었다. 물방울이 맺힌 속눈썹을 파르르 떨며 숨을 고르고 있는 작은 생명체얐다.
“어머, 아이가 너무 예쁘다.”
“애기 얼굴만 봐도 힘이 나겠어요.”
“당연히 그러겠지.”
“아이가 이렇게 순한데 이 정도면 열도 키우겠다.”
“아이고 예뻐. 눈에 넣어도 안 아프겠어.”
눈에 넣으면 아프겠죠. 하지만 생각과 달리 당신의 말에 수긍한다는 듯이 미소로 답했다. 마치 쇼윈도에 서 있는 마네킹처럼, 숙취 해소제를 털어 넣고 폭탄주를 마셔야 하는 영업사원처럼. 얼굴도 처음 본, 그저 지나가는 아줌마 무리일 뿐인 그들의 말에 일일이 대꾸할 기력 따위 없었으니까. 경아는 얼굴에 경련이 일어날 것 같았다. 입꼬리가 파르르 떨렸다.
‘예쁜가.’
한참을 떠들어 대던 무리가 사라진 자리, 덩그러니 남은 경아는 유모차에 타고 있는 아이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아무리 고슴도치도 제 자식은 밍크라지만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멈춰 세울 정도로 치명적으로 예쁜지는 모르겠다. 조용해진 공기를 깊게 들이마셨다. 텅 빈 눈동자에 숨을 불어 넣으며 아이를 살폈다. 침과 과자 부스러기, 과일즙이 뒤엉켜 엉망이 된 얼굴. 일단 울고 있지 않으니 예쁜 것 같긴 하다.
아니, 예쁘다. 분명 예쁘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단어를 가져다 붙여도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벅차고 소중하다. 정말 예쁜데 예쁜지 모르겠고, 그런 생각을 하는 자체로도 죄를 짓는 것 같아 괴로웠다. 자신의 감정에 조차 솔직할 수가 없다니. 한껏 올라가있던 입꼬리가 다이빙하듯 밑으로 뚝 떨어졌다.
순간 아이의 손에 있던 과자도 함께 바닥에 떨어졌다. 침으로 범벅된 그것이 낙하하는 소리는 둔탁했다. 세상에 존재하는 유일한 소리처럼 평온한 공기를 깨부셨다. 빈주먹을 입에 가져가던 아이는 과자가 없다는 걸 깨달았는지 얼굴을 씰룩거리며 울음에 시동을 걸었다. 부르릉.
“안돼, 제발 울지 마.”
어린아이들은 울음으로 의사 표현을 했고, 경아의 아이도 당연히 그랬다. 어쩌면 다른 아이들에 비해 울음이 더 많았을지도 모르겠다. 경아는 그 소리가 두려웠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우는 건지 알 수 없는 그 소리를 견디기 힘들어 무조건 아이를 안아 올렸다.
‘아이를 너무 안아주면 손 타서 네가 고생해.’
‘안아주기만 하는 건 해결 방법이 아니에요. 아이가 진정으로 원하는 걸 찾으셔야 합니다.’
'아이의 눈을 바라보며 마음을 말로 전하세요. 모르는 것 같아 보이지만 아이들도 다 알아 듣는답니다.'
벽돌 같은 육아서나 SNS 육아 전문가들은 경아가 틀렸다고 했다. 이미 이 시절을 지나간 선배 엄마들 역시 마찬가지다. 세상 모두가 그녀를 한심하게 바라보는 것 같았다. 하지만 경아에게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나마 아이는 하나였고 손은 두 개였으니, 울음소리에 브레이크를 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아이가 너무 많이 울어요. 울음소리에 노이로제 생길 것 같아요. 이러다 제가 먼저 미쳐버릴지도 모르겠어요.’
차마 입 밖으로 뱉지 못한 말들을 글로 적었다. 익명의 공간이 주는 위로는 속내를 털어놓기 충분했으니까. 스마트폰 액정 속에는 경아와 같은 사람들의 마음이 가득 담겨있었다. 익명게시판에 글을 쓰는 자신의 손가락을 바라봤다.
이렇게 말랐었나. 통통하게 살이 오른 아이에 비해 경아의 몸은 너무 가냘퍼 1월의 나뭇가지 같았다. 스치기만 해도 파스스 부서져 버릴 듯 위태로웠다.
하루 종일 아이를 안고 내려놓지 못했더니 잔뜩 살이 빠졌다. 60kg 중반이었던 경아의 몸은 46kg까지 빠져, 구호 성금을 모집하는 광고에 나온 피부가 까만 아이들처럼 안쓰럽기까지 했다. 화면 속 아이들처럼 커다란 눈을 꿈뻑 거렸다. 평생 원하던 마른 몸을 얻었지만 기쁘지 않다. 지나가는 모든 이들이 자신의 깡마른 몸을 보며 쑥덕거리는 것 같아서 모든 걸 녹여버릴 것 같은 한여름 땡볕 아래에서도 긴소매로 몸을 가려야 했다.
그나마 경아의 숨통을 트여준 건 안아줘야만 울음을 그치는 아이였지만 한 가지는 너그럽게 허락해 주었다는 사실이다. 카시트나 유모차에 태운 채로는 잠을 잘 잤다. 아주 고오오오오맙다. 친절하기도 하지. 오히려 안아서 재울 때보다 조용하게, 그리고 쉽게 잠 들었기에 매일 유모차를 밀고 길을 빠져나와야 했고, 그것이 경아가 지금 공원에 나와 있는 이유다.
아이가 떨어뜨린 과자를 향해 새까만 개미 떼가 달려들었다. 마치 몸 안의 수분이 모두 빠져 나뭇가지처럼 보이는 경아의 몸을 뜯어먹기라도 할 것 같았다. 잡아 먹히지 않기 위해 몸을 일으켰다.
“오늘은 몇 바퀴 돌았어?”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남편의 목소리는 아기가 몇 개월 됐냐고 묻던 낯선 아줌마들의 목소리같았다. 모든 것은 경아의 몫이라는 듯, 철저한 '남'의 목소리다. 거리감이 느껴졌다. 자유보다 안정을 닮았던 그 남자는, 오늘도 철야라 집에 못 들어간다는 말만 남기고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안정감이라는 이름의 족쇄가 되어 경아의 발목을 붙잡았다.
경아가 공원을 몇 바퀴 돌았는지, 정말 궁금하긴 했을까? 분명 결혼식도 함께 했고, 함께 원해 가진 아이였는데 혼자 키운다. 둘이 만나 셋이 됐는데, 이상하지만 혼자다.
힘없이 유모차를 밀던 손목이 시큰거리고 퉁퉁 부은 발이 아파질 때쯤 속이 쓰려왔다. 그러고 보니 아이를 챙기느라 밥은 물론 커피 한 모금도 먹지 못했다. 문득 눈에 들어온 카페에 들어가 커피와 샌드위치를 주문하고 싶었다. 분명 한입 베어 물 타이밍에 아이가 깨겠지?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피식, 건조한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냥 걷자.
해가 떠 있는 동안에는 유모차에 아이를 태운 채 공원을 돌았다면, 햇빛이 소멸한 시간에는 카시트에 아이를 태운 채 주차장을 빠져나가곤 했다. 집 근처 호수 공원을 따라 열 바퀴, 어쩌면 스무 바퀴쯤 돈다. 아이의 숨소리는 제법 안정적으로 정돈될 때 까지.
안정감을 찾은 아이는 고요한 성당 벽에 그려져 있는 아기 천사의 모습처럼 평화로워 카시트에서 유모차로, 유모차에서 아기 침대로 옮겨져도 깨지 않았다. 그날도 그럴 줄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