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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빛영글 Oct 14. 2024

밤새 액셀러레이터를 밟으며 우는 여자-2

오늘도 역시 하루였다. 하지만 시작이 있었던 것처럼 결국 끝이 기다리고 있다. 그것이 경아가 하루를 버틸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다. 퉁퉁 부은 복어처럼 잔뜩 날이 있던 낮시간과 달리 마음이 평화로워졌다. 이제 깊게 잠든 아이를 카시트에서 꺼내 집에 돌아가기만 하면 된다. 끝이다. 


"빵! 빵! 빠아앙!"


순간, 조용한 지하 주차장을 날카롭게 가로지르는 클락션 소리가 들렸다. 아이가 움찔거렸고, 경아의 손길이 다급해졌다.

산 정상에서 ‘야호’라고 외치면 어딘가에서 ‘야호’라고 답하는 것과 같았다. 신경질적인 클락션 소리는 깜깜한 주차장 벽에 울리고 반사되어, 또 울렸다. 아이가 대답이라도 하려는 듯 부르르 떨며 얼굴을 찌푸렸다. 이러다 잠에서 깰까 봐 다급하진 경아는 아이의 작은 머리를 자신의 품 안에 숨겼지만, 클락션 소리는 멈추기는커녕 오히려 더 성을 냈다. 그것은 사춘기 여중생의 앙칼진 목소리처럼 날카로웠다.

    

“그만하세요! 지금 차 빼잖아요!”

“주차 그 따위로 밖에 못 해?”

“왜 반말이야?”

“당장 차부터 빼!”     


"으앙!"

결국 아이의 입이 열리고, 봉인되었던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끝난 줄 알았던 하루가 다시 시작되려 했다. 차바퀴의 마찰음, 클락션 소리와 남자들의 다툼 소리, 아이의 울음소리까지 더해져서 모든 게 엉망이었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잠에서 깬 아이의 울음소리는 자신의 차 앞에 이중주차를 한 상대를 향한 클락션 소리만큼이나 날카로웠고, 다시 카시트에 앉히려는 그녀에게 발길질하고 주먹질을 해대며 반항했다. 영원한 잠에 빠져야 했던 왕의 무덤을 헤집어놓은 도굴꾼들을 향한 분노처럼, 작은 몸에 잔뜩 힘을 쥐고 반격을 시작했다.

순간 ‘헉’ 소리가 날 정도로 강한 통증이 명치 근처에서 느껴졌다. 눈앞이 깜깜해졌다. 

‘네가 먼저 친 거야. 이건 정당방위야!’

생각할 겨를도 없이 경아의 손이 올라갔다. 아마도 본능이었다. 꽉 움켜쥐면 한 손으로도 부숴버릴 수 있을 것 같은 작은 덩어리를 향해 온 힘을 다해 손바닥을 내려치려 했다. 누굴 향한 분노인지 바들바들 떨리는 손이 한껏 하늘로 솟아올랐다. 



"빠아앙!" 

요란한 클락션 소리가 그녀의 손목을 움켜잡았다. 정신 차리라고, 눈을 제대로 뜨고 마주 보라는 듯이. 그제야 브레이크가 걸린 경아는 정신을 차렸다.

아이는 누가 꼬집기라도 한 듯, 어쩌면 넋이 나간 엄마에게 공격당할 뻔한 것을 알기라도 한 것처럼 최대한 볼륨을 높여 비명을 질렀다. 둠칫둠칫, 성능 좋은 스테레오 볼륨을 높인 것처럼 아이의 목소리도 크게 울렸다. 마치 지하 주차장의 모든 소음을 삼켜버리겠다는 각오인 건지, 작은 입을 최대한 벌려 소리를 질렀다. 그래, 그건 울음이 아니라 차라리 비명이었다. 

무슨 정신으로 카시트 벨트를 채웠는지 모르겠다. 아이의 주먹과 발이 내려친 흔적을 좇아 통증이 따라왔다. 핸들을 잡은 경아의 손목은 아이의 손톱이 지나간 길을 따라 빨갛게 긁힌 상처가 조금씩 부어올랐다. 빨간 불이 켜진 곡선 길을 바라보며 눈물이 핑 돌았다.

‘손톱 깎아주는 걸 깜빡했네.’

피곤하다는 이유로 하루 미룬 대가를 톡톡히 치렀다. 손목이 부들부들 떨렸다. 자동차의 떨림인지, 경아의 흐느낌인지 알 수 없었지만 그것들은 앞 좌석을 발로 차는 아이의 몸부림에 잡아 먹혔다. 아이의 목소리는 절정을 향해 내지르는 소프라노 같았고, 경아의 헝클어진 머리카락이나 욱신거리는 명치의 통증은 잠시 덮어둬야 했다.


눈물이 왈칵 터졌다. 아이를 향해 올라갔던 손바닥은 그녀의 뺨을 향해 뛰어내렸다. 자신의 허벅지를 꼬집고, 머리카락을 쥐어뜯었다. 자칫 아이를 때릴 뻔했다는 자책감에 주체할 수 없는 분노가 뒤섞여 엉망이 되어 버렸다.     

“아파! 나도 아프다고!”     

아랫배도 걷어차였나 보다. 아프지 않은 곳이 없다. 비명이라도 지르고 싶었지만, 꾹꾹 눌러 삼켰다. 먹지도 못한 밥 한 숟가락이 목구멍 끝에 걸린 것처럼 갑갑했다.     

‘멈추지 말고 달릴까? 이대로 손을 놓고 눈을 감아버려?’ 

대답이 돌아올 리 없다.

"같이 죽자, 그냥."    

연극배우의 독백 같았다. 경아의 목소리는 차갑게 식어 있었다. 까만 도화지 위를 달리는 하얀 크레파스처럼 깜깜한 도로 위 오직 경아의 차만 밝을 빛을 내고 있다. 아까와 다른 게 있다면 이번에는 울음소리가 두 명의 것이다.

“얼른 가서 젖병도 닦아야 한다고.”

그녀의 흐느낌은 아이의 울음소리에 결국 잡아먹히고 말았다.     



띵동. 스마트폰 액정에 알림이 떠올랐다. 아까 경아가 올린 글에 누군가의 댓글이 달렸다.  

   

‘아기가 아주 어린가 봐요. 저희 아이도 많이 울어서 글쓴이 마음 너무 잘 알아요.

애가 어렸을 때는 잠을 잘 안자잖아요. 애가 안 자고 우니까 별 수 있겠어요? 나도 못 자는 거지. 

그런데 이게 계속 반복되다 보니까 죽겠더라고요. 

우는 애 끌어안고 왜 안 자냐고 소리 지르기도 하고, 같이 울기도 했어요. 

죽겠다 죽겠다 하다 보니 정말 죽어야겠다 싶더라고요.

너 죽고 나도 죽자는 심정으로 우는 애를 침대에 던져버리고 베란다에서 뛰어내리려고 했거든요? 

그런데 웃긴 게 뭔 줄 알아요? 

분명 애를 던지려고 했는데 그 와중에도 엄마라고 애 다칠까 봐 엄청 살짝 던진 거예요. ㅋㅋㅋㅋㅋ. 

말이 던진 거지 사실은 그냥 내려놓은 거죠. 웃기죠?

위로가 안 되겠지만, 힘내요. 결국 다 지나가더라고요.’     


감사의 댓글 대신 하트만 꾹 눌렀다.

‘웃기죠?’

기가 막혔다. 이걸 말이라고 하는 건지. 어이없어 웃음이 새어 나왔다. 울다 웃다 미친년 같은 와중에 룸미러에 비친 아이를 살폈다.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게 이런 건 줄 알았다면, 애초에 시작을 안 했을지도 모르겠다. 왜 이런 거라고 아무도 말을 안 해줬을까. TV에서 봤던 육아는 이렇지 않았는데. 어디부터 잘못된 걸까. 결국 다 지나간다고? 도무지 끝이 보이지 않는데, 어떻게 해야 끝날까.

제풀에 잠들어버린 아이의 발밑에 고개를 박고 눈물을 흘렸다. 어금니에 힘을 잔뜩 줘 턱이 아플 지경이다. 혹시라도 울음소리에 아이가 깨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니 참아야만 했다.

눈물과 콧물이 뒤범벅된 경아의 얼굴은, 울다 지쳐 잠든 아이의 얼굴과 닮았다.     



[익명게시판]

어렸을 때 친척 집에 모인 적이 있었어요. 명절이나 제사였겠죠. 어른들은 바빴고, 아이들은 사촌 언니 방에 모여 <델마와 루이스>라는 영화를 봤어요. 언니들이 저는 어려서 보면 안 된다고 했지만, 낮잠 자는 척하면서 다 봤어요.

사실 내용은 기억나지 않아요. 하지만 사막을 달리는 차와 절벽에서 하늘을 향해 달리는 차의 모습은 지금도 기억나요. 자유로워 보여서 꽤 멋있었거든요.

운전하려면 운전면허가 필요하다고 했어요. 그래서 수능이 끝나자마자 바로 면허부터 땄어요. 언젠가 사막을 신나게 달리고 싶거든요. 비록 지금은 호수공원이나 돌고 있지만요. 



(이미지출처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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