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의 남편은 집안 가득 배어있는 향수 냄새를 탐탁지 않아 했다. 분명 결혼 전에는 좋은 향이 난다며 유진의 머리카락에 깊게 코를 댄 채 향기를 맡곤 했던 것 같은데, 지금은 오히려 인상을 쓴다. 집에 오면 향기 때문에 머리가 아프다고 했다. 반항하는 사춘기 아이처럼, 보란 듯이 비가 들이치는 날에도 창문을 활짝 열곤 했다.
오늘도 그렇게 창문이 열렸다.
유진은 열린 창을 지나 베란다로 나갔다. 창을 향해 나선 건 유진만이 아니었다. 흩날리는 바람에 비릿한 분유 냄새를 날려 버리고 싶었는데, 꽃시장 향기만이 빠져나간다. 머리카락 한 올 한 올 배어있는 아이 냄새는 지독하게 엉겨 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툭. 묵직한 빨래 바구니를 내려놓으니, 손목이 시큰거린다. 아기 냄새가 가득 배어있는 빨래 바구니. 잔뜩 힘을 줘 한 번씩 털어낼 때마다 퍼지는 베이비파우더 향은 집안을 가득 채운 향수보다 역했다. 빨래를 쥐고 있는 유진의 손에서 시작된 그 냄새는 그녀의 온몸을 훑고 지나가 텅 빈 공기를 채웠다.
순간 모든 것이 견딜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베란다 창문을 열고 밖을 내려다보았다. 조용하고 깜깜한 밤하늘과 상반되는 반짝이는 거리의 불빛은 거리에 가득 채워진 자동차 소음과 뒤섞여 혼란스러웠다. 열린 창문을 타고 빠져나가는 듯했던 아기 냄새는 불어오는 맞바람을 타고 다시 돌아와 유진의 코끝을 간질거렸다.
“뛰어내릴까.”
딱히 계획한 것도 아니고, 특별한 계기가 있던 것도 아니다. 손끝에 머무른 아기 냄새가 역해서도 아니었다. 아무 생각 없이 오가는 바람을 따라 의식의 흐름대로 성큼성큼 창문을 향했다. 인어의 노래에 홀려 암초로 키를 돌리는 어부들처럼 유진의 텅 빈 눈동자는 홀린 듯 움직였다. 망설임 없이 방충망까지 열고 상체를 창문 밖으로 내밀었다. 아이를 낳고도 유지했던 긴 머리카락이 쏟아지는 별빛처럼 흐드러지게 뿌려졌다. 발밑으로 보이는 반짝이는 네온사인들이 어쩐지 조금 가까워진 듯하다.
침 한번 삼키는 정도의 시간이 지났을까, 어쩌면 시간이 멈췄던 걸까. 새까만 고요함이 커다랗게 입을 벌려 유진을 삼키려 했다. 차라리 못 이기는 척 잡아먹히려던 순간, 남편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웃어?’
남편은 유진을 보고 웃은 게 아니었다. 마침 틀어놓은 TV에서 흘러나오는 웃음소리에 뒤섞여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할 정도로 꺽꺽거리는 그였다.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다 한쪽 창문을 닫았다.
“이 새끼는 내가 여기서 떨어져 죽어도 모르겠지.”
쉬지 않고 들려오는 웃음소리에 이대로 죽기는 억울해졌다.
‘유진아, 언제 끝나?’
친구들과 약속 있는 날이면 남편은 근처 카페에서 그녀를 기다렸다. 시간이 늦어 밤길이 위험하다는 핑계로 보낸 문자 메시지였지만 사실은 단 한순간도 그녀와 떨어지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친구들은 입을 모아 그를 칭찬했다. 자상한 남자니 놓치지 말라는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유진도 그런 그가 싫지 않았다. 한 번도 그녀를 외롭게 두지 않았으니까.
“꼭 너 같은 자식 낳아 키워봐라.”
부모님이 유진 부부에게 뱉은 말은 애정이었을까, 저주였을까. 그것이 무엇이든 그들의 말에는 힘이 있었는지, 남편을 꼭 닮은 얼굴의 아이가 태어났다. 닮은 건 얼굴만이 아니었다. 아이는 마치 연애 시절의 남편처럼 유진을 한순간도 놓지 않았다.
화장실이라도 가려고 일어서면 유진의 바지 밑단을 꼭 쥔 작은 손가락은 얼마나 힘이 센지, 하나하나 힘을 줘 떼어내도 다시 자석처럼 달라붙었다. 다섯 개의 손가락은 오히려 처음보다 강하게 달라붙었다. 화장실 가는 것도, 밥 먹는 것도 떨어지려 하지 않는 아이 때문에 아기띠를 한 채로 모든 걸 해결해야 했고, 심지어 아기 욕조에 앉혀 곁에 둬야만 샤워가 가능했다. 숨이 막혔다.
“친구 좀 만나러 나가고 싶어.”
“애들 부를까?”
“아니, 됐어.”
유진의 말이 끝나자마자 스마트폰 액정에 알림이 떠올랐다.
‘우리 집에 한잔하러 올 사람? 유진이가 보고 싶어 해.’
대학 CC였던 남편과 공유하고 있는 동기 단톡방이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보낸 메시지에 그럴 줄 알고 있었다는 듯 빠르게 대답이 돌아왔다.
“싫다고 했잖아.”
유진의 목소리는 바람을 좇아 창밖으로 나갔는지 그의 귀에 닿지 않았다. 평소에도 과방을 드나들듯 그녀의 집 현관을 두들기는 무리가 그리웠던 건 아니었는데. 시끌벅적한 술자리는 남편에게만 즐거운 모임이다. 소란함 속에 들뜬 아이를 재우고 취한 동기들을 돌려보낸 후 뒷정리를 하는 건 오직 유진의 몫이었으니까.
“그냥, 언니네 좀 다녀올게.”
신난 표정으로 메시지를 주고받던 남편은 유진이 뭐라고 하든 신경 쓰지 않았다. 아이는 여전히 유진의 품에 안겨있는 채였다.
유정은 유진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을 수 있는 일기장 같은 존재다. 시어머니에게 악담을 들은 날에는 유진을 토닥여줬고, 딸을 낳았다고 못마땅해하던 시아버지를 향해 대신 눈을 흘겨줬다. 서울에 있는 대학에 입학했을 때도 언니의 자취방에서 함께 지낸다는 조건으로 독립을 허락받았다. 남자친구와 헤어진 날에는 밤 새 함께 술을 마셔줬고, 취업에 성공한 날엔 파티를 열어줬다. 유진에게 유정은 언니였고 엄마였으며 친구였다. 언니에게 라면 뭐든 말할 수 있고, 언니라면 뭐든 이해해 줄 것이다.
“나 왔어.”
본인의 집에 들어가듯 도어록 비밀번호를 누르고 거침없이 문을 열었다. 비슷한 개월 수의 아이를 키우는 언니는 문을 열어주기 힘든 상황이 많아 차라리 비밀번호를 공유했다. 유진은 아기띠에 안겨 칭얼대던 작은 입을 젖병으로 틀어막았다.
“나 어제 죽을 뻔했어. 아니, 죽으려고 했어.”
꿀꺽꿀꺽, 힘차게 젖병을 빠는 소리에 맞춰 지난밤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유진을 바라보던 유정은 별다른 대꾸를 하지 않았다. 분유 냄새와 함께 유진의 목소리만 허공에 떠다녔다.
“나 혹시 우울증일까?”
순식간에 분유 한 통을 비워 낸 아이의 몸을 일으켜 세워 등을 두들겼다. 유진의 베란다를 가득 채웠던 것과 같은 냄새가 유정의 집에도 옅게 퍼졌다. ‘꺼억’ 통통 두들겨대던 경쾌한 소리와 함께 작은 몸에서 아저씨 같은 걸쭉한 트림 소리가 빠져나왔다. 한바탕 쏟아내고 난 유진도 속이 조금 편안해져 아이의 등을 두들기는 손의 속도가 조금씩 느려졌다.
“좋겠다. 애가 하나니까 우울할 틈도 있네.”
미쳤나, 동생이 죽을 뻔했다는 데 그게 할 소리야? 조용히 듣고만 있던 유정이 툭 던진 한마디에 이성의 끈이 툭 끊겼다. 궁지에 몰리면 쥐도 고양이를 문다던데. 차갑게 식어버린 것 같던 유진의 눈동자에 살기가 돌았다. 미간에 주름이 깊어지고, 유정을 물어뜯을 기세로 눈을 치켜올렸다.
평소처럼 논리적으로 따지고 들 줄 알았던 유정은 반격하지 않았다. 그녀의 모습은 독기가 빠진 늙은 독사가 마지막 남은 독을 쥐어짜고 있는 것처럼 위태로웠다. 유정의 눈빛은 어젯밤 유진의 것과 같았다.
[익명게시판]
아이 한 명을 키우는 데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고 해요. 하지만 옆집 사람 얼굴도 모르는 데 도와달라고 할 수도 없잖아요. 하긴, 한 지붕 밑에 사는 김 모 씨도 남처럼 구는 데 정말 남인 다른 사람이 도와줄 리가 없겠죠.
어차피 인생은 혼자 왔다가 혼자 가는 거야!
얘가 빨리 자라서 얼른 독립했으면 좋겠어요. 그때 되면 여행도 많이 갈 거예요. 맛있는 것도 먹으러 갈 거고요. 뜨겁고! 맵고! 기름 튀고! 불꽃쇼 하고! 이왕이면. 노키즈존 식당으로! 혼자! 상상만 해도 너무 행복하네요, 혼자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