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쾌한 안내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 문이 스르륵 닫혔다. 선명하게 들리던 구두 굽 소리도 멈춘 상태다. 엘리베이터는 빠른 속도로 유진을 28층까지 데려다주고 나서야 벌린 입을 다물었다. 어째서인지 선뜻 도어록 버튼을 누르지 않는 그녀는 자신이 왜 그곳에 서있는지 모르는 눈치다. 어쩌면 스스로의 존재마저 잊은 것처럼 한참을 서 있었다.
기다림에 지친 아이가 유모차 안에서 존재감을 나타냈다. 온몸을 활처럼 구부리며 엄마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그제야 정신이 들었다는 듯 유진은 천천히 도어록 버튼을 눌렀다. 또각또각, 그녀의 구두가 현관 안으로 사라졌다. 시커먼 입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처럼.
유모차에 한참을 묶여있던 아이는 바닥에 내려지자 집 안 여기저기를 기어 다니는가 싶더니, 유진에게 다가와 그녀를 꽉 끌어안았다. 유모차 안전띠가 아이를 묶고 있었던 것처럼 아이의 팔이 유진의 다리를 묶었다. 자신보다 덩치가 큰 사슴의 목덜미를 조르는 구렁이처럼 유진의 온몸을 힘껏 끌어안았다. 조금의 틈도 허락하지 않는 아이를 품에 안자 비릿한 분유 냄새가 코끝으로 훅 들어온다. 동시에 유진의 미간에는 깊은 주름이 생겼다. 눈을 비비는 모양새가 잠이 쏟아지는가 보다.
토닥토닥. 침대에 나란히 누워 아이의 등을 두들겼다. 너무 세지도, 약하지도 않게, 일정한 박자를 유지하며. 한껏 살이 오른 엉덩이도 두들겼다. 아이는 대답이라도 하듯 유진의 품으로 깊게 파고들었고, 그럴수록 분유 냄새는 진해졌다. 유진은 비릿한 그 냄새를 싫어한다.
하품을 하는 작은 얼굴은 유진의 반대 팔을 베고 있었다. 그녀의 손끝에는 스마트폰이 들려있다. 아이의 작은 뒤통수를 쓰다듬는 대신 스마트폰 액정을 어루만졌다. 아무런 소리도 움직임도 없는 공간 오직 그녀의 손가락만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미친. 사람 아냐?”
저도 모르게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누군가 키우는 개가 주차장에 똥을 쌌다고 했다. 그 크기가 엄청나 이게 사람의 것인지 개의 것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라고 한다. 아무리 불쾌하더라도 사진까지 첨부할 필요는 없었는데. 도대체 타인의 시선까지는 신경 쓰지 않는 익명게시판이다.
‘매너 사진 해주세요.’
아이를 품에 안은 채 댓글을 남겼다. 출발을 기다리는 서울역의 기차처럼 유진이 달아놓은 댓글 밑으로 동의하는 댓글들이 줄을 이었다. 동의를 얻고 나니 그제야 속이 울렁거린다. 매일 집에서 보는 내 아이의 똥 기저귀만으로도 충분히 비위가 상하는데 사람의 것인지 짐승의 것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 누군가의 변 사진까지 봐야 한다니. 아무리 익명게시판이라도 비매너 게시물에 화가 났다. 스마트폰 액정을 뚫고 쿰쿰한 냄새가 풍기는 착각까지 들었다.
슬그머니 몸을 일으켜 화장대를 뒤져 향수를 꺼내 뿌렸다. 좋은 향기는 기분을 좋게 해 주니까. 유진이 좋아하는 향은 ‘꽃시장 향기’라는 스티커가 붙어있다. 결혼 전엔 묵직한 향을 좋아했던 것 같은데, 아이를 낳고 키우다 보니 조금 달라졌다. 살랑대는 봄바람에 흩날리는 벚꽃처럼 코끝을 간지럽히는 꽃향기가 좋아졌다. 어쩌면 그 향기를 따라 사라져 버리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다.
향수 냄새에 아이의 인중이 찌그러졌다. 잠이 깰까 싶어 얼른 안아 몸을 앞뒤로 흔들며 아이를 토닥였다. 엄마는 필요에 따라 쓰임새가 바뀐다. 때로는 라디오가 되기도 하고, 어떨 때는 자판기가 되기도 한다. 지금의 유진은 흔들침대가 되었다. 천천히 흔들리는 엄마 품에 안겨 눈을 비비던 아이는 유진의 가슴에 얼굴을 깊게 파묻는다. 엄마의 것이라면 냄새 하나조차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깊숙이 파고들었다. 흔들침대 인간은 한 손으로는 등을 토닥이고 반대 손으로는 여전히 스마트폰을 들어 엄지손가락을 움직였다.
지하 주차장 똥 사진 위로 놀이터에서 연애하는 교복 입은 아이들 이야기가 적혀있었다. 경찰에 신고를 해야 하냐, 말아야 하냐, 세상 말세라는 댓글 속에 아이들의 낯 뜨거운 연애 행각이 어디까지 진행됐는지 궁금한 건 유진뿐이었는지 모르겠다. 아이들은 물론 그들의 부모를 욕하는 댓글이 난무했다. 무인 아이스크림 가게에 상습적으로 계산 안 하고 도망치는 초등학생 이야기 역시 부모의 욕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부모가 자식을 잘못 키웠다고, 애들이 뭘 보고 자랐길래 그러겠냐며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를 마구 물어뜯었다. 부모는 총알받이 역할을 하고 있었다. 시부모님과 합가 하게 되었다는 이야기에는 남편 혹은 아내에 대한 욕이 가득이다. 다들 이렇게 욕이 하고 싶어서 어떻게 버티고 있었던 걸까.
익명 게시판에는 자신을 숨긴 채 늘어놓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가득했다. 남의 이야기는 분명 재밌지만 나와 상관없으니 지루하다. 토닥이는 손바닥의 움직임은 점점 느려졌지만, 엄지손가락은 빠르게 움직였다.
‘혼자 있고 싶다.’
별다른 설명도 없이 내용은 달랑 점 하나만 찍혀있었지만, 엄지손가락의 이동을 멈추기에는 충분했다. 누군지, 어떤 사정인지 알 수 없는 그의 마음과 유진의 마음은 같았으니까. ‘222’라고 적힌 댓글 밑에 ‘나도’라고 댓글을 달았다. 칭얼대는 아이를 달래기 위해 침대에 들러붙은 몸을 일으켜야 하는 현실 속에서 최선의 응원이었다.
“정말 격하게 혼자 있고 싶다.”
꾹. 유진은 향수 펌프를 한 번 더 눌렀다. 토닥토닥. 공기 중에 흩뿌려지는 입자 사이를 거닐며 스르륵 잠들었으면 하는 건 아이만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