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영은 누군가 남긴 글에 임신이라는 댓글을 쓰면서 입을 틀어 막았다.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기 위해 소리 없는 비명을 질렀다. 주체할 수 없는 행복감에 발을 동동 구르기까지 했다. 이 행복함을 오롯이 혼자 느끼고 싶었기 때문이다.
임신이라니! 쓰면서도 믿기지 않는다. 그러는 동안 손에 쥔 막대기는 선명한 두 줄을 느릿느릿 나타냈다. 몇 번을 봐도 질리지 않는 두 줄이었다.
아영의 삶은 늘 ‘꽝’이었다. 대학 입학시험에서는 예비 3번을 받았지만 꽤나 인기 있는 학교에 학과라 그랬는지 겨우 1번까지만 추가 합격을 했다고 한다. 유명한 맛 집이라 1시간 동안 줄을 서 기다려도 그녀의 바로 눈앞에서 ‘재료 소진 마감’이라는 팻말이 걸렸고, 스무 명 남짓한 인원 중 2명만 떨어지는 뽑기에는 당연히 2명 중 하나였다. 심지어 친구들과 졸업 기념으로 맞춘 팔찌 역시 아영의 것만 불량이었다. 웬만한 꽝에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늘 그랬으니까.
그런 그녀에게도 ‘축하합니다’가 찾아왔으니, 손에 쥔 선명한 두 줄이 말해주는 임신이었다.
이미 일찍 결혼한 친구 중에는 초등학생 아이도 있는 반면, 유산이나 난임으로 고생하는 친구들도 있었기에 아영의 경우는 분명 후자일 거라 생각했다.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늘 ‘꽝’인 삶이었으니까, 기대가 클수록 실망이 크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아니까. 그럼에도 찾아온 두 줄은 매일 확인해도 질리지 않았다.
“아영아, 늦겠어. 빨리 나와.”
남편의 재촉에 그제야 변기 물을 내리고 일어서는 아영의 한 손은 여전히 익명게시판을 훑어보고 있었고, 반대쪽 손은 임신테스트기를 꼭 쥐고 있는 채였다. 용한 무당에게 받은 부적이라도 되는 것처럼 좀처럼 손에서 내려놓지 않는 두 가지다. 아직 부풀어 오르지 않은 아랫배를 쓰다듬으며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뉴스에서는 저출산이 심각하다 하던데 산부인과 대기 시간은 좀처럼 줄지 않는다. 기다리는 동안 스마트폰을 열었더니 아까 보던 글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보통은 누군가 곁에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지 않나. 왜 혼자 있고 싶지?’
아영은 갸우뚱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누군가의 글에는 그새 동의하는 댓글이 여러 개 달려 있었다. 괜히 마음이 쓰여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간호사의 목소리도 놓칠 뻔했다. 옆에 앉아 있던 남편이 툭툭 치는 바람에 정신이 돌아왔다.
“유진이랑 재윤이 알지? 대학 동기. 애들이 집에 놀러 오라는데, 자기도 갈래? 아기용품도 받아오자.”
남편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진료실 문을 열었다. 처음으로 아기 심장 소리를 들으러 가는 그녀의 발걸음은 그저 설렐 뿐이다.
그동안의 ‘꽝’은 오늘의 행복을 위한 게 아니었을까 싶었다. 힘차게 쿵쾅거릴 아이의 심장 소리를 생각하니 굴욕의자 따위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런 아영의 귀에 아기의 심장 소리 대신 의사의 목소리가 날카롭게 꽂혔다.
"아기가, 심장이 뛰지 않네요.”
‘꽝’이다. 그녀의 다리 사이에서 조심스레 움직이던 의사의 손은 어느 순간부터 멈춰 있었다. 쿵쾅쿵쾅 소리가 들려야 할 진료실은 숨 막히게 조용했고, 오래된 흑백 영화 필름이 멈춰버린 것처럼 진료실 안 모든 것이 멈춰 있었다. 임신마저 꽝이라니. 분명 매일 확인했는데. 아니, 여기 오기 직전에도 분명 두 줄을 확인했는데. 의사의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인간은 누구나 눈물을 흘린다. 갓난아기일 때는 울음으로 불편함을 호소하고, 훈련병들은 부모님께 편지를 쓰며 눈물을 삼킨다. 사춘기 소녀의 눈물은 그녀들의 웃음만큼이나 이유 없이 자주 새어 나왔고, 웨딩드레스 입은 신부는 혼주석에 앉은 부모님과 눈이 마주치면 눈물을 흘렸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졌을 때, 간절히 원하던 시험에 합격했을 때, 마음대로 일이 풀리지 않을 때. 이유도 다양하다.
인간의 몸 70%가 수분이라던데 그중 60% 정도는 눈물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태어난 순간부터 평생 눈물을 흘린다. 어쩌면 그가 생을 마감한 후에는 그의 몫까지 남은 이들이 힘껏 울어줄지도.
어린아이들이 큰 상처에도, 긁힘조차 눈에 띄지 않는 작은 상처에도 밴드를 붙이며 위로를 받는 것처럼, 사람들은 감정의 종류나 크기와 상관없이 눈물을 흘리며 위로받는다. 아영도 그렇게 위로가 필요했던 건지, 의지와 상관없이 눈물을 흘렸다.
“왜요? 오늘 아침에도 두 줄 봤는데요. 제가 뭘 잘못했나요?”
임신인 줄 모르고 마셨던 회식 자리의 소주 한 잔이 문제였을까, 남편과 큰소리치며 다툰 탓이었을까. 계속된 야근? 어쩌면 떠나는 버스를 놓치지 않으려고 뛰었던 그날이 문제였는지도 모르겠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지난 며칠 동안 있었던 모든 것들을 바로 잡고 싶었다.
곁에 있던 남편도 입을 가린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현실인지 꿈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아니, 꿈이어야만 했다. 지독하게 차가운 의사의 목소리만이 현실이라고 답해주고 있었다.
“10명 중 1명 정도 임신 초기에 유산을 해요. 이건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에요. 무엇보다, 혹시라도 자책하지 마세요. 절대 엄마 잘못 아니에요.”
엄마라니. 담당 의사의 입에서 빠져나온 그 단어는 너무나 잔인했다. 아영이 더 이상 엄마가 아니라는 것을 확인시켜 주었다.
그는 마치 누군가에게 얻어맞기라도 한 것처럼 멍하니 앉아 있는 아영 대신 남편을 향해 질문을 던졌다. 시간 여유가 있는지, 식사는 하고 왔는지 따위의 질문이었던 것 같다. 하필 남편과 함께였고, 하필 공복이었고, 하필 아기가 더 이상 심장이 뛰지 않았기에 제대로 형체조차 만들어지지 않았을 아기를 꺼내기로 했다. 마치 이렇게 될 줄 알기라도 했던 것처럼 모든 것들은 빠르고 능숙하게 진행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