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1. (3) 이상화된 가족 상(像)이 주는 심리적 함정
1. 가족은 모두에게 따뜻한 단어가 아닐 수 있다 (3) 이상화된 가족 상(像)이 주는 심리적 함정
이 책은 저자의 개인적 경험과 감정, 그리고 그로부터 얻은 심리적 통찰을 바탕으로 구성된 에세이입니다. 등장하는 인물은 모두 사생활 보호를 위해 가명으로 처리되었으며, 실제 인물과 일치하지 않습니다. 본문은 사실을 단정하거나 특정 개인, 단체를 지칭, 비난하려는 목적이 아닙니다(없습니다.). 인물, 장소, 관계, 시점, 상황의 일부는 가명, 합성, 변형되었으며, 식별 가능한 세부 사항은 변경되었습니다. 유사성이 있더라도 이는 순전히 우연입니다.
저자는 타인의 명예나 사생활을 침해할 의도가 없으며, 본문의 해석은 저자의 주관적 성찰임을 밝힙니다. 이 책은 유사한 경험을 지닌 독자에게 위로와 통찰을 전하기 위한 진솔한 기록입니다. 본문에는 가족 내 학대와 상실 등 트라우마를 환기할 수 있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글을 읽으실 때 스스로의 마음을 가장 우선하시고, 불편함이 느껴지면 언제든 읽기를 멈추셔도 괜찮습니다.
저자는 이 글을 통해 과거를 고발하려는 것이 아니라, 비슷한 경험을 한 이들에게 공감과 회복의 메시지를 전하고자 합니다. 이 책은 특정 인물이나 집단을 비방하거나 공격하려는 목적이 아닌, 개인의 성장과 치유의 여정을 기록하고자 한 성찰의 결과물입니다. 이 기록이 비슷한 경험을 가진 누군가에게 살아갈 용기와 희망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 가족을 선택할 수 있다는 전제를 받아들이기까지의 시간
1. 가족은 모두에게 따뜻한 단어가 아닐 수 있다
(1) 가족 신화와 현실 사이
(2) '가족'이라서 참아야 했던 순간들
(3) 이상화된 가족 상(像)이 주는 심리적 함정
(4) 가족의 언어 속에서 탈출하기
AI 만화
이 책은 저자의 개인적 경험과 감정, 그리고 그로부터 얻은 심리적 통찰을 바탕으로 구성된 에세이입니다. 등장하는 인물은 모두 사생활 보호를 위해 가명으로 처리되었으며, 실제 인물과 일치하지 않습니다. 본문은 사실을 단정하거나 특정 개인, 단체를 지칭, 비난하려는 목적이 아닙니다(없습니다.). 인물, 장소, 관계, 시점, 상황의 일부는 가명, 합성, 변형되었으며, 식별 가능한 세부 사항은 변경되었습니다. 유사성이 있더라도 이는 순전히 우연입니다.
저자는 타인의 명예나 사생활을 침해할 의도가 없으며, 본문의 해석은 저자의 주관적 성찰임을 밝힙니다. 이 책은 유사한 경험을 지닌 독자에게 위로와 통찰을 전하기 위한 진솔한 기록입니다. 본문에는 가족 내 학대와 상실 등 트라우마를 환기할 수 있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글을 읽으실 때 스스로의 마음을 가장 우선하시고, 불편함이 느껴지면 언제든 읽기를 멈추셔도 괜찮습니다.
저자는 이 글을 통해 과거를 고발하려는 것이 아니라, 비슷한 경험을 한 이들에게 공감과 회복의 메시지를 전하고자 합니다. 이 책은 특정 인물이나 집단을 비방하거나 공격하려는 목적이 아닌, 개인의 성장과 치유의 여정을 기록하고자 한 성찰의 결과물입니다. 이 기록이 비슷한 경험을 가진 누군가에게 살아갈 용기와 희망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 가족을 선택할 수 있다는 전제를 받아들이기까지의 시간
'가족은 누구에게나 따뜻한 이름일 거라고 믿어왔다. 적어도 그렇게 믿는 것이 더 안전하다고 배워왔기 때문이다.'
법륜스님의 강연 중 어떤 내용이 마음에 와닿았다.
“어머니가 물에 떠내려가면, 같이 떠내려 갈 거예요? 힘을 내서 혼자라도 살 수 있으면 물 밖으로 나올 거예요?”
“저는 같이 떠내려가는 선택을 할 것 같아요.”
“어머니 입장에서 물에 떠내려갈 때 딸 혼자라도 살아나가길 바라지 않겠어요?”
“모르겠어요.”
겨우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계를 이어가던 딸이, 어머니가 빚을 대신 갚아달라는 말에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망설이며 내어놓은 ‘모르겠어요.’라는 말이 마음에 걸렸다. 그 말은 대답이라기보다 오래 배워온 어떤 태도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딸의 대답을 한참 곱씹다, 스무 살 무렵 일이 떠올랐다. 계속된 사업 실패로 빚에 빚을 지게 된 시골 아버지는 주변을 다니며 돈을 빌리기 시작하셨다. 더 이상 빌릴 곳이 없어지자 이제 막 수능을 마치고 피시방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해 달에 40만 원을 벌고 있던 내게 부탁을 해 오셨다. 빌려줄 돈도, 능력도 없었던 나는 당연히 거절했다. 그러자 그는 돈을 빌려줄 때까지 전화를 걸었고, 전화 통화가 연결될 때마다 키워줬던 은혜를 생각하라고 했다. 자기가 갚겠다는 데 왜 빚을 내주지 않냐고 회유와 고성을 이어가던 아버지는 믿음이 없는 나를 탓하고 화를 내셨다. 이 이야기는 2부에서 여러 번 이야기했으니 2부 내용을 참고하길 바란다.
사채 사무실까지 갔다가 결국 구 가족들과 완전히 연을 끊은 후, 혼자라도 살아남기 위해 바락바락 하루들을 살아갔다. 아르바이트를 하고, 대학을 다니면서 겨우 하루들을 살아갔다. 그러다 구 가족과 다시 연결된 건 내 나이 스무 살 중반 무렵 일어난 살인미수 사건 때문이었다. 사건 조사를 하던 강력계 형사님이 시골 아버지께 전화를 걸었다. 덕분에 내 사건을 모든 친인척들이 알게 됐다. 사실 뉴스에도 났으니,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경찰서에서 구 가족들에게 연락이 여러 번 갔고, 사건 조사차 경찰서에 방문해 달라고 했던 것 같다. 내가 많이 다쳐서 병실에 입원해 있다는 소식이 갔음에도 친척 몇을 제외하곤 병원에 오지 않았다.
나중에 만나 차분히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됐을 때, 시골 아버지께서 말씀하셨다. 집이 어려운데 빚조차 내주지 않고 연을 끊은 내가 미웠다고 했다. 차라리 이 참에 죽어버리지라는 마음이 들어 병원에 오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면전에서 하셨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한편으론 그럴 수 있겠다 생각하면서도 ‘도움이 되지 않으면 차라리 죽어서 없어져버려.’라는 메시지가 마음에 와 박혔다. 그 말은 물에 빠져서 같이 떠내려가지 않으면 배신자가 되어 제거의 대상이 된다는 것, 그 깨달음이 몸을 움츠러들게 만들었다.
과거에도 그랬지만, 아버지의 말은 내가 가족 구성원에서 맡은 역할이 무조건 내어줘야 하고, 줄 게 없으면 차라리 없어져버리는 게 나은 물건 정도의 지위라는 걸 깨닫게 해 줬다. 그럼에도 그 순간조차 ‘그래도 한때 어느 시점에는 따뜻한 가족이었다.’는 생각을 하며 과거를 아름답게 덮어 버리려고 했다. 나빴고 아팠던 순간보다 함께 등산을 했던 기억, 고사리를 뜯으러 갔던 기억, 밤산에 밤을 따러 갔던 기억들을 떠올리며 그래도 나름 괜찮았던 가족이었다고 생각하려고 노력했다.
그때는 그런 아름다운 생각과 상상을 해야만 나와 가족을 지킬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어떤 상황에서든지 무조건 감사해야 한다, 용서해야 한다, 원수도 사랑해야 한다,라는 아름다운 기독교 가르침을 왜곡되게 사용한 사람들 덕분에 내 안의 의식과 마음이 철저하게 고립됐다. 내 안에 만들어진 이상화된 가족상은 언제나 가족을 실제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언제나 화목하고 흠이 없는 이상화된 이미지로 만들기 위해 나를 더 깊은 수렁에 갇히게 만들었다. 그에 더해 무의식은 내 안의 가족상과 스스로를 지키려고 가면을 쓰게 만들었다. 덕분에 나는 내가 아주 오래전부터 우울하고 아파서 위태롭다는 사실을 몰랐다. 심지어 내 곁에 있는 사람들조차 내가 우울증을 심각하게 앓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매 순간 괜찮은 척했지만 사실 괜찮았던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건 아이러니하게도 살인미수 사건 피해자가 됐을 때였다. 모든 관계와 은혜가 끊어졌다고 생각되는 그 순간에 나는 모든 것을 다시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시작점을 얻었다. 인생의 첫 번째 바닥이었다고 말할 만한 상황에서야 내면의 고통을 들여다볼 수 있는 계기가 만들어졌다. 이때 나는 내 인생을 새롭게 세울 기회를 얻었다. 이때를 생각하면 사람들이 인생에 행운은 불행을 타고 온다고들 했나 보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내가 과거에 가졌던 가족 상은 현실의 갈등이나 개별 구성원의 고통을 가리면서 유지되는 하나의 가족 신화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가족 신화는 마땅히 그래야 하는 모습이 실제로 있는 모습을 덮어버릴 것을 요구하기 때문에 개인의 행복보다는 가족의 겉모습을 우선한다. 이 신화 안에서 구성원이 된 개인은 질문보다 충성이 앞에 오고, 감정보다 역할이 앞선다. 그렇기 때문에 겉으로는 안정감을 주는 것처럼 보인다. 가족 구성원들이 가족 신화를 유지하기 위해 주는 압력은 개별 구성원의 성장을 억압하고, 진실한 관계 형성을 방해한다. 특히 한국사회에서 가족상은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다양한 문화, 사고와 의식, 무의식의 결집으로 구성원 개개인을 내부적으로 철저히 파괴한다.
가족과의 관계가 반복해서 나를 무너뜨린 이유는 관계 그 자체보다 내가 이상화된 가족 상을 내려놓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 이상화는 사랑의 형태를 하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생존을 위해 만들어진 믿음에 가까웠다. 가족이잖아. 가족 내 비밀은 밖에서 이야기하면 너만 피해받는 거야. 얼굴에 침 뱉기지. 가족이 되는 건 참는 거야. 아랫사람은 윗사람을 존중하고, 돌봐야 해.라는 잘못된 가르침과 압력은 항상 내 안에 무언의 언어가 되어 스스로를 옥죄고 핍박했다. 그들이 하는 말과 문장들은 따뜻한 조언과 지혜로운 말처럼 들렸지만, 실상은 내 선택을 지우기 위한 말들이었다.
가족이 주는 메시지는 결국 하나였다. ‘너는 너로 존재해도 되는 사람이 아니라, 가족을 위해 기능해야 하는 사람이다.’라는 메시지였다. 이 메시지를 오랫동안 내면의 잠언처럼 가지고 있던 나는 의식, 무의식적으로 가족 상을 지키기 위한 방향으로 생각과 행동이 흘러가게 만들었다. 잘못된 상황에 마주했을 때조차 나는 누군가를 위해 내 안의 언어와 의식을 잠재우고, 행복한 가족상을 유지하기 위해 기능했다. 그리고 모든 잘못의 결과가 내 잘못이어야만 내면의 가족상을 유지할 수 있었기 때문에 나 자신과 자존감, 자기애를 잃었다.
태어나 보니 우연처럼 왜곡된 가족을 만나 왜곡된 가족상을 갖게 된 나는 건강한 가족을 찾아 헤매면서 남자친구의 가족 구성원이 되기 위해 노력했다. 정말 안타깝게도 다시 어린 시절 가족 상을 그대로 유지시켜 줄 완벽한 가족을 찾아냈다. 이 사실이 지금도 신기하다 못해 신비하다. 그때의 나는 새로운 가족을 만난 것이 아니라, 익숙한 가족 상을 다른 공간에 옮겨 놓았을 뿐이었다. 내면을 들여다볼수록 더 알게 되는 건, 내면에 만들어진 언어와 기본 값은 웬만해서 정말 바꾸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는 말이 팽배한 게 아닌가 싶다. 첫 번째 남자친구를 통해 가족을 얻었다고 생각했던 내가 스스로 선택한 가족을 잃고 나서도, 나는 가족을 스스로 만들 생각을 하지 못했다. 기존에 만들어진 가족 구성원들 안에 들어가 공동체의 개인으로 기능하고 싶어 했다는 걸 깨달은 건 얼마 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선택한 지금의 남편과의 만남조차 철저히 과거의 가족상을 유지하기 위한 방향으로 움직였다. 덕분에 시댁과의 생활이 여자친구였던 시절부터 시작됐다. 지금 생각해 보면 요즘 같은 시대에 그런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할 뿐이다. 나는 가족 구성원들만 바꿨을 뿐, 내가 믿어온 가족 상을 그대로 들고 새로운 가족 내에 들어갔다.
물론 시댁 식구들은 어느 면에서는 내게 참 잘해준 것이 많은 사람들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안타까운 건 내가 성장할 수 있는 모든 시간과 에너지, 돈을 잃게 만든 사람들이기도 하다는 사실이다. 용돈을 한 번씩 주시고(어머니 선물 사는 데 대부분 사용함), 수험기간 몇 년 동안 월세를 내주셨으며(매달 20만 원), 맛있는 음식도 만들어주시고, 가족 모임에도 참석하게 해 주셨던 분들을 정말 오랫동안 미워하고, 증오했다(나중에 수험 생활 끝난 후 돈을 모아 각종 가전과 선물들로 돌려드렸다.). 최근 5년 동안만 생각해도 그분들이 내게 했던 말과 행동이 앞으로도 결코 바뀌지 않을 거라는 사실이 더 많이 아프게 했다. 어쩌면 이 생각 역시 나만의 착각일지도 모른다. 최근에까지 내가 그렇게 느꼈다. 그래서 나는 3년 넘게 원 가족과 만나지 않으면서 시댁 식구들까지 만나지 않고 있다. 이 장에서 말하고 싶은 건 '시댁이 나쁘다.'가 아니라, 내가 어떤 관계에 들어가도 같은 구조를 재연하게 만들었던 '이상화된 가족 상'의 힘이다.
시어머니와의 일화는 차고 넘칠 만큼 많아 어떤 감정을 선택해야 할지 이 순간에도 마음이 먹먹하다. 어느 날 어머니께서 하도 보고 싶다고 연락을 해 오셔서 여자친구였던 때 본가에 놀러 갔던 때가 생각난다. 그때 머리에 새로운 핀을 사서 하고, 할인받아 만원에 산 예쁜 신발을 신고 갔었다(마침 가게를 접는다며 1-2천 원에 예쁜 수제 핀을 파는 곳에서 구입한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핀들이었다. 대부분 어머니와 시누이 언니에게 나눠줘서 지금은 없다. 이때도 드리고 싶지 않은 마음이 들 때마다 죄책감이 들어 너무 힘들어하면서 드렸던 기억이 있다. 내 머리에 꽂을 핀조차 남겨주지 않으셨다.). 어머니는 핀을 보곤 핀이 예쁘다고 칭찬해 주시고, 내가 신고 온 신발을 신어보셨다. 편하다는 말을 하시면서 잘 샀다고 해 주셔서 감사했다.
그날 어머니께 놀러 갔다가 저녁을 먹고 나자 시간이 늦어서 자고 가라는 말에 그 댁 거실에서 잤다. 다음 날 아침이 되자 어머니는 이유를 알 수 없는 짜증과 화를 내시며 거실로 나오셨다. 화들짝 놀라 잠에서 깬 나는 어머니가 왜 그러실까 생각하면서 어머니의 화를 받아냈다(각자 자기 방에서 잠들었기 때문에 거실에는 오직 나와 어머니만 있었다.). 과거에 어머니는 자주 전화 하셔서 보고 싶다고, 사랑한다고 놀러 오라는 말을 올 때까지 반복하셨다. 그래서 어머니의 말이 마음에 걸려 놀러를 가면 최소 2-3일을 댁에 머물면서 어머니와 시간을 보내곤 했다. 말이 시간을 보낸다는 것이지 실제로는 함께 보낸다기보다 어머니가 원하던 일을 계속해 드리는 일이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어머니의 말을 듣고, 어머니의 외출을 위해 드라이해 드리고, 화장을 도와드린 후, 옷까지 골라 드렸다.
그리고 짧은 몇 차례의 외출 후 돌아온 어머니를 기다린 후 같이 저녁을 먹고 어머니의 새로운 과제들을 수행했다. 하지 않으면 이유 없는 짜증과 화가 시작되기 때문에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보일 때 발 빠르게 움직였다. 어머니와 나는 철저하게 공의존 패턴을 유지하며 관계가 굴러갔다. 나는 어머니를 이상화해서 구조하고(돌보고), 어머니는 내게 의존해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는 패턴을 반복했다. 어머니에 대한 도움은 손톱과 발톱에 매니큐어를 발라드리는 건 물론 옷장 정리나, 그릇 정리 등 평소 하고 싶었던 일들을 모두 해 드려야 끝이 났다. 그리고 끝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다시 새로운 과제가 부여됐다.
어머니는 내가 무엇을 해야 한다는 말을 반복해서 하시면서 할 때까지 이야기를 하셨기 때문에 해드려야만 끝이 났다. 그때는 그게 내 선택이라고 생각했고, 그걸 빨리 해 드려야만 어머니의 말과 요구가 멈출 거라고, 그래야 만 그녀가 나를 계속 사랑해 줄 거라고 생각해서 빠르게 움직였다. 나중에는 애정과 학대 패턴에 중독되어 돌보는 일을 멈출 수 없었다. 심지어 어느 날은 화내지 않는 어머니가 이상해서 마음이 두근거리곤 했다. 심리학에서는 이걸 매 맞는 아내들이 보이는 전형적인 패턴으로 본다. 어머니는 내가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던 순간에만 나를 칭찬하며 애정해 주셨다. 간헐적으로 주어지는 보상과 애정은 그녀와의 관계에 중독되게 만들었고, 어느 순간 나는 어린 시절부터 반복해 온 역할극에 몰입하며 비슷한 가정환경을 만들어냈다.
갑작스럽게 시작된 어머니의 짜증과 화가 어디로부터 연원한 것인지 아침 내내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그리고 머리에 찔렀던 핀과 가방에 있는 핀들이 생각났다. 그래서 어머니께 내 머리에 있던 핀과 가방 속 핀까지 모두 꺼내 드렸다. 그때 어머니가 얼마나 환하게 웃고 행복해하시던지, 그 모습을 보기 위해 이후 어머니를 만나러 갈 때마다 반드시 선물을 준비해 갔다. 선물을 준비해 간 날과 선물이 없는 날 어머니께서 내게 보이셨던 행동과 반응은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것처럼 극과 극이었다. 그래서 선물을 살 수 없는 날은 마음이 떨렸다. 집에 돌아가면서 신고 왔던 신발까지 어머니께 드리고 몇 년 동안 신으셨는지도 모르는 어머니의 구형 신발을 신고 집으로 돌아왔다. 어머니께 내가 가진 좋은 것들을 드릴 때마다 그게 참된 사랑이라고 생각하면서 내 마음을 마비시켰다. 이런 일이 반복해서 일어나자 이후부터는 일주일 동안 똑같은 옷과 신발만 신고 다니면서 내 안의 욕구를 스스로 망가트렸다. 그런 생활을 하다 겨우 집에 돌아온 나는 그래도 어머니께서 공부하라고 월세도 내주시고, 맛있는 음식도 해 주시고, 내게 이렇게 사랑을 주시는 데 그 정도는 당연한 거라며 스스로를 속였다. 이런 가족 역할극이 반복될수록 나는 내가 들어간, 어머니께서 만든 관계 구조 망에서 벗어나기 어려웠다.
당시에는 같은 교회에 다녔기 때문에 교회에서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어머니를 아시는 분들이 가는 곳마다 어머니께서 나를 칭찬한다며 좋은 가족을 만나 부럽다고 이야기했다. 어머니는 사람들에게 나를 칭찬하며 내가 그녀에게 준 것들, 해 준 것들을 이야기하곤 하셨다. 사람들에게 만들어진 어머니의 환상과(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끊임없이 주고 희생하는 좋은 며느리를 들일지도 모르는) 나에게 주어진 환상(믿음 좋은 시댁을 얻어 행복한)을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이어지는 요구와 과제를 감당해야 했다. 그래서 그때 그 환상을 유지하기 위해 있는 돈 없는 돈 다 모아서 어머니 선물을 사러 가던 게 생각난다. 어머니는 선물을 받을 때마다 친우분들과 주변 분들에게 내가 줬다고 자랑한다고 하셨다. 그리고 자랑할 게 없어진 상태에서 친구를 만나러 가야 하는 전 날이면 엄청난 짜증과 화를 내시면서 주변을 얼어붙게 만드셨다. 그때 어머니께서 주셨던 애정과 행복, 분노의 감정이 지금도 생각난다. 당시의 나는 분노의 감정은 아주 깊숙이 숨겨두고, 어머니께 좋은 말만 하면서 하나님의 참된 사람임을 스스로 증명하려 했다. 그래서 어머니께서 하면 안 되는 말과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을 할 때조차 그녀에게 나쁜 말 한마디 하지 못했다.
나중엔 아버님마저도 두 분이 싸우실 때 반드시 나를 끼워 그분들의 분노 쏟음의 대상이 되도록 만드셨다. 두 분은 아침마다 이상하리 만큼 소리를 지르고 싸우실 때가 많았다(거의 매일 싸우셨다.). 그때마다 어머니는 나를 끌어들이고, 아버지는 내가 분란을 일으키는 존재라며 집에 오지 말라고 하셨다. 그 말이 어찌나 서운하고 서럽던지, 다시는 오지 않으리라고 내 물건과 옷가지를 다 챙겨 나오면서도 다시 애정이 그리워 내 발로 그곳으로 돌아갔다. 심리학을 공부하고 나서야 어머니와 아버지, 나라는 삼각관계 안에서 나는 내 역할대로 기능했을 뿐이라는 걸 알게 됐다. 아버지 역시 그 말을 하게 된 건, 내 위에서 항상 군림하고 싶었던 어머니께서 자신의 권능을 본보기로 보여주기 위해 아버지를 일부러 깔아뭉개는 방식을 선택한 건 아니었는지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니 아버지께서 싸우실 때마다 나 때문에 집 안에 분란이 일어난다는 표현이 완벽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내 존재는 편안함을 위해 필요한 존재이면서도, 지속적으로 편안함을 유지하기 위해 관리의 대상이 되는 물건 같은 존재였다. 내 안의 감정과 말을 밖으로 내뱉지 못하도록 어머니는 내게 어른에게 취해야 할 자세와 성경에서 가르치는 부모님에 대한 봉양 등을 강조하시면서 그래야만 내세와 후세에 복을 받는다고 이야기하셨다. 이때 나는 성경을 적어도 통독으로 열 번은 넘게 한 상태였기 때문에 어머니의 왜곡된 성경 가르침에 대한 말에 말을 얹고 싶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한 때 한 선교사님의 영향으로 몇 달 동안 집에만 있으면서 성경만 주야장천 읽어댔다. 사실 그때 100번 읽기가 목표였기 때문에 몇 번까지 읽었는지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읽어댔다.). 이후 벌어질 무시무시한 상황이 예견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시부모님과의 사이는 복잡한 감정들과 경험들을 반복하면서 어린 시절 구가족들과의 건강하지 못한 가족관계를 그대로 이어갔다.
그러다 마지막 시험을 보고 더 이상 견딜 수 없을 만큼 내 안의 가족 상을 파괴할 만한 사건을 겪고 나서야 그분들이 나를 전혀 아끼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했다. 이때 나는 갑상선과 몸에 문제가 생겼다. 혀가 너무 부어 입이 닫히지 않고, 몇 날 며칠 울고, 먹고, 토하는 일을 반복했고, 몸이 아파 움직일 수 없는 상태가 됐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부정적인 감정에서 나를 지키기 위한 마지막 방어전이 시작됐다. 그리고 이때 최종 시험 불합격 발표가 났기 때문에 이후에는 어떻게 시간을 흘러왔는지 모를 정도로 오늘로 흘러왔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분들 역시 불완전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조금 더 나를 지키는 방법을 선택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라는 생각을 해 본다.
물론 어머니는 내가 나를 지키려고 할 때마다 내 방어선을 완벽히 걷어내는 작업을 하셨지만 사실 내가 건강했다면 충분히 나를 지켜낼 수 있는 부분이 많이 있었다(며느리가 되기 전 나중에 바뀔 앤지 아닌지 검증해 봐야 해.라는 친우분들의 이야기를 들었다며 먼저 때려잡으라고 했다는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하셨다.). 그리고 내가 어느 순간에나 나를 먼저 지키고 세우는 사람이었다면, 주변에 어떤 사람이 있든 자연스럽게 해결될 수 있는 일들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지레 겁먹고, 뭔가를 해야만 사랑받고, 지금 남자친구와의 관계를 지키려면 반드시 해야 한다는 오판을 했다.
그 오판은 나뿐 아니라 내 남편(과거에 남자친구였으니)의 미래까지 파괴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대학시절 내내 수석을 놓치지 않던 남편이 보는 시험마다 떨어지고, 자존감과 자기애가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내가 어머니를 위해 움직일 때마다 그렇게 하지 말라고 말리는 남자친구 손을 붙잡고 선물을 사러 가고, 집에 놀러 가고, 잘 보이려는 노력을 하면서 남편의 시간과 에너지까지 내 손으로 빼앗아 버렸다. 공의존에 대해 공부하면서 내게 가장 소중한 사람의 것을 빼앗아 내게 해악을 주는 상대를 구제한다는 걸 알았을 때 남편에게 진심으로 사과했다. 과거엔 이 부분을 전혀 몰랐다. 심리학 공부를 하면서 내 손으로 나뿐 아니라 가장 소중한 사람의 인생까지 갈아 넣어 상대방의 인정과 사랑을 받으려고 했다는 사실이 슬프고 미안했다. 그럼에도 그 덕분에 이 글을 쓰고 있으니 인생 역시 알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종종 어머니는 남편이 보지 않는 사이 나를 벽에 밀어붙이곤, 아들 하나 설득을 못 하냐고 타박을 주시고, 아들에게 혹시 자신이 했던 말과 행동을 이른 거냐며 무서운 표정으로 몰아붙이셨다. 벽에 팍 하고 밀쳐졌던 감각이 아직도 등에 아리게 남아있다. 기억은 때로 지워진 통증까지 다시 불러오곤 한다. 이후 어머니의 무서운 행동들을 중단시키기 위해 가족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어머니께서 내게 한 일을 이야기했다. 그러자 어머니는 거짓말하지 말라고 소리치셨다. 그때 처음으로 시아버님, 오빠, 시누이 언니가 있던 자리에서 "다 녹음해 놨으니까. 지금 들어보자."라는 이야기를 꺼냈다. 그제야 어머니는 "누가 가족 이야기를 재판까지 가져가려고 하냐." 며 입을 닫으셨다. 이후 종종 어머니는 내 눈치를 볼 때가 있으셨지만, 기본적으로 나를 대하시던 태도는 이전과 동일하게 이어졌다.
마지막으로 어머니를 봤던 때가 생각난다. 연락을 끊었다가 시누이 언니의 결혼식으로 다시 연락과 만남이 시작됐다. 그게 불과 3년 전이다. 이제는 다시 새롭게 시작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관계는 어머니와 이사를 같이 준비(어머니께서 내 선택을 존중하지 않으시고 밀어붙이셨다.)하면서 이전과 비슷하게 흘러갔다. 이제 과거처럼은 하지 않을 거라는 내 생각과 달리 어머니의 말과 행동은 이전과 비슷했다. 어머니를 마지막으로 뵈던 날, 나는 이후 모든 인간관계를 끊었다. 더 이상 어떤 관계든 이어가는 일이 버거워졌기 때문이다. 3년 전 내 상태가 이전처럼 모든 걸 참아낼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마지막 날 갑자기 찾아온 어머니는 1층에서 벨을 누르기 시작하셨다. 문을 열어드리자, 혹시 집에 있으면 여기서 놀고, 없으면 친구들이랑 놀러를 가려고 친구분들이랑 같이 차를 타고 오셨단다. 내가 문을 열어주자 친구들과 인사를 하고 왔다며 집으로 들어오셨다. 당황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때 어머니는 내게 원하던 것이 있으셨기 때문에 올라와서 이야기를 하시는 것이 눈에 보였다. 어머니는 언니가 결혼하면서 돈을 너무 많이 써서 집에 돈이 하나도 없다고 말씀을 시작하셨다. 필요한 것들을 나열하시면서 남들은 자식들이 다 사준다는 이야기를 꺼내셨다. 그때 하필 마음이 아픈 상태라 나도 모르게 내면의 말이 툭 하고 나와 버렸다.
"언니에게 사달라고 하세요."
그 말이 어머니의 화를 돋우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 순간 나는 언니에게 전화를 걸었고, 어머니는 또 언니에게 이르는 거냐며 화를 내셨다. 사실 어머니가 소리를 지르기 시작할 때 언니에게 전화를 건 이유는 녹음을 해 봐야 아무도 듣지 않는다는 걸 알게 돼서다. 그래서 언니에게 어머니께서 원하는 걸 해 주지 않으면 어떤 반응으로 나를 대하시는지 직접 듣게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후 어머니의 화 시간이 끝났는지 갑자기 어머니는 환하게 웃으시며, 언제든지 마음이 괜찮아지면 또 만나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자 하시며 집을 나서셨다. 나는 그분을 배웅하면서 선물을 가득 안겨 드렸고, 어머니 역시 내게 고맙다며 용돈을 주셨다. 그게 만남의 마지막이었다. 그 이후로 나는 나와의 시간을 보내면서 내가 변하지 않으면 그 어떤 관계도 다시 시작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내게 반복해 주입했다. 한동안 고통스러운 마음을 가지고 또 울고, 먹고, 토하는 일을 반복하면서 내면을 진정시키려고 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던 남편 역시 고통에 잠겼다. 과거의 나는 나만 고통스러우면 된다고 생각했는데(나만 고통스럽다고 생각했다.), 내가 불행할수록 남편이 불행해진다는 사실을 그때가 돼서야 깨달았다. 그래서 이후 남편은 각자의 집 효도는 각자가 하는 걸 원칙으로 하자며, 본가에 어떤 행사가 있든 나를 데리고 가지 않는다. 더 이상 내가 소진되고, 아프게 되는 걸 원치 않는다는 남편의 강경한 태도 덕분에 나는 모든 가족 행사에서 제외됐다(내가 제발 오래오래 건강하게 살아주기만 바란단다.). 그리고 지금까지 선물만 서로 주고받으면서 시댁 생활을 하고 있다.
내 안에 이상화된 가족 상이 무너졌을 때 나는 더 철저히 고립되고, 무너지는 경험을 했다. 오히려 역으로 내부의 충돌이 불거져 퇴행을 반복했다. 있는 그대로 보기 위해 노력하는 나와 옛 모습 그대로 모른 척하고 지내고 싶다는 양가적인 흔들림이 나를 아프게 만들었다. 지난 시간 동안 나는 내가 만든 성에 나를 가둔 채 퇴행과 순행을 반복했다. 상상 속에서 시간을 돌리기도 하고, 다른 선택을 한 내 모습을 상상했다. 그런 시간들을 보내면서 애도하고, 수용하면서 지난날들을 채웠다. 그리고 드디어 오늘을 맞이하며 가족이 나를 어떻게 보든 그것은 그들의 판단과 감정이기 때문에 그들의 책임 영역이고, 나는 내 삶과 내 감정을 책임지면 된다는 선언을 했다. 여전히 자유롭지 않지만, 완전히 벗어나기 위해 이 장을 쓰게 됐다. 이상화된 가족 상이 무너지고 나서야 나를 붙잡고 있던 건 사람이 아니라, 그들이 내게 반복해서 주입한 말들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이제 나는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그 말들로부터 조금씩 빠져나오는 연습을 시작했고 이어가고 있다. 이제 남은 건 하나다. 나를 묶어온 내 안의 말들과 가족 상들을 해체하는 일 말이다.
3부 1. (3) 이상화된 가족 상(像)이 주는 심리적 함정
참고 자료
1. Bowen, Murray, Family Therapy in Clinical Practice, Jason Aronson, 1978
→ 사용된 개념: 삼각관계(Triangulation), 가족체계이론, 역할 고착(역할 고착이라는 개념은 정식 용어라기 보다 그 이론을 해석하여 정리한 2차 개념임)
2. Beattie, Melody, Codependent No More, Hazelden, 1986
→ 사용된 개념: 공의존(Codependency)
3. Skinner, B. F., Science and Human Behavior, Free Press, 1953
→ 사용된 개념: 강화 스케줄, 간헐적 강화(Intermittent reinforcement)
4. Herman, Judith L., Trauma and Recovery, Basic Books, 1992
→ 사용된 개념: 외상 후 반응, 관계 속 트라우마 반응
목차
프롤로그
‘상처’에서 ‘자유’로, ‘의무’에서 ‘선택’으로 나아간 김희경 작가의 신작.
가족이라는 감정적 언어 속에서 길을 잃었던 한 개인이 자아와 회복을 향해 걸어온 심리적 여정.
1. 가족이라는 이름의 상처
혈연이라는 이름이 만든 구조적 폭력
(1) 가족이라는 말에 심장이 내려앉을 때
(2) 가장 아름다웠던 날, 가장 잔인한 기억
(3) 생애 첫 기억 속 무가치함의 내면화 시작
(4) 침묵하지 않는다는 것
2. 가족이라고 상처를 허락하지 마라
가족이라는 이유로 참아야 한다는 믿음의 해체
(1) 몇 년 전, 돌아가신 할아버지
- 기억 속에 남은 마지막 장면들
(2) 유일한 내 편이면서, 동시에 나를 파괴한 사람
(3) 누가 나를 구원해 줄까
(4)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손조차 잡을 수 없었다
3. 가족 내에 형성된 내 역할을 점검하라
역할고착(Role entrapment)과
삼각관계(Triangulation)
(1) 역할 고착과 삼각관계, 그리고 세습되는 역할
(2) 아이로 태어나 희생자가 되기까지
(3) 희생양이 된 아이, 성인이
되어서까지 희생양을 자처하다
(4) 희생자 가족 재판에 서다
(5) 반복되는 구조, 멈출 수 있는 용기
-추가 : 가족 속에서 반복되는 심리 구조 6가지
4. 불쌍하지 않은 걸 불쌍하다고 말하지 마라
감정의 무효화(Emotional invalidation)와
2차 피해
(1) 기억 속 어머니의 따뜻한 도시락과
차가운 뒷모습
(2) 감정의 무효화와 2차 피해
: 이중의 상처
(3) 가사노동의 굴레 안에서 사라진 존재들
(4) 반복 강박 속에서 깨달은 진짜 감정
(5) 엄마가 너무 불쌍하잖아.
그러니까 네가 챙겨야지
(6) 타인의 불쌍함은 타인의 몫이고,
내 감정을 지키는 건
내 몫이고 나의 책임이다.
5. 사랑이라는 말의 함정에 주의하라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가해지는 통제의 언어
(1)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상처의 유산
(2) 사랑이라는 말의 함정
(3) 왜곡된 사랑과 고통의 반복
(4) 성공을 바란다며 발목을 잡는 사랑
(5) 왜곡된 사랑과 경계의 설정
(6) 자기 사랑의 회복과 치유의 여정
-추가 : 알고 가기
6. 용서하지 않아도 괜찮아
연민은 선택이지만,
용서는 강요가 아니다
(1) 아이가 성장하는 것을 바라지 않는 부모들
(2) 단돈 천원도 못 벌어오는
너는 불필요한 존재야
(3) 나중에 나랑 시골에 집 지어서 같이 살자
(4) 여행이 싫은 이유
(5) 용서하지 않아도 괜찮아
1. 나는 사랑받기 위해 희생해야 한다.
(1) 나는 사랑받기 위해 희생해야 한다.라는 신념
(2) 나를 보호하기 위해 내가 만들어낸 생존의 신념들
(3) 나는 사랑받기 위해 희생해야 한다. - 공의존, 반복강박
(4) 어쩔 수 없었던 일이었으니, 네가 이해해야 해라는 말의 함정
- 1. (1) 추가 :
(1) [불행은 어떻게 질병으로 이어지는가
/ 네이딘 버크 해리스 지음
/ 심심 출판사]
책 내용 중 ACE 항목을 가져왔습니다.
(2) ACE 점수에 따른 건강
리스크 해석 (Nadine Burke Harris 정리 기준)
2. 내 감정은 타인의 감정보다 중요하지 않다.
감정보다 의무가 우선이다.
(1) 벌써 마흔
(2) 충전되지 않는 삶, 회피에서 글쓰기로
(3) 진실이 드러나는 순간
(4) 네 감정은 아무것도 아니야
(5) 내 감정은 그 누구의 감정보다 중요하다
3. 나는 무언가 부족한 사람이다.
(1) 누구나 마음에 유리조각 하나를 품고 산다
(2) 속옷 속에 숨겨진 이야기
(3) 타인을 완벽하게 만들어주고 싶다는 마음
(4) 거짓 행복에 매달리지 않겠다는 다짐
4. 내가 무너지면 모두가 무너진다.
나는 중재자이자 책임자여야 한다.
(1) 어린 시절의 상처가 30%만 영향을 준다고?
(2) 당신이 해결하지 않은 과거는
당신이 모르는 사이에 다시 반복된다
(3) 파랑새를 만난 줄 알았다.
- 안전기지의 환상, 반복된 구원의 시도
(4) 여우를 피해 갔더니 호랑이를 만났다
(5) 인정받고 싶은 욕구에 내가 잠식되어 갔다
(6) 무기력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7) 효도라는 이름으로 나는 나를 잃었다
(8) 우리는 서로의 부모가 되어주었다
(9) 더 이상 나를 구해줄 사람을
기다리지 않겠다
5. 진짜 나를 보여주면 버림받는다.
있는 그대로의 나는 사랑받을 수 없다.
(1) 어른이 되었어도 일부 미성숙한 사람들
(2) 내가 나라서 버림받았다고 생각하게 되기까지
(3) 네가 너라서, 딸이라서 버려진 거야
(4) 이랬다가 저랬다가
(5) 나라는 사람 그대로 수용받을 수
없을 것이라는 믿음
(6) 스스로를 지킬 힘이 없고,
지켜야 한다는 인식이 없을 때
일어나는 일들
(7) 처음으로 나를 위해 경계를 세우다
(8) 진짜 나를 보여주면 버리는 사람들이라면
나도 필요 없다
- 추가 :
(1) 엠패스 테스트
(2) HSP 테스트
(3) GHATGPT
심층리처시를 활용한 HSP,
엠패스, 초예민자에 대한
심리학적, 정신분석학적 통합 보고서
6. 내가 잘해야만 관계가 유지된다.
내가 못하면 사랑은 끊긴다.
(1) 너를 버릴 수도 있어
(2) 사랑하고 싶지만 사랑하고 싶지 않은
그대를 사랑해야 할 때
(3) 내 냉장고 열어봐 봐
(4) 내가 잘해야만 관계가 유지될까
(5) 내 마음을 지켜낼 수 있는
유일한 존재는 나뿐이다
7. 나는 끝까지 견뎌야 한다. 참는 것이 미덕이다.
(1) 저 감은 시어서 못 먹을 거야
(2) 나는 끝까지 견뎌야 한다.
참는 것이 미덕이다
(3) 누더기를 걸친 마음
(4) 가면 속에 감춘 마음
(5) 더 이상 견디지 않아도 괜찮아
8. 내가 선택받지 못한 건 내 탓이다.
(1) 상처의 대물림
(2) 양가적인 감정 안에서
누군가를 선택해야 할 때
(3) 아직도 매일 꿈속에서 살아
숨 쉬는 언니에게
(4) 나는 더 이상 내가 나인 것이 아프지 않아
9. 나는 언제든 내 것을 빼앗길 수 있고,
내 마음과 몸을 돌볼 자격이 없다.
나를 먼저 챙기는 것은 이기적이다.
(1) 붉은 손톱
(2) 너를 통해 나를 봤다
(3) 타인의 과제를 타인에게 돌려주는 연습
(4) 나를 먼저 챙기는 것이 타인을 돕는 것이다
10. 내 감정을 드러내면 벌을 받고,
내 고통과 말을 아무도 믿어주지 않을 것이다.
(1) 영웅의 서사인가, 신의 은총인가
(2) 고통스러웠던 20대
(3) 도망가느라 바빴던 30대
(4) 내 생각과 마음이 가장 중요해
가족을 선택할 수 있다는 전제를 받아들이기까지의 시간
1. 가족은 모두에게 따뜻한 단어가 아닐 수 있다
(1) 가족 신화와 현실 사이
(2) '가족'이라서 참아야 했던 순간들
(3) 이상화된 가족 상(像)이 주는 심리적 함정
(4) 가족의 언어 속에서 탈출하기
2. 구 가족과 신 가족을 구분하라
(1) 원가족과 선택 가족의 차이
(2) 경계를 세운다는 것의 의미
(3) 배우자의 원가족과의 관계
: ‘우리’와 ‘그들’의 구분
(4) 혈연이 아닌 유대로 맺는 가족의 힘
3. 자녀는 부모가 선택해서 태어난 가족이다
(1) 돌봄은 책임, 효도는 선택
(2) 불효라는 낙인이 만든 죄책감
(3) 부모의 한계와 자녀의 권리
(4) ‘돌봄의 책임’을 바로 세우기
4. 타인의 시선에 갇힌 나를 구하라
(1) 사회적 자아와 진짜 자아
(2) ‘좋은 딸’, ‘좋은 아내’라는 가면
(3) 인정 욕구와 수치심의 굴레
(4) 타인의 지옥을 내 삶에 끌어들이지 않기
타인의 지옥, 나의 지옥 각자가 걸어갈 길
5. 돕고 싶다면 나를 먼저 도와라
(1) 자기 돌봄은 이기심이 아니다
(2) 심리적 경계와 윤리적 선택
(3) 먼저 나를 구해야 남도 구할 수 있다
(4) 가장 먼저 용서해야 할 대상은 자기 자신
스스로를 연민하지 말 것
1. 삶이 어려울수록 글을 써라.
기록은 치유의 시작이며,
내면의 감정을 안전하게 꺼내는 방법이다
(1) 감정을 언어화하는 힘
: 글쓰기로 마음의 무게 내려놓기
(2) 하루 10분 글쓰기
: 짧아도 꾸준히, 무엇을 써도 괜찮아
(3) 나만의 안전한 글쓰기 공간 만들기
(4) 쓰기를 통한 내 안의 목소리 발견
(5) 기록이 가져다준 회복의 흔적과 증거 쌓기
2. 나만의 스트레스 해소법 찾기
감정적 회복탄력성을 기르기 위한
구체적 실천 가이드
문화, 예술, 취미, 레저의 유익
(1) 몸과 마음을 풀어주는
작은 실천 만들기
(2) 요리가 즐거워
- 만들고, 먹고, 먹이고
(3) 액세서리를 만들면서 발견한
내 안의 욕구
(4) 식물 속에서 발견한 인생
(5) 작은 소모임 또는 혼자 놀기
(6) 세상과 소통을 멈추지 않기
3. 작은 성취라도 내 노력으로 획득할 것
작은 성취를 통해 내면에 영양제 먹이기
(1) 작은 성취로 자기 효능감 회복하기
(2) 성취를 기록하고 스스로 칭찬하기
(3) 내가 가장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가는 연습
(4) 노력의 과정 자체를 존중하는 태도와 연습
(5) 스스로를 힘들게 하지 않는 방법을 배우기
4. 스스로에게 행복과 자유를 허락하라
(1) 자기 연민과 자기 인정의 차이
(2) 행복을 선택할 권리
(3) 용서는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4) 가장 마지막에 도달하는 회복의 단계,
그 속도는 온전히 나의 것
가족을 다시 정의하는 것에서 치유가 시작된다.
사랑의 이름 아래 스스로를 잃어갔던 시간을 넘어,
이제 나를 회복하는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