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가족의 언어 속에서 탈출하기
1. 가족은 모두에게 따뜻한 단어가 아닐 수 있다 (4) 가족의 언어 속에서 탈출하기
이 책은 저자의 개인적 경험과 감정, 그리고 그로부터 얻은 심리적 통찰을 바탕으로 구성된 에세이입니다. 등장하는 인물은 모두 사생활 보호를 위해 가명으로 처리되었으며, 실제 인물과 일치하지 않습니다. 본문은 사실을 단정하거나 특정 개인, 단체를 지칭, 비난하려는 목적이 아닙니다(없습니다.). 인물, 장소, 관계, 시점, 상황의 일부는 가명, 합성, 변형되었으며, 식별 가능한 세부 사항은 변경되었습니다. 유사성이 있더라도 이는 순전히 우연입니다.
저자는 타인의 명예나 사생활을 침해할 의도가 없으며, 본문의 해석은 저자의 주관적 성찰임을 밝힙니다. 이 책은 유사한 경험을 지닌 독자에게 위로와 통찰을 전하기 위한 진솔한 기록입니다. 본문에는 가족 내 학대와 상실 등 트라우마를 환기할 수 있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글을 읽으실 때 스스로의 마음을 가장 우선하시고, 불편함이 느껴지면 언제든 읽기를 멈추셔도 괜찮습니다.
저자는 이 글을 통해 과거를 고발하려는 것이 아니라, 비슷한 경험을 한 이들에게 공감과 회복의 메시지를 전하고자 합니다. 이 책은 특정 인물이나 집단을 비방하거나 공격하려는 목적이 아닌, 개인의 성장과 치유의 여정을 기록하고자 한 성찰의 결과물입니다. 이 기록이 비슷한 경험을 가진 누군가에게 살아갈 용기와 희망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AI 제작]
[AI 제작]
[AI 제작]
- 가족을 선택할 수 있다는 전제를 받아들이기까지의 시간
1. 가족은 모두에게 따뜻한 단어가 아닐 수 있다
(1) 가족 신화와 현실 사이
(2) '가족'이라서 참아야 했던 순간들
(3) 이상화된 가족 상(像)이 주는 심리적 함정
(4) 가족의 언어 속에서 탈출하기
AI 만화
이 책은 저자의 개인적 경험과 감정, 그리고 그로부터 얻은 심리적 통찰을 바탕으로 구성된 에세이입니다. 등장하는 인물은 모두 사생활 보호를 위해 가명으로 처리되었으며, 실제 인물과 일치하지 않습니다. 본문은 사실을 단정하거나 특정 개인, 단체를 지칭, 비난하려는 목적이 아닙니다(없습니다.). 인물, 장소, 관계, 시점, 상황의 일부는 가명, 합성, 변형되었으며, 식별 가능한 세부 사항은 변경되었습니다. 유사성이 있더라도 이는 순전히 우연입니다.
저자는 타인의 명예나 사생활을 침해할 의도가 없으며, 본문의 해석은 저자의 주관적 성찰임을 밝힙니다. 이 책은 유사한 경험을 지닌 독자에게 위로와 통찰을 전하기 위한 진솔한 기록입니다. 본문에는 가족 내 학대와 상실 등 트라우마를 환기할 수 있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글을 읽으실 때 스스로의 마음을 가장 우선하시고, 불편함이 느껴지면 언제든 읽기를 멈추셔도 괜찮습니다.
저자는 이 글을 통해 과거를 고발하려는 것이 아니라, 비슷한 경험을 한 이들에게 공감과 회복의 메시지를 전하고자 합니다. 이 책은 특정 인물이나 집단을 비방하거나 공격하려는 목적이 아닌, 개인의 성장과 치유의 여정을 기록하고자 한 성찰의 결과물입니다. 이 기록이 비슷한 경험을 가진 누군가에게 살아갈 용기와 희망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 가족을 선택할 수 있다는 전제를 받아들이기까지의 시간
가족이란 무엇일까 생각할 때마다, 내 안에 남아 있는 말들이 자꾸만 나를 가족 밖으로 밀어낸다. 왜냐하면 내가 생각하고 행동하는 방식을 그 누구도 바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누구 안에는 나도 포함된다. 나는 그 말들을 ‘가족의 언어’라고 부른다. 가족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 내 안에 심어진 자동반사 같은 문장들이다. 가족의 언어가 내 안에 심어진 뒤부터, 내 생각과 행동은 자동완성처럼 내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나를 이끌었다. 그 말들은 무의식적으로 나를 움직이게 만들었기 때문에 오히려 자연스럽고, 익숙했고, 덜 힘들었다. 이상한 건, 그 언어를 밀어내려고 의식적으로 생각하고 움직이기 시작하자 더 많은 불편함과 불협화음이 생겨났다는 점이다.
가족의 언어를 내 안에서 걷어내기로 마음먹은 데에는 이유가 있다. ‘가족이니까 어떤 일이든 용서하고 받아들여야 한다.’라는 대전제가 내 존재 자체를 위협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세상 모든 것이 등을 돌리고 손가락질을 해도, 유일하게 내 편이 되어주고 천국이 되어야 하는 곳이 가족이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그런데 그 가족이 오히려 전쟁터 같은 곳이라면, 우리는 어디에 마음을 둘 수 있을까. 상처 없고 흠 없는 가족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은 너무 쉽게 들리지만, 들여다보면 누구에게나 각자의 균열이 있다. 그래서 나는 ‘정상가족’이라는 말이 때로는 현실을 덮기 위한 외피가 되기도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오랜 시간 이어져 내려온 가족 체계는 심리적, 정서적, 경제적 유산을 똘똘 뭉쳐 다음 세대에 고스란히 전달해 왔다. 그리고 가족 안에서 답습되고 재구성되며, 때로는 더 많은 흠과 아픔을 재생산해 왔다. 그러니 우리가 정상이라고 믿는 가족 역시 가까이 들여다보면 균형 밖으로 벗어난 지점이 하나쯤은 있기 마련이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가족이라는 구성 자체가 ‘정상’이라는 외피를 입은 채 서로 적당히 모른 척하며 살아가는 경우도 많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 시간 가족 안에서 ‘구성원’으로 남기 위해 자신의 감정, 욕구, 가치를 분리해 묻어버리고 상대의 욕구에 맞춰온 사람이라면 결국 자기 자신을 잃기 쉽다.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게 되고, 선택의 순간마다 타인을 먼저 고려하게 된다. 그래서 가족 안에서는 참 좋은 사람이라는 칭찬을 얻을 수 있지만, 공허감과 무감각, 피로감이 지속되면서 자기 소외가 일어나고 종국에는 스스로를 잃어버린다. 더 무서운 건 가족 안에서 늘 자기 자신을 지우는 방식으로 관계를 유지해 온 사람이 성인이 되어서도 비슷한 역할을 반복한다는 점이다. 익숙한 역할은 낯설지 않아서, 어딘가에서는 그것이 ‘안정감’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서 서로가 서로를 알아보고, 서로에게 익숙한 방식으로 기대고, 서로의 상처를 소울메이트라는 말로 포장해 버린다.
가족에 대해 생각할 때마다 가장 먼저 내 안에 떠오르는 말이 있다.
"네가 열심히 해 봐라. 그러면 내가 가족으로 받아줄지 말지 생각해 볼 순 있지."
한때 나는 누군가의 소중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라면 뭐든지 해야 하고, 할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내가 노력하면 할수록 상대의 깊은 곳에 자리를 잡을 수 있다고 착각했다. 그 착각이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묶였던 관계에서 왔다는 것을, 그들과 거리를 두고 나서야 알게 됐다. 사랑받으려고 노력하면 노력할수록 오히려 더 멀어지는 관계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이미 나는 나를 잃어버린 상태였다. 나를 잃어버린 채 맺어온 관계 방식은 상대와의 거리도 좁히지 못했고, 나 자신과의 거리는 닿을 수 없을 만큼 멀어지게 만들었다. 지금도 내가 억지로 이해하려 했던 일들이, 그리고 이해해야만 한다고 믿었던 순간들이 나를 아프게 한다.
처음 남자친구의 부모님을 뵙던 날, 그리고 그분들이 내게 연락을 하고 함께 밥을 먹고 어디론가 같이 가자고 이끌어주던 날들을 떠올리면, 핑크빛보다 잿빛에 가까운 기억이 먼저 스며온다. 그날들이 떠오를 때면 행복하기보다 오히려 불편하고 불안하다. 그들 속에 있던 나는 ‘나’라기보다 그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눈치 보고 노심초사하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두 번째 가족이 될 수 있다고 믿었던 타인의 가족은 내 안에 있던 첫 번째 가족의 메시지를 더 정교하게 반복하게 만들었다. 나는 그 구조를 벗어났다고 믿었지만, 내 안의 언어는 같은 장면을 다시 만들었다. ‘필요한 존재가 되면, 너를 가족으로 받아들일지 말지 고려해 볼 수 있다.’는 내 안의 폭력적인 음성이 나를 짓누르기 시작한 건, 그들과의 관계가 시작된 지 오래되지 않아서였다.
당시 나는 그들 안에 소속되고 싶어 한다는 걸 누가 봐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하라면 하라는 대로 하고, 뭐라고 하든 날카로운 한마디 하지 못하는 데다, 어떻게 대하든 지켜줄 사람 하나 없을 것 같은 존재. 그게 딱 나였다. 나를 지켜줄 수 있는 존재가 있다면 신 또는 남자친구뿐이라고 믿었는데, 남자친구 역시 ‘부모님’이라는 존재 앞에서는 약하고 불안해 보였다. 사실 나도 애정과 학대를 지속해 온 친부에 대해 여전히 복잡한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남편의 마음이 이해된다. 그들 속으로 들어갈수록 더 많이 깨달았던 건, 오랜 시간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구도로 가족관계가 만들어져 왔다는 사실이었다. 어머니는 아버지를 지배하고, 그 지배 아래 자녀들은 사랑과 은혜를 얻기 위해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남았다. 어떤 자녀는 어머니의 욕구를 채워주며 어머니와 아버지 사이를 중재했고, 어떤 자녀는 사랑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무감각하게 만들고, 가족의 균형을 위해 자신의 욕구와 필요를 숨겼다.
남편과 첫 데이트를 하던 날이 생각난다. 자기에게 가장 좋은 옷이라고 입고 온 옷이 검은색 경량 패딩에 하얗게 물이 빠진 청바지였다. 그때 남편은 키 174.5cm에 몸무게가 58kg 정도였기 때문에, 청바지가 가느다란 다리에서 펄럭일 정도로 헐렁해 보였다. 그것도 모르고 나는 하필 살랑거리는 시폰 원피스를 입고 나갔다. 우리 둘이 서 있는 모습이 어찌나 극과 극이던지, 옷을 갈아입기 위해 다시 방으로 돌아갈까 고민했다. 남편이 예쁘다고 말해줘서 그냥 그 옷을 입고 데이트를 했는데, 그 뒤로도 남편은 “그게 제일 좋은 옷이었다.”라고 말하곤 한다. 그때의 나는 그 모습이 순수해 보이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정말 형편이 어려운 집일 수 있겠다고 단정해 버렸다. 남편은 대학원 면접 스터디를 하러 왔을 때도, 손잡이가 사나운 개에 물어뜯긴 듯 덜렁거리며 겨우 달려 있는 검은색 천 가방을 들고 왔었다. 그 가방을 보는 순간 내 오해는 더 깊어졌다. 나는 그때 남편이 아니라 내 안에 결핍을 보고 있었다.
사람은 상대에게서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경향이 있다는 말이 있다. 지금의 내가 그때를 떠올리면, 내 안에 이미 결론이 정해져 있었던 것 같다. 남편과 사귀는 초기에는 가난할 것이다라고 믿을 만한 장면들이 계속 겹쳐 보였다. 데이트 중에 커피 한 잔을 고르는 손이 망설여 보일 때, 텅 빈 지갑을 보았을 때, 나는 내가 더 많이 내면 된다고 생각했다. 1년 정도 사귄 뒤 내가 대학원에 입학하고서야 부모님을 만나게 됐고, 그때서야 내 생각이 완전히 오판이었다는 걸 알았다. 어머니와 언니, 아버지와 남편 사이의 행색 차이가 너무 분명했다. 나중에 어머니께서는 “뭐든 사준다고 해도 필요 없다며 안 받았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남편이 그렇게 하고 다닌 거라고 하셨다. 나는 아르바이트로 번 돈으로 옷이나 필요한 물품을 가끔 사주곤 했고, 그때마다 수줍게 웃던 남편이 지금도 생각난다. 돌이켜보면 참 마음이 넉넉했던 시기였다.
남자친구와 가까워질수록 어머니의 연락이 잦아졌다. 뜬금없이 학교로 찾아오셔서 만든 음식을 먹게 하거나(거절해도), 옷을 사준다며 나를 옷 가게로 데려갔다. 그때마다 신용카드를 내미는 아버지의 손이 떨리는 것처럼 느껴져서 이상하게 미안해졌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무언가를 사주시거나 맛있는 음식을 해주셨던 날들에는 그 직전에 관계가 어긋났던 순간들이 따라붙곤 했다. 어머니는 내가 둥지를 떠날까 봐 애정과 정서적 폭력을 번갈아 사용하셨고, 그 방식은 어린 시절 내 주변 어른들이 사용하던 방식과 닮아 있었다. 그때 나는 '그래도 미안해서 이렇게 챙겨주시는 거겠지.'라고 내 마음대로 감사해 버렸다.
돌아보면 그건 필요가 끝날 때까지 내가 떠나지 못하게 만드는 장치였을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시험에 떨어진 직후 월세 지원이 완전히 끊어졌고, 연락도 함께 끊어졌기 때문이다. 만남의 중단은 시험 발표 이후 1년 반 가까이 이어졌다. 만약 내가 사과를 요구했을 때 “미안했다.”라는 말 한마디만 들었어도, 인연이 그렇게 쉽게 끊어지진 않았을지 모른다. 나는 늘 그랬듯 다시 돌아가 그들의 애정을 얻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양새를 보였을 가능성이 크다.
마음이 깊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아프면, 건강했던 몸까지 파괴할 수 있다는 것을 몸으로 깨달았던 지난 5년. 그 시간들 속에서 나는 과거에 마주해야 했던 고통스러운 감정과 기억을 정면으로 통과했다. 약 5년 전, 그분들이 나를 함부로 대한 것에 대해 유일하게 사과를 요청한 날이 있었다. 그때 아버지는 “사과할 생각 없다. 너를 가족이라고 생각한 적 없다. 너와 만나는 아들을 이해할 수 없다. 아들이 만나고 있어서 어쩔 수 없이 너를 보고 있는 것이다”라는 메시지들을 보내 주셨다. 그 메시지는 아직도 내 개인 보관함에 남아 있다. 사과 한마디면 끝날 일을 왜 그렇게까지 말해야 했는지 이해하고 싶어서, 그리고 이해하고 싶지 않아서, 나는 그 메시지를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보며 시간을 보냈다. 이해와 거부가 번갈아 올라오는 날들이 이어졌고, 그분들은 나와 완벽히 선을 그었다.
그때 나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노력한다고 해서 누군가의 가족이 될 수 있는 건 아니다.’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동안 나는 그분들이 무슨 말을 해도 찍소리 못했다. 어린 시절부터 배웠던 대로, 나보다 어른인 그들의 부정적 감정을 내가 받아내야 하고 참아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마지막 아버지의 말을 기점으로 그제야 내가 그들에게 소모품 같은 존재였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때부터 ‘가족’이라는 단어가 정말 싫어졌다.
과거 한때 그토록 원했던 사과를 받은 건 약 3년 전, 아버님께 스마트워치 선물을 보내고 나서였다. 왜 하필 그때였는지 잘 모르겠다. 남편을 통해 시아버님이 뒤늦게 “미안했다.”라고 전해 달라고 하셨다. 나는 그 사과를 받아들이는 방식으로 반응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 시점의 나는 사과 여부가 내 마음에 더 이상 의미를 부여하지 못하는 상태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과거의 나는 상대의 사과 여부가 용서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지난날들을 정면으로 통과하면서, 상대의 사과와 생각이 더 이상 내 마음과 생각을 움직여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상대가 용서를 구하면 용서한다’는 생각 자체가 내 선택권과 내 마음을 상대에게 맡기는 것일 수 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분들은 더 이상 내게 중요한 존재가 아니었다. 나는 내가 선택한 남편, 내가 선택한 가족이라는 틀 안에서 그분들과 경계를 세웠다. 그리고 나 역시 ‘누군가의 가족 구성원이 되기 위해’ 애쓰는 일을 멈추고, 내가 내 가족을 만들겠다는 방향으로 현실을 다시 세우기 시작했다. 그러니 지금 그분들은 내게 은인인 남편을 낳아준 고마운 분들이긴 하지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내 안에 경계를 세우자 오히려 그분들을 조금 더 편안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됐다.
사실 시아버님을 떠올리면 전혀 이해되지 않는 것만은 아니었다. 그분 역시 멋쟁이에, 누구나 원하는 어머니를 잃지 않기 위해서는 집 안에 희생이 필요하다고 믿었을 수도 있다. 어머니는 내가 봐도 주변에 어머니를 좋아하는 비슷한 나이대의 남성분들이 많으셨다(물론 여성 친우분들도 많으시다.). 그러니 싸우다 화가 나서 밖으로 나가 버리거나, 이혼을 요구해 온다면 아버지는 평생 잃지 않겠다고 다짐한 가족을 스스로 무너뜨리는 결과를 맞게 되었을 것이다. 시아버님은 어린 시절 나처럼 큰댁에 수양아들로 가서 자란 분이기 때문에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늘 불안정했다고 들었다. 그래서 결혼하셨을 때 “내 가족은 절대 깨뜨리지 않는다. 내 인생에 이혼은 없다.”라는 마음을 갖고 계셨다는 이야기를 어머니를 통해 들었다. 그러니 가정을 지키기 위해 분투하는 아버지가 집 안에서 맡고 있었을 역할을 떠올리면, 내게 했던 말들이 ‘그들 기준에서는’ 당연했을지도 모른다. 부정적인 감정을 해소하기 위해 타인의 긍정적인 감정을 태워야만 하는 사람과 평생을 함께 하겠다고 결심한 아버님의 모습을 지켜보며, 나는 이해하면서도 서운했고 마음이 아팠다.
아버님 입장에서는 이미 있는 가족도 지키기 어려운데, 나까지 책임져야 한다면 그 무게가 상당했을 것이다. 게다가 아버지가 보기에는 어머니가 나를 정말 사랑해서 형편이 여의치 않은데도 나를 가족 화하며 재정적으로 더 힘들어지는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물론 그 돈의 상당 부분이 결국 어머니에게 흘러 들어간다는 사실을 직간접적으로 알고 계셨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내가 공부를 그만하고 독립적으로 살아가길 원하셨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하필 내 인생의 마지막 공부 도전 시기와 겹쳤기 때문에 더 용서하기 어려웠다. 아버님은 가끔 나를 보시곤 기생충 영화 이야기를 꺼내거나, 김치를 챙겨주는 어머니를 보며 “지 아버지한테 도와달라고 해.” 같은 독한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셨다.
그 말들이 상처가 되었는데도 나는 한마디 하지 못했다. 어머니께 받았던 돈은 내 돈까지 보태 선물로 되돌려 드린 적이 많아 억울한 마음도 들었다. 그리고 어머니는 ‘1을 주면 10을 돌려주려는 나’를 잃고 싶지 않아 하셨다. 어쩌면 어머니는 어느 면에서는 정말로 나를 좋아하고 계실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완전히 버리기도 어려웠다. 어머니는 지금도 내게 '사랑한다'는 메시지와 편지를 보내곤 하시는데, 나는 그 앞에서 어떤 감정을 느껴야 할지 모르겠다. 다만 이 편지를 쓰던 순간만큼은 진심이었겠구나라고 생각하려는 내가 있다. 인간은 복잡한 존재이니까, 이유가 무엇이든 ‘사랑한다’는 말 안에 어떤 진심이 섞여 있을 수도 있다고 믿어보려는 마음이 조금은 있다. 메시지를 볼 때마다 시아버님을 생각했던 내 마음이 그분께 닿지 않았던 것처럼 나 역시 어머니의 마음이 내 안에 닿지 않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주는 것은 마음 가는 대로 내가 원해서 하는 것이지만, 받지 않는 것도 상대의 마음이니 말이다. 그러니 상대가 주는 마음을 내가 받지 않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남편이 나와 결혼을 결심해 준 후 우리는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않고 혼인신고를 했다. 원래 연애의 시작은 여자가, 결혼은 남자가 결심해야 이루어진다고들 말하지 않던가. 혼인신고 사실은 나중에서야 시부모님께 이야기했다. 우리 집은 오래전에 결혼은 하고 싶을 때 마음대로 하라고 말하곤 해서 허락을 구할 필요가 없었다. 뒤늦게 말씀드리게 된 것도 부모님께서 “이제 같이 살 거면 혼인신고라도 해야지 않냐.”라고 하셔서였다. 아마 그 말을 듣지 않았다면 오늘까지도 혼인신고 사실을 말씀드리지 않은 채 사실혼인 것처럼 살았을지도 모른다. 그때 남편은 이제 하려고 한다 고만 말하고 더 길게 설명하지 않았다. 모든 결정권이 그분들께 있다고 믿고 싶어 하는 마음을 굳이 망가뜨리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혼인신고를 했다고 말씀드린 건 시누이 언니가 결혼하고 나서였다. 언니는 결혼식을 하면서 꽃을 받아줄 사람이 없다며 남편을 통해 부케를 받아 달라고 연락을 해 왔었다. 이미 법적으로 결혼한 내가 신부의 부케를 받는 것이 괜찮을까 싶어 부드럽게 거절했지만, 이유를 알지 못한 언니가 서운해했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언니가 결혼하는 날이 되기까지 나는 언니와 시부모님과의 만남과 연락을 모두 끊은 상태였다. 그럼에도 때에 맞춰 선물과 편지를 보내드렸고, 남들이 하는 만큼 이상으로는 했다고 생각한다. 사실 언니의 결혼식에도 가지 않으려고 했다. 그 이유는 불편함이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 시부모님을 다시 만나야 했기 때문이다. 당일 아침까지 고민하다가 결국 결혼식에 참석했고, 남편과 함께 손님들의 선물을 챙기고 축의금을 받는 일을 도왔다.
‘가야 한다.’와 ‘가고 싶지 않다.’라는 두 마음이 얼마나 싸워댔던지, 그때의 스트레스를 나는 또 먹는 것과 잠으로 회피하며 한 달을 보냈다. 그 한 달 사이 10kg이 쪘고 콜레스테롤 수치는 280까지 치솟았다. 취업을 위해 48kg까지 뺐던 내가 한 달 사이 10kg이 찌면서 허리도 굵어졌지만, 그만큼 마음이 완전히 깨져나갔다. 당연히 해야 한다고 말하는 일과 하고 싶지 않은 일, 그런데 또 하고 싶기도 하고 아니기도 한 내 마음이 계속 부딪혔다. 그걸 보던 남편은 가지 말라고 권했다. 그럼에도 가지 않으면 나중에 후회할 것 같아 마음이 불편했다(추가로 더 이상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나를 파괴하는 방식으로 풀지 않는다는 점을 덧붙인다.).
지난 시간 동안 시누이 언니와의 시간 속에서 우리는 서로의 결혼에 대해 자주 이야기를 나눴었다(2부 참고). 불편한 마음을 덜어내기 위해 언니의 결혼식 구두 코르사주를 직접 만들고, 결혼식용 구두와 액세서리도 준비했다. 과거 언니와 잠들지 않는 새벽을 함께 보내던 때가 많았고, 그때 결혼식에 입을 드레스와 장신구를 함께 고르던 기억도 떠올랐다. 우리는 피로연 때는 어떤 옷이 좋겠다고 이야기하며 행복한 결혼식을 꿈꿨다. 과거 우리는 한때 서로에게 최고의 친구였기 때문에 언니의 결혼식을 완전히 모른 척하기가 어려웠다. 결국 내 마음 편하자고 결혼식에 갔는데, 아직도 그날을 후회하는지 아닌지 잘 모르겠다. 그리고 그날부터 단절했던 시부모님과의 시간이 다시 시작됐다.
빠듯한 대학원 생활을 하면서 ‘예비 며느리 역할’을 하는 건 쉽지 않았다. 어머니는 매달 가야 하는 모임만 해도 적을 때도 5개가 넘었고, 국내 여행도 달에 대여섯 번씩 다니셨다. 아버지의 반토막 난 연금으로 그 모든 행사를 유지하는 생활은 언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았다(어머니의 경제 습관을 보면 왜 연금이 반토막이 났는지도 어느 정도는 이해가 된다. 이건 어머니를 폄하하려는 말이 아니라, 가계부를 쓰는 주부 입장에서 드는 현실적인 판단이다.). 물론 연금은 그분들의 것이니 어떻게 쓰든 내가 신경 쓸 문제는 아니다. 문제는 어머니가 맡고 계신 임원직이 한두 개가 아니었고, 그 자리마다 아름답고 우아한 모습이어야 했다는 점이다. 어머니의 사회 활동에서는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한 준비가 필요했는데, 그 준비를 충족시키기 위한 돈이 늘 부족했다. 공부하는 자녀가 둘이나 있는 상황에서 어머니의 사회생활은 어머니 입장에서는 희생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어머니는 참여하는 곳마다 다른 헤어핀과 옷, 신발, 장신구, 가방이 필요했고, 그 욕구를 내려놓는 일은 어머니에게 큰 희생이자 싸움의 원인이 됐다. 어머니는 “친구들이 안 보는 것 같아도 다 본다.”며 가장 돋보여야 한다는 생각을 놓지 못하셨다. 그래서 필요한 물품을 구입해 가져오는 일을 내게 주로 맡기셨다. 연락이 끊임없이 이어졌고, 만나는 자리에서는 물품이 채워질 때까지 그 이야기로 시간을 채웠으며, 행사마다 날짜를 하나하나 짚어주며 내게 상기시키셨다.
"나 0월 0일에 어디 간다. 그때 입을 옷이 없네. 친구는 접어서 메는 가방 샀던데. 나도 그런 가방이 하나 있으면 좋을 텐데. 나는 왜 가방이 하나도 없을까."
이런 식으로 구체적인 날짜와 장소, 필요한 물품들이 반복해서 내 귀에 들어왔다. 그래서 나는 모의고사와 시험일보다 어머니가 여행 가는 날짜와 장소를 더 잘 기억했다. 어머니의 말들이 내 머릿속을 점령했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친구들이 멋있게 하고 다닌다.” 같은 말을 들었다고 말할 때면, 나도 모르게 뿌듯해지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내가 지금 이런 일을 할 때인가.’ 싶은 마음이 올라왔지만, 그때마다 칭찬과 함께 내게 필요할 것 같은 보상이 내려왔다. 중국 드라마에서 가장 높은 직위에 있는 여성들이 권위의 상징으로 화려한 옷과 장신구, 화장을 해야만 하는 장면들을 볼 때마다 어머니의 모습이 겹쳐졌다.
다른 나라의 역사에서도 권위와 이미지를 위해 과한 치장과 화장을 택했던 사례들이 전해진다. 예컨대 엘리자베스 1세가 ‘베네시안 세루스’로 알려진 하얀 얼굴 화장을 즐겨했다는 이야기처럼, 당시 하얀 얼굴은 노동하지 않는 계급의 상징이자 결함 없는 존재, 통제와 권위의 표식으로 여겨졌다고 한다. 물론 이런 이야기는 시대의 기록과 해석이 겹쳐져 전해지는 것이기도 하니, 사실 여부를 따지기보다 그 상징이 가진 구조를 떠올리게 된다. 누군가에게는 돋보이는 옷과 장신구, 신발과 가방이 ‘살아남기 위한 권위’가 되고, 그 권위를 유지하기 위해 대신 움직여줄 사람이 필요해진다. 필요한 것이 많고 몸은 늘 아파서 누군가 대신 움직여줄 사람이 필요했던 어머니에게, 죄책감이 많고 조금만 잘해줘도 충성하는 ‘종’ 같은 나는 필수적인 존재였을 것이다. 원래 공주에게 하녀가 필요하다.
한 번은 너무 힘이 들어서 “자격증을 취득하고 나면 정말 잘해드릴게요.”라고 말씀드린 적이 있다. 공부에 지장이 되고 스트레스로 몸과 마음이 피폐해져 가던 때였다. 그랬더니 어머니는 대뜸 “그러면 지금 내 아들이랑 헤어져.”라고 말씀하셨다. 그 말은 열심히 노력해서 가족 구성원이 되었다고 착각했던 내게 청천벽력 같은 말이었다. 그 순간에라도 돌아섰더라면 좋았을 텐데, 나는 지레 놀라 어머니께 더 잘해야겠다고 생각하며 다시 그 곁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때의 나는 가족이라는 틀 안에 완전히 흡수되지 않으면 언제든 남편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잘못된 공포에 갇혀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바이러스에 감염돼 제 기능을 못하는 프로그램 같은 상태였다.
심리학 공부를 하면서 과거를 끊임없이 쫓아가 같은 상황과 같은 말들을 내 안에서 반복했다. 그리고 깨달은 건, 내가 어떤 행동을 하고 어떤 말을 했더라도 남편은 내 곁을 떠날 사람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나의 공의존 성향과 오류적 판단이, ‘남자친구 부모님에게 잘 보이지 않으면 남자친구가 나를 떠날지도 모른다.’는 공포로 굳어졌던 것이다. 마음이 너무 힘들어 ‘엄마’라고 부르던(지금도 엄마라고 부른다.) 목사님께 이야기했더니, 목사님은 “남자친구와는 꼭 사귀어야 하는 거지?”라고 물으며 안타까워하셨다. 그런데도 나는 이미 흘러간 마음과 이미 쏟아버린 시간과 노력이 아까워 이 관계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지금 생각하면 나는 관계에서 ‘매몰비용’에 붙잡혀 있었다. 이미 투자한 것이 아까워 더 많은 것을 쏟아붓는 방식으로 더 깊게 가라앉고 있었던 것이다. 돈이 아니라 내 시간과 노력, 그리고 내 존엄을 계속 더 얹는 꼴이었다. 그래서 그때의 나는 정상적인 판단이 거의 불가능했다. 오직 목표는 빨리 자격증을 취득하고 남편과 행복한 결혼 생활을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때 남편과 남편의 가족은 한 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서로 분리된 존재라는 사실을 알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언젠가 우리는 자립해 독립된 가정을 꾸려야 했고, ‘구 가족’과 분리해야 할 타인성도 분명히 존재했다. 그때 내가 남편을 믿고 내 앞길을 위해 최선을 다해 달려갔더라면, 오늘의 내 능력과 성취로 더 많은 것을 돌려드릴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아쉬움이 든다. 어쩌면 내 어머니가 살아계셨거나, 아버지가 더 건강한 분이셨다면, 나는 과거의 날들 속에서 이런 오류를 반복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한다. 나는 지난 5년을 지나온 상황과 말들을 복기하며 내 마음을 파괴하며 지냈다. 누구에게라도 탓을 돌리거나 복수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을 만큼 무너진 날들이 흘러갔다. 그래서 나는 그 복수를 나 자신에게 했다. 과하게 먹거나, 과하게 굶고, 토하고, 며칠씩 몸이 망가질 때까지 잠을 자지 않는 방식으로 말이다. 그때는 왜 내가 충동을 참지 못할까 자책하며, 내 말과 행동 하나하나를 후회했다. 그러다 더 이상 혼자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고 느꼈을 때 병원에 가기로 마음먹었다.
이제야 말하지만, 내가 우울한 만큼 남편 역시 극단적인 우울 상태에 갇혔다. 내가 시험에 실패한 후 이런저런 기업들에 기웃거리고 있을 때 남편은 마지막 남은 시험을 준비하고 있었다. 남편 역시 그동안의 힘듦이 누적됐는지 몸과 마음이 흔들렸다. 그래서 남편도 그때 정말 많이 아팠다. 남편이 아파하는 모습을 보며 나는 흔들리지 않고 기둥처럼 서 있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남편을 고3 수험생이라고 생각하며, 어떤 것도 방해하지 못하도록 계획을 세웠고 남편이 그 계획에 따라 공부만 할 수 있도록 도왔다. 그렇게 1년을 보내면서, 시부모님 두 분 모두 우리의 미래를 위해 ‘존중’의 형태로 움직여준 적이 거의 없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고3 수험생보다 더 많은 공부를 해야 하고 미래를 위해 고군분투해도 모자랄 시간에, 그들의 가족 체계를 유지하기 위해 나와 남편이 소모되었다는 사실은 깊은 고통과 후회를 남겼다. 그래서 지난 5년 내내 그분들에 대한 원망과 미움을 내려놓기가 쉽지 않았다.
남편이 시험에 합격한 뒤, 관계가 다시 이어지려던 시기였다. 어느 날 교회 장로님에게서 남편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이제 결혼할 건가? 어머니께 결혼시킬 거냐고 물어보니까, 이제 봐야지 알지라. 그러던데."
남편의 통화 내용을 옆에서 우연히 듣고, 내 안에서 울화가 터져 나왔다. 내 앞에서는 사랑한다고 딸이라고 말하면서, 다른 곳에서는 상황에 따라 나를 언제든 제거할 수 있다는 뉘앙스를 흘리고 다니고 있었다는 것을 확인한 순간이었다. 그때 이미 쉽게 내려놓지 못해 힘들었던 원망이 다시 치솟았다. 남편은 “당연히 해야죠.”라고 답하고 전화를 끊었다. 이후에도 비슷한 맥락의 말들이 다시 들려왔고(정확한 날짜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 무심한 말투가 내 마음에 깊은 상흔을 남겼다. 이후 다시 걸려온 전화에서 결혼을 언제 할 거냐고 묻는 분께 혼인신고를 했다고 말씀드렸다. 그랬더니
"혼인신고 부모님 허락받고 한 거지?"
그 말은 과거에 들었던 말들과 연결되어 내 안에서 오래된 상처를 다시 찔렀다. 남편은 그렇다고 짧게 대답하고 다른 화제로 전화를 이어갔다. 어머님이 이제 아들이 잘 됐으니 “결혼은 이제 봐야지. 어쩔지 모르잖아.” 같은 말을 하고 다닌다는 사실도 그때 알게 됐다. 어린 시절부터 가족 안에 들어가고 싶었던 나는 원가족 사람들이 방 안에 모여 웃고 떠드는 소리를 닫힌 문 옆 마루에 앉아 한참 듣곤 했다. 그리고 남편 가족을 통해 ‘가족’을 이루고 싶었던 내가 결국 그곳에서도 가족 구성원이 될 수 없다는 느낌을 받았을 때 얼마나 가슴이 찢어졌는지 모른다. 그제야 가족이란 노력으로 자격을 따내는 자리가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받아들이는 자리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때부터 나는 내가 가족을 만들어야 한다는 결심을 처음으로 세워가기 시작했다.
이제 나는 가족을 내가 만들고 세워가며, 가족이 유일하게 돌아올 수 있는 천국이 되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매일을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나는 남편에게 온전한 쉼과 평안을 줄 수 있도록 매일 나를 세운다. 그리고 더 이상 어린 시절과 성인이 되어 내 안에 심어졌고 심어보려 했던 ‘구 가족들의 말’을 하나씩 뽑아내고 있다. 가족이 되려면 내가 참아야 한다는 말, 어른이 잘못한 것은 더 어린 사람이 모른 척하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말, 네가 노력하면 내가 너를 좋아해 줄 수 있고 이 구성 안에 끼워줄 수도 있다는 말, 네가 마음에 안 들면 언제든 제거할 수 있다는 말. 나는 나를 아프게 했던 말들을 하나씩 뽑아내고 있다. 그리고 더 이상 누군가가 나를 어떻게 대하든, 무슨 말을 하든 상대를 설득하려 들지 않는다. 관찰하고, 그대로 두고, 내 자리로 돌아온다.
더 이상 나는 이해받으려 애쓰지 않고, 설명으로 나를 구하지 않고, 상대의 언어로 나를 정의하지 않는다. 관계를 무작정 끊어내기보다, 내 안에 경계를 세운 채로 놓아두는 연습을 하면서 오히려 이전보다 더 건강한 관계가 가능해졌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내 안에 남아 있던 부정적인 메시지와 ‘가족의 언어’가 나를 지배하던 시간도 어느 정도는 끝났다고 느낀다. 상대가 뭐라고 생각하든 나는 법과 사회의 건강한 테두리 안에서 나를 먼저 살뜰히 보살핀 뒤,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상대를 대하면 된다. 그렇게 생각하니 관계가 더 이상 무겁지 않다. 그리고 무엇을 하든 과하게 노력해서 나를 소진하지 않는다. 나는 그 연습을 매일 하며 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이 연습을 시작하면서 나는 가족을 다시 정의하게 되었다. 나는 이제 ‘관계의 유지’보다 ‘나를 나라는 사람으로 남게 하는가.’를 기준으로 선택한다. 가족은 혈연이라는 이유로 침묵을 강요하는 관계가 아니라, 나를 사람으로 남겨주는 관계여야 한다. 가족은 ‘참는 사람’과 ‘요구하는 사람’으로 역할이 고정되는 구조가 아니라, 서로의 경계를 인정하는 관계여야 한다. 가족은 내가 기능하지 않아도, 내가 내어주지 않아도, 내가 ‘나’로 존재해도 관계가 무너지지 않는 자리여야 한다. 그래서 나는 이제 가족을 나누어 부르기로 했다. 나를 소진시키며 붙잡던 관계는 ‘구 가족’으로, 내가 선택하고 책임지며 새롭게 만들어갈 관계는 ‘신 가족’으로 말이다. 다음 이야기는 그 구분을 실제 삶에서 어떻게 세워냈는지에 대한 기록으로 이어진다. 내가 떠나온 것이 단지 사람인지, 아니면 내 안에 남은 언어인지. 그 구분이 분명해질수록 나는 비로소 ‘가족’이라는 단어를 내 삶에서 다시 결정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3부 1. (4) 가족의 언어에서 탈출하기
참고 자료
1. Bowen, Murray, Family Therapy in Clinical Practice, Jason Aronson, 1978
→ 사용된 개념: 가족체계이론, 삼각화(triangulation), 정서적 융합/분화, 다세대 전수, 가족 내 역할 구조
2. Minuchin, Salvador, Families and Family Therapy, Harvard University Press, 1974
→ 사용된 개념: 가족 구조(Structure), 경계(boundaries), 하위체계, 역할 고정, 기능적/역기능적 상호작용
3. Herman, Judith L., Trauma and Recovery, Basic Books, 1992
→ 사용된 개념: 복합외상, 회복 단계(안전-기억/애도-재연결), 외상 관계의 심리적 후유증
4. van der Kolk, Bessel, The Body Keeps the Score: Brain, Mind, and Body in the Healing of Trauma, Viking, 2014
→ 사용된 개념: 트라우마의 신체화, 경계감 회복, 과각성/무감각, 관계 패턴과 외상 기억
5. Linehan, Marsha M., Cognitive-Behavioral Treatment of Borderline Personality Disorder, Guilford Press, 1993
→ 사용된 개념: 대인관계 효율성, 감정조절, 경계 설정, 정서적 취약성과 대처(기술 개념)
6. Festinger, Leon, A Theory of Cognitive Dissonance, Stanford University Press, 1957
→ 사용된 개념: 인지부조화, 관계 안에서의 자기합리화, 모순된 신념의 유지 메커니즘
7. Kahneman, Daniel, Thinking, Fast and Slow, Farrar, Straus and Giroux, 2011
→ 사용된 개념: 자동사고(빠른 사고), 확증편향, 해석의 편향(“보고 싶은 것만 본다”)
8. Kelley, Harold H., Thibaut, John W., “Interpersonal Relations: A Theory of Interdependence”, Wiley, 1978
→ 사용된 개념: 상호의존, 관계에서의 교환 구조(헌신/보상 기대의 심리)
9. Arkes, Hal R., Blumer, Catherine, “The Psychology of Sunk Cost”, Organizational Behavior and Human Decision Processes, 35(1), 1985
→ 사용된 개념: 매몰비용 오류(sunk cost fallacy), 관계/투자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심리
목차
프롤로그
‘상처’에서 ‘자유’로, ‘의무’에서 ‘선택’으로 나아간 김희경 작가의 신작.
가족이라는 감정적 언어 속에서 길을 잃었던 한 개인이 자아와 회복을 향해 걸어온 심리적 여정.
1. 가족이라는 이름의 상처
혈연이라는 이름이 만든 구조적 폭력
(1) 가족이라는 말에 심장이 내려앉을 때
(2) 가장 아름다웠던 날, 가장 잔인한 기억
(3) 생애 첫 기억 속 무가치함의 내면화 시작
(4) 침묵하지 않는다는 것
2. 가족이라고 상처를 허락하지 마라
가족이라는 이유로 참아야 한다는 믿음의 해체
(1) 몇 년 전, 돌아가신 할아버지
- 기억 속에 남은 마지막 장면들
(2) 유일한 내 편이면서, 동시에 나를 파괴한 사람
(3) 누가 나를 구원해 줄까
(4)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손조차 잡을 수 없었다
3. 가족 내에 형성된 내 역할을 점검하라
역할고착(Role entrapment)과
삼각관계(Triangulation)
(1) 역할 고착과 삼각관계, 그리고 세습되는 역할
(2) 아이로 태어나 희생자가 되기까지
(3) 희생양이 된 아이, 성인이
되어서까지 희생양을 자처하다
(4) 희생자 가족 재판에 서다
(5) 반복되는 구조, 멈출 수 있는 용기
-추가 : 가족 속에서 반복되는 심리 구조 6가지
4. 불쌍하지 않은 걸 불쌍하다고 말하지 마라
감정의 무효화(Emotional invalidation)와
2차 피해
(1) 기억 속 어머니의 따뜻한 도시락과
차가운 뒷모습
(2) 감정의 무효화와 2차 피해
: 이중의 상처
(3) 가사노동의 굴레 안에서 사라진 존재들
(4) 반복 강박 속에서 깨달은 진짜 감정
(5) 엄마가 너무 불쌍하잖아.
그러니까 네가 챙겨야지
(6) 타인의 불쌍함은 타인의 몫이고,
내 감정을 지키는 건
내 몫이고 나의 책임이다.
5. 사랑이라는 말의 함정에 주의하라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가해지는 통제의 언어
(1)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상처의 유산
(2) 사랑이라는 말의 함정
(3) 왜곡된 사랑과 고통의 반복
(4) 성공을 바란다며 발목을 잡는 사랑
(5) 왜곡된 사랑과 경계의 설정
(6) 자기 사랑의 회복과 치유의 여정
-추가 : 알고 가기
6. 용서하지 않아도 괜찮아
연민은 선택이지만,
용서는 강요가 아니다
(1) 아이가 성장하는 것을 바라지 않는 부모들
(2) 단돈 천원도 못 벌어오는
너는 불필요한 존재야
(3) 나중에 나랑 시골에 집 지어서 같이 살자
(4) 여행이 싫은 이유
(5) 용서하지 않아도 괜찮아
1. 나는 사랑받기 위해 희생해야 한다.
(1) 나는 사랑받기 위해 희생해야 한다.라는 신념
(2) 나를 보호하기 위해 내가 만들어낸 생존의 신념들
(3) 나는 사랑받기 위해 희생해야 한다. - 공의존, 반복강박
(4) 어쩔 수 없었던 일이었으니, 네가 이해해야 해라는 말의 함정
- 1. (1) 추가 :
(1) [불행은 어떻게 질병으로 이어지는가
/ 네이딘 버크 해리스 지음
/ 심심 출판사]
책 내용 중 ACE 항목을 가져왔습니다.
(2) ACE 점수에 따른 건강
리스크 해석 (Nadine Burke Harris 정리 기준)
2. 내 감정은 타인의 감정보다 중요하지 않다.
감정보다 의무가 우선이다.
(1) 벌써 마흔
(2) 충전되지 않는 삶, 회피에서 글쓰기로
(3) 진실이 드러나는 순간
(4) 네 감정은 아무것도 아니야
(5) 내 감정은 그 누구의 감정보다 중요하다
3. 나는 무언가 부족한 사람이다.
(1) 누구나 마음에 유리조각 하나를 품고 산다
(2) 속옷 속에 숨겨진 이야기
(3) 타인을 완벽하게 만들어주고 싶다는 마음
(4) 거짓 행복에 매달리지 않겠다는 다짐
4. 내가 무너지면 모두가 무너진다.
나는 중재자이자 책임자여야 한다.
(1) 어린 시절의 상처가 30%만 영향을 준다고?
(2) 당신이 해결하지 않은 과거는
당신이 모르는 사이에 다시 반복된다
(3) 파랑새를 만난 줄 알았다.
- 안전기지의 환상, 반복된 구원의 시도
(4) 여우를 피해 갔더니 호랑이를 만났다
(5) 인정받고 싶은 욕구에 내가 잠식되어 갔다
(6) 무기력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7) 효도라는 이름으로 나는 나를 잃었다
(8) 우리는 서로의 부모가 되어주었다
(9) 더 이상 나를 구해줄 사람을
기다리지 않겠다
5. 진짜 나를 보여주면 버림받는다.
있는 그대로의 나는 사랑받을 수 없다.
(1) 어른이 되었어도 일부 미성숙한 사람들
(2) 내가 나라서 버림받았다고 생각하게 되기까지
(3) 네가 너라서, 딸이라서 버려진 거야
(4) 이랬다가 저랬다가
(5) 나라는 사람 그대로 수용받을 수
없을 것이라는 믿음
(6) 스스로를 지킬 힘이 없고,
지켜야 한다는 인식이 없을 때
일어나는 일들
(7) 처음으로 나를 위해 경계를 세우다
(8) 진짜 나를 보여주면 버리는 사람들이라면
나도 필요 없다
- 추가 :
(1) 엠패스 테스트
(2) HSP 테스트
(3) GHATGPT
심층리처시를 활용한 HSP,
엠패스, 초예민자에 대한
심리학적, 정신분석학적 통합 보고서
6. 내가 잘해야만 관계가 유지된다.
내가 못하면 사랑은 끊긴다.
(1) 너를 버릴 수도 있어
(2) 사랑하고 싶지만 사랑하고 싶지 않은
그대를 사랑해야 할 때
(3) 내 냉장고 열어봐 봐
(4) 내가 잘해야만 관계가 유지될까
(5) 내 마음을 지켜낼 수 있는
유일한 존재는 나뿐이다
7. 나는 끝까지 견뎌야 한다. 참는 것이 미덕이다.
(1) 저 감은 시어서 못 먹을 거야
(2) 나는 끝까지 견뎌야 한다.
참는 것이 미덕이다
(3) 누더기를 걸친 마음
(4) 가면 속에 감춘 마음
(5) 더 이상 견디지 않아도 괜찮아
8. 내가 선택받지 못한 건 내 탓이다.
(1) 상처의 대물림
(2) 양가적인 감정 안에서
누군가를 선택해야 할 때
(3) 아직도 매일 꿈속에서 살아
숨 쉬는 언니에게
(4) 나는 더 이상 내가 나인 것이 아프지 않아
9. 나는 언제든 내 것을 빼앗길 수 있고,
내 마음과 몸을 돌볼 자격이 없다.
나를 먼저 챙기는 것은 이기적이다.
(1) 붉은 손톱
(2) 너를 통해 나를 봤다
(3) 타인의 과제를 타인에게 돌려주는 연습
(4) 나를 먼저 챙기는 것이 타인을 돕는 것이다
10. 내 감정을 드러내면 벌을 받고,
내 고통과 말을 아무도 믿어주지 않을 것이다.
(1) 영웅의 서사인가, 신의 은총인가
(2) 고통스러웠던 20대
(3) 도망가느라 바빴던 30대
(4) 내 생각과 마음이 가장 중요해
가족을 선택할 수 있다는 전제를 받아들이기까지의 시간
1. 가족은 모두에게 따뜻한 단어가 아닐 수 있다
(1) 가족 신화와 현실 사이
(2) '가족'이라서 참아야 했던 순간들
(3) 이상화된 가족 상(像)이 주는 심리적 함정
(4) 가족의 언어 속에서 탈출하기
2. 구 가족과 신 가족을 구분하라
(1) 원가족과 선택 가족의 차이
(2) 경계를 세운다는 것의 의미
(3) 배우자의 원가족과의 관계
: ‘우리’와 ‘그들’의 구분
(4) 혈연이 아닌 유대로 맺는 가족의 힘
3. 자녀는 부모가 선택해서 태어난 가족이다
(1) 돌봄은 책임, 효도는 선택
(2) 불효라는 낙인이 만든 죄책감
(3) 부모의 한계와 자녀의 권리
(4) ‘돌봄의 책임’을 바로 세우기
4. 타인의 시선에 갇힌 나를 구하라
(1) 사회적 자아와 진짜 자아
(2) ‘좋은 딸’, ‘좋은 아내’라는 가면
(3) 인정 욕구와 수치심의 굴레
(4) 타인의 지옥을 내 삶에 끌어들이지 않기
타인의 지옥, 나의 지옥 각자가 걸어갈 길
5. 돕고 싶다면 나를 먼저 도와라
(1) 자기 돌봄은 이기심이 아니다
(2) 심리적 경계와 윤리적 선택
(3) 먼저 나를 구해야 남도 구할 수 있다
(4) 가장 먼저 용서해야 할 대상은 자기 자신
스스로를 연민하지 말 것
1. 삶이 어려울수록 글을 써라.
기록은 치유의 시작이며,
내면의 감정을 안전하게 꺼내는 방법이다
(1) 감정을 언어화하는 힘
: 글쓰기로 마음의 무게 내려놓기
(2) 하루 10분 글쓰기
: 짧아도 꾸준히, 무엇을 써도 괜찮아
(3) 나만의 안전한 글쓰기 공간 만들기
(4) 쓰기를 통한 내 안의 목소리 발견
(5) 기록이 가져다준 회복의 흔적과 증거 쌓기
2. 나만의 스트레스 해소법 찾기
감정적 회복탄력성을 기르기 위한
구체적 실천 가이드
문화, 예술, 취미, 레저의 유익
(1) 몸과 마음을 풀어주는
작은 실천 만들기
(2) 요리가 즐거워
- 만들고, 먹고, 먹이고
(3) 액세서리를 만들면서 발견한
내 안의 욕구
(4) 식물 속에서 발견한 인생
(5) 작은 소모임 또는 혼자 놀기
(6) 세상과 소통을 멈추지 않기
3. 작은 성취라도 내 노력으로 획득할 것
작은 성취를 통해 내면에 영양제 먹이기
(1) 작은 성취로 자기 효능감 회복하기
(2) 성취를 기록하고 스스로 칭찬하기
(3) 내가 가장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가는 연습
(4) 노력의 과정 자체를 존중하는 태도와 연습
(5) 스스로를 힘들게 하지 않는 방법을 배우기
4. 스스로에게 행복과 자유를 허락하라
(1) 자기 연민과 자기 인정의 차이
(2) 행복을 선택할 권리
(3) 용서는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4) 가장 마지막에 도달하는 회복의 단계,
그 속도는 온전히 나의 것
가족을 다시 정의하는 것에서 치유가 시작된다.
사랑의 이름 아래 스스로를 잃어갔던 시간을 넘어,
이제 나를 회복하는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