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하지 않아도 괜찮아 / 3부 2. (2) 경계를

3부 2. (2) 경계를 세운다는 것의 의미

by 김희경 작가

3부 2. 구 가족과 신 가족을 구분하라 (2) 경계를 세운다는 것의 의미


이 책은 저자의 개인적 경험과 감정, 그리고 그로부터 얻은 심리적 통찰을 바탕으로 구성된 에세이입니다. 등장하는 인물은 모두 사생활 보호를 위해 가명으로 처리되었으며, 실제 인물과 일치하지 않습니다. 본문은 사실을 단정하거나 특정 개인, 단체를 지칭, 비난하려는 목적이 아닙니다(없습니다.). 인물, 장소, 관계, 시점, 상황의 일부는 가명, 합성, 변형되었으며, 식별 가능한 세부 사항은 변경되었습니다. 유사성이 있더라도 이는 순전히 우연입니다.


저자는 타인의 명예나 사생활을 침해할 의도가 없으며, 본문의 해석은 저자의 주관적 성찰임을 밝힙니다. 이 책은 유사한 경험을 지닌 독자에게 위로와 통찰을 전하기 위한 진솔한 기록입니다. 본문에는 가족 내 학대와 상실 등 트라우마를 환기할 수 있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글을 읽으실 때 스스로의 마음을 가장 우선하시고, 불편함이 느껴지면 언제든 읽기를 멈추셔도 괜찮습니다.


저자는 이 글을 통해 과거를 고발하려는 것이 아니라, 비슷한 경험을 한 이들에게 공감과 회복의 메시지를 전하고자 합니다. 이 책은 특정 인물이나 집단을 비방하거나 공격하려는 목적이 아닌, 개인의 성장과 치유의 여정을 기록하고자 한 성찰의 결과물입니다. 이 기록이 비슷한 경험을 가진 누군가에게 살아갈 용기와 희망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AI 생성

AI 생성

3부. 새로운 가족의 의미와 용서의 속도


- 가족을 선택할 수 있다는 전제를 받아들이기까지의 시간


2. 구 가족과 신 가족을 구분하라


2. 구 가족과 신 가족을 구분하라


(1) 원가족과 선택 가족의 차이

(2) 경계를 세운다는 것의 의미

(3) 배우자의 원가족과의 관계

: ‘우리’와 ‘그들’의 구분

(4) 혈연이 아닌 유대로 맺는 가족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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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만화


이 책은 저자의 개인적 경험과 감정, 그리고 그로부터 얻은 심리적 통찰을 바탕으로 구성된 에세이입니다. 등장하는 인물은 모두 사생활 보호를 위해 가명으로 처리되었으며, 실제 인물과 일치하지 않습니다. 본문은 사실을 단정하거나 특정 개인, 단체를 지칭, 비난하려는 목적이 아닙니다(없습니다.). 인물, 장소, 관계, 시점, 상황의 일부는 가명, 합성, 변형되었으며, 식별 가능한 세부 사항은 변경되었습니다. 유사성이 있더라도 이는 순전히 우연입니다.


저자는 타인의 명예나 사생활을 침해할 의도가 없으며, 본문의 해석은 저자의 주관적 성찰임을 밝힙니다. 이 책은 유사한 경험을 지닌 독자에게 위로와 통찰을 전하기 위한 진솔한 기록입니다. 본문에는 가족 내 학대와 상실 등 트라우마를 환기할 수 있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글을 읽으실 때 스스로의 마음을 가장 우선하시고, 불편함이 느껴지면 언제든 읽기를 멈추셔도 괜찮습니다.


저자는 이 글을 통해 과거를 고발하려는 것이 아니라, 비슷한 경험을 한 이들에게 공감과 회복의 메시지를 전하고자 합니다. 이 책은 특정 인물이나 집단을 비방하거나 공격하려는 목적이 아닌, 개인의 성장과 치유의 여정을 기록하고자 한 성찰의 결과물입니다. 이 기록이 비슷한 경험을 가진 누군가에게 살아갈 용기와 희망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3부. 새로운 가족의 의미와 용서의 속도


- 가족을 선택할 수 있다는 전제를 받아들이기까지의 시간


1. 구 가족과 신 가족을 구분하라


(2) 경계를 세운다는 것의 의미


어떤 상황에서든 좋은 게 좋은 거야라며 타인의 감정을 우선하고 자신의 감정을 지워낸 사람의 인간관계는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까. 살아가면서 마주하는 사람들과 우리는 자연스럽게 상호작용하며 살아간다. 그러면서 관계 속에서 사랑과 우정, 희망, 행복, 슬픔, 우울 같은 다양한 감정을 배우고 주고받는다. 그리고 그 안에서 나도 모르는 사이 각자의 역할이 정해진다. 그 역할은 가족 관계 안에서 만들어진 것일 수도 있고, 사회에서 주어진 것일 수도 있으며, 관계의 상호작용 속에서 굳어진 것일 수도 있다. 그 역할은 어느 날 갑자기 생기는 것이 아니라 반복 속에서 굳어진다.


어떤 사람이 관계에서 주로 희생하고, 슬픔을 감당하는 쪽을 맡아왔다면 우리는 그 사람을 어떻게 바라볼까. 착하다, 좋은 사람이다라고 평가할까. 아니면 우둔하고 순진하다고 말할까. 그날의 분위기를 위해, 모두의 평화와 균형을 위해 희생자 역할을 기꺼이 맡은 사람은 어떤 생각으로 그 선택을 감당해온 것일까. 오랜 시간 그 이유를 생각해 봤다. 왜냐하면 내가 주로 희생자 역할을 맡아왔던 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글은 결국 그 선택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되짚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심리 공부를 하면서 알게 된 것은, 나 하나가 희생하면 좋은 분위기를 유지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사실은 오만한 생각이었다는 점이다. 그 안에는 착함만 들어 있는 것이 아니었다. 모두를 통제할 수 있다는 통제 환상, 모든 것을 내가 감당할 수 있다는 잘못된 믿음도 함께 들어 있었다. 언뜻 보기엔 굉장히 선하고 착해 보이는 선택이다. 그러나 이 선택이 쌍방 모두의 어떤 욕구를 충족시키는 방식으로 작동한다는 사실은 처음엔 이해하기 어려웠다. 이 선택은 일방적인 희생이 아니라, 관계를 유지시키는 구조이기도 했다. 어린 시절부터 내가 맡아온 역할을 그대로 수행하고 감당했을 뿐인데, 그 안에 선함 외에도 욕구 충족을 위한 자발적 선택이 들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일은 꽤 어려웠다. 물론 바탕에 선함이 있었다는 사실은 인정한다. 나 역시 대부분 희생자 역할을 직접 선택하거나 선택당했을 때, 나 하나만 참으면 된다는 마음이었기 때문이다.


모든 상황을 나를 아프게 한 상대방에게만 돌리며 끝냈다면 오히려 편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아마 희생자 역할을 감내해야 했던 스스로를 불쌍하다고 여기며 위로했을 것이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상대방 역시 모든 사람에게 같은 방식으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사람들은 흔히 사람 보고 행동한다고 말하기도 하고, 살인자도 누군가에겐 좋은 아버지일 수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 문장은 시선을 자연스럽게 나에게로 돌아오게 만든다.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마치 내가 엄청난 잘못을 저지른 사람처럼 느껴졌다. 상처 받은 마음 위에 굵은 소금이 한 줌 가득 뿌려진 듯 쓰라렸다. 내가 뭔가 잘못해서 희생자 역할을 선택해 놓고 남 탓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죄책감 때문에 힘들었는데, 더 많은 죄책감이 머리 위로 쏟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경계를 세운다는 것에 대해 쓰기 위해 최근 5년 동안 일어났던 일들을 떠올려봤다. 과거의 일들은 이미 1부와 2부에서 많이 다뤘기 때문에 다시 어린 시절 이야기로 돌아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어린 시절의 경험이 성인기로 어떻게 이어졌는지 충분히 다뤘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근 5년을 기준으로, 내가 경계를 세우지 못했을 때 관계가 어떻게 흘러갔는지를 다시 들여다봤다.


그 경험들을 밟아가며 알게 된 것이 있다. 나는 어떤 상황에서든 경계를 세우기 위해 애써왔지만, 기존에 만들어진 역할극 속에서 내 역할을 깨고 나가는 것을 누구도 바라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더 중요한 사실은, 경계가 없던 어린 시절을 지나 성인이 된 뒤에도 나는 누군가에 의해 소모되는 것이 영광스럽고 기쁜 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어린 시절 역할 속에서 후천적으로 체득한 성격과 성향뿐 아니라, 기독교 세계관 안에서 배운 ‘희생을 통한 기쁨’이라는 환상을 쉽게 놓을 수 없었다. 이 두 가지가 겹치면서, 내가 진지하게 붙잡았던 관계들은 내가 견디지 못하거나 상대방이 견디지 못해 무너졌고, 오히려 가볍게 두려고 했던 관계들이 더 건강하게 흘러가 오늘까지 이어졌다는 것을 알게 됐다. 즉, 이 관계의 결과는 우연이 아니라 선택의 결과였다.


내가 굳이 희생자 역할을 맡으려고 하지 않아도, 아주 자연스럽게 그 역할을 요구하는 상대에게 심취해 따라다녔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일은 꽤 어려웠다. 심지어 그 상대를 내가 골라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상대가 나를 선택했다고 생각했는데, 그것만이 전부가 아니었다. 나 역시 상대를 바라봤고, 적합한 상대를 알아봤기 때문에 그 인연이 시작됐다는 걸 받아들여야 했기 때문이다.


남편이 남자친구였던 시절, 우리는 미래를 약속했기 때문에 서로의 가족을 보여줬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리석은 선택이었다. 그때의 나는 서로의 가족 속에 융합된다는 환상을 품고 있었다. 게다가 남편 쪽 부모님은 뼛속까지 기독교 신앙을 가지신 분들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기대를 많이 했었다. 지나고 보니 서로의 가족에게까지 좋은 사람이 되어야 진정한 가족으로 통합된다는 생각은 환상이었다. 그리고 그 환상은 결국 내가 이루고 싶었던 가족에 대한 환상이었다는 걸 알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다.


매일 혹은 이틀 건너, 그리고 일주일에 한 번은 남편의 어머니를 만나거나 만나야 했다. 어머니가 나를 찾으실 때도 있었고, 찾기 전에 먼저 뵙기도 했다. 그때는 그것이 정말 아름다운 관계라고 생각했다. 그 시간 동안 서로를 더 많이 알게 되고, 더 많이 사랑하게 되며, 진정한 가족이 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그러나 지금 돌아보면, 그 시절이 없었다면 오히려 오늘의 남편 가족과 더 화평하고 건강한 관계를 만들어갈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사회생활에서 겪는다는 번아웃을 나는 가족 번아웃으로 겪었다. 그리고 그 번아웃은 나를 집 안에 가두었다. 지금은 다시 힘이 생겨도 무언가를 시작할 마음과 에너지가 없다. 관계를 시작하기도 전에 지쳐서 몸져눕는다. 나는 왜 이렇게 된 것일까. 마음이 조금 굽어졌을 때는 조금만 쉬면 에너지가 다시 채워졌다. 그래서 회복되면 또 어머니께 가서 원하는 것들을 충분히 해 드릴 수 있었다. 그러나 어머니의 욕구는 채울 수 없는 깨진 항아리 같았고, 그 항아리를 채우느라 내 마음과 몸의 허리가 완전히 부러져 버렸다. 나는 뭘 해도 부족하다는 수치심과 이것도 감당하지 못하느냐는 죄책감, 관계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서 관계를 이어갔다.


굽어지고 펴지기를 반복하다 결국 마음과 영혼이 부러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그 뒤로는 어머니의 고운 말조차 들어올 틈이 사라져 버렸다. 내가 충분히 회복할 수 있는 시간과 스스로를 부양할 수 있는 힘이 있을 때 관계를 깊이 맺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랬다면 내가 정말 이루고 싶었던 가족에 대한 환상을 이룰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이 들 때도 있다. 그러나 이 감정마저 금세 사라진다. 이미 완전히 부러져 버렸기 때문이다. 지금은 과거의 어떤 부분에서 행복했던 기억마저 금세 날카롭고 쇳소리가 가득한 기억으로 덮여버리곤 한다.


어떤 사람들이 인터넷 안에서 나쁜 관계 속에서 탈출하지 못하는 희생자에게 ‘탈출은 지능 순’이라고 비웃는 말을 써 놓은 것을 본 적이 있다. 그 말을 봤을 때 곧바로 반박하지 못했던 건, 어떤 면에서는 정말 내가 지혜롭지 못해서 이런 일을 반복한 건 아닐까 싶었기 때문이다. 공부지능과 지혜 지능이 다르다고 하던데, 공부는 잘했을지 몰라도 관계를 끊어내고 자신을 지키는 지혜는 매우 부족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에 반복적으로 에너지와 시간을 빼앗기고 마음이 부러지다 보면 결국 공부조차 할 수 있는 힘과 시간, 능력이 소진되어 무너진다는 걸 몸으로 배웠다. 한편으론 참 서글픈 일이다. 비슷한 일을 반복하고도 상대방이 바뀔 수 있을 거라고, 나만은 상대방을 바꿀 수 있을 거라고 믿는 것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한다. 어린 시절부터 무능감에 사로잡혀 무엇인가를 통제하고, 또 통제받아야 안전함을 느끼게 된 건 아닌지 말이다. 희생자 역할을 감당하며 자랐던 어른 아이들은 오랫동안 무기력과 무능력이라는 공간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기꺼이 희생자 역할을 선택하기도 한다.


희생자 역할을 선택하면 고통스럽기는 해도 다음에 벌어질 일을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다. 그 예측 가능성은 마치 상황을 통제하고 있다는 듯한 착각을 만들어내고, 그 착각은 안전감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서 희생자의 선택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두려움과 불안에 압도되는 것보다 차라리 고통스럽지만 익숙한 자리를 선택하는 경우가 있다. 그 자리가 안전해서가 아니라, 익숙해서 덜 무섭기 때문이다.


남자친구 집에 어머니께서 불러서 놀러 갔던 때가 생각난다. 한낮이었다. 점심을 먹고 아버님께서 소파에 앉으셨다. 작은 커피잔을 손에 들고 홀짝이시는 아버님의 모습을 한참 바라봤던 기억이 아직도 선연하다. 남편 집에는 집 크기와 어울리지 않는 물소가죽 소파가 있다. 어찌나 크고 웅장하던지, 집 안에 어떻게 들여왔는지조차 의문이 드는 소파다. 혼수로 구입할 때 600만 원 정도 주셨다고 하니, 그 시절의 돈 가치와 지금을 생각하면 상당한 소파라는 걸 알 수 있다. 어머니께서는 내가 결혼하면 말랑하고 부드러운 소파를 사주고 바꿔가라고 하셨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소파를 사지 못했고, 그 물소 소파는 지금도 거실 공간을 크게 차지하고 있다.


20년은 족히 지났는데도 여전히 가죽의 광택과 결이 살아 있는 딱딱한 소파는 거의 앉는 사람이 없다. 대부분은 그 아래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거나 다과를 먹는다. 그래서 그 소파를 가장 자주 사용하는 분은 아버님뿐이었다. 아버님은 식후에 항상 그 소파에 앉아 커피를 드시곤 하셨다. 식탁 의자에 앉아 있다가 소파로 자리를 옮기신 아버님의 뒷모습을 따라 바라보다가, 어머니의 말씀에 얼굴을 돌렸다.


어머니는 일주일 전 아버님의 손에 가시가 박혔는데 아직도 그대로 박힌 채로 다니고 있다고 말씀하셨다. 손가락이 아프다고 하면서도 일주일 내내 그대로 두고 다닌다고, 내가 할 수 있으면 가서 빼 드리라고 하셨다. 병원에 가라고 해도 싫다 하고, 빼보라고 해도 내버려 두라고 하셨다는 말과 함께였다. 나는 아버님 곁에 가서 손을 들여다봤다. 손가락 끝에 하얗게 고름이 가득 차 있는 것을 보고 휴지를 대고 살짝 눌렀다. 그러자 하얀 고름과 함께 가시가 빠져나왔다. 너무 쉽게 빠져나와서 이걸 그대로 가지고 계셨다는 것이 의아할 정도였다. 지금 돌아보면 당시의 아버님은 여러 면에서 무기력 상태에 가까웠던 건 아닐까 싶다. 손톱 밑에 박힌 가시조차 빼지 못할 정도로 우울하셨던 건 아닐까 하고 말이다. 그때는 오랫동안 교직 생활을 하시다 정년퇴임을 하셨던 때였다.


아버님은 평생 교직 생활을 하시다 퇴임하셨고, 교직 생활을 하시면서도 집안일까지 도맡아 하신 분이었다. 그래서 어머니 주변 분들이 어떻게 이런 남편을 만났느냐고 부러워하셨다고 했다. 어머니는 고등학교 졸업 후 잠깐 일본계 회사에서 근무하다 시집을 와 평생 주부로 사셨다. 젊은 시절엔 가녀린 몸에 백합 같은 느낌을 풍기는 아름다운 분이셨다. 그래서 골라서 시집갈 수 있을 정도였다는 이야기를 자주 하셨다. 그러면서도 아버지가 부자일 거라고 생각하고 선택했는데, 와보니 빈 통이었다는 이야기도 자주 하셨다. 그때마다 아버님의 표정이 어두워지는 것을 보며 마음이 쓰였다.


어머니는 매일 새벽부터 밤까지 집안일을 모두 아버지께 맡기셨다. 잠시 쉬시는 것 같으면 소리를 치시며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며 화를 내셨다. 그 모습을 볼 때마다 내가 자라온 가정과는 정반대 같아서 이상하면서도 묘하게 편안함이 느껴졌다. 어린 시절 내가 자랐던 곳은 뼛속까지 가부장이 자리 잡은 곳이라,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서 남성 어른들이 매일같이 소리를 질렀다. 그래서 아버님을 따라다니는 내 시선은 늘 아버님을 안쓰럽게 향해 있었던 것 같다. 아버님은 집안일을 하느라 손을 쉬는 걸 본 적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눈치가 보였다. 아버님께서 집안일을 하실 때, 어머니는 자기처럼 몸이 약한 여자와 결혼하면 평생 남자가 고생한다며 부인을 잘 선택해야 한다고 자랑스럽게 말씀하셨다. 그리고 통통하고 두꺼운 내 손이 일을 많이 할 수 있는 손이라며 참 좋다고도 하셨다. 그러니 일을 잘할 것 같은 내 손과 몸이 쉴 수 있었겠는가.


경계에 대해 생각하자 이 일화가 떠오른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나처럼 경계가 없어야 살아남을 수 있었던 어린 시절을 보낸 아이에게는, 시부모님의 집이 처음에는 너무 익숙하고 편안한 구조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가끔 잘해주시기도 하셨지만, 잘해주는 것과 정서적 학대를 반복하며 내가 그 환경에 완전히 익숙해지기를 바라셨다. 갑자기 하하 호호 웃다가 불같이 화를 내며 소리를 지를 때면 심장이 쿵 떨어지는 것 같았다. 그것이 몇 분, 몇 시간 단위로 반복되곤 했는데 처음에는 정말 이해할 수 없었다. 어머니는 마음껏 화를 다 내신 뒤에는 자신은 뒤끝이 없다며 다시 하하 호호 웃으셨다. 그 모습이 생경했다. 그러면서 시누이 언니와 함께 “이제 이런 상황이 너도 익숙해졌구나. 다행이다.”라며 아무렇지 않아하는 내 모습을 칭찬하셨다. 그 칭찬에 오히려 내 마음은 더 깊은 곳까지 무너져 내렸다.


아무렇지 않은 척 하는 가면을 쓰는 것이 익숙했던 환경에서 자라다 겨우 그 가면을 벗었는데, 다시 가면을 쓰라고 명령하는 집안에 내 발로 기어들어간 꼴이었다. 내 마음이 완전히 망가지기 전 어머니는 맛있는 음식을 해 주시거나, 안아보자며 원치 않게 안아주셨는데 그때마다 내 마음은 천 갈래 만 갈래 찢겨져 나가는 것 같았다. 왜냐하면 어린 시절의 기억을 그대로 떠올리게 했기 때문이다. 일종의 보상처럼 작동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 보상에 익숙해지고 중독되면 희생자는 빠져나오기 어려운 구조 안에 갇히게 된다. 그 안에서 살아남으려고 발버둥치지만 쉽게 벗어날 수 없다. 결국 무기력해지고, 심하면 생존 자체를 포기하게 되는 상태에까지 이르기도 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무서운 일이다. 왜냐하면 당시 나 역시 무기력증을 겪다가, 다음 날이면 천국에서 눈을 뜨길 간절히 기도하곤 했기 때문이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구조를 간헐적 강화라고 설명한다. 늘 안정적으로 잘해주는 관계보다, 상처를 주다가도 가끔 따뜻함을 주는 관계가 사람을 더 오래 붙잡아 두기 때문이다.


무기력 상태에 가까웠던 아버님은 어느 순간부터 어머니와의 싸움에 자연스럽게 나를 끌어들이셨다. 어머니를 직접 탓하기에는 어머니를 잃을 수 있다는 부담이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젊은 시절이나 나이든 때나 어머니는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 있는 분이셨고, 그 점이 아버님을 늘 불안하게 만들었던 것 같다. 그 불안한 눈빛과 감정이 때로는 내 마음 안으로 들어와 나까지 불안에 잠기게 했다. 그래서 어쩌면 내가 더 잘하면 그들을 평화롭고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나이가 들어 더 이상 몸이 잘 움직이지 않으시니 내가 조금 더 움직여 도와드려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 어느 순간부터 내 역할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아버님은 물소 소파에 앉아 커피를 홀짝이며 말씀하셨다.


“집에 여자가 셋이나 있는데 남자가 움직여야 해?”


당당한 그 말이 너무 당연하게 들려서, 나도 모르게 주방에 들어가 요리를 하고 식탁을 치우고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 심지어 그때 나는 그들에게 있어 언제든 대체될 수 있는 여자친구일 뿐이라는 사실조차 제대로 보지 못했다. 남편은 나를 어머니로부터 떼어놓으려고 노력했다. 화를 내 보기도 하고, 어머니를 설득해 보기도 하고, 나를 말리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자석처럼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어머니 곁에 서 있었다. 게다가 남편의 공부할 시간까지 빼앗아 어머니의 여행과 소풍을 위한 옷과 장신구를 사러 번화가에 가곤 했다. 그렇게 무기력과 우울에 잠겨 있던 내가 남편까지 같은 상태로 끌어들이고 있었다.


희생자 역할을 감당하면서 그 역할에 심취하고 몰입했던 것은, 내 내면의 두려움과 불안을 지우기 위한 선택이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오늘에 와서야 그 시간들이 과거의 역할에서 완전히 벗어나기 위한 마지막 과정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의 나는 더 이상 비슷한 상황과 비슷한 관계 속에 나를 세워두지 않는다.


며칠 전 5년 넘게 연락이 끊어졌던 친구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만나자고, 이번 주 언제가 좋으냐고. 차를 마시고 밥을 먹자는 그 연락을 보자마자 피로감이 먼저 밀려왔다. 나는 가볍게 인사를 건네고, 요즘 너무 피곤해서 다음에 보자고 했다. 다음이 언제냐는 말이 나오기 전에 내가 연락하겠다는 말로 대화를 마무리했다. 관계를 시작하기 전부터 피로감이 몰려오고, 그 자체로 스트레스를 받는 내 모습을 보며 서글픈 마음이 들었다. 언제부터 나는 관계에 피로를 느끼게 된 걸까. 반복해서 벗어나려 해도 달라지지 않는 경험은 사람 안에 학습된 무기력을 만든다. 그래서 나중에는 나갈 수 있는 문이 보여도, 몸과 마음이 먼저 지쳐 주저앉게 된다.


경계는 한 번에 무너지지 않는다. 도미노처럼 천천히, 하나씩 넘어간다. 경계가 없었던 사람의 경우, 상대는 어디까지 허용되는지 확인하듯 지하를 파고들듯 경계를 무너뜨린다. 상대의 감정을 존중한다며 했던 작은 행동들은 어느 순간 내 경계를 함부로 해도 된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나는 그것이 배려라고 믿고 있었다. 오히려 내가 내 경계를 먼저 존중하면서 상대의 경계를 존중했다면, 관계의 방향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경계를 지킨다는 것은 단순히 선을 긋는 것이 아니라, 관계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를 결정하는 기준이 된다.


많은 사람들은 어린 시절부터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나를 기준으로 삼는 법’을 배우지 못한 채 자란다. 상대의 반응에 흔들리지 않으면서도, 나와 상대를 함께 이롭게 하는 관계를 만들 수 있다는 가능성 자체를 배우지 못한 채 살아온 것이다. 그래서 관계는 늘 상대 중심으로 기울어졌다.


경계에 대해 생각하면서 처음부터 시부모님이 나를 함부로 대했던 건 아니었다는 사실도 깨닫게 됐다. 처음 뵀던 아버님은 예수님처럼 은혜로운 분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를 낳아주신 친부와 정서적 상처가 비슷함에도 불구하고, 종교 안에서 진짜 길을 찾은 분 같았고, 저 사람이 내 아빠였으면 좋겠다는 마음까지 들었다.


이 생각은 몇 년 전 시누이 언니가 결혼한 뒤부터 시작됐다. 언니의 남편 분은 거의 매일 시부모님과 부대끼며 살아가는데도 나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관계가 흘러가고 있었다. 어머님은 가끔 남편에게 언니의 남편이 무서운 구석이 있다는 이야기를 하곤 하셨다고 했다. 나는 그분이 경계를 지키면서도 타인을 사랑하는 방법을 아는 사람이라고 느꼈다. 그래서인지 서로의 경계를 지키면서도 관계를 조화롭게 이뤄나가는 모습을 보며 참 대단하고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경계를 지키는 사람은 관계를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의 균형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언니 내외에게는 하지 못하는 요구를 어머니는 내게는 너무 쉽게 꺼낼 수 있었던 것도, 결국 내가 내 경계를 지키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언제든지 떠날 준비가 되어 있는 상대와, 언제든지 용서하고 같은 역할을 반복해서 감당할 것처럼 보이는 나는 완전히 다른 자리에 놓여 있었다.


천천히 허물어진 그 경계는 사실 내가 세웠어야 했던 것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나를 기준으로 나를 돌보면서 상대를 돌보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무조건 상대의 마음을 위해 기꺼이 내 감정을 버릴 준비가 되어 있었다. 결국 내가 나를 보호하지 않은 선택은 상대로 하여금 나를 함부로 대해도 상관없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지게 됐다. 경계는 관계를 끊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를 무너지지 않게 하기 위해 존재한다.


그래서 지금의 나는 누군가가 자신의 감정을 풀어내기 위해 내 경계를 넘는 것을 더 이상 가만히 두지 않는다. 나를 지키지 않는 사랑은 결국 관계를 지키지 못한다. 만약 처음 내 경계를 부수고 들어온 그 순간 상을 엎고 집 밖으로 나와 돌아가지 않았다면 오늘의 관계는 반드시 달라졌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여기서 분명히 말하고 싶은 것이 있다. 상대의 침범과 폭력은 전적으로 상대의 책임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그 문을 반복해서 열어주고 다시 그 자리로 걸어 들어간 선택은 내가 돌아봐야 할 몫이다. 이 문장을 받아들이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반복해서 닫아야 했을 문을 열고, 다시 내 발로 들어갔던 시간을 지금도 후회한다.


만약 매일 맞고 사는 여인이 있다면 다음 날 아무리 꽃을 사 주고 잘못을 빌고 눈물을 흘리며 참회하더라도 반드시 문을 박차고 나와야 한다. 벌어 먹일 아이들이 있다고 하더라도, 아이들을 위해 참는다가 아니라 아이들을 위해 그 관계는 반드시 끊어내야 한다. 일할 곳이 없어 식당에서 설거지밖에 할 수 없더라도, 그 선택이 오히려 더 나은 선택일 수 있다. 왜냐하면 자신의 경계를 지키지 못해 결국 많은 사람들을 아프게 한 친부의 모습을 곁에서 보았기 때문이다. 매일같이 살림을 부수고 술을 마시고 새어머니를 때렸던 친부는 당시 돈을 매우 잘 버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난동을 부린 다음 날이면 언제 그랬냐는 듯 동그랗고 예쁜 눈을 반짝이며 새어머니에게 손이 발이 되도록 빌었다. 그리고 반복된 용서는 다음에도 그렇게 해도 된다는 신호가 되었다.


안타깝게도 새어머니는 몸과 마음이 무너질 만큼 큰 피해를 입었다. 새어머니가 동생을 처음부터 때린 것이 아니었다는 건 내 기억 속에 아주 선명하게 남아 있다. 처음 새어머니가 내게 인사를 했을 때만 해도 정말 좋은 사람이었다. 내게도 잘해주고 싶어 했고, 동생에게도 좋은 엄마가 되어주고 싶어 했다. 그러나 자신을 지키지 못하고 스스로를 무너뜨리는 선택을 반복하자, 결국 자신의 아이들과 동생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기게 되었다.


만약 새어머니가 돈을 잘 버는 친부를 버리고 아이들을 데리고 그 집을 나왔다면, 어쩌면 더 많은 것을 지켜낸 삶이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매일같이 맞는 것보다, 돈을 벌며 고된 일을 하는 삶이 더 나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다. 그리고 안타깝지만 친부 같은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 돈을 모두 가져가버린 새어머니에 대해 이야기하던 친부에게, 나는 그것을 위자료라고 생각하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리고 왜 그렇게 때렸냐고 묻자, 친부는 아주 태연하게 맞을 만해서라고 대답했다.


그러니 결국 그는 반복해서 시험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디까지 해도 되는지, 누구에게 그렇게 해도 되는지를. 그리고 자신을 가장 오래 받아줄 사람을 골라, 그 사람을 가장 오래 아프게 했다. 그 사실을 뒤늦게야 분명히 이해하게 됐다.


경계를 지킨다는 것은 스스로의 몸과 마음을 가장 먼저 지킨다는 말이다. 더 나아가 결국에는 내 주변의 관계까지 지키는 일이 된다는 사실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내가 무너지면 나 혼자만 무너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관계를 시작하고 이어갈 때도, 반드시 나를 기준으로 관계의 기준과 방향을 세워야 한다. 그래야 우리는 나와 나의 소중한 관계를 함께 지켜낼 수 있는 가족, 친구, 연인, 동료 관계를 만들어갈 수 있다.


경계는 관계를 끊는 기술이 아니다. 내가 더 이상 함부로 소모되지 않겠다고 스스로 정하는 기준이다. 그리고 그 기준이 있어야 사랑도 희생이 아니라 선택이 된다. 또한 경계를 지킨다는 것은 내 경계만 주장하는 일이 아니라, 타인의 경계 역시 침범하지 않는 태도까지 포함한다. 자신의 경계를 건강하게 지킬 줄 아는 사람은, 타인의 경계도 쉽게 넘지 않는다.



3부 2. (2) 경계를 세운다는 것의 의미

참고 자료


1. Cloud, Henry & Townsend, John, Boundaries, Zondervan, 1992

2. Beattie, Melody, Codependent No More, Hazelden, 1986

3. Maier, S. F. & Seligman, M. E. P., “Learned Helplessness: Theory and Evidence”, Journal of Experimental Psychology: General, 1976

4. Ferster, C. B. & Skinner, B. F., Schedules of Reinforcement, Appleton-Century-Crofts, 1957



목차


용서하지 않아도 괜찮아


부제: 코디펜던트 가족 탈출기


프롤로그



‘상처’에서 ‘자유’로, ‘의무’에서 ‘선택’으로 나아간 김희경 작가의 신작.

가족이라는 감정적 언어 속에서 길을 잃었던 한 개인이 자아와 회복을 향해 걸어온 심리적 여정.



1부.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숨겨진 상처들

가족 체계 속 얽힘과 감정의 왜곡, 그 심리적 메커니즘을 들여다보기


1. 가족이라는 이름의 상처

혈연이라는 이름이 만든 구조적 폭력


(1) 가족이라는 말에 심장이 내려앉을 때

(2) 가장 아름다웠던 날, 가장 잔인한 기억

(3) 생애 첫 기억 속 무가치함의 내면화 시작

(4) 침묵하지 않는다는 것


2. 가족이라고 상처를 허락하지 마라

가족이라는 이유로 참아야 한다는 믿음의 해체


(1) 몇 년 전, 돌아가신 할아버지

- 기억 속에 남은 마지막 장면들

(2) 유일한 내 편이면서, 동시에 나를 파괴한 사람

(3) 누가 나를 구원해 줄까

(4)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손조차 잡을 수 없었다


3. 가족 내에 형성된 내 역할을 점검하라

역할고착(Role entrapment)과

삼각관계(Triangulation)


(1) 역할 고착과 삼각관계, 그리고 세습되는 역할

(2) 아이로 태어나 희생자가 되기까지

(3) 희생양이 된 아이, 성인이

되어서까지 희생양을 자처하다

(4) 희생자 가족 재판에 서다

(5) 반복되는 구조, 멈출 수 있는 용기


-추가 : 가족 속에서 반복되는 심리 구조 6가지


4. 불쌍하지 않은 걸 불쌍하다고 말하지 마라

감정의 무효화(Emotional invalidation)와

2차 피해


(1) 기억 속 어머니의 따뜻한 도시락과

차가운 뒷모습

(2) 감정의 무효화와 2차 피해

: 이중의 상처

(3) 가사노동의 굴레 안에서 사라진 존재들

(4) 반복 강박 속에서 깨달은 진짜 감정

(5) 엄마가 너무 불쌍하잖아.

그러니까 네가 챙겨야지

(6) 타인의 불쌍함은 타인의 몫이고,

내 감정을 지키는 건

내 몫이고 나의 책임이다.


5. 사랑이라는 말의 함정에 주의하라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가해지는 통제의 언어


(1)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상처의 유산

(2) 사랑이라는 말의 함정

(3) 왜곡된 사랑과 고통의 반복

(4) 성공을 바란다며 발목을 잡는 사랑

(5) 왜곡된 사랑과 경계의 설정

(6) 자기 사랑의 회복과 치유의 여정


-추가 : 알고 가기


6. 용서하지 않아도 괜찮아

연민은 선택이지만,

용서는 강요가 아니다


(1) 아이가 성장하는 것을 바라지 않는 부모들

(2) 단돈 천원도 못 벌어오는

너는 불필요한 존재야

(3) 나중에 나랑 시골에 집 지어서 같이 살자

(4) 여행이 싫은 이유

(5) 용서하지 않아도 괜찮아


2부. 나의 진짜 신념을 세우기 위해 – 경계 짓기와 믿음 바로잡기

나의 핵심신념이 무엇인지 파악하라.

나를 보호하기 위해 내가 만들어낸 생존의 신념들을 찾고 부수기



1. 나는 사랑받기 위해 희생해야 한다.


(1) 나는 사랑받기 위해 희생해야 한다.라는 신념

(2) 나를 보호하기 위해 내가 만들어낸 생존의 신념들

(3) 나는 사랑받기 위해 희생해야 한다. - 공의존, 반복강박

(4) 어쩔 수 없었던 일이었으니, 네가 이해해야 해라는 말의 함정


- 1. (1) 추가 :


(1) [불행은 어떻게 질병으로 이어지는가

/ 네이딘 버크 해리스 지음

/ 심심 출판사]

책 내용 중 ACE 항목을 가져왔습니다.

(2) ACE 점수에 따른 건강

리스크 해석 (Nadine Burke Harris 정리 기준)


2. 내 감정은 타인의 감정보다 중요하지 않다.

감정보다 의무가 우선이다.


(1) 벌써 마흔

(2) 충전되지 않는 삶, 회피에서 글쓰기로

(3) 진실이 드러나는 순간

(4) 네 감정은 아무것도 아니야

(5) 내 감정은 그 누구의 감정보다 중요하다


3. 나는 무언가 부족한 사람이다.


(1) 누구나 마음에 유리조각 하나를 품고 산다

(2) 속옷 속에 숨겨진 이야기

(3) 타인을 완벽하게 만들어주고 싶다는 마음

(4) 거짓 행복에 매달리지 않겠다는 다짐


4. 내가 무너지면 모두가 무너진다.

나는 중재자이자 책임자여야 한다.


(1) 어린 시절의 상처가 30%만 영향을 준다고?

(2) 당신이 해결하지 않은 과거는

당신이 모르는 사이에 다시 반복된다

(3) 파랑새를 만난 줄 알았다.

- 안전기지의 환상, 반복된 구원의 시도

(4) 여우를 피해 갔더니 호랑이를 만났다

(5) 인정받고 싶은 욕구에 내가 잠식되어 갔다

(6) 무기력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7) 효도라는 이름으로 나는 나를 잃었다

(8) 우리는 서로의 부모가 되어주었다

(9) 더 이상 나를 구해줄 사람을

기다리지 않겠다


5. 진짜 나를 보여주면 버림받는다.

있는 그대로의 나는 사랑받을 수 없다.


(1) 어른이 되었어도 일부 미성숙한 사람들

(2) 내가 나라서 버림받았다고 생각하게 되기까지

(3) 네가 너라서, 딸이라서 버려진 거야

(4) 이랬다가 저랬다가

(5) 나라는 사람 그대로 수용받을 수

없을 것이라는 믿음

(6) 스스로를 지킬 힘이 없고,

지켜야 한다는 인식이 없을 때

일어나는 일들

(7) 처음으로 나를 위해 경계를 세우다

(8) 진짜 나를 보여주면 버리는 사람들이라면

나도 필요 없다


- 추가 :


(1) 엠패스 테스트

(2) HSP 테스트

(3) GHATGPT

심층리처시를 활용한 HSP,

엠패스, 초예민자에 대한

심리학적, 정신분석학적 통합 보고서


6. 내가 잘해야만 관계가 유지된다.

내가 못하면 사랑은 끊긴다.


(1) 너를 버릴 수도 있어

(2) 사랑하고 싶지만 사랑하고 싶지 않은

그대를 사랑해야 할 때

(3) 내 냉장고 열어봐 봐

(4) 내가 잘해야만 관계가 유지될까

(5) 내 마음을 지켜낼 수 있는

유일한 존재는 나뿐이다


7. 나는 끝까지 견뎌야 한다. 참는 것이 미덕이다.


(1) 저 감은 시어서 못 먹을 거야

(2) 나는 끝까지 견뎌야 한다.

참는 것이 미덕이다

(3) 누더기를 걸친 마음

(4) 가면 속에 감춘 마음

(5) 더 이상 견디지 않아도 괜찮아


8. 내가 선택받지 못한 건 내 탓이다.


(1) 상처의 대물림

(2) 양가적인 감정 안에서

누군가를 선택해야 할 때

(3) 아직도 매일 꿈속에서 살아

숨 쉬는 언니에게

(4) 나는 더 이상 내가 나인 것이 아프지 않아


9. 나는 언제든 내 것을 빼앗길 수 있고,

내 마음과 몸을 돌볼 자격이 없다.

나를 먼저 챙기는 것은 이기적이다.


(1) 붉은 손톱

(2) 너를 통해 나를 봤다

(3) 타인의 과제를 타인에게 돌려주는 연습

(4) 나를 먼저 챙기는 것이 타인을 돕는 것이다


10. 내 감정을 드러내면 벌을 받고,

내 고통과 말을 아무도 믿어주지 않을 것이다.


(1) 영웅의 서사인가, 신의 은총인가

(2) 고통스러웠던 20대

(3) 도망가느라 바빴던 30대

(4) 내 생각과 마음이 가장 중요해


3부. 새로운 가족의 의미와 용서의 속도

가족을 선택할 수 있다는 전제를 받아들이기까지의 시간


1. 가족은 모두에게 따뜻한 단어가 아닐 수 있다


(1) 가족 신화와 현실 사이

(2) '가족'이라서 참아야 했던 순간들

(3) 이상화된 가족 상(像)이 주는 심리적 함정

(4) 가족의 언어 속에서 탈출하기


2. 구 가족과 신 가족을 구분하라


(1) 원가족과 선택 가족의 차이

(2) 경계를 세운다는 것의 의미

(3) 배우자의 원가족과의 관계

: ‘우리’와 ‘그들’의 구분

(4) 혈연이 아닌 유대로 맺는 가족의 힘


3. 자녀는 부모가 선택해서 태어난 가족이다


(1) 돌봄은 책임, 효도는 선택

(2) 불효라는 낙인이 만든 죄책감

(3) 부모의 한계와 자녀의 권리

(4) ‘돌봄의 책임’을 바로 세우기


4. 타인의 시선에 갇힌 나를 구하라


(1) 사회적 자아와 진짜 자아

(2) ‘좋은 딸’, ‘좋은 아내’라는 가면

(3) 인정 욕구와 수치심의 굴레

(4) 타인의 지옥을 내 삶에 끌어들이지 않기

타인의 지옥, 나의 지옥 각자가 걸어갈 길


5. 돕고 싶다면 나를 먼저 도와라


(1) 자기 돌봄은 이기심이 아니다

(2) 심리적 경계와 윤리적 선택

(3) 먼저 나를 구해야 남도 구할 수 있다

(4) 가장 먼저 용서해야 할 대상은 자기 자신

스스로를 연민하지 말 것


4부. 실천챕터


1. 삶이 어려울수록 글을 써라.

기록은 치유의 시작이며,

내면의 감정을 안전하게 꺼내는 방법이다


(1) 감정을 언어화하는 힘

: 글쓰기로 마음의 무게 내려놓기

(2) 하루 10분 글쓰기

: 짧아도 꾸준히, 무엇을 써도 괜찮아

(3) 나만의 안전한 글쓰기 공간 만들기

(4) 쓰기를 통한 내 안의 목소리 발견

(5) 기록이 가져다준 회복의 흔적과 증거 쌓기


2. 나만의 스트레스 해소법 찾기

감정적 회복탄력성을 기르기 위한

구체적 실천 가이드

문화, 예술, 취미, 레저의 유익


(1) 몸과 마음을 풀어주는

작은 실천 만들기

(2) 요리가 즐거워

- 만들고, 먹고, 먹이고

(3) 액세서리를 만들면서 발견한

내 안의 욕구

(4) 식물 속에서 발견한 인생

(5) 작은 소모임 또는 혼자 놀기

(6) 세상과 소통을 멈추지 않기


3. 작은 성취라도 내 노력으로 획득할 것

작은 성취를 통해 내면에 영양제 먹이기


(1) 작은 성취로 자기 효능감 회복하기

(2) 성취를 기록하고 스스로 칭찬하기

(3) 내가 가장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가는 연습

(4) 노력의 과정 자체를 존중하는 태도와 연습

(5) 스스로를 힘들게 하지 않는 방법을 배우기


4. 스스로에게 행복과 자유를 허락하라


(1) 자기 연민과 자기 인정의 차이

(2) 행복을 선택할 권리

(3) 용서는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4) 가장 마지막에 도달하는 회복의 단계,

그 속도는 온전히 나의 것


에필로그


가족을 다시 정의하는 것에서 치유가 시작된다.

사랑의 이름 아래 스스로를 잃어갔던 시간을 넘어,

이제 나를 회복하는 길


참고자료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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