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하지 않아도 괜찮아 / 3부 2. (3) 배우자

3부 2. (3) 배우자의 원 가족과의 관계

by 김희경 작가



3부 2. 구 가족과 신 가족을 구분하라 (3) 배우자와 원 가족과의 관계


이 책은 저자의 개인적 경험과 감정, 그리고 그로부터 얻은 심리적 통찰을 바탕으로 구성된 에세이입니다. 등장하는 인물은 모두 사생활 보호를 위해 가명으로 처리되었으며, 실제 인물과 일치하지 않습니다. 본문은 사실을 단정하거나 특정 개인, 단체를 지칭, 비난하려는 목적이 아닙니다(없습니다.). 인물, 장소, 관계, 시점, 상황의 일부는 가명, 합성, 변형되었으며, 식별 가능한 세부 사항은 변경되었습니다. 유사성이 있더라도 이는 순전히 우연입니다.


저자는 타인의 명예나 사생활을 침해할 의도가 없으며, 본문의 해석은 저자의 주관적 성찰임을 밝힙니다. 이 책은 유사한 경험을 지닌 독자에게 위로와 통찰을 전하기 위한 진솔한 기록입니다. 본문에는 가족 내 학대와 상실 등 트라우마를 환기할 수 있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글을 읽으실 때 스스로의 마음을 가장 우선하시고, 불편함이 느껴지면 언제든 읽기를 멈추셔도 괜찮습니다.


저자는 이 글을 통해 과거를 고발하려는 것이 아니라, 비슷한 경험을 한 이들에게 공감과 회복의 메시지를 전하고자 합니다. 이 책은 특정 인물이나 집단을 비방하거나 공격하려는 목적이 아닌, 개인의 성장과 치유의 여정을 기록하고자 한 성찰의 결과물입니다. 이 기록이 비슷한 경험을 가진 누군가에게 살아갈 용기와 희망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3부. 새로운 가족의 의미와 용서의 속도


- 가족을 선택할 수 있다는 전제를 받아들이기까지의 시간


2. 구 가족과 신 가족을 구분하라

2. 구 가족과 신 가족을 구분하라


(1) 원가족과 선택 가족의 차이

(2) 경계를 세운다는 것의 의미

(3) 배우자의 원가족과의 관계

: ‘우리’와 ‘그들’의 구분

(4) 혈연이 아닌 유대로 맺는 가족의 힘





ggll.jpg.png AI 제작

이 책은 저자의 개인적 경험과 감정, 그리고 그로부터 얻은 심리적 통찰을 바탕으로 구성된 에세이입니다. 등장하는 인물은 모두 사생활 보호를 위해 가명으로 처리되었으며, 실제 인물과 일치하지 않습니다. 본문은 사실을 단정하거나 특정 개인, 단체를 지칭, 비난하려는 목적이 아닙니다(없습니다.). 인물, 장소, 관계, 시점, 상황의 일부는 가명, 합성, 변형되었으며, 식별 가능한 세부 사항은 변경되었습니다. 유사성이 있더라도 이는 순전히 우연입니다.


저자는 타인의 명예나 사생활을 침해할 의도가 없으며, 본문의 해석은 저자의 주관적 성찰임을 밝힙니다. 이 책은 유사한 경험을 지닌 독자에게 위로와 통찰을 전하기 위한 진솔한 기록입니다. 본문에는 가족 내 학대와 상실 등 트라우마를 환기할 수 있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글을 읽으실 때 스스로의 마음을 가장 우선하시고, 불편함이 느껴지면 언제든 읽기를 멈추셔도 괜찮습니다.


저자는 이 글을 통해 과거를 고발하려는 것이 아니라, 비슷한 경험을 한 이들에게 공감과 회복의 메시지를 전하고자 합니다. 이 책은 특정 인물이나 집단을 비방하거나 공격하려는 목적이 아닌, 개인의 성장과 치유의 여정을 기록하고자 한 성찰의 결과물입니다. 이 기록이 비슷한 경험을 가진 누군가에게 살아갈 용기와 희망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3부. 새로운 가족의 의미와 용서의 속도


- 가족을 선택할 수 있다는 전제를 받아들이기까지의 시간


1. 구 가족과 신 가족을 구분하라


(3) 배우자의 원가족과의 관계 : ‘우리’와 ‘그들’의 구분


개인의 경계 문제는 더 이상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다. 경계는 가까운 관계에서 시작해 가장 멀게 느껴지는 관계까지 동일한 방식으로 반복되기 때문이다. 내가 내 경계를 명확히 세우지 못하면, 상대는 어디까지 들어와도 되는지 확인하듯 점점 더 깊이 침범해 들어온다. 그 과정은 대부분 눈에 띄지 않게 시작되지만, 어느 순간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까지 관계를 허용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특히 이 문제는 결혼이라는 관계 안에서 훨씬 더 복잡한 형태로 드러난다. 결혼은 두 사람의 만남이지만 동시에 두 가족 체계의 접촉이기 때문이다. 결혼은 기존 가족과 융합되는 과정이 아니라, 새로운 경계를 세워 독립된 하나의 체계를 만드는 과정이다. 그러나 이 경계가 분명하지 않을 경우, 개인의 문제로 보였던 경계의 균열은 배우자와 원 가족 사이에서 반복되고 확대된다.


2022년 9월 30일 오후 2시 4분. 그날의 날짜와 시간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다. 그날 내가 읽고 있던 책과 그 책에서 다루고 있던 내용까지 함께 떠오른다. 나는 그때 <아직도 사랑이라고 생각해? / 썸머 지음 / 스타라잇 출판사>라는 책을 읽으며 필사를 하고 있었고, 하필이면 ‘심리적 조종자’와 ‘플라잉 몽키’에 대한 부분을 옮겨 적고 있었다. 그리고 그날 오후 시누이 언니가 우리 집에 도착했다.


지금 돌아보면 이 장면은 단순한 만남의 요청이 아니었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상황을 ‘삼각관계(triangulation)’라고 설명한다. 두 사람 사이의 긴장이나 갈등이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제삼자를 끌어들여 관계의 균형을 유지하려는 방식이다. 이 구조 안에서 제삼자는 중재자가 아니라, 관계를 유지시키기 위해 소모되는 위치에 놓이게 된다. 그리고 그 역할을 과거의 나는 아주 익숙하게 받아들이고 당연한 거라고 생각했다.


언니가 찾아온 날은 시어머니가 소리를 지르고 돌아간 이후 몇 달이 지난 시점이었다. 그 이후 나는 남편의 원 가족과 연락과 만남을 모두 끊은 상태였다. 언니가 다시 나를 찾아온 그날 아침부터 내 몸은 불규칙한 두근거림으로 반응을 시작했다. 아침부터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고, 그 불안한 감정을 붙잡기 위해 책을 붙들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분홍빛이 있는 밝고 상큼한 느낌의 원피스를 입은 언니가 초인종을 눌렀다. 대문 밖을 비춰주는 화면에서 언니의 모습이 보였다. 문을 열었다. 계단을 올라오는 언니의 발걸음 소리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나를 보자 화사하게 웃으며 인사를 건네는 언니의 목소리가 탁 터지는 사이다처럼 청량했다. 오랜만에 만나는 외부 사람이었다. 분명 반가운 만남의 순간이었지만, 동시에 설명하기 어려운 긴장이 함께 올라오는 순간이기도 했다.


초인종이 울렸을 때, 나는 몸이 굳어 있었다. 누구인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문을 열기 전부터 숨이 얕아졌고, 괜히 집 안을 한 번 더 둘러보게 됐다. 아무 문제도 없는데도 마치 내가 뭔가를 잘못한 사람처럼 스스로를 점검했다. 이 반응은 낯선 상황에서의 긴장이 아니라, 익숙한 관계에서 반복되던 심리적 패턴에 가까웠다. 상대를 맞이하기 전부터 이미 조심해야 하는 위치에 자신을 놓는 반응이었다.


문을 열자 언니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들어왔다. 오랜만에 만난 사람의 표정이라기보다는, 언제든 들어올 수 있는 공간에 들어오는 사람의 태도에 가까웠다. 그 모습이 낯설면서도, 이상하게 낯설지 않았다. 그 순간 이유를 설명하지 못했지만, 이 관계 안에서 경계가 흐려져 있다는 감각을 몸은 먼저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 흐름을 끊지 못하고 그대로 받아들였다.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지에 대한 기준이 없었고, 경계가 설정되지 않은 상태였다. 이런 상태에서는 관계가 선택이 아니라 반응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그 반응은 대부분 과거에 학습된 방식대로 반복된다. 돌이켜보면 나는 그날 언니를 맞이한 것이 아니라, 이미 내 안에 자리 잡고 있던 관계의 방식을 그대로 다시 살아내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집 거실에는 식탁 겸 책상으로 쓰고 있는 세라믹 식탁이 있다. 언니와 마주한 상태로 식탁에 앉았다. 내가 앉아있는 식탁 위에 방금 전까지 쓰던 공책과 필사 중인 책이 펼쳐져 있었다. 나는 언니가 온 시간과 언니와 함께 있다는 문구를 공책에 적어 넣었다. 언니에게 차와 다과를 주고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다소 차림이 불편해 보이는 언니를 위해 입으려고 구입했던 잠옷을 비닐에서 꺼내 갈아입으라고 내어줬다. 나는 언제나 그랬듯 상대가 편안해질 수 있도록 먼저 움직였다. 그리고 그 잠옷은 갈 때 선물로 드렸다.


편안한 옷으로 갈아입은 언니와 오후 시간을 함께 보냈다. 언니와 비슷한 시간을 과거에 많이 가졌었기 때문에 언니와의 시간은 공기를 들이마시는 것처럼 편안했다. 언니에게는 느슨하면서 편안한 클래식 음악이 흐르는 느낌의 분위기가 있다. 그래서 음악이 없어도 느슨하면서 편안한 오후 시간을 나른하게 함께 보냈다. 언니는 언니가 가져온 책을 읽으면서 공책에 글을 적기 시작했고, 나는 읽던 책을 읽으면서 공책에 필사하기 시작했다. 이 시점에 얼마나 글을 많이 남겼는지 지난 5년이 생각나지 않으면 5년 동안 썼던 일기들을 들춰보면 된다. 이 글도 과거 일기장들을 열어놓고 쓰는 중이다. 기록의 중요성을 정말 매일 실감한다. 그날의 장면이 이렇게까지 또렷하게 남아 있는 것도, 그때의 감정이 단순한 일상이 아니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 같다.


언니가 말했다.


“인터넷에 글을 적고 있던데. 글을 왜 적는 거야?”


겉으로 보면 단순한 질문이었지만, 그 말이 가볍게 들리지 않았다. 언니의 물음에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한참 망설였다.


“그냥 적는 거죠.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나는 나를 설명하기보다는, 상황을 무난하게 넘기기 위한 대답을 선택했다. 언니의 물음이 꽤 유쾌하지 않게 들렸다. 그리고 이어지는 물음.


“엄마가 너를 참 좋아해. 요즘 만난 지 오래됐잖아. 항상 네 이야기를 하고 그래. 엄마는 나보다 너를 더 좋아해.”


그 말은 단순한 전달이 아니라, 관계를 다시 연결하려는 방식으로 들렸다. 감정을 앞세워 거리를 좁히려는 말이었다. 이 날따라 언니의 말이 불쾌하게 느껴졌다. 하필 책의 플라잉 몽키 부분과 심리 조정자 부분을 다룬 내용을 필사하던 때였기 때문이다. 언니가 한 말을 한참 곱씹었다. 그 말이 단순한 대화가 아니라는 걸, 나는 이미 알고 있었던 것 같았다.


“어머니를 보고 싶지 않아요. 어머니는 나를 좋아한다고 하면서도 항상 아프게만 하는걸요.”


그 말은 처음으로 내 경계를 분명하게 드러낸 문장이었다.


“나도 엄마가 문제가 있다는 건 알아. 근데 엄마가 지금 바뀌면 많이 아프실 것 같아서.. 엄마가 사시면 얼마나 사시겠어.”


그 말은 이해를 가장한 설득이었고, 동시에 죄책감을 불러오는 방식으로 작용했다. 언니의 말에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망설였다. 가슴이 타는 듯 통증이 느껴졌다. 내 감정보다 상대의 상황과 감정을 먼저 고려해야 한다는 익숙한 반응이 올라오고 있었다.


“어머니가 저보다 오래 사실 것 같은데요.”


나는 순간적으로 나를 지키는 방향의 말을 꺼냈다. 이 말을 하자 언니의 표정이 험상궂게 굳어졌다. 그리고 우리는 이 대화를 거기에서 그만뒀다. 경계를 드러내는 순간, 관계의 분위기가 시 바뀌었다.


어머니와 마지막 만남을 한 날을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한다.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어머니. 그리고 고성, 불편한 대화, 웃음으로 마무리 됐던 날(이 이야기는 이미 다른 장에서 다뤘기 때문에 지난 글 참고). 이 날 나는 또 가면을 쓰고 행복해하는 어머니의 마지막을 배웅했다. 그날의 나는 감정을 느끼기보다, 상황을 무사히 끝내기 위한 역할을 수행했다. 어머니와 나의 관계는 언제나 소모된 배터리를 충전하는 것처럼 진행됐기 때문에 만남의 끝에 나는 항상 기진맥진해졌다. 관계가 회복이 아니라 소진으로 이어지는 구조였다.


그 후 일주일 동안 아팠다. 몸에 열개가 넘는 멍이 생기고, 밤에 잠이 들면 땀에 절어 잠옷이 젖었다. 갑자기 불현듯 깨어나 옥상과 거실을 한참 동안 서성였다. 낮에는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누워 있어야 했다. 그래도 방전된 마음과 몸이 돌아오지 않았다. 이런 반응은 단순한 피로가 아니라, 강한 스트레스 이후 나타나는 신체화된 반응에 가까웠다. 몸이 먼저 기억하고 반응하고 있었던 것이다.


마지막 시험을 보고 난 후 나와의 관계를 끊어주신 시부모님 덕분에 나는 세상에 홀로 남겨진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됐다. 다행인 건 내가 최악의 상황과 순간을 겪고 있을 때 남편이 오직 홀로 내 곁에 남아 나를 묵묵히 안아줬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나는 시부모님이 아무리 싫고 미워도 남편을 낳아주신 고마운 분들로 마음에 채워 넣기로 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상처와 감사가 동시에 존재하는 감정을 안고 관계를 바라보았다.


이때 취업을 위해 공부하고, 면접을 준비하는 과정 속에서 새롭게 무엇인가를 시작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아갔다. 그리고 과거에 이룰 수도 있었던 무언가의 끈을 놓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지, 아주 먼 과거 속에 숨어버린 나를 꺼내 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겪는 하루들이 이어졌다. 그 시기는 단순한 준비 과정이 아니라, 과거의 나를 다시 마주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그러다 갑작스럽게 어느 날 시어머니께서 이사를 시켜 주신다며 남편을 통해 연락을 해왔다. 지금도 그렇지만, 정말 갑작스럽게 이사가 진행됐다. 남편과 함께 살아야 하지 않겠냐며 어머니 친우 분의 건물로 이사를 하도록 하셨다. 이때 나는 앞으로는 잘 살아보겠다고 살던 원룸을 막 쾌적하게 정리한 상태였다. 이 상황 속에서도 내 의견은 중요하지 않았다. 이사 준비로 끊어졌던 어머니와의 만남이 다시 이뤄졌다. 내 삶의 중요한 결정이었지만, 그 결정 과정에서 나는 주체가 아니었다.


충분히 시간을 가지면 서로 존중하는 마음이 생길 수도 있다고 생각했던 때가 있다. 다시 만난 어머니는 처음엔 조심스럽게 나를 대하는 것 같았지만, 이내 어제 만난 듯 과거처럼 똑같이 말하고 행동하셨다. 시간이 지나면 관계가 달라질 것이라는 기대는 오래가지 않았다. 이사를 준비하는 집에 찾아오셔서 무언가 건져갈 게 없는지 찾아보시고, 내 짐들을 살펴보셨다. 그래서 나는 짐들 속에서 어머니께 드릴 물건과 옷들을 찾아 선물해 드렸다. 그리고 이사가 마무리 돼서 어느 정도 정리가 됐을 때는 갑자기 옷장 앞으로 가시더니 문을 열어보려고 했고, 신발장을 열어보시곤 뭔 신발이 이리 많으냐고 말씀하셨다. 허락되지 않은 공간까지 자연스럽게 들어오는 행동들이 이어졌다.


사실 10년 넘게 1년에 2-3켤레씩 저가 신발을 사다 보면 신발장이 가득 채워진다. 여기에 버리지 못하는 습관까지 있으면 방은 금세 짐들로 가득 차버린다. 신발장이 딱 그런 상태였다. 당황스러웠지만, 뭐라고 말할 새도 없이 이뤄진 일이라 문을 열지 말라고 소리치며 뛰어가는 게 전부였다. 나는 그 순간 그리고 항상 너무 늦게 반응했다. 그렇게 멈춰있던 시계가 다시 흘러가기 시작했다. 그 시계는 어김없이 과거를 그대로 답습하며 흘러갔다. 마지막으로 어머니를 만난 날이 지금도 생각난다. 스트레스를 감당하지 못해 스트레스 푸는 인형처럼 나를 사용하신 후 한참 웃고 떠들고 선물까지 받아 가셨던 날. 언제든 내가 원하는 날에 연락을 주라고 사랑한다고 말하고 집 문을 나서는 어머니를 웃으며 배웅했다.


나는 그 순간에도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감정을 눌렀다. 어머니가 오셨던 날은 일요일 저녁이었다. 남편은 다음 날 출근해서 해야 할 일들에 엄청난 부담을 느끼며 쉬려던 때였다. 어머니의 화와 스트레스가 잠잠해지자 교회 저녁 예배와 탁구 모임을 마치신 아버지께서 전화를 하셨다. 전화기 너머로 아버님께 말했다.


“어머니가 갑자기 찾아오셔서 소리를 지르고 화내고 그러셨어요.”


“그래서 뭐. 그럴 수 있지.”


아버님께서 버럭 화를 내셨다. 그 반응은 문제를 해결하려는 태도가 아니라, 상황을 정상화하는 방식이었다. 교회에서 본 댁으로 가시는 길 중간에 우리 집이 있기 때문에 아버지께 어머니를 태워가 달라고 남편이 말했다. 그랬더니 아버지는 화를 내시더니 남편에게 어머니를 모셔다 주라고 말했다. 뭐 그게 어렵냐고 말이다. 아버지와 남편의 평소 관계를 생각하면 가끔 아버님의 반응이 이해되지 않았다. 같은 상황이었지만, 반응의 기준은 일관되지 않았다. 남편은 워낙 자신의 경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남편의 가족들은 남편에게 과한 부탁을 하거나, 불편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원래 쟤 성격이 그렇다며 미리 포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경계를 지키는 사람에게는 침범 자체가 시도되지 않는다. 남편의 경계를 침범하고 짓밟으면 언제든 그들을 떠날 수도 있을 것 같은 남편을 존중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남편은 부모님 뿐 아니라 친구 관계에서도 자신과 상대의 경계를 존중하고 잘 지켜주는 사람에 속했다. 경계의 존중은 말이 아니라, 행동의 일관성으로 형성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내가 들어가기면 하면 남편의 부모님은 아주 쉽게 남편의 경계를 침범하고, 함부로 대하곤 하셨다. 가끔 그 부분이 이해되지 않았는데, 지금은 이해하게 됐다. 나를 통하면 남편이 어쩔 줄 몰라한다는 사실을 상황들을 통해 학습하신 것이었다. 나는 그 관계 안에서 잘못된 통로가 되었다.


남편이 어머니를 데려다 드리고 집에 돌아왔을 때 남편의 기진맥진한 표정을 봤다. 돌아온 남편은 죽은 듯이 잠을 잤다. 다음 날 회사에 가서 할 일이 많다는 남편의 말에 마음이 불편했다. 그 피로가 단순히 상황 때문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더 마음이 무거워졌다. 왠지 나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과거에 나는 나라는 존재가 항상 남편으로 하여금 불편함과 불합리함을 감수하게 만든다는 생각을 했었다. 나는 관계의 문제를 상황이 아니라 나의 존재 문제로 연결시켰고 그래서 불행했다.


그 일 이후 시부모님의 연락을 차단했다. 그리고 만남까지 차단했다. 언니와의 만남은 그일이 있은 후 몇 달 후에 이뤄졌다. 다음에 보자는 말에도 나를 보고 싶다고 달려온 언니를 차마 거절하지 못하고 집에 들인 날. 나는 아직도 이 날을 후회하고 있다. 경계를 세웠다고 생각했지만, 관계 앞에서 여전히 흔들렸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언니가 어쩌면 정말 순진하고 아무것도 깨치지 않은, 깨치고 싶어 하지 않은 플라잉 몽키에 속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처음 한 날이었다. 언니는 관계를 이어주는 역할을 하는 존재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니. 나는 어머니와 언니, 나 삼각관계 속에 더 이상 들어가고 싶지 않아요.”


나는 그때 처음으로 구조를 인식하고, 그 안에서 벗어나겠다는 말을 꺼냈다. 그날 이후 언니를 계속 피했다. 언니가 내게 보내주는 선물이 불편하게 느껴졌고, 언니를 위해 준비하던 선물과 과정이 고통스럽게 느껴졌다. 우리의 관계 속에 어쩔 수 없이 어머니의 존재가 항상 끼어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웠다. 관계 자체보다 그 안에 포함된 구조가 더 이상 견딜 수 없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 후 몇 번 언니의 보고 싶다는 말에 언니 집에 몇 번 방문했었는데, 방문할 때마다 마음이 불편했다. 만남은 이어졌지만, 편안함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언니와 내가 만난다는 말을 들었는지 시간마다 전화를 걸어 언니와 통화를 했고(통화 때마다 언니는 방으로 들어갔다.), 어느 날은 갑자기 반찬을 주겠다는 시아버님이 언니 집 앞에 나타나셔서 내게 인사를 건네셨다. 과거를 전혀 해결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뤄지는 갑작스러운 연결과 만남들이 마음에 큰 충격을 줬다. 그래서 더 이상 언니를 만나러 가지 않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경계가 설정되지 않은 관계에서는 연결이 언제든 다시 침범으로 이어질 수 있다. 나도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는 것처럼 언니 역시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상대를 바꾸는 대신, 거리를 두는 선택을 하게 됐다.


다른 지역에서 결혼 생활을 시작했던 언니가 시부모님이 계신 본가 근처로 이사를 온 후 언니는 나와 더 많은 연결을 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그 연결 속에는 언제나 언니와 나뿐 아니라 시부모님이 어쩔 수 없이 끼어 있었다. 관계는 둘 사이의 문제가 아니라, 이미 하나의 구조 안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덕분에 언니와 시부모님을 연결하고 싶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연결할 수밖에 없었다. 언니와의 연결은 과거의 모든 관계를 재 시작함과 동시에 나를 파괴했던 관계 속으로 내 발로 다시 들어가는 것을 의미했다. 그 연결은 단순한 만남이 아니라, 과거의 관계 구조로 되돌아가는 일이었다.


얼마 전 남편이 말했다. 언니가 몇 년 전에 결혼하려고 했을 때 아버님이 집에 돈이 하나도 없어서 마이너스 통장을 사용해야 했다고. 그때 아버님께서 남편 방에 들어오시더니 갑자기 말씀하셨단다.


“드디어 네가 가족을 위해 할 일이 생겼다. 네 이름으로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어서 누나 결혼시켜 주자.”

그 말은 부탁이 아니라, 이미 결정된 일을 통보하는 방식에 가까웠다. 막 취업해서 달에 200만 원을 받던 남편의 (원래 변호사 수습 기간엔 이 정도 급여를 받는다.) 수입은 대학원 학자금 대출과 교통비 등으로 대부분 쓰여질 때였다. 여기에 남편은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 내 자잘한 소비까지 책임졌다. 아버님의 갑작스러운 요구는 남편이 감당할 수 없는 요구에 가까웠다. 평소 자신의 경계를 확실히 하던 남편은 딱 잘라 아버님께 거절했다고 했다. 은행에서 마이너스 통장도 만들어 주지 않을뿐더러 그럴 여력이 없다고 말이다. 남편은 자신의 경계를 행동으로 지키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만약 이 장소에 내가 있었다면 분명 남편이 부탁을 들어줄 수밖에 없도록 내게 압력이 들어왔을 거라 생각한다. 남편의 아킬레스건이 나라는 건 경험칙으로 학습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자주 원 가족 관계 안에서 경계를 무너뜨리는 통로로 작동했다.


남편과 나, 그리고 남편의 원 가족에 대한 관계를 생각하면서 지난 몇 년을 보냈다. 그 사이 모든 인간관계가 버거워 관계 자체를 진행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글쓰기 모임 하나를 두 달 정도 참여한 것 빼고는 관계 자체를 만들지 않았다. 충분히 지쳐 있었고, 힘이 없었기 때문이다. 관계를 끊었지만, 그 자리에 남은 것은 회복이 아니라 소진된 상태였다. 글쓰기 모임도 내가 필사하던 책의 작가님이 운영하시던 모임이 아니었다면 참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 모임도 남은 힘을 바닥까지 긁어내서 밝은 척 가면을 쓰고 참여했던 모임이었다. 나는 여전히 관계 안에서 나를 숨기는 방식으로 버텼다. 그래서 글쓰기 모임에서 나온 후 내가 아직 어떤 인간관계도 시작해서는 안 되는 사람이라는 걸 깨닫고 스스로를 집에 가뒀다. 그 시기의 나는 회복이 아니라, 멈춤이 필요한 상태였다.


최근에서야 남편과 나라는 사람이 구 가족들과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 명확하게 배웠다. 많은 심리학자와 상담 전문가, 정신건강의학 선생님들, 그리고 관련 책과 논문들에서 말했다. 한 남자와 여자가 만나 결혼을 하면 구 가족들과 가족으로 융합되는 것이 아니라 독립해 새로운 가정을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결혼은 기존 가족과의 결합이 아니라, 새로운 가족 체계의 형성이라는 뜻이었다. 그래서 어떤 결정을 하던지 두 사람을 기준으로 정하고 1순위가 서로가 되어야 한다고 했다. 우리의 가정을 부숴가면서 구 가족들의 행복을 채워야 하는 거라면 거리를 둬야 하는 것이라고 했다. 관계를 유지하는 기준은 가족이 아니라, 우리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요즘은 과거와 다르게 결혼을 한다고 해서 서로의 가족과 깊게 엮이며 살아가는 구조가 아니라고 한다. 예전에는 한 집안에 들어간다는 개념이 강했지만, 지금은 두 사람이 하나의 가정을 이루는 형태로 바뀌고 있다. 가족의 형태 자체가 융합에서 분리된 연합으로 이동하고 있다. 그래서 서로의 원 가족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살아가는 것이 오히려 건강한 관계로 여겨진다. 각자의 가정은 각자의 책임 아래에 있고, 그 경계를 지키는 것이 관계를 오래 유지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가까움이 관계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적절한 거리가 관계를 지킨다.


그렇다고 해서 구 가족들과의 관계를 모두 끊어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그 관계가 나의 삶을 흔들고, 나와 내가 만든 가정을 무너뜨리는 방향으로 작용한다면 반드시 거리를 두어야 한다. 관계를 유지할 것인지의 기준은 의리가 아니라 건강성이어야 한다. 가족이라는 이유로 무조건 참고 견디는 것이 아니라, 나의 삶을 지키기 위해 선택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그 선택은 때로는 거리 두기일 수도 있고, 때로는 관계의 방식을 바꾸는 것일 수도 있다. 관계는 유지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건강하게 존재하는 것이 목적이어야 한다.


어떤 상담 전문가는 요즘 세상엔 시부모님과의 관계(고부 갈등)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아지고 있다고 했다. 벙어리 3년, 귀머거리 3년, 눈 가리기 3년은 옛 말일뿐이라고 했다. 그만큼 요즘의 가정은 완벽히 모든 것이 독립된 가정으로 분리되어야 하고, 분리되었다고 했다. 심리적, 정신적, 경제적으로 완벽히 분리된 신가정과 구 가정으로 만나 서로를 존중하는 관계가 요즘의 모습이라고 했다. 그리고 요즘은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관계가 완전히 바뀌었다고 한다. 한 심리 전문가는 더 이상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좋은 관계를 맺기를 원하는 시대가 아니라고 했다. 서로 맞지 않으면 언제든 관계를 끊고 보지 않아도 될 만큼 분리된 시대를 우리가 살아간다고 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가족의 형태는 융합이 아니라 분리된 관계 위의 존중이다.


전통적인 가족관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요즘 일어나고 있다. 예전처럼 가족 융합의 시대가 끝나고 완전히 독립된 가정을 이루는 시대. 게다가 요즘은 대부분 청년들이 결혼을 하지 않는 선택을 한다. 원 가정에서 자라면서 행복을 누리지 못했던 경우가 다수인 데다, 결혼을 하고 나서 더 많은 부담을 떠안는 것을 꺼리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에 이혼율이 높고, 결혼 비용이 높은 것도 한몫으로 자리 잡았다. 이 부분들을 배워가며 생각한 건 서로를 사랑하고 존중하려는 사람이 만나 한 가정을 이룬다는 것이 얼마나 기적 같은 일인지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나의 결혼이 당연한 선택이 아니라 의식적인 선택이라는 사실을 이해하게 되었다.


어쩌면 내게 정상적이라고(나를 사랑하고 존중하는) 말할 만한 부모님이 계셨다면 남편과의 결혼이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어느 부분에선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남편을 만나 가정을 이루지 못했으면 오늘의 행복을 경험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오늘의 나는 명절이든, 시부모님 생신이든 가족 대소사에 참여하지 않는다. 남편을 통해 연락하고, 남편을 통해 선물과 용돈을 보내드린다. 그렇게 했더니 오히려 없었던 건강한 경계가 생긴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는 관계를 끊은 것이 아니라, 방식만 바꾸었다. 사실 남편이 나를 집에 놓고 가면서 오히려 내가 나를 지키는 것이 무엇인지 배워가고 있다. 처음부터 남편이 하자고 하는 대로 했더라면 오늘의 관계가 건강하게 흘러가고 있을까 라는 아쉬움마저 든다.


어떤 사람은 시댁에 전혀 가지 않는 나를 보고 너무 한다고 이야기할지도 모르겠다. 그렇게까지 할 일이냐고 말이다. 옛날 분들은 원래 그렇다고, 그런 세대를 살아왔기 때문에 배웠던 대로 겪었던 대로 하는 것뿐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실제로 한 장로님이 내게 시어머니께 잘하고 있냐고 전화를 걸어오셨다. 선물과 용돈을 잘 준비해 드리고 있다고 하니 그거 말고 잘 찾아뵙고 있냐고 말이다. 지금도 그 장로님이 내가 시어머니를 피하고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고 굳이 전화를 하셔서 그런 이야기를 하셨는지 잘 모르겠다. 이 부분에서 정말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옛날에는 다 그랬어.라는 말로 이해하기엔 시어머니는 시댁이라는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원래 그렇다는 말은 이 관계를 설명하지도, 정당화하지도 못한다.


아들이 없어 대를 잇기 위해 아들 하나만 보내달라는 큰 형님의 부탁에 큰댁에 수양아들로 갔던 아버님은 결혼 후에도 이쪽이든 저쪽이든 속하지 못하셨다. 각 원가족의 구성원들이 밀어냈기 때문이다. 아버님의 친 아버님은 자녀가 많으셨기 때문에 아버님만 빼고 나머지 자녀들에게 재산을 나눠주곤 요양원에 들어가셨다. 심지어 이때 아버님이 큰댁에서 물려받은 재산까지 빌려달라고 하시곤 갚지 않고 다른 자녀들에게 줘버리셨다고 했다. 그리고 요양원에서 생이 끝나는 날까지 계셨다고 들었다. 이때 시부모님은 할아버님을 한 달에 한번 정도 찾아갔다고 남편에게서 들었다. 수양아들로 갔던 큰댁에도 자녀분들이 있어 따로 본가로 모실만한 일이 없었다고 했다. 그러니 시어머니는 일찍 돌아가셔서 모실만한 시어머님이 어느 쪽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시댁과의 슬픈 일화라고 해봐야 결혼 후 시어머니의 시아버님께서 “너는 이날 껏 밥 짓는 것도 못 배웠냐?”라고 했던 말이 맵게 남아 가슴 언저리가 아프다고 하셨다.


그러니 옛날 사람들은 그렇게 배워서 다들 그럴 수밖에 없다는 말이 어머니와는 맞지 않다. 게다가 어머니는 한 마을에서 가장 부잣집의 막내딸로 자랐기 때문에 누군가 자신을 불편하게 하거나, 힘들게 하는 일이 전혀 없이 자랐다고 하셨다. 어머니의 아버님은 언제든 어머니가 돈을 사용할 수 있도록 서랍에 돈을 가득 채워놓으셨단다. 어머니의 원 가족은 쌀이 귀하던 시절 쌀자루를 동네 사람들에게 나눠줄 정도로 부유하셨다고 했다. 그리고 바로 위 형제와 나이차이가 많이 나서 그 누구도 어머니를 질타하거나 잘못된 점을 지적하지 않고 예뻐해 줬다고 했다. 덕분에 어머니는 학교든, 마을에서든, 집에서든 귀한 공주님처럼 자랐다고 항상 자랑하셨다. 어머니는 누군가에게 통제를 받거나 불편함을 겪으며 살아온 사람이 아니었다. 그래서 타인의 경계를 이해하지 못하신 거라고 생각한다.


심지어 어머니는 아버님의 다른 형제가 아버님께 함부로 말하는 걸 보고 모두가 있는 앞에서 뺨을 내려치는 행동을 할 정도로 과감하셨다고 한다. 여러모로 자신의 성격을 한껏 발휘할 수 있는 상황과 형편, 운이 모두 따른 생을 사신 분이었다. 심지어 시부모님 두 분 모두 집안 대소사와 청소 등의 업무를 대신해 주시는 분들이 원 가정에 다수 있으셨단다. 그러니 어머니께서 나를 함부로 대하는 것도 당연했고, 혜택을 주는 것도 시녀에게 내려주는 혜택 같은 것이었다. 나만 그 안으로 들어가려고 융합되려고 했다는 걸 깨달았을 땐 이미 많은 걸 잃은 때였다. 그리고 내가 나를 챙기고 건강해지려는 순간조차 가족이라는 이름이 죄책감과 수치심, 죄의식으로 작용하며 나를 소진하게 했다. 관계를 유지하려고 했던 내 행동들이 나를 잃어가도록 만들어갔다.


나와 남편, 그리고 남편의 원 가족에 대해 생각하면서 진짜 건강한 가족이 무엇인지 오랫동안 생각했다. 그리고 결론을 내렸다. 독립되고 건강한 두 가정이 만나 서로를 위할 때 비로소 우리가 건강한 가족 공동체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건강한 가족은 하나로 묶이는 관계가 아니라 경계를 가진 채 연결되는 관계였다. 서로의 경계를 침범하지 않고 존중하려는 노력을 통해 우리는 사회 공동체로 건강하게 묶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구 가족과 현재 내가 세운 가정을 확실하게 분리해야 건강한 가족 공동체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배웠다.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융합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이 융합은 지배자와 피지배자가 있는 구조인 겨우가 다수 있다. 그리고 이 구조 안에서 세대 안에 머물던 다양한 감정과 폭력, 상처, 경험이 다음 세대로 대물림된다. 이것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세대를 따라 반복되는 구조다. 이러한 상처와 고통의 대물림이 3대를 간다고 한다. 그래서 할아버님 세대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잘못된 관습과 상처, 고통을 내가 끊어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3대째이기 때문에 이 반복을 끝내는 사람이 되기로 했다. 그리고 더 이상의 고통과 상처를 내 자녀에겐 물려주지 않기로 결정했다. 내 아이는 오직 사랑하기 위해 낳고, 사랑을 나누고, 온전히 내게서 한 사람으로 독립해 독립된 가정을 만들어 둥지를 떠날 수 있도록 기반을 만들어주고 싶다. 내 아이에게는 사랑은 희생이 아니라 행복을 주는 선택이라는 경험을 남겨주고 싶다.


누군가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이 있다면 꼭 말해주고 싶다. 당신을 무너뜨리는 관계라면 끊어내도 된다. 그게 천륜이든, 천년의 사랑이든 그것은 지켜야 할 관계가 아니라고. 천륜은 하늘이 준 것이기 때문에 당신이 아니라 신이 책임질 영역이고, 천년의 사랑도 당신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그게 가족이어도 예외는 없다. 그러니 어떤 순간이든 당신 자신을 가장 먼저 위하고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스스로를 사랑하고 경계를 건강하게 지키려는 사람은 자신만 중요하다고 말하는 이기적인 소수의 사람과 달리 총체적으로 건강한 관계를 맺고 상대를 진정으로 존중할 수 있다. 사랑은 해 본 사람이 나눌 수 있고, 존중은 진짜 존중을 경험해 본 사람, 스스로와의 관계가 좋은 사람만이 감정과 경험을 나눌 수 있다. 그러니 혹시라도 가까운 사람으로부터 경계를 침범당하고 아픈 경험을 반복하고 있다면 죄책감 없이 물러나도 된다고 말해주고 싶다. 어느 순간에도 당신 자신이 스스로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이 되길 바라며 이 글을 마친다. 당신을 지키는 선택은 관계를 끊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삶을 먼저 지키는 일이다. 앞으로는 죄책감과 잘못된 희생, 죄의식 없는 총체적으로 건강하고, 진정한 사랑을 나누는 관계들이 당신과 내 삶에 쏟아지길 기도한다.



3부 2. (3) 배우자의 원가족과의 관계


참고 자료

1. Murray Bowen, Family Therapy in Clinical Practice

, Jason Aronson, 1978

→ 사용된 개념: 가족체계이론, 삼각관계(triangulation), 정서적 분화(differentiation of self)


2. Salvador Minuchin, Families and Family Therapy

, Harvard University Press, 1974

→ 사용된 개념: 가족 구조이론, 경계(boundaries), 하위체계(subsystem)


3. Kerr, M. E., & Bowen, M., Family Evaluation

, W. W. Norton, 1988

→ 사용된 개념: 다세대 전이(multigenerational transmission process), 정서적 단절(emotional cutoff)


4. van der Kolk, Bessel, The Body Keeps the Score

, Viking, 2014

→ 사용된 개념: 트라우마의 신체화(somatization), 신체 기억(body memory)


5. Herman, Judith Lewis, Trauma and Recovery

, Basic Books, 1992

→ 사용된 개념: 복합외상(complex trauma), 관계 내 권력 구조, 반복적 트라우마


6. Festinger, Leon, A Theory of Cognitive Dissonance

, Stanford University Press, 1957

→ 사용된 개념: 인지부조화(cognitive dissonance), 자기합리화


7. Forward, Susan, Toxic Parents

, Bantam Books, 1989

→ 사용된 개념: 유해한 가족관계, 정서적 착취, 죄책감 유발 메커니즘


8. Maier, S. F., & Seligman, M. E. P., “Learned Helplessness: Theory and Evidence,” Journal of Experimental Psychology: General

, 1976

→ 사용된 개념: 학습된 무기력(learned helplessness)


9. Ferster, C. B., & Skinner, B. F., Schedules of Reinforcement

, Appleton-Century-Crofts, 1957

→ 사용된 개념: 간헐적 강화(intermittent reinforcement)


10. 개념적 참고: 애착이론(Attachment Theory), 발달심리학

→ 사용된 개념: 불안 반응, 관계에서의 과잉 경계, 애착 기반 정서 반응


목차

용서하지 않아도 괜찮아


부제: 코디펜던트 가족 탈출기


프롤로그



‘상처’에서 ‘자유’로, ‘의무’에서 ‘선택’으로 나아간 김희경 작가의 신작.

가족이라는 감정적 언어 속에서 길을 잃었던 한 개인이 자아와 회복을 향해 걸어온 심리적 여정.



1부.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숨겨진 상처들

가족 체계 속 얽힘과 감정의 왜곡, 그 심리적 메커니즘을 들여다보기


1. 가족이라는 이름의 상처

혈연이라는 이름이 만든 구조적 폭력


(1) 가족이라는 말에 심장이 내려앉을 때

(2) 가장 아름다웠던 날, 가장 잔인한 기억

(3) 생애 첫 기억 속 무가치함의 내면화 시작

(4) 침묵하지 않는다는 것


2. 가족이라고 상처를 허락하지 마라

가족이라는 이유로 참아야 한다는 믿음의 해체


(1) 몇 년 전, 돌아가신 할아버지

- 기억 속에 남은 마지막 장면들

(2) 유일한 내 편이면서, 동시에 나를 파괴한 사람

(3) 누가 나를 구원해 줄까

(4)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손조차 잡을 수 없었다


3. 가족 내에 형성된 내 역할을 점검하라

역할고착(Role entrapment)과

삼각관계(Triangulation)


(1) 역할 고착과 삼각관계, 그리고 세습되는 역할

(2) 아이로 태어나 희생자가 되기까지

(3) 희생양이 된 아이, 성인이

되어서까지 희생양을 자처하다

(4) 희생자 가족 재판에 서다

(5) 반복되는 구조, 멈출 수 있는 용기


-추가 : 가족 속에서 반복되는 심리 구조 6가지


4. 불쌍하지 않은 걸 불쌍하다고 말하지 마라

감정의 무효화(Emotional invalidation)와

2차 피해


(1) 기억 속 어머니의 따뜻한 도시락과

차가운 뒷모습

(2) 감정의 무효화와 2차 피해

: 이중의 상처

(3) 가사노동의 굴레 안에서 사라진 존재들

(4) 반복 강박 속에서 깨달은 진짜 감정

(5) 엄마가 너무 불쌍하잖아.

그러니까 네가 챙겨야지

(6) 타인의 불쌍함은 타인의 몫이고,

내 감정을 지키는 건

내 몫이고 나의 책임이다.


5. 사랑이라는 말의 함정에 주의하라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가해지는 통제의 언어


(1)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상처의 유산

(2) 사랑이라는 말의 함정

(3) 왜곡된 사랑과 고통의 반복

(4) 성공을 바란다며 발목을 잡는 사랑

(5) 왜곡된 사랑과 경계의 설정

(6) 자기 사랑의 회복과 치유의 여정


-추가 : 알고 가기


6. 용서하지 않아도 괜찮아

연민은 선택이지만,

용서는 강요가 아니다


(1) 아이가 성장하는 것을 바라지 않는 부모들

(2) 단돈 천원도 못 벌어오는

너는 불필요한 존재야

(3) 나중에 나랑 시골에 집 지어서 같이 살자

(4) 여행이 싫은 이유

(5) 용서하지 않아도 괜찮아


2부. 나의 진짜 신념을 세우기 위해 – 경계 짓기와 믿음 바로잡기

나의 핵심신념이 무엇인지 파악하라.

나를 보호하기 위해 내가 만들어낸 생존의 신념들을 찾고 부수기



1. 나는 사랑받기 위해 희생해야 한다.


(1) 나는 사랑받기 위해 희생해야 한다.라는 신념

(2) 나를 보호하기 위해 내가 만들어낸 생존의 신념들

(3) 나는 사랑받기 위해 희생해야 한다. - 공의존, 반복강박

(4) 어쩔 수 없었던 일이었으니, 네가 이해해야 해라는 말의 함정


- 1. (1) 추가 :


(1) [불행은 어떻게 질병으로 이어지는가

/ 네이딘 버크 해리스 지음

/ 심심 출판사]

책 내용 중 ACE 항목을 가져왔습니다.

(2) ACE 점수에 따른 건강

리스크 해석 (Nadine Burke Harris 정리 기준)


2. 내 감정은 타인의 감정보다 중요하지 않다.

감정보다 의무가 우선이다.


(1) 벌써 마흔

(2) 충전되지 않는 삶, 회피에서 글쓰기로

(3) 진실이 드러나는 순간

(4) 네 감정은 아무것도 아니야

(5) 내 감정은 그 누구의 감정보다 중요하다


3. 나는 무언가 부족한 사람이다.


(1) 누구나 마음에 유리조각 하나를 품고 산다

(2) 속옷 속에 숨겨진 이야기

(3) 타인을 완벽하게 만들어주고 싶다는 마음

(4) 거짓 행복에 매달리지 않겠다는 다짐


4. 내가 무너지면 모두가 무너진다.

나는 중재자이자 책임자여야 한다.


(1) 어린 시절의 상처가 30%만 영향을 준다고?

(2) 당신이 해결하지 않은 과거는

당신이 모르는 사이에 다시 반복된다

(3) 파랑새를 만난 줄 알았다.

- 안전기지의 환상, 반복된 구원의 시도

(4) 여우를 피해 갔더니 호랑이를 만났다

(5) 인정받고 싶은 욕구에 내가 잠식되어 갔다

(6) 무기력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7) 효도라는 이름으로 나는 나를 잃었다

(8) 우리는 서로의 부모가 되어주었다

(9) 더 이상 나를 구해줄 사람을

기다리지 않겠다


5. 진짜 나를 보여주면 버림받는다.

있는 그대로의 나는 사랑받을 수 없다.


(1) 어른이 되었어도 일부 미성숙한 사람들

(2) 내가 나라서 버림받았다고 생각하게 되기까지

(3) 네가 너라서, 딸이라서 버려진 거야

(4) 이랬다가 저랬다가

(5) 나라는 사람 그대로 수용받을 수

없을 것이라는 믿음

(6) 스스로를 지킬 힘이 없고,

지켜야 한다는 인식이 없을 때

일어나는 일들

(7) 처음으로 나를 위해 경계를 세우다

(8) 진짜 나를 보여주면 버리는 사람들이라면

나도 필요 없다


- 추가 :


(1) 엠패스 테스트

(2) HSP 테스트

(3) GHATGPT

심층리처시를 활용한 HSP,

엠패스, 초예민자에 대한

심리학적, 정신분석학적 통합 보고서


6. 내가 잘해야만 관계가 유지된다.

내가 못하면 사랑은 끊긴다.


(1) 너를 버릴 수도 있어

(2) 사랑하고 싶지만 사랑하고 싶지 않은

그대를 사랑해야 할 때

(3) 내 냉장고 열어봐 봐

(4) 내가 잘해야만 관계가 유지될까

(5) 내 마음을 지켜낼 수 있는

유일한 존재는 나뿐이다


7. 나는 끝까지 견뎌야 한다. 참는 것이 미덕이다.


(1) 저 감은 시어서 못 먹을 거야

(2) 나는 끝까지 견뎌야 한다.

참는 것이 미덕이다

(3) 누더기를 걸친 마음

(4) 가면 속에 감춘 마음

(5) 더 이상 견디지 않아도 괜찮아


8. 내가 선택받지 못한 건 내 탓이다.


(1) 상처의 대물림

(2) 양가적인 감정 안에서

누군가를 선택해야 할 때

(3) 아직도 매일 꿈속에서 살아

숨 쉬는 언니에게

(4) 나는 더 이상 내가 나인 것이 아프지 않아


9. 나는 언제든 내 것을 빼앗길 수 있고,

내 마음과 몸을 돌볼 자격이 없다.

나를 먼저 챙기는 것은 이기적이다.


(1) 붉은 손톱

(2) 너를 통해 나를 봤다

(3) 타인의 과제를 타인에게 돌려주는 연습

(4) 나를 먼저 챙기는 것이 타인을 돕는 것이다


10. 내 감정을 드러내면 벌을 받고,

내 고통과 말을 아무도 믿어주지 않을 것이다.


(1) 영웅의 서사인가, 신의 은총인가

(2) 고통스러웠던 20대

(3) 도망가느라 바빴던 30대

(4) 내 생각과 마음이 가장 중요해


3부. 새로운 가족의 의미와 용서의 속도

가족을 선택할 수 있다는 전제를 받아들이기까지의 시간


1. 가족은 모두에게 따뜻한 단어가 아닐 수 있다


(1) 가족 신화와 현실 사이

(2) '가족'이라서 참아야 했던 순간들

(3) 이상화된 가족 상(像)이 주는 심리적 함정

(4) 가족의 언어 속에서 탈출하기


2. 구 가족과 신 가족을 구분하라


(1) 원가족과 선택 가족의 차이

(2) 경계를 세운다는 것의 의미

(3) 배우자의 원가족과의 관계

: ‘우리’와 ‘그들’의 구분

(4) 혈연이 아닌 유대로 맺는 가족의 힘


3. 자녀는 부모가 선택해서 태어난 가족이다


(1) 돌봄은 책임, 효도는 선택

(2) 불효라는 낙인이 만든 죄책감

(3) 부모의 한계와 자녀의 권리

(4) ‘돌봄의 책임’을 바로 세우기


4. 타인의 시선에 갇힌 나를 구하라


(1) 사회적 자아와 진짜 자아

(2) ‘좋은 딸’, ‘좋은 아내’라는 가면

(3) 인정 욕구와 수치심의 굴레

(4) 타인의 지옥을 내 삶에 끌어들이지 않기

타인의 지옥, 나의 지옥 각자가 걸어갈 길


5. 돕고 싶다면 나를 먼저 도와라


(1) 자기 돌봄은 이기심이 아니다

(2) 심리적 경계와 윤리적 선택

(3) 먼저 나를 구해야 남도 구할 수 있다

(4) 가장 먼저 용서해야 할 대상은 자기 자신

스스로를 연민하지 말 것


4부. 실천챕터


1. 삶이 어려울수록 글을 써라.

기록은 치유의 시작이며,

내면의 감정을 안전하게 꺼내는 방법이다


(1) 감정을 언어화하는 힘

: 글쓰기로 마음의 무게 내려놓기

(2) 하루 10분 글쓰기

: 짧아도 꾸준히, 무엇을 써도 괜찮아

(3) 나만의 안전한 글쓰기 공간 만들기

(4) 쓰기를 통한 내 안의 목소리 발견

(5) 기록이 가져다준 회복의 흔적과 증거 쌓기


2. 나만의 스트레스 해소법 찾기

감정적 회복탄력성을 기르기 위한

구체적 실천 가이드

문화, 예술, 취미, 레저의 유익


(1) 몸과 마음을 풀어주는

작은 실천 만들기

(2) 요리가 즐거워

- 만들고, 먹고, 먹이고

(3) 액세서리를 만들면서 발견한

내 안의 욕구

(4) 식물 속에서 발견한 인생

(5) 작은 소모임 또는 혼자 놀기

(6) 세상과 소통을 멈추지 않기


3. 작은 성취라도 내 노력으로 획득할 것

작은 성취를 통해 내면에 영양제 먹이기


(1) 작은 성취로 자기 효능감 회복하기

(2) 성취를 기록하고 스스로 칭찬하기

(3) 내가 가장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가는 연습

(4) 노력의 과정 자체를 존중하는 태도와 연습

(5) 스스로를 힘들게 하지 않는 방법을 배우기


4. 스스로에게 행복과 자유를 허락하라


(1) 자기 연민과 자기 인정의 차이

(2) 행복을 선택할 권리

(3) 용서는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4) 가장 마지막에 도달하는 회복의 단계,

그 속도는 온전히 나의 것


에필로그


가족을 다시 정의하는 것에서 치유가 시작된다.

사랑의 이름 아래 스스로를 잃어갔던 시간을 넘어,

이제 나를 회복하는 길


참고자료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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