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옳지 않은 건 선택하지 않기로 했다
이 책은 저자의 개인적 경험과 감정, 그리고 그로부터 얻은 심리적 통찰을 바탕으로 구성된 에세이입니다. 등장하는 인물은 모두 사생활 보호를 위해 가명으로 처리되었으며, 실제 인물과 일치하지 않습니다. 본문은 사실을 단정하거나 특정 개인, 단체를 지칭·비난하려는 목적이 없습니다. 인물, 장소, 관계, 시점, 상황의 일부는 가명, 합성, 변형되었으며, 식별 가능한 세부 사항은 변경되었습니다. 유사성이 있더라도 이는 순전히 우연입니다.
이 글에 등장하는 관계와 감정은 특정 인물을 이상화하거나 동일한 관계를 반복하도록 권유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누군가를 삶의 구원자, 기준, 전부로 삼는 관계가 지닌 위험과 그로부터 벗어나는 과정을 기록한 개인적 성찰임을 밝힙니다.
저자는 타인의 명예나 사생활을 침해할 의도가 없으며, 본문의 해석은 전적으로 저자의 주관적 경험과 성찰에 기반한 것입니다. 이 책은 유사한 경험을 지닌 독자에게 위로와 통찰을 전하기 위한 진솔한 기록입니다. 다만, 이 글은 특정한 관계를 미화하거나 모범 사례로 제시하지 않으며, 독자 각자의 삶과 상황에 그대로 적용되기를 전제하지 않습니다.
본문에는 가족 내 학대, 정서적 방임, 상실, 관계 의존 등 트라우마를 환기할 수 있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글을 읽으실 때 스스로의 마음과 안전을 가장 우선하시고, 불편함이나 과도한 감정 반응이 느껴질 경우 언제든 읽기를 멈추셔도 괜찮습니다.
저자는 이 글을 통해 과거를 고발하거나 누군가를 단죄하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과 관계를 돌아보며 회복에 이르는 과정을 기록하고자 했습니다. 이 책은 특정 인물이나 집단을 비방하거나 공격하려는 목적이 아닌, 한 개인이 겪은 성장과 치유의 여정을 담은 성찰의 결과물입니다.
이 기록이 비슷한 경험을 가진 누군가에게, 누군가를 대신 살거나 누군가에게 자신을 맡기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건넬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 글이 각자의 속도와 방식으로 회복을 선택할 수 있다는 작은 용기와 희망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AI 컷 만화]
꿈을 꿨다. 사촌 언니와 동생이 나왔다. 꿈속에서 나는 그 둘에게 내 방에서 나가라고 소리를 질렀다. 돌아서는 뒷모습에서 서운함이 읽혔다. 작은 조각방, 내 꿈들이 가득했던 원룸 방에서 나는 그들을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옆방으로 옮겨간 사촌 언니는 내가 이렇게 하니까 아무것도 되지 못한 거라며 말했다. 그리고 자신은 ‘교수님’이라고 불리는 사람이 되었다고 했다. 조각방에 남은 나는 옆방으로 옮겨간 언니가 그 방 사람과 한참 동안 대화하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 그 장면에서 잠이 깼다. 잠에서 깬 나는 나도 모르게 한 문장을 반복해서 읊조렸다.
“옳지 않은 일은 아무리 내게 큰 이익을 준다고 해도 선택하지 않을 거야.”
꿈은 늘 뒤죽박죽이다. 왜 이런 장면들이 한데 엮였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꿈은 알 수 없는 문장들을 불쑥 내게 던져놓는다. 이미 벗어난 조각방과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였는지조차 기억나지 않는 친척들까지. 꿈은 무의식 깊숙한 곳을 들춰내며 묻는다.
예전에 살았던 조각방은 작았지만, 내 꿈들이 가득 적혀 있던 곳이었다. 방 곳곳에 매일 적어 붙였던 명언들, 해야 할 것들, 내가 원하는 단기와 장기 목표들이 벽을 빼곡히 채웠다. 아직도 가끔 나는 그곳에 있는 나를 꿈에서 본다.
옆집과 아랫집까지 모두 사이비 종교라 불리던 곳에 속한 사람들이 살던 곳에서 나는 종종 두려움에 떨었다. 새벽이면 모르는 사람이 문고리를 돌리고 문을 두드리던 그 집에서 숨소리를 죽이며 살았다. 그 두려움을 견디기 위해 붙잡았던 성경 구절이 지금도 마음 깊은 곳을 울린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 시편 23편 4절’
두려움 속을 함께 걸어주셨던 주님을 떠올릴 때마다, 그 시절 반복해서 읽고 외웠던 시편 23편 4절이 떠오른다. 생각해보면 나는 어린 시절부터 사촌 언니를 참 좋아했다. 언니는 탱탱하고 하얀 피부에, 부드러운 목소리를 가졌고 공부도 잘했다. 언니를 보며 나도 공부를 잘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뭐든 앞서가던 언니는 언제나 내게 친절했다.
그래서 나는 오래도록 언니가 나를 좋아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몰랐다. 다만 알 수 없는 거리감이 늘 존재했다는 것만 느꼈을 뿐이었다. 학업에 열중하느라 바빠서 그렇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이십대 중반, 언니와 긴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나는 언니를 항상 좋아했는데, 왜 언니가 나와 가깝다고 느끼지 못했을까.”
“사실 너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어. 어릴 때 친척 언니들이 옷을 물려주면, 내가 살이 쪄서 항상 너한테 갔거든. 너한테 다 줘버려서 예쁜 옷을 입어본 적이 없어.”
그 말을 떠올릴 때마다 든 생각은 하나였다. 언니의 속상함이 내게 전가되었다는 느낌. 그래서 아무리 언니를 따라가도 닿을 수 없었던 것이었구나 하는 뒤늦은 이해였다. 언니에게 닿지 못한 거리는 내가 끝내 선택하지 않은 빈 공간으로 남았다.
어린 시절 나는 해골이라 불릴 만큼 말랐고, 언니는 통통한 정도로 귀여운 아이였다. 그래서 언니가 그런 아픔을 품고 있었다는 걸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나는 시골집에 오기 전 약 2년 넘게 보육시설에서 지냈다. 그곳에서 내 식습관을 고쳐주겠다며 선생님들은 내 식판 위에 파와 양파, 간장물을 입힌 마늘을 가득 올려주셨다. 그래서 나는 자주 불이 꺼진 식당 안에서 식판 위에 부어진 파와 양파, 간장 마늘을 다 먹을 때까지 앉아 있어야 했다. 그곳에서 먹고 토하는 일을 반복하더라도 그것들을 다 삼킬 때까지 아무도 오지 않았다. 먹고 토할 때면 희미하게 밖에서 슈퍼보드 주제가가 들렸다.
세 살 무렵부터 다섯 살까지 이어진 그 시간 때문에 위장이 약해졌고, 음식은 늘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다. 그 결과 어린 시절 내내 먹는 것에 관심이 없어 깡마른 아이로 지냈다. 동네 어른들은 내가 지나가면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겠다는 말을 하곤 했다. 그런 몸에 친척 언니들이 물려준 예쁜 옷을 입으면 옷걸이에 옷을 걸어둔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가끔 사촌 언니와 동생이 꿈에 나오면 복잡한 마음이 든다. 왜 아직도 그들과 가까워지지 못한 일을 아쉬워하는지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어쩌면 그들이 속한 종교에 들어갔다면 가까워질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럴 때마다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예수님이 광야에서 사탄에게 시험받던 순간이다.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이르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으니라. 이에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드니라. 마태복음 4장 8절 -11절'
세상은 늘 말한다. 지금 이 선택을 하면 오늘의 불편함과 초라함을 해결해주겠다고. 그 약속 앞에서 나와 우리는 아주 쉽게 흔들린다. 하지만 옳지 못한 선택은 결국 더 깊은 파괴로 이어진다는 것을 일찍 배웠다. 그럼에도 때로 언니의 뒤를 따라갔더라면 내 인생은 달라졌을까. 라는 생각도 든다. 언니만 따랐어도 좋은 것들이 내 삶에 채워졌을까.
그러다 문득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어린 시절, 교회 강대상 아래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던 내 모습이다. 새우깡과 과자 몇 봉지를 들고 이게 제가 가진 전부라며 올려드리던 열 살의 내 모습. 가난한 아이의 사과 한 알을 받으시고, 네 전부를 받았다고 하셨던 하나님. 헌금할 돈이 없어 헌금함 위에 올라가 자신을 드리겠다고 했던 슈바이처의 이야기가 어김없이 이어진다. 주일학교 선생님이 들려주셨던 마음을 받으신다는 하나님 이야기 앞에서 나는 언제나 그 날을 기억한다.
그 기억들 앞에서 잠깐의 이익을 얻기 위해 스스로를 버리면 영혼과 정신, 결국 육체까지 무너뜨린다는 것을 다시 깨닫게 된다. 잠깐의 이익이 이어질 순 있지만 종국에 그 선택은 늘 사망의 길에 닿을 것이라는 걸. 이런 생각을 하며 아침을 맞았다. 갑자기 코 안이 뜨거워지더니 코피가 한참 동안 쏟아졌다. 휴지를 대고 앉아 있으면서, 생각들은 결국 하나로 수렴됐다. 몸이 먼저 반응하고 있다는 사실 앞에서 생각을 잠시 멈췄다.
건강하다는 것은 영혼과 정신, 육체를 모두 포함한 말이다. 어느 하나라도 무너지면, 나머지 건강함도 함께 부서진다. 그래서 꿈에서 깨어나며 중얼거렸던 그 문장을 다시 되뇌었다.
“옳지 않은 건, 그게 무엇을 준다고 해도 선택하지 않을 거야.”
그 문장을 마음에 담고, 오늘의 커피를 내리러 간다. 어린 시절 강대상 앞에서 올려드렸던, 내 전부였던 새우깡 과자를 아직도 기억한다. 그리고 그것을 받아주셨던 하나님의 따뜻함이 오늘도 내 마음을 가득 채운다.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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