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이야기는 다리 저림이 심해 밤새 뒤척이던 자가 남긴 이야기로..
갱년기 세계의 공기 같은 기본값은 팔다리 저림인 것 같다.
그것은 처음에는 안개비처럼 은은하게 스며들지만, 문득 통증을 느꼈을 땐 이미 폭풍우를 향해 치닫고 있다.
그래, 그런 얘기도 들은 것 같다.
갱년기에는 손발도 저리고 좀 붓고 몸도 무거워지고 뭐 그런다고 했지. 익히 들어 알고 있는 얘기다.
아는 만큼 제대로 대비해서 이번만큼은 당황하지 않으리라.
초반에는, 손목아래와 발목아래만 수십 개의 바늘로 찔렸다가 감각이 무뎌졌다가 피가 안 통하는 듯 답답했고 부어올랐다.
난 온갖 유튜브 스트레칭 영상을 탐색하고 영상 아래 댓글들을 참조해 효과가 좋아 보이는 것들로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었다.
퇴근 후 저녁 시간에, 한두 시간씩 영상들을 틀어놓고 따라 하면서 팔다리를 풀었다.
따라 하는 동안은 시원한데, 어째 시간이 갈수록 저린 부위는 점점 심장을 향해 다가오는 것 같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팔꿈치 아래까지 저리고 무릎 아래까지 저렸다.
수백 개의 바늘로 찔렸다가 감각이 무뎌졌다가 터질 것 같이 부어올랐다.
뭔가 부족한가 싶어 저녁시간 루틴에 스트레칭에 더해 공기압 마사지기, 주물러 주는 마사지기까지 넣었다.
더 시간이 지나자, 어깨까지 저리고 허벅지까지 저렸다.
수천 개의 바늘로 찔렸다가 감각이 무뎌졌다가 터질 것 같이 부어올랐다가를 반복하면서 통증까지 느껴졌다.
이제 자는데 방해가 될 지경이었다.
그전까지는 스트레칭과 마사지 루틴 후에 지쳐서 누워있으면 금방 잠이 들곤 했는데, 설핏 잠에 빠지려고 하면 여지없이 팔다리 통증이 잠을 깨웠다.
이때부터는 통증과 졸림의 대결이다.
여러 번 티격태격하다가 결국 잠이 들어도 통증은 마치 토끼와의 경주에서 포기하지 않는 거북이 같았다.
내가 잠들어있는 중에도 통증은 꾸준히 힘을 키워서 급기야 새벽에 다시 잠을 깨웠다.
이렇게 잠이 깨면 다시 잠들기 어렵다.
몸과 머리는 졸리고 지쳐있는데 통증은 생생하다. 심지어 그 부위가 넓다. 다리 전체와 팔 전체다.
이래서는 졸림은 통증에게 이길 방도가 없다.
며칠 저렇게 잠을 못 자고 지쳐가던 어느 날 아침.
스트레칭과 마사지기의 루틴을 열심히 해오고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종아리에 알이 생겼다.
아니, 이게 된다고?
심지어 밤새 얼마나 열심히 알이 뭉쳤는지, 걸을 때마다 다리가 움직이는 속도보다 종아리알은 0.01초 뒤늦게 따라와 그 시간차만큼의 통증을 일으켰다.
걸을 때마다 생기는 종아리알과의 시간차로 인한 통증을 줄이고자, 보폭을 줄이고 걸음속도를 줄였다.
건강했을 때 오랜만에 등산을 다녀오고 나면 다음날 아침 다리알이 뭉칠때가 있었는데, 그때보다 좀 더 단단하게 뭉친 느낌이었다.
출근길을 나설 때, 이대로는 회사까지 가 닿는 게 너무 힘들 것 같아 수술할 때 병원에서 받았던 압박스타킹을 신었다.
내 움직임과 종아리 알이 나를 따라오는 시차를 그렇게라도 줄여야 좀 걸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침 출근길엔 약간 도움이 되는 듯했지만, 퇴근길에 종아리 알이 압박스타킹을 이겨버렸다는 걸 알았다.
종아리알은 의료용 압박스타킹이라는 환경에서도 서서히 몸집을 불려 가고 있었던 것이다.
아침보다 종아리 알의 존재감이 더 생생해져 버렸다.
지독한 녀석이다.
갱년기 세상에서 적응한다는 것은 이런 독한 놈들과 싸워야 하는 것인가.
'그렇다면 내 독기도 만만치 않다는 걸 보여주지.'
..라고 생각했지만 퇴근길의 직장인이란 독기를 끌어올릴 기운이 남아있지 않다.
그냥 누군가 나를 길에서 잡아 세우고. ‘어허, 방법이 하나 있긴 한데..’라면서 정답을 은근히 흘려주고 홀연히 사라지면 어떨까.
그러면 어차피 뒤척일 새벽, 슬며시 일어나 희미한 달빛 아래 낮에 들었던 그 정답을 찾으러 다니는거다.
찾아낸 답을 품고 돌아오는 길에, 뒤에서 ‘내 다리 내놔’라고 외치면서 무언가가 쫓아온대도.
아니, 차라리 내가 허공에 외치고 싶었다.
"내 다리 내놔!!"
평온한 내 다리를 찾을 수 있는 방법만 알 수 있다면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갱년기 세계는 원래 살던 세계의 상식으로 이해하기엔 도무지 뭐가 뭔지 알 수가 없다.
그저 자고 일어났을 뿐인데, 종아리에 알이 배긴다는 거부터가 믿을 수 없다. 이건 판타지다.
갱년기 세계의 물리법칙이란 대체 뭔가.
퇴근 후 ‘아이고 의미 없다.’를 되뇌면서 스트레칭을 하고 마사지기를 돌리고 나니 벌써 밤이 되었다.
자기 전, 문득 책상 위의 초록색 알약이 눈에 띄었다.
얼마 전 정기검진 하러 간 대학병원 안과에서 녹내장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며 권유받았던 혈액순환 개선제였다.
이때서야 생각이지만, 정말 내 몸이란 녀석은 가지가지한다 싶었다.
몇 년 전 동네 안과에서 정상 안압 녹내장을 우연히 발견했었는데, 당장 큰 병원을 가보라면서 진료의뢰서를 쥐어주었다.
그렇게 갔던 대학병원에서 '녹내장을 극초기에 발견하다니 정말 운이 좋으시네요.'라는 말을 들었고, 그때부터 6개월 또는 1년에 한 번씩 정기검진을 다니고 있다.
갑자기 생긴 다리 저림에 정신이 없어서 그 약을 사서 책상 위에 던져놓고 잊고 있었다.
보인 김에 한 알 먹고 자리에 누웠다.
졸음과 다리 통증 중에 이번엔 어떤 놈이 언제까지 버틸 것인가 예측해 보면서, 이번엔 잠이 이기기를 응원했다.
다음날 아침, 종아리알은 언제 있었냐는 듯이 사라져 있었다.
평소와 달랐던 건 녹색 알약 한알. 문득 깨달았다. 이건 혈액순환의 문제였나.
쪼글쪼글해진 다육이의 주름을 펴는데 물 한 컵이면 충분하듯이, 내 종아리알을 퇴치하는데 녹색 알약 하나면 충분했던 것이다.
허무해서 헛웃음이 나왔다.
종아리알은 해결됐지만 저림은 계속되었다.
가슴의 숯덩이를 없애러 간 한의원에서 요즘 다리 저림이 심하다고 했더니 목 어깨 머리에 침을 꽂아줬다.
‘아니 거기 말고 다리요…’
그런데 침이 하나씩 꽂힐 때마다 팔다리에 짜르르 피가 돌고 굳고 부었던 게 풀리는 느낌이 들었다.
너무 시원해서 소름이 돋았다.
‘이건 또 뭐지. 너무 신기하잖아!’
침을 맞을 때 다리가 시원했던 자리 -목 어깨 그리고 관자놀이 양 옆머리- 를 기억해 뒀다가 집에 와서 폼롤러로 다시 눌러봤다.
팔다리에 소름이 오도도도 돋으면서 짜르르하고 피가 확 도는 느낌이 들었다.
화선지 위에 물을 잔뜩 머금은 먹물을 떨어뜨리면 종이를 타고 확 퍼져나가듯이, 다리 안쪽을 따라 발바닥까지, 그리고 다시 다리 바깥쪽으로 피가 싸악 도는 게 느껴졌다.
팔도 서서히 가벼워졌다.
그동안 스트레칭에 마사지기를 열심히 돌려도 어쩐지 별 효과가 없더라니, 엉뚱하게도 답은 다른 곳에 있었다.
이후, 다리 때문에 잠을 설치는 일은 없어졌다.
그래도 잔잔한 저림은 그대로였고, 며칠에 한 번은 아침에 팔다리가 퉁퉁 붓고 저린 채로 일어났다.
그러면 출근해서 그 상태를 점점 키웠다가 자기 전에 폼롤러로 목과 어깨 옆머리를 풀고 시원해진 팔다리를 되찾았다.
이제 방법을 알았으니 해결은 어렵지 않았다.
그 시기, 얼굴에 열이 올라서 회사에서 종일 얼굴로 선풍기를 쐬다가, 한동안 비염처럼 콧물이 났다.
그래도 선풍기를 끌 수 없었던 나는, 선풍기를 끄는 대신 소청룡탕이라는 한방 비염약을 일주일정도 먹었었는데 일주일 후 콧물이 멈췄을 때 다리 저림도 남은 붓기도 없어졌다는 걸 문득 깨달았다.
불필요한 수분을 없애서 콧물을 멈추게 한다는 약이었는데, 남아있던 저림은 아마도 불필요한 수분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그렇게 팔다리 저림 사건은 일단락되었다.
팔다리 저림은 지금도 종종 잊을만하면 슬며시 찾아온다.
갱년기 세계의 공기 같은 것이라고 받아들여야 하는 것 같다.
대신, 팔다리가 저릿저릿하게 나에게 말을 걸어오면 폼롤러나 침, 약 중에 어떤 대답이 필요한지 안다.
이제, 내 다리의 언어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렇게 갱년기 세계의 히치하이커를 위한 또 하나의 길을 찾아낸 것 같다.
[히치하이커의 메모] 길은, 분명히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