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을 내쉬면 불을 뿜을 수 있는 능력이 생겼다

No More Dream

by 차은설

“네 꿈은 뭐니”


어릴 때 저런 질문을 받으면 난 초능력자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순간이동을 해서 늦잠 자더라도 학교에 금방 갈 수 있다거나, 개미들의 대화를 알아듣고 싶었다.


나중에 커서 공룡이 되겠다는 친구들도 있었는데, 사뭇 멋있게 들려서 ‘아 나도 공룡이라고 할걸.’ 하고 좀 아쉬워하기도 했다.






퇴원을 하고 병가가 끝나 회사에 복귀할 때쯤, 난 새로운 능력을 갖게 되었다.




가만히 있어도 얕게 밭은 숨을 몰아쉰다.


심장이 파르르 떨리며 약하게 쉴 새 없이 두근거린다.


가슴 저 아래에서 뭔가 잔잔하게 불편한 기운이 느껴진다 싶다가 그 기운들이 점점 뭉치기 시작한다.


곧 그 기운은 새빨갛게 달궈진 숯덩이가 되어 가슴 한가운데서 타오르고 뜨거운 기운을 토해내는 목구멍이 따갑다.


잠시 후, 숯덩이는 중력을 가볍게 무시한 채 식도를 태우며 화르륵 목까지 치닫는다.


헉, 하고 숯덩이는 숨을 막는다.


.. 다음 순간 난 불을 뿜는다.




이 낯선 능력은, 불을 뿜어내는 순간뿐 아니라, 불 뿜기 전 1단계 준비과정부터 익숙해지기가 쉽지 않았다.


핸드폰을 보거나, 음악을 듣거나, 하물며 짧은 쇼츠에도 집중할 수 없었다.


불 뿜기의 절차가 예고 없이 시작되면, 난 모든 사고와 움직임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마치 거대한 기차가 멀리서 나를 향해 미친 속도로 곧장 달려오고 있는데, 철로에 묶여 꼼짝없이 마주 보고 있어야 하는 느낌이었다.


세상엔 나와 숯덩이만 남아있는 것 같았고, 불을 뿜어내어 모든 절차를 마칠 때까지 무기력하게 기다려야만 했다.




이건 내가 원하는 능력이 아니다.


별 쓸데도 없고 멋도 없다.


무엇보다 아무리 반복에 반복을 더해도, 번번이 놀라고 당황하게 되어 자존심 상했다.




이 시기에 갔던 내과나 산부인과에서는 ‘역시 호르몬 치료를 했어야지, 아 금기증이 있군요. 저런...’이라거나,

'신경안정제 계열을 먹어보면 어떻겠냐'거나, '아무리 힘들어도 정신과 약 쪽은 쳐다도 보지 말라'는 등의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 서로 합의를 좀 보고 얘기를 해주는 건 어떻습니까.’


병원을 돌면서 얻은 쓸만한 정보는 교감신경이 활성화돼서 자율신경이 불균형하다는 검사지 덜렁 한 장뿐이었다.


‘그래서 내 초능력은 어떻게 없애는데요.’




혹시, 수억 년 전 불을 뿜었던 공룡들도 불 뿜을 때 이런 느낌이었을까.


익숙해지면 난 공룡이 된 기분으로 잘 지낼 수 있을까.


난 전생에 공룡이었던 적이 있었던가.


아니, 혹시 공룡들도 갱년기에나 불을 뿜었던 것인가.




그 후로도 병원을 이리저리 떠돌다 마지막으로 간 한의원에서 자율신경 불균형을 다시 한번 들을 수 있었고, 자율신경을 되살리기 위한 방편으로 꼬리뼈에서 목까지 척추를 따라 침을 잔뜩 꽂아주었다. (으악)


초능력은 그 후에도 한동안은 잘 유지가 되어서 시도 때도 없이 불을 뿜어대곤 했지만, 척추를 따라 침을 꽂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기세 좋게 타오르던 숯덩이는 조금씩 힘을 잃어갔다.


가끔 가슴 저 밑에서 다시 기운이 뭉쳐 숯덩이를 만들기도 했지만, 그 기세는 예전만 못해서 목까지 올라오지는 못하고 중간쯤에서 열기를 내뿜다 사그라지곤 했다.


이 정도라면 해볼 만했다.


난 고슴도치가 되는 한이 있어도 이 불은 끝내 끄고야 말겠다는 심정으로, 주 2회씩 척추는 물론 몸 여기저기에 침을 잔뜩 꽂으러 열심히 병원에 출석도장을 찍었다.


그렇게 서너 달 때쯤 지난 어느 날, 숯덩이는 결국 식어버렸고, 식은 숯덩이는 한동안 가슴 중간쯤에서 마지막 존재감을 뽐내다가 어느새 사라져 버렸다.


이제 가끔 숨이 차거나 가끔 심장이 나댈지언정 불은 뿜지 않는다.


드디어 초능력을 벗었다.




어찌 보면 난 어릴 때 꿈을 모두 이루었다.


불 뿜는 초능력을 가진 공룡이 되어보았다.



이제, 다른 꿈을 꿀 차례다. 갱년기 세계에서 내 길 찾기의 고수가 된 히치하이커 같은.




"이제, 네 꿈은 뭐니."






[히치하이커의 메모] 가슴속에 숯덩이가 달아오를 땐 고슴도치를 기억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