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겁결에 손에 쥔 합격목걸이
세상의 모든 자격증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갱년기 증상 풀세트 종합 체험을 할 수 있는 1급 자격증은 그저 수술대 위에 눕는 것만으로 쉽게 취득할 수 있다.
일하는 곳에서 건강검진 결과를 제출하라고 해서 방문한 병원에서 간 김에 초음파도 같이 해봤다가 우연히 난소혹을 발견하게 되었다.
복잡한 과정은 건너뛰고, 이런저런 여러 가지 검사 후에 결과를 마주하게 된 그 순간은 아직도 생생하다.
검사 결과를 들으러 들어간 진료실은, 약간 높은 듯한 습도를 머금은 공기와 의사의 등 뒤로 난 큰 유리창을 통해 창틀까지 들어온 햇빛 때문에 후텁지근했다.
평온한 얼굴의 의사는 의자에 막 앉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진료실 책상 가운데 있던 자궁 모형을 내 쪽으로 조금 밀어냈다.
그리고 검지와 중지로 가위 모양을 만들어 자궁 모형의 난소에 대고 가위로 자르는 것처럼 천천히 움직이며 마치 ‘목이 마르면 물을 마시면 된다’고 알려주듯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난소를 둘 다 잘라내야겠어요."
하. 이 방은 왜 이렇게 눈부시고 공기는 또 왜 이렇게 답답하지.
짜증이 훅 올라왔다.
그때의 난, 그 상황을 이상하리만치 단순하게 생각했다.
의사가 떼자고 했고, 내가 그러마고 하면 깔끔하게 해결되는 상황으로 이해했다.
담당의사는 말했다.
“복강경 수술은 아주 쉬운 수술이에요. 그냥 잠깐 자고 일어난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걱정하실 거 없어요.”
'수술은 의사가 하는 거지 난 그냥 누워있기만 하면 되는데 무슨 걱정?'
솔직히 저 얘기를 들었을 때 이 시점에서 남들은 무슨 걱정을 한다는 건지, 내가 해야 할 걱정의 목록은 어떤 종류의 것인지 묻고 싶었다.
수술이야 의사가 알아서 잘해주겠지.
회사와 병가 일정을 조율하고 2박 3일 동안의 입원 준비물을 챙기는 거 말고 내가 신경 쓸 일은 없다고 생각했다.
이렇게까지 단순하게 생각할 수 있었던 건 순전히 코로나 백신 부작용으로 인한 브레인포그 덕분이었다.
그때 머리가 맑았다면, 나는 꽤 겁먹거나 어쩌면 일상이 흔들렸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때는 나를 감싸고 있던 그 짙은 안개가 오히려 보호막이 되어주었다.
그래서 겁을 먹지도, 일상이 흔들리지도 않았다.
‘입원 준비물 체크리스트 50’, ‘복강경 하러 갈 때 입기 좋은 옷 best’ 이런 자료들을 검색하고 준비하느라 오히려 약간 들떠 있기까지 했다.
하여간, 난 운 나쁜 사람들 중에선 제일 운 좋은 사람인 게 분명하다.
"그래서 복강경 수술 진짜 쉽나요?"라고 누군가 물어본다면 난 이렇게 대답하겠다.
"아. 그거요? 난소 꺼내고 나서야 알았죠. 쉬운 건 의사 입장이지, 내 입장은 아니더라고요."
사람들은 많은 경우 나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듣고 싶은 대로 듣는다.
복강경 수술이 쉽다고는 했지만 누가 쉽다고는 하지 않았다.
쉬운 게 당연히 나일 줄 알았지 의사 본인이었을 줄이야.
생각해 보면 자르는 건 쉬워도 잘리는 사람이 쉬울 리가 없다.
심지어 장기를 일부 꺼냈는데 그게 마침 난소 2개일 경우는 더더욱.
그러나 미리 걱정해 봐야 결과는 달라지지 않으니, 담당의사의 저 교묘한 멘트는 어쩌면 상당히 노련한 최선의 것이었을지도.
수술 후 첫 진료 때 담당의사는 내 배꼽을 보고 아주 뿌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수술은 아주 잘 됐고 잘 아물고 있네요. 이제 병원 안 오셔도 되겠어요."
"갱년기 증상이 생길 수도 있지 않을까요?"
"사람마다 달라요. 없을 수도 있고 생길 수도 있고. 그건 지나 봐야 알아요. 엄청 심하게 올 수도 있으니 그땐 가까운 산부인과서 가서 진료받으세요. 평균보다 이르게 폐경이 되었으니 잘 관리해야 돼요"
모든 진리는 하나로 통한다.
'진리의 사바사(사람 by 사람)', 그리고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이 두 가지로 앞으로 다가올 모든 것을 예견할 수 있었다.
어쨌든 그렇게 난 갱년기 증상 풀세트 종합 체험 1급 자격증을 엉겁결에 받아 들게 되었다.
자격이 먼저 주어졌고, 그다음 체험 실습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것이 여행의 시작이었다.
[히치하이커의 메모] 난소에 혹이 생기거나 기능에 이상이 생기거나 하물며 폐경이 되더라도 난소가 하나라도 남아있는 한 호르몬은 그 양이 점점 줄어들지만 조금씩은 계속 분비된다고 한다.
호르몬 양과 갱년기 증상이 정확하게 반비례하는 건 아니기 때문에, 호르몬 양 변화와 무관하게 별 불편함 없이 그냥 지나가는 운 좋은 사람들도 있다.
그 정도의 운이 없는 일반적인 경우에는, 난소에서 서서히 호르몬의 분비량이 줄어들면서 폐경에 가까워지고, 갱년기 증상도 약한 것부터 조금씩 나타나기 시작한다.
그러나 수술로 갑자기 난소가 제거되는 경우 호르몬이 급격하게 0으로 떨어지기 때문에, 운이 없는 경우 갱년기 증상이 일반적인 경우보다 더 강하게 한꺼번에 복합적으로 나타날 수 있다.
수술 전 건강상태가 코로나 백신 부작용 같은 이유로 상당히 좋지 않았던 경우라면 더더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