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로 싸우는 진땀의 밤

갱년기의 밤은 당신의 낮보다 요란하다.

by 차은설

벌써 몇 번째 인지 모른다.


어둠 속에서, 또 눈이 떠졌다.


멀리서 얕게 코 고는 소리가 들렸다.




너무 덥다.




덮고 있던 이불속에는 내 몸이 뿜어내는 열기와 습기로 가득했다.


천장에서는 여전히 에어컨에서 서늘한 공기가 내려오고 있었다.


그러나 내가 내뿜는 열기에는 어림도 없었다.


몸 전체에서 진땀이 배어 나왔고, 머리카락도 축축하게 젖어 목과 턱에 달라붙어 있었다.


분명 조금 전에도 비슷한 감각에 눈을 떴고 이불을 옆으로 걷어냈었는데.. 꿈이었나.


다시 한번 이불을 옆으로 걷어냈다.


에어컨에서 나오는 차갑고 건조한 공기가 식혀주길 기대하면서.




다시 눈이 떠졌다.


너무 춥다.




뜨겁고 축축했던 환자복이 차갑고 축축하게 식었고, 그 아래 내 몸도 너무 차가워졌다.


더듬더듬 옆으로 걷어낸 이불을 끌어당겼다.


이번엔 한치의 바깥공기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듯이 이불을 몸에 돌돌 말았다.




다시 어둠 속에서 눈을 떴다.


찬 기운으로 더 습해진 내 몸과 환자복과 이불은 더 후끈하고 축축해진 채로 잠을 깨웠다.


진땀이, 더 많아진 것 같았다.


이렇게 많은 땀이 어떻게 나올 수가 있는 거지.


등이 너무 뜨거운 것 같아 등을 식히려고 몸을 천천히 돌려 옆으로 누우면서 이불을 옆으로 걷어냈다.


아직 수술로 부풀어있는 배가 옆으로 우르르 쏟아졌고 뒤통수도 젖어있는 걸 알게 되었다.


등과 뒤통수가 좀 시원해졌다.




다시 눈이 떠졌다.


추웠다.


다시 이불.




다시 눈이..


더워..




다시..




또...






병동의 아침은 꽤 이른 시간부터 시작된다.


밤새 자다 깨다를 무수히 반복하면서 진땀을 엄청나게 쏟아낸 나는 이른 아침부터 기진맥진해서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뭔가 거대하고 높은 벽에 정면으로 부딪힌 느낌이었다.


갱년기에는 땀을 많이 흘린다는 얘기는 들어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상황을 그저 ‘땀을 많이 흘린다’라고만 표현하는 건 사기에 가까웠다.


그런 간단한 문장만 보고서는, 이 정도의 상황에 대한 마음의 준비를 전혀 할 수 없다.


준비 없이 갑자기 맞닥뜨린 진땀과의 밤샘 전쟁에서 난 처참히 패배했다.




와, 이게 다 뭐야.


어리둥절하고 당황스럽고 어이없고 무섭기까지 했다.


어제까지 멀쩡했는데 갑자기? 이렇게까지?




그나마 이 일을 입원 중에 겪어, 이불과 침대패드 베개를 새것으로 바꾸고 세탁하는 게 내가 할 일이 아닌 것이 다행이었다.


아침 회진시간에 밤새 있던 일을 얘기했고 곧 양방파트에서 수액을 한방파트에서 한약을 줬다.


난 팔에 수액을 꽂은 채 천장 에어컨의 바람 나오는 곳 아래에 서 있었다.


그때 병실 에어컨 온도는 19도였다.


그래도 에어컨 바람 아래에 서 있어야 땀이 멎었다.


땀이 멎었다 싶으면 그때부터는 추워서 손발이 떨렸고, 잠시 이불 속에 들어가 있으면 어김없이 또 더워져서 에어컨 아래 서있어야 했다.




병실은 4인실이었는데, 나까지 3명이 있었고 우연인지 모두 갱년기를 지나는 사람들이었다.


우리 방 사람들은 셋 다 몸에 열기가 충만했으므로 우리의 방을 갱년기의 방이라 명명했고 온도를 19-20도로 유지하는데 합의했다.


나머지 한 자리에 누군가 새로 들어오기도 했는데 그 사람은 갱년기가 아니었는지 들어온 지 20분 만에 춥다고 다른 방으로 옮겨나갔다.




며칠 동안, 난 밤에 1~2시간 간격으로, 심하면 30분 간격으로 덥고 춥고 땀 흘리느라 잠을 설쳤고,

그럴수록 다음 회진 때마다 할 수 있는 건 다 해달라고 의사들을 붙들고 늘어졌다.


매일 다른 모양의 수액을 맞았고, 공진단과 비슷한 성분이라는 한약도 먹었다.


효과는 보장할 수 없지만, 도움이 된다고 알려져 있다고 해서 태반주사도 맞았다.


같은 방의 갱년기 선배들은 그 정도로 심한 건 첨 본다면서도, 어쨌든 몸에 돈 쓰는 게 최고의 투자라며 격려해 주었다.


어둠 속에서 추위와 더위에 대항해 2:1로 싸우는 건 너무 불리해 보였지만, 낮시간에 동서양 의학의 힘을 빌어 에너지를 축적해 두었다가 매일 밤 고군분투했다.


밤은 너무 길었다.






"식사 왔습니다."


‘...?’


더듬더듬 침대 옆을 더듬어 침대 리모컨을 찾아 쥐고, 상체 쪽의 침대를 45로도 올리고 침대 옆 커튼을 걷었다.


병동의 활기찬 아침이 시작되어 있었다.


손을 침대와 등 사이에 넣어보았다.


보송하다.


와. 지난밤 한 번도 깨지 않았고 땀도 없이 잘 잔 것 같았다.


갑자기?




벼락같이 들이닥쳤던 진땀의 밤은, 5일 만에 왔던 속도 그대로 갑자기 가버렸다.


아침 회진 때 이 소식을 전하자 의사들은 그동안의 처방을 매우 뿌듯해했다.


혹시나 싶어 그날 아침에도 새 이불과 베개, 환자복을 카트에 싣고 온 간호사들은 이 소식에 함께 기뻐해주고 돌아갔다.


같은 방 갱년기 선배들은 몸에 좋다는 수액에 한약을 며칠을 쏟아부었는데 안 좋아질 리 없었다는 평을 내놨다.


놀랍게도 다른 증상과 다르게 진땀의 밤은 그 이후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진땀의 밤은, 기력이 다 소진되었다고 내 몸이 보내는 SOS 신호였을지 모른다.


지금 이렇게 잠이나 잘 때가 아니라고, 나를 계속 깨웠었나 보다.


몸이 보내는 메시지에 귀를 기울이는 것, 그것이 갱년기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가 가져야 할 첫 번째 기술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히치하이커의 메모] 몸이 보내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