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3대 쓸데없는 걱정으로는 연예인 걱정이 있고..
난소를 뗀 후 살이 도톰하게 올랐다.
뭔가 덜어냈으면 또 뭔가 채워지는 것이 우주의 법칙.
덜어낸 것보다 더 많은 피하지방이 채워져서 체형까지 변하고 있지만, 나름 우주의 섭리를 몸으로 완성하고 있다.
또 하나 달라진 것은 이전보다 일상에서 동동거리는 정도가 줄었다.
회사일이 정신없어도 동동, 집안일이 밀려있어도 동동, 배고파도 동동, 배불러도 동동.
많은 시간을 동동거리는 마음으로 지냈다.
그런데 수술 이후로 신기하게도 그 동동 타임의 비율도 동동거림의 강도도 많이 줄어든 느낌이다.
어느 날, 귀신같은 유튜브 알고리즘이 보여준 영상 ‘고양이 중성화 수술 후 알아두어야 할 것’에서 내 모습을 보았다.
-중성화한 고양이들은 살이 찌기 쉬우니 식사량을 조절해 주세요
-중성화한 고양이들은 차분하고 순둥해 집니다.
-행복한 고양이의 삶을 위해 중성화를 해주세요.
?? 아니 이거 나잖아?
반갑다 얘들아!
그날 이후, 나에겐 고양이들과의 내적인 동지의식 같은 게 생겼다.
어느 어둑한 퇴근길, 나는 뻐근한 다리를 풀고자 전신의 관절이 뻑뻑하게 움직이는 것을 느끼면서 느릿느릿 걸어가고 있었다.
보도 옆 화단의 나무 아래서 토실토실한 고양이가 천천히 걸어 나와 내 앞으로 가로질러 지나갔다.
내가 있는데도 놀라지도 도망가지도 않고 여유롭게.
눈이 나빠서 중성화한 고양이인지 귀모양까지 보지는 못했지만 왠지 확신이 들었다.
‘너도 혹시..?’
길을 걷다 보면 이런저런 잡생각이 들기 마련인데, 그날은 집에 도착하기까지 그 고양이가 계속 눈에 밟혔다.
차분하고 순둥하고 살찐걸 보니, 혹시 너도 갱년기를 지나고 있는 건 아닌지.
혹시 너도 다리가 뻐근하고 관절은 뻑뻑한데 놀라도 동동거리지는 않아서 느릿느릿 걸었던 건 아닌지.
너도 전과 같은 식사를 하고 있는데도 호르몬 부족으로 살이 쪄서 몸이 항상 찌뿌둥한 건 아닌지.
집에 와서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고양이들에겐 중성화 수술이 오히려 장점이 많다는 게 정설인 것 같았다.
그러나 이건 고양이 입장도 들어봐야 되는데.
한번 진지하게 눈을 마주 보고 앉아서 솔직한 고양이의 심정도 물어보고 내린 결론이 맞나.
고양이도 다리가 저리거나 관절이 아프거나 몸에 기운이 없거나 더위를 더 많이 탈 수도 있을 텐데. 너네는 진짜 괜찮니?
전문가들은 괜찮다고는 하는데, 고양이 너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거 맞니?
고양이들도 반문할지 모르겠다.
중성화 후에 행복한 삶을 살고 있나. 인간?
갱년기 증상들은 잠잠해졌다가도 습도에 쉽게 이끌려 나오는 것 같다.
비 오기 전전날부터 통증들은 서서히 시동을 건다.
골수에서부터 시림이 서서히 번져 나와 근육을 타고 피부까지 배어 나오는 느낌이다.
습도가 높은 날도 역시 힘들다.
내가 뿜어내는 열기와 내 주변의 습한 공기가 어우러지게 되면 정신을 단단히 붙들고 있어야 한다.
그래서 봄부터 여름이 두렵다.
어느 날, 물멍을 때리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혹시 물고기들은 물속에 있어서 갱년기를 더 심하게 겪는 건 아닐까.
너네들 괜찮니?
혹시 물속에 살아서 육상동물들보다 더 힘든 갱년기를 보내고 있는 건 아니니?
혹시 네 안의 가시들이 너에게 가시가 되어 아프게 하지는 않니?
내가 저 생각을 전하자 한 T가 말했다. (MBTI를 맹신하진 않지만 그 T 맞다.)
“생선들은 알 낳고 얼마 안 가 죽어서 괜찮을 걸?”
... 아니, 저기요??
대문자 F인 인간이 갱년기를 맞게 되면 F가 더 진하게 부풀어 오르게 마련이다.
그래서 이런 T들이 주변에 있다는 건 현실감각을 유지하는데 도움이 되기는 한다.
그러나 번번이 너무한다는 느낌은 지울 수가 없다.
그래도, 덕분에 현실로 돌아왔다.
어쨌든, 고양이나 물고기는 괜찮다는 게 중론이었다.
알을 낳고도 무병장수하는 물고기도 있을 거고.
그렇다면 믿기로 했다.
다행이다.
세계 3대 쓸데없는 걱정으로는 연예인 걱정, 고양이 갱년기 걱정 그리고 물고기 갱년기 걱정이 있다.
이제, 나만 괜찮으면 된다.
[히치하이커의 메모] T들이란 대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