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를 뺀 나와 마주하기

by 정은길




그림2.JPG 내 인생 속 숫자를 모조리 빼버려도 행복할 수 있다.








대학교 졸업을 앞뒀던 오래전, 전공 교수님 한 분과 학생들 몇 명이 함께 밥을 먹는 자리에 가게 됐다. 그곳에 있던 학생들 중 진로가 확실히 정해진 사람은 없었다. 유학을 갈까, 어떤 분야에 취업을 하면 좋을까, 어학연수는 어떨까 다들 고민이 많을 때였다. 그래서인지 그 자리에서 제일 어른인 교수님께 여러 질문이 쏟아졌다. 질문들 중 아직까지 기억에 남는 게 하나 있다.



“교수님은 다시 20대로 돌아간다면 무엇을 하고 싶으세요?”

“글쎄. 솔직히 말하면 나는 다시 20대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

“네? 왜요?”

“그때 나는 너무 치열하게 살아서 고통스러운 기억만 남아 있거든. 죽을 만큼 공부를 해도 뭐 하나 확실하게 정해지는 게 없어서인지 너무 불안하더라고. 나는 불안했던 20대보다 많은 것들이 안정된 지금이 더 좋아.”



그때는 그저 교수님이 다시 시간을 되돌리고 싶지 않을 정도로 열심히 사셨구나, 했다. 그런데 내가 같은 질문을 받아도 전혀 이상할 게 없는 나이가 되고 보니, 나 역시 많은 것들을 몰랐던 어릴 때보다 세상을 조금 더 알게 된 지금이 더 나은 것 같다. 이제는 교수님 말씀을 이렇게 해석해본다.



“이제야 내 인생의 ‘콘텐츠(contents)’가 차곡차곡 쌓인 것 같아.”



많은 사람들은 명확한 답이 떨어지는 대화를 좋아한다. 나이가 어떻게 되는지, 학교는 어디를 나왔는지, 무슨 일을 하는지, 결혼은 언제 할 건지, 결혼했다면 어느 동네에 사는지, 아이가 몇 명인지 등 질문 대부분이 그렇다. 이러한 질문의 핵심은 바로 ‘숫자’다. 나이는 당연히 숫자로 답을 할 수밖에 없고, 학교의 이름은 성적의 증명이기도 하니 이 역시 숫자를 내포한다. 무슨 일을 하는지 묻는 것도 마찬가지다. 직업에 따라, 혹은 다 니는 회사에 따라 수입을 가늠할 수 있다. 어느 동네에 사는지 는 부동산 시세를 알 수 있는 지표가 된다.




나는 평범한 대화를 가장한 채
서로를 숫자로 파악할 수 있는 질문을 나누는 게 참 싫다.




사람의 삶에는 저마다 이야기가 있다. 무엇을 좋아하고 어떨 때 행복해하는지, 어떤 친구를 사귀고 무슨 취미가 있는지 등이 바로 이야기의 콘텐츠에 해당된다. 남자친구에게 예쁘게 보이기 위해 살을 빼고, 부모님을 즐겁게 해드리기 위해 좋은 성적을 받고, 친구들 사이에서 기죽지 않기 위해 돈을 잘 벌고 싶어 하는 숫자 놀음으로는 결코 내 행복을 말할 수 없다. 누군가를 만족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는 삶에 행복은 없다. 그런 노력을 그만두고 갈등을 겪더라도 내가 원하는 콘텐츠를 내 삶으로 끌어들일 수 있어야 한다. 마치 무엇을 심을지 고민하는 농부의 마음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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