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 시절 국어 시험에서 아깝게 틀린 문제가 있었다. 영국 낭만파 시인 윌리엄 워즈워스(William Wordsworth)의 시와 관련해 틀린 것을 보기에서 고르는 문제였다. 그런데 보기 중에 ‘이 시의 작가는 윌리엄 워스워즈다’라는 게 있었다. 아무리 봐도 작가의 이름이 이상했다. 내 기억에 의하면 시인의 이름은 ‘윌리엄 워즈워스’였으니까.
그러나 나는 이 보기가 정답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아무리 그래도 이런 걸 문제로 내지는 않았겠지 싶었다. 설마 철자 순서를 바꿔놓는 1차원적인 문제 따위를 냈을까. 내가 아는 국어 선생님은 좀 더 고차원적인 문제를 냈을 거라 기대했다. 설마 했던 내 생각은 현실에선 ‘땡’이었다. 국어 선생님은 작가의 이름을 살짝 변형한 문제를 낸 게 맞았다. 세상에! 선생님은 학생들이 작가의 이름을 달달 외우길 원했던 것인가? 하지만 나는 ‘이걸 알면서도 틀렸단 말이야?’, ‘난 항상 고민하다가 시험 문제를 틀린다니까!’ 이런 생각들은 전혀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런 문제를 낸 선생님에게 실망했을 뿐이었다.
사람들에게는 자기 잘못이 아닌 일에 스스로를 탓하는 심리가 있다고 한다.
문화심리학자 한민 교수가 쓴 책 『슈퍼맨은 왜 미국으로 갔을까』에 이에 관한 내용이 등장한다. 요즘 시대를 사는 흙수저 청년들이 생각처럼 일이 잘 풀리지 않는 현실을 오롯이 자기 탓으로 돌리곤 한다는 것이다. 잘 살고 싶은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다가 좌절하는 순간을 경험하며 ‘내가 흙수저로 태어난 것이 잘못이다’라고 결론 내리는 것을 한민 교수는 ‘내 탓이라고 생각하는 게 속 편한 방식’이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내가 당한 피해를 인정할 수 없을 때 그 피해를 입힌 대상을 원망해보지만 상황이 변하지 않으면 그 원망이 자신을 향하게 된다고 한다.
회사에 다닐 때 한 선배가 이런 말을 해준 적이 있었다. “누군가 네 잘못을 지적한다 해도 처음부터 무조건 네가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마. 오히려 그 사람이 잘못한 걸 수 있으니까!” 백 번 천 번 맞는 말이다. 누구나 실수를 하고 잘못을 저지른다. 내게 조언이나 지적을 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냉정하게 판단해보자.
스스로를 탓하는 게 편해서, 익숙해져서인 것은 아닌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