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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보다 마흔 Jan 11. 2022

임시정부

우리들만의 작은 정부




임옥순, 임영순, 임춘순, 임선순, 임금자, 임윤자, 임옥자, 임숙자, 임옥현, 임은자.


문자를 받은 여행사 직원이 우리 이름을 보고 웃었을 것이다.

순/자. 성의 없는 이름이라고 봐야 할지 고풍 깊은 가문이라고 해석해야 할지 우리는 순/자를 사이좋게 나눠가진 사촌이다. 다행히 여기서 멈췄으니 망정이지 5명이 더 태어났다면 후발 주자들이 얼마나 더 억울한 이름을 가졌을지 안 봐도 뻔하다.


남자 멤버 15명, 여자 멤버 10명 총 25명.

남아선호 사상은 몸속 정자와 난자까지 이미 세뇌시킨 모양이다. 생명 공학적인 출산이다.

아빠 형제 5형제는 약속이나 한 듯 5명씩 출산을 했고 뒤바뀌었으면 약간 서운했을 황금 성비율도 놓치지 않았다.


우리는 모두 한마을에서 자랐다.

작은 마을에 5 형제가 옹기종기 모여 똑같이 농사를 짓고 살았다. 할아버지 할머니 밑에 가난한 집 5형제였지만 우애만은 부잣집 곳간보다 넉넉했다. 타임머신이 있다면 유일하게 다시 돌아가고 싶은 때이다.

형제와 사촌의 구분 없는 대가족이었다. 25명 중에 맨 마지막으로 내가 태어났을 땐 이미 다 출가를 해서 공유할 추억이 많지 않지만 언니 오빠들에겐 수없는 이야기보따리가 있을 테다.


"아, 아, 이장집에서 알립니다. 오늘은 마을 회치 날입니다. 한 분도 빠짐없이 모두 속히 나와주시기 바랍니다."

어릴 적 전화가 없던 시절엔 마을 이장집 마이크가 유일한 소통 창구였다. 앰프를 열고 방송을 하면 나무에 매달아 놓은 확성기를 통해 공지사항이 전달됐다.

마을엔 확성기가 있었고, 일제 치하, 암울했던 그 시절 상해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있었다면, 우리 사촌 25명에겐 <임시정부> 밴드가 있다.

임(林) 씨 성(性)의 작은 정부, 임 씨 정부다.

가족 간, 친목 모임 밴드는 흔하지만 사촌들 밴드는 흔치 않다. 밴드가 생기기 전에도 모임은 종종 있어왔지만 밴드가 생기고 온라인 모임이 만들어졌다.

임가네 밴드, 임 씨 모임, 해양 모임 등 여러 가지 이름이 안건에 올랐지만 최종 이름 <임시정부>로 지어졌고 세월이 가도 특색 있고 잊히지 않는 좋은 이름이다. 나는 억울한 이름 탓일까? 작명 솜씨를 타고난 듯하다. 임시정부도 그렇고 요가 모임 '웃다'도 태양 경배 자세(웃따나아사나)에서 따 와 예쁜 이름을 지었다.


어느새 15년도 더 된 일이다.

큰아버지들이 모두 살아계셨을 때 처음으로 온 가족이 부산에서 1박 2일 모임을 가졌다.

오빠들이 큰아버지들을 일찍부터 모시고 와 태종대와 아쿠아리움 구경을 했다. 컨디션이 좋지 않아 함께 못 오실 뻔했던 큰아버지가 태종대 휴게소에서 어묵꼬치를 맛있게 드시던 모습이 생생하다.

'큰스방님이 잘 자신다'라며 웃던 엄마도 생각나고 자식 입에 밥 들어가는 거 보듯 좋아하시던 큰 오매 눈가 주름도 기억난다. 큰아버지는 어쩌면 별거 아닌 어묵꼬치를 평생 처음 드셨던 건 아니었는지 모르겠다.

저녁이 되자 각 지역에 흩어졌던 언니 오빠들이 모두 도착해 식사하고 노래 부르는 흥겨운 시간이었다. 사촌들에 그 자녀, 큰아버지 형제까지 다 모였으니 그날 모임 참석자는 거의 100명에 가까웠다. 방방마다 가득했던 사람들, 이런 자리를 만들어 고맙다는 덕담들, 그만큼 많았던 신발들, 마을 회치를 하듯 노래 부르던 큰아버지와 아빠, 아련하고 그리운 기억이다.


제일 큰 사촌 오빠와 나는 정확히 25년 터울이다.

평균 한 해에 한 명이 태어난 꼴이다. 감성적이고 인문학적인 그분들이 어쩜 이렇게 과학적이었는지 놀랍다.

임시정부 밴드에 우리 이름 옆에는 고유한 자신만의 숫자가 있다.

마치 아바타 기호 같은 숫자다. 임종식(1-1), 임종봉(2-5), 임선순(4-5 )..... 앞의 숫자는 아버지의 숫자고, 뒤의 숫자는 본인의 숫자다. 1-1은 첫째 큰아버지의 첫째, 2-5는 둘째 큰아버지의 다섯째 자녀라는 뜻이다. 나의 기호는, 다섯째의 다섯째 자녀, 5-5다. 조카들은 1-1-1, 1-3-2 세 자리 기호를 가진다.


생일을 축하하고 경사스러운 일을 함께 나눈다.

어린 시절 이야기를 나누며 그리움에 젖기도 하고 글 잘 쓰는 오빠가 시골 삶을 올려줘 도시 속에서 힐링을 하기도 한다. 제사와 행사 일정을 공유하기도 하고 유용한 정보들을 주고받기도 한다.

재미난 이벤트도 많이 했다.

'닭살 커플'이란 주제로 부부간의 사랑을 자랑하는 이벤트를 벌이기도 했다. 각 가정마다 포옹하는 사진이 올라오고 김장하다가 뽀뽀하는 사진이 올라와 눈꼴스럽기도 했다. 제일 큰 언니가 직접 만든 한과를 상품으로 내걸어 각축전을 벌이기도 했다.

맛있는 음식 사진, 좋았던 여행지 사진 올리기도 하며 공유했다.

특히 명절 아침 전해오는 친정 사진은 제일 반가운 사진이다. 보고 싶은 얼굴들, 세배드리는 모습, 산소에서 차례 지내는 모습은 단출한 시댁에서 대리 만족하는 시간이다.


여자들은 여자들대로 곗돈을 모으고, 남자들은 남자들대로 곗돈을 모은다.

오빠들 돈은 제사나 묘사 등 주로 공식적인 지출이 목적이고 언니들과 함께 모으는 곗돈은 여행이 목적이다. 딸 열 명이 다 같이 가지는 못했지만 일본을 다녀오고 태국을 두 번이나 다녀왔다. 그때마다 오빠들이 거금을 찬조해 주고 큰아버지들이 재롱부리는 딸들 이쁘다고 용돈을 주시기도 했다.

언니들과 여행은 가이드가 필요 없을 정도다. 노래방에서 마이크 놓지 않는 사람처럼 우린 가이드에게 말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 우리 여행의 하이라이트는 낮보다 밤에 있다. 저녁을 먹고 숙소에 들어와야 비로소 진정한 여행의 묘미를 맛본다. 각자 방에서 짐을 다 풀고 한 방에 다 모여 팀을 나눠 게임을 하면서 배꼽을 잡고, 마스크 팩 붙여 수다를 떨다가 웃다 못해 울기도 한다. 사투리들의 총집합에 유머까지 겸비해 개그콘서트보다 더 재미난 시간이다.

말 없는 돈은 쌓여만 가는데 언제 이 코로나에서 해방돼 그 시간들을 다시 맞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너그가 시집을 잘 가서 여행 올 수 있지 알궂은 집에 시집갔었어 봐라 여행 올 수 있는 줄 아나?"

왕 언니 말에 웃으며 배꼽 잡던 그날이 어서 다시 오면 좋겠다.


"언니들 나중에 아프면 모두 요양 병원 한 곳에 다 모여라, 나 여기저기 찾아다니려면 바쁘니까!"

임시정부의 리더이자 막내인 나는, 아빠가 그랬던 것처럼, 백범 김구 선생이 그랬던 것처럼 나 놔두고 먼저 다 가 버릴 날들이 걱정이다.

연배 비슷한 언니들이 하나둘 아파 여기저기 병문안 다닐 일도 미리 걱정이라 한 곳에 다 집합하라고 진담 농담을 하기도 한다.


어제는 1965년 할머니 장례 때 받은 부조금 장부가 올라왔다.

파랑새 담배 6갑, 삼베 한 필, 탁주 한 되, 현금 50원. 박물관에나 있을 법한 사료를 발견한 듯하다.

나 태어나기 전의 일들을 기록을 통해 만난다.

단단한 내 뿌리가 바로 이곳 임시정부임을 알기에 사랑하고 또 보답하고 싶은 곳이다.

건강하고 행복하게 오래오래 임시정부가 운영되길 바란다. 따끈따끈한 소식이 많이 많이 올라오길 바라고 얼른 좋은 소식 먼저 전하고픈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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