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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보다 마흔 Feb 03. 2022

설날 아침에

옛날 옛날에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에~




일요일 아침, 부산 기온이 영하 8도까지 떨어졌다.

집안에선 바깥 온도를 실감하기 어렵다. 하지만 춥다 하니 뜨끈한 국물이 먹고 싶다. 마침 혜숙 언니가 준 매생이 한 봉지가 있다. 매생이 굴국은 한 그릇을 다 먹도록 식지 않아 좋아하는 메뉴 중 하나다. 좋다, 오늘 매생이 넣어 떡국을 끓이자.

다싯물을 내고 떡을 푹 익힌다. 모든 입맛은 까다로운 남편 위주로 맞춘다. 퍼진 떡 좋아하는 남편 입맛에 맞게 미리 넣어 푹 끓인다. 국간장으로만 간을 하면 너무 국물이 짙어진다. 간장과 소금을 적절히 섞어 간을 한다. 노른자와 흰자 구분해서 지단 고명을 만들고 총총 대파도 준비한다. 김가루와 깨도 소담스레 올린다. 근사한 아침이 준비됐다.

몽실몽실 동실동실한 남편과 딸은 떡을 좋아한다.

딸은 떡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난다. 일주일에 한 번 떡볶이를 해 줘도 외식할 때면 떡볶이가 먹고 싶다고 한다. 어제도 쇼핑몰 그 많고 많은 식당 메뉴 중에서도 떡볶이가 먹고 싶다던 딸이다. 남편도 재래시장에 가면 꼭 떡집 가래떡을 사 온다. 참기름 찍어 먹기도 하고 에어프라이에 살짝 돌려먹기도 하고 어묵 넣고 삶아 먹는 것도 좋아한다. 하지만 아들과 나는 떡을 좋아하지 않는다. 잘 먹는 부녀에겐 가득 담아주고 아들과 나는 국물 위주로 먹는다.


"작은 아버님~, 작은 어머님"

잠결에 들리는 소리다.

늦었다. 큰 집 올케언니들이 우리 식구들 일어나기도 전에 벌써 떡국을 끓여서 왔다. 옷을 제대로 차려입을 겨를도 없이 세수할 겨를도 없이 마른 손으로 대충 얼굴을 비비고 얼떨결에 설날 아침 세배를 받는다.

"오냐, 너희도 새해 건강하고 원하는 바 소원 성취하기 바란다."

단장은 제대로 못했지만 떡국을 끓여 온 질부들에게 진심 어린 새해 덕담을 전한다.


시골 마을 설날 새벽 풍경이다.

우리 임가네는 좀 특별했다. 그 우애가 좀 유별났다. 아빠 형제는 독수리 5형제처럼 한마을에 살며 한 집 식구같이 살았다. 할아버지가 살아 계실 땐 아침 문안 인사드린다고 대문 앞에 지게 5개가 나란히 줄 서 있었다고 한다. 부모님껜 간 밤에 별일은 없었는지 여쭙고 형제들과도 인사를 나누고 하루를 시작했다고 한다. 그 속에 샘솟았을 형제간의 우애와 며느리의 노고가 아찔하게 대비된다.

설날 아침엔 떡국을 끓여서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세배를 드려야 했다.

차례를 지내기 전에 치르는 의식이다. 우리 집엔 제사가 없어서 떡국만 끓이면 됐지만 큰집 올케언니들은 얼른 세배를 드리고 차례상 준비를 해야 하니 새벽부터 바빴을 테다. 우리가 아직 일어나기도 전, 깜깜한 새벽에 제일 큰집 올케언니들이 찾아온다. 아직 달도 가지 않은 까만 새벽길을 떡국을 들고 한복 곱게 차려입고 와 단정하게 절을 한다. 언니들의 수고는 미처 생각지 못했고 한복 곱게 입고 온 언니들이 그저 이뻤다. 이렇게 넷 집 올케언니들이 다녀가고 나면 부엌엔 입에만 대고 남은 각 집의 서로 다른 떡국이 부엌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오빠들이 결혼을 하자 나도 올케언니들과 함께 새벽길에 동참했다.

언니들은 한복을 입고 엄마는 떡국을 챙겨줬다. 제일 큰 큰집에 가 세배를 드리고 나면 다시 집으로 와서 둘째 큰집 떡국을 들고 가 세배를 드리고, 또 셋째 큰집에 세배를 드리고 또 넷째 큰집에... 엄마는 내가 올 때를 맞춰 떡국을 끓여 준비해 놓으셨다. 한복 입은 언니들 넘어질까 봐 나더러 떡국을 들라고 했다. 그렇게 한 바퀴를 돌고 나면 그제야 아침이 밝아온다. 그러고 나면 사촌 오빠들도 차례로 와 세배를 드린다.

세월이 흘러 어느샌가 설날 새벽의 의식은 며느리들에게도 절을 받는 어른들에게도 불편한 일이 되어 어느 순간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이젠 새벽 순례 없이 차례 전에 다 같이 모여 세배를 드린다. 먼저 아빠가 형수님들께 세배를 드리고 그다음에 사촌들이 어른들께 세배를 드리고 마지막으로 조카들이 모든 어른들께 세배를 드리는 걸로 끝이 난다. 낯선 이 문화에 올케언니들이 얼마나 놀랬을지를 생각하면 웃음이 난다. 요즘 같은 시대에 아직까지 새벽 순례가 남아있다면 찾아오는 며느리 아무도 없지 싶다.


설이 다가오면 방앗간에서 가래떡 한 자루를 뽑아왔다.

지금처럼 먹기 좋게 떡국용으로 썰어 오지 않았던 건 순전히 삯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그 시절엔 어느 집 할 것 없이 누구나 집에서 썰었기에 왜 방앗간에서 썰어오지 않았냐고 따질 줄 몰랐다.

가래떡을 뽑아 온 날은 방 한가운데 비닐을 깔고 그 위에 꾸덕꾸덕해진 가래떡을 펼쳐 놓고 도마 하나씩을 차고앉는다. 나는 떡을 썰 테니 너는 글을 쓰거라, 모두 석봉이 어머님이 된다. 하지만 여린 살은 금방 검지가 뻘게진다. 어른들은 장갑을 끼고 작정을 하고 썰지만 어린 우리야 하다가 일어나면 그만이다.

썬 떡은 한 자루가 된다.

설날 아침 캄캄한 새벽 세배 용부터 시작해 한 달 내내 떡국은 주식이 된다. 지금처럼 쇠고기 고명에 계란 지단은 언감생심이다. 쇠고기는 허연 국물 속에 어쩌다 하나 구경할까 말까 했고 두부에 김가루가 고작이었다.


깜깜한 새벽 떡국을 끓였을 올케언니들과 달빛 따라 소담스레 들고 왔을 그 쟁반과 덮개, 그 길이 아련히 떠오른다.

설날 아침, 나는 김 씨 집안 맏며느리가 되어 떡국을 끓인다. 어린 날의 떡국 한 그릇과 함께 한 어른들도 떠오른다. 곧 임시정부 밴드엔 설날 아침 세배드리는 모습과 성묘하는 사진이 올라올 것이다. 외아들, 아무도 찾아오는 이 없는 이 집안과 사뭇 다른 풍경을 보며 몸은 그곳에 가 있는 양 작은 화면을 보며 큰 미소를 지을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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