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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보다 마흔 Feb 06. 2022

마우스

시골쥐의 상경



외갓집은 함양읍이다.

고사리 같은 아들 둘과 뱃속 아이를 두고 외삼촌이 세상을 떠났다. 외할아버지는 아이들과 며느리를 데리고 함양으로 터전을 옮기셨다. 당신보다 아들 먼저 앞세운 게 남사스럽기도 하고 행여나 며느리를 넘볼 뭇사람들을 눈을 피해 도망가듯, 자진해 집을 옮기셨다.

외숙모의 고단한 삶은 어린 나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오직 방학 때 갈 곳이 생긴 유쾌함과 기대감의 발원지였다. 외삼촌을 한 번도 보지 못한 막내아들이 나보다 몇 살 위 오빠라 같이 놀 친구가 돼 주었다. 가방 속에 넣어 갔던 '방학생활'은 방학 동안 한 번도 꺼내보지 않았고 오빠를 따라 산으로 개울로 쫓아다녔다. 우리 마을에 있는 소담스러운 개울이 아니라 바다와도 같이 넘실대는 강물이 무서워 오빠 꽁무니에 붙어 건너던 좁은 다리도 생생하다.


외숙모 집이 좋았던 건 버스를 타는 설렘도 있었지만 외숙모의 신식 요리들 때문이기도 했다.

엄마는 한 번도 해 주지 않은 '짜장'을 외숙모는 냄비 가득 만들어주셨다. 처음 보는 시커먼 짜장을 밥 위에 올려주시면 하얀 쌀밥을 새카맣게 색칠하며 비벼 먹었다. 다른 날엔 면을 삶아 짜장을 올려주셨다. 엄마가 해 주는 면은 국물에 담긴 물국수가 전부인데 외숙모는 요술을 부리는 듯하다.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한 신세계의 연속이었다. 면 위에 부은 짜장, 그게 짜장면이었다는 건 한참 후에나 알았다.

하지만 외숙모 집엔 맛있는 음식만 있는 게 아니었다.

싱크대 밑으로 지나가는 커다란 쥐를 처음 봤을 땐, 내 눈을 의심했다. 밥을 먹다가 마주친 회색 덩어리에 순간 목구멍이 탁 막히는 듯했지만, 어릴 적부터 건강했던 내 비위는 어느새 길을 열어 짜장을 내려보냈다. 밥 먹는 동안 쥐와 눈이 마주치지 않으려고 싱크대를 등지고 앉았던 어린 잔머리도 기억난다. 행여나 쥐들이 먼저 짜장의 간을 본 건 아닌지 의심을 했었지만, 의심까지도 꿀꺽 삼켜버렸다.


우리 집에도 쥐가 많았다.

하지만 우리는 먹이사슬을 이용해 식사시간에 출몰하는 쥐는 예방할 수 있었다.

고양이는 쥐를 원전 봉쇄해 주었다. 하지만 고양이도 감당 못하는 쥐가 있었으니, 그건 천장에서 널뛰기하는 쥐였다. 낮에는 쥐가 운동회를 하든 줄넘기를 하든 상관없었다. 하지만 잘 시간이 되면 자야 하는데, 캄캄한 천정 속 쥐들은 시계를 볼 줄 몰랐다.

이불을 덮고 누우면 육상경기가 시작됐다.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3m 남짓한 거리를 전력 질주하고 승리의 세리머니를 하는 쥐들의 육성이 들려왔다. 발을 구르며 아쉬워하는 진 팀의 한숨소리도 들려왔다.

엄마는 누운 채로 '쉭, 쉭'하며 그들을 협박했지만 엄마의 협박은 꽂아둔 허수아비에 불가했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 파고 예민한 사람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아빠는 효자손을 이용해 공갈포를 쏴댄다. 천정 여기저기를 쿡쿡 찌르며 무법천지 그들에게 협박을 가한다. 순간, 정적이다. 놀란 새끼 쥐의 딸꾹질 소리도 들린다. 남자 대 남자, 우리에게 아빠가 있듯 그들에게도 아빠가 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그들의 아빠는 가족들보다 한 발 앞으로 나와 탐색을 한다. 어느새 지난번과 같은 공갈포였음을 확인한다. 그들의 경주는 다시 시작된다.


외갓집의 쥐가 나에게로 왔다.

엄마 집의 쥐는 보지는 못했지만, 발자국 소리로 유추 건데 그다지 크지 않다. 반면 외숙모 집 부엌을 점령한 쥐는 흡사 새끼 고양이만 했다. 시골쥐와 서울쥐 이야기를 경험에 의거해 온전히 공감해 읽었다.

털실뭉치 같았던 회색 뭉치가 여기 부산까지 어떻게 찾아왔는지는 아직도 의문이다. 엄마 집 천정에 있던 쥐는 분명히 아니다. 코끼리가 그 소리를 낼 리는 없다. 나에게 온 쥐는 서울쥐, 외숙모 집에 있던 쥐가 틀림없다.


발바닥에 이상이 온 건 몇 년 전 워터파크에서 온종일 넋을 팔고 온 이후부터다. 처음 가 본 워터파크는 신세계였다. 어릴 적 물놀이하던 개울을 다시 만난 듯, 물고기로 돌아갔다. 다만 난이도 높은 곡예가 있어 가슴이 벌렁거리기는 했지만 그 모든 곳에 물이 있었다. 얼핏, 중이염에 대한 걱정이 올라오긴 했지만 협곡에 나타난 출렁이는 파도 풀에 놓여버렸다. 온종일 뙤약볕에 맨발로 돌아다녔더니 퇴장할 때쯤 발바닥이 따끔했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발가락 밑에 생긴 지간신경종이란 녀석이 늘 나를 따라다녔다. 많이 걷지 못하게 만들었다. 깜빡거리는 횡단보도를 뛸 수 없게 만들었다. 박완서 님의 이멜다 구두는 그림의 떡이었다. 오직 발바닥 편한 운동화 한 켤레가 교복처럼 돼 버렸다. 걷기 앱을 깔고 점검을 해 보니 5 천보가 넘어가면 발바닥이 아파졌다.

그날, 여러 가지 일들이 뒤엉키는 바람에 내 걸음은 8 천보에 육박했다. 빨간 신호가 켜진다.

단잠에 빠진 새벽 3시, 난데없이 서울쥐가 나타났다. 너무 놀라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왼쪽 종아리에 달라붙어 놔주질 않는다. 입이 떨어지지 않아 어떤 요구도 할 수 없다. 그가 하는 대로 내버려 둘 수밖에 없다. 이불을 걷어차고 이마와 입가, 온 얼굴의 인상을 다 접은 후에야 종아리를 놔준다. 잠시 후 끓어오르는 욕망을 해소한 듯 쥐는 사라진다. 쥐덫을 놔도 오고 이쁜 접시에 쥐약을 담아놔도 걸려들지 않는다. 컨디션 좋은 날이나 걸음에 욕심을 내 보는 날에는 어김없이 그들이 나타난다. 내 권모술수가 통하질 않는다. 어르고 달랠 수밖에 없음을 안다.


버릇없이 모신 탓일까?

40년 전 외숙모 집에서 봤던 쥐는 음침한 야밤 아녀자의 방에 불시에 들이닥치는 것도 모자라 내 책상 위를 점령했다.

아예 네모난 침대를 깔고 팔을 괴고 누워있다. 긴 꼬리는 걸리 적 거린다는 듯 잘라버린 지 오래고 시커먼 형색을 하고도 도도하게 누워있다. 몸만 뉜 채로 유유자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집 일인자 구실을 하고 있다. 하지만 네 명 모두 이 녀석 없인 살 수 없다니 상전으로 모실 수밖에 없다.

하지만 싱크대 밑을 돌아다니고 육상을 하던 그때와는 다르다.

믿을 건 젊음밖에 없었던, 혈기왕성하던 청춘은 사라지고 제 의지로 움직이질 못하고 주인의 손놀림에 의해서만 움직인다. 오른손 들어 왼손 들어 청기 내려 백기 내려하는 명령만 따르며 늙은 몸을 주인에게 의탁하고 있다.

늙고 병들어 우리 집으로 돌아온 서울 쥐다. 어린 날 그 놀란 가슴을 생각하면 하수구에 쳐 넣어도 모자라지만 내 속에 깃든 살생 금지를 받들어 그를 모신다. 극락왕생할 그날까지 극진히 마우스를 어루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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