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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보다 마흔 Feb 11. 2022

인간은 ㅁㅁ하고 인생은 ㅁㅁㅁ다.

로댕 생각하는 사람






2013년 2월, 박웅현 님의 <책은 도끼다 >를 읽게 되면서 다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연년생 육아에서 벗어나고 시집살이도 적응되는 시점이었다. 저자가 책에서 소개하는 책들을 하나하나 따라 읽기 시작하면서 인문서를 읽어 보고 또 돌아와 저자와 내 독서법을 비교해 가며 책을 읽어 가기 시작했다. 

'사람이 만든 책 보다 책이 만든 사람이 더 많다'라는 푸름이 아빠의 말을 공감한다. <책은 도끼다>가 나에게 그런 책이다. 누군가에겐 인상적이지 않은 책일 수도 있지만, 나에겐 재미난 독서를 시작하게 해 준 의미 있는 책이다.


지난해 5, 6월 김해 화정 도서관에서 김 륭 선생님의 시작법(詩作法) 수업에 참여했다. 동시를 시작은 했지만 이론 수업이란 걸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기에, 시간과 거리에 상관없이 무조건 가야 할 곳이었다. 부산에서 지하철과 경전철을 갈아타고 1시간이 넘게 걸리는 곳에 있는 도서관이다. 

첫 수업, 설렘과 기대감이 절망으로 바뀌는데 한 시간이면 충분했다. 임지은 님의 '식물에 가까운 책', 안희연 님의 '고트 호브에서 온 편지' 등 읽지만 해석할 수 없는 시들을 가져오셔서 그야말로 멘붕이었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참가자들이 어려움을 토로했다. 그나마 그 동질감이 작은 위안이었다. 

"이런 시들을 가져오는 이유는, 여러분들도 이렇게 쓰라는 게 아니라, 이런 시들을 자유자재로 해석할 수 있어야 자유롭게 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시를 배우기 위해 참여한 수업에서 그동안 한 번도 겪어보지 않은 좌절감과 절망감에서 헤어 나올 수 없어 힘든 여름을 보냈다. 해석할 수 없는 내 짧은 지식과 사유의 깊이를 인정해야 했다. 나아갈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그 구덩이가 너무 깊어 도저히 올라올 수가 없었다. 글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써지지 않는 건 당연했다. 툭, 누군가 손만 대도 눈물이 나왔다.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사랑하는 내 아내가 원고지 한 장 대신 써줄 수 없고, 사랑하는 아들도 마침표조차 대신 찍어 줄 수 없다"라는 조정래 님의 절대 고독에 관한 글을 읽는 순간엔 서럽게 목 놓아 울었다. 누구도 이 벽을 같이 넘어줄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인간은 □□하고, 인생은 □□□다.

선생님은 빈칸에 들어갈 당연하지도 않고 반박 불가한 말을 생각해 보라고 하신다. 인간과 인생에 대한 반박 불가한 형용사, 어떤 게 있을까?

인간은 멸망하고, 인간은 반듯하고, 인생은 알수없, 인생은 모르겠, 인생은 동그랗.....재미나고 기발한 말들이 튀어나온다. 적당한 단어가 생각나지 않는다. 

선생님은 새로운 인식과 사유의 깊이, 낯설게 보기를 강조하셨다. '모른다'라는 전제로 사물을 봐야 새롭게 보인다고 알려주셨다. 질문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가져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고등학생 시절, 사랑한 여학생에게 '사랑한다'라는 말보다 더 좋은 말을 찾아줄 거라고 했다고 한다. 하지만 아직까지 그보다 더 좋은 단어를 찾지 못했다고 하셨다. 선생님의 이 말씀이 바로 인간과 인생에 대한 적합한 형용사라고 여겨진다.


지난달에 또 한 권의 의미 있는 책을 읽었다.

신형철 님의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이란 책이다. 

똥인지 된장인지도 모르고 시작한 동시 쓰기가 가장 어려운 문학 중의 하나라는 걸 알았다. 한정된 독자층을 위한 문학성 갖춘 글을 쓰는 일이 어떤 문학보다 어려운 일이라고 말씀하셨다. 내가 뛰어든 이곳이 무시무시한 곳임을 뒤늦게서야 알게 되었다. 

신형철 님의 언어는 넓은 수족관에서 유유자적 노는 물고기가 아니라 횟집 좁은 대야에서 펄떡이는 살아있는 물고기 같았다. 입체 동화책처럼 글이 살아 튀어나올 것 같았다. 

그제야 김 륭 선생님이 말씀하신 분이 바로 이 분이었음이 상기된다.


인간은 이상하고 인생은 흥미롭다.

바로 신형철 님이 하신 말씀이라고 하셨다.

모호한 인간과 인생에 대한 정의를 내리신 분을 이제야 책으로나마 만나게 됐다. 왜 선생님이 이분을 그렇게 거론하셨는지 그분의 넘나드는 언어를 읽으며 이해되었다. 읽은 책 보다 안 읽은 책이 더 많아 이해하지 못하고 공감하지 못하는 내용이 많았지만, '컨베이어 벨트를 타고 오는 아름다운 문장'에 넋을 잃고 띠지를 붙였다.


인간처럼 정의 내리기 어려운 단어가 있을까? 

'이상하다'라는 신형철 님의 형용사가 그나마 다양한 인간을 아우르기에 적합한 단어라는 생각이 든다. 작은 나 한 사람조차도 양면의 널을 뛰고 있으니 이 많은 사람을 포괄할 적당하고 반박 불가한 단어란 생각이 뒤늦게 들었다.

'흥미롭다'라는 말이야말로 인생을 아우르는 단어란 생각에 동의한다.

'흥미롭다'라는 단어는 설레는 단어다. 성공과 나락이 기쁨과 절망이 공존하는 인생은, 우주에서 바라보는 흥미로운 광경일 테다. 일희일비하는 인간이 가지는 원초적이고 원색적인 단어 같다.


'인간'과 '인생' 대신에 '나'를 넣어 본다.

나는 이상하고 나는 흥미롭다.

낯설긴 하지만, 말 되는 문장이다. 

나야말로 이상한 존재의 극치다. 시시각각 다른 감정 카드를 꺼낼 수 있고, 알 수 없는 행동들을 일삼고 나이 들어가면서 그야말로 이상한 행동들이 늘어가고 있다. 지난주 아들 생일을 까먹었고, 새벽 책 읽기에 몰입해 아침 밥할 시간을 놓여버려 가족들이 빈속으로 출근을 하고, 한 번 만에 해결할 일을 두 번이나 가서 해결하고, 이쁜 코트에 언밸런스한 바지를 입어 진짜 이상한 차림으로 외출을 하기도 한다. 이상한 인간의 표본 같음에도 불구하고 '이상한 사람'으로 손가락질받지 않음이 다행한 일이다.

나는 흥미롭다.

내가 봐도 흥미롭다. 나는 움직이는 사람이다. 몸 쓰기를 좋아하고, 다니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는 사람이다. 나 잠든 사이에 누군가 부속 하나를 갈아 끼운 듯, 나는 다른 사람처럼 살아가고 있다. 서서 돌아다니는 사람이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있는 사람이 됐다. 상상도 해 본 적 없는 일이다. 어릴 적 무의식으로 배운 글과 말을 이용해 글을 쓰는 사람이 되어 있다. 이런 일을 재미나게 하는 사람이 되었다. 2년 만에 만나는 이가,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라고 묻는다. 

인간은 이상하고 인생은 흥미롭다. 

나는 이상하지만 정상적으로 살아가고 내 인생은 점점 더 흥미로워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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