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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보다 마흔 Feb 15. 2022

모든 것이 꽃이다

꽃 항아리 안자.



유튜버 박 위, 그는 그것이 머리카락을 움직이는 것과, 손톱을 움직이는 것과 같다고 한다.

잘 나가는 청년에게 어느 날 닥친 시련, 그는 여과 없이 온몸으로 맞이해야만 했다.


지난주, 요가하는 이들이 도서관 사서 선생님 댁에서 모였다.

설도 지났으니 떡국을 끓여주시겠다고 초대를 해 주셨다. 체구는 작지만 늘 큰언니 같은 넉넉한 품으로 우리를 맞이해 주시는 분이다. '토지'의 고장, 하동 악양의 너른 들판이 선생님의 작은 가슴에 깃들어 있나 보다.

과일도 술도 다 있으니 빈손으로 오라고 하신다. 대신 재미난 이야기 하나씩을 가져오라고 하신다. 무슨 이야기를 준비해 가야 할지 선물을 준비할 때 보다 더 고민이다. 그런데 정작 재미난 이야기마저 본인이 준비해 두고 계셨다. 말을 잘하고 싶어서 스토리텔링 수업을 신청했는데 너무 말 잘하는 사람들이 많아 그다음 날 수업을 들어가지 못했다는, 웃지 못할, 웃긴 이야기를 하셔서 미안하지만 실컷 웃었다.

닭 육수로 끓인 구수한 떡국에 시골 김장김치 맛이 일품이다. 그 어떤 요릿집도 부럽지 않은 곳이다. 요란스럽지 않은 잡채의 담백한 맛에, 요가 선생님이 준비한 김치전까지 풍성하고 재미나다.

늘 웃음을 리더 해주는 혜숙 언니가 있어 모임이 풍성하다. 재미없는 이야기도 재미나게 마무리해 주는 언니다. 언니는 새해 들어 감사일기를 쓰고 있다며, 착하고 감사하게 살고 있다고 뿌듯해한다. 부족하고 아쉬운 것들도 감사하기 시작하니 다 고마운 일이라며 철학자가 된 듯 말한다. 그러면서 어느 유튜버를 소개해 줬다.


"여러분, 지금부터 머리카락에 힘을 줘 보세요, 자, 이제부턴 손을 들고 손톱에 힘을 줘 보세요, 어때요 힘이 들어가나요?".

키도 크고 잘 생기고 옷 잘 입는, 그야말로 힙한 청년은 패션회사에 들어갔고 실력을 인정받아 6개월 만에 정직원 발령을 받았다. 그날 밤 친구들과 마신 술에 필름이 끊겼고 눈을 떠 보니 중환자실이었다고 했다. 감각이 전혀 없는 몸이 처음엔 아직 마취가 안 풀린 건 줄 알았단다. 하지만 의사 선생님은 몸의 상태를 사실 그대로 말씀해 주셨다고 한다. 아무리 몸을 움직여 보려 했지만, 머리카락에 힘을 주는 것과 같고, 손톱에 힘을 주는 것처럼 무의미했다고 한다.

온몸이 주삿바늘과 기계로 뒤덮여 있음에도 그의 얼굴은 밝았고 친구들이 말하길 '넌 입이 다쳤어야 했다'라고 말할 정도로 긍정적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기적적으로 얼마 지나지 않아 손가락 하나를 움직일 수 있게 되었고 피나는 재활 끝에 상체를 쓸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힘든 재활 후 젓가락을 쓸 수 있게 되었을 때, 젓가락으로 라면을 먹는 그 순간이 세상의 행복을 다 가진 듯했다고 한다. 미처 깨닫지 못한, 과거에 누렸던 것들이 모두 기적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박완서 님의 '한 말씀만 하소서'에 기억 남는 대목이 있다.

먼저 떠난 아들을 따라 저세상으로 가고 싶지만 삶을 포기하는 것조차 쉬운 일이 아님을 알고 이기적인 어미라 절규하셨다. 그럼에도 음식이 넘어간다는 자책감에 구역질이 나고 살기 위해서 잠을 잔다는 게 스스로를 용납할 수 없어 자책을 했다고 하신다. 그렇게 아픔과 자책을 날을 보내시고 계시던 날 작가님은 수녀원에 가기로 작정하셨다. 어차피 죽지 못할 거라면 혼자 지내는 것보다 여럿이 같이 지내는 게 나을 것 같다고 판단하셨다. 그곳에서 여러 사람들과 어울리며 자연스럽게 음식을 먹는 자신을 받아들였고 점점 회복의 길을 열어 가셨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병든 수녀님을 수발하는 나이 어린 수녀님이 요강 단지를 안고 나오는 모습을 멀찍이서 보게 됐다. 작가님은 그 어린 수녀님을 표현하시기를 '꽃 항아리를 안으신 듯' 웃으며 나오셨다고 했다. 밤새 가득 채워진 남의 오물 항아리를 꽃 항아리처럼 안고 나오는 수녀님을 보는 기분, 아픔 가운데서도 거룩함을 보셨다고 한다.


"불완전한 삶은 새로운 시각을 선사합니다. 이제 저에게 당연한 삶은 없어요."

박 위 님은 마지막 멘트를 하며 목이 멘다. 환하게 웃으며 강의를 하는 순간이 오기까지 그가 겪어야 했을 고통과 절망의 크기를 가늠할 순 없지만, 존경을 보낸다.

그의 유튜브 채널은 '위라클'이다. 포털에 검색을 해 보니 이미 제법 역량 있는 청년이다. '우리 모두에게 기적을', 그가 겪은 기적의 삶을 통해 우리 모두에게도 기적임을 상기시키는 뜻의 위라클로 받아들인다.

그는 휠체어에 앉아서도 시종일관 웃으며 강의한다. 세상에 자기를 흉내 낼 사람이 없어 자신이야말로 '유니크'한 존재라고 자신 있게 말한다. 어떻게 여기 강의장까지 휠체어를 타고 왔는지, 휠체어를 타고 어떻게 비행기를 타는지 알려줄 사람은 자기밖에 없다며 신나 한다.

사지가 멀쩡한 우리네 젊은 청년들보다 몇 곱절이나 더 쓸모 있는 사람 같단 생각이 든다. 밝고 높은 톤으로 청중에게 희망을 전한다. 그를 통해, 에너지와 자신감은 몸으로만 줄 수 있는 게 아니다는 뜻밖의 생각을 한다.


코로나로 인한 남편의 단축 근무가 길어지고 있다.

몇 달이면 끝날 줄 알았던 게 어느새 1년이 가까워지고 있다. 일주일에 3일 출근을 하고 4일을 쉰다. 당연히 급여도 삭감이다. 내 자유를 뺏기는 것도 모자라, 끼니를 챙기기 위해 내 시간마저 빼앗기고 있다. 적응이 될 법도 하련만 남편이 집에 있는 것도, 부족한 생활비도 아직도 적응이 어렵다.

딸은 작년까지 계약 근무가 끝이나 집에서 놀고 있다. 잠시 잠깐 볼 일이 있어 나가긴 하지만 고요한 내 시간을 빼앗겼다. 남편과 딸, 게다가 오후 수업을 나가는 아들마저 모두 있는 날은 평일인지 주말이지 구별이 안 될 정도다.


'과거의 내 모든 삶은 기적이었다'. 박 위 님의 '위라클'을 거실 한가운데 써 붙여놔야겠다.

이 모든 것이 행복이고 기적임을 상기시켜야겠다. 남의 도움 없이 스스로 움직일 수 있고, 스스로 밥을 떠먹을 수 있고 스스로 화장실 볼일을 볼 수 있는 건 잃어보지 않은 기적이다.

집에 오래 머무르는 남편도 딸도, 아들도 모두 나에게 기적이고 행복의 요소들임을 잊지 말자. 감사함을 지극히 감사하자. 내 곁에 있는 모든 것, 나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모든 것들이 요강 단지가 아니라 꽃 항아리임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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