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꽃보다 마흔 Mar 01. 2022

없는 개

없지만 있는 뚱이



2021년 2월 20일 아침, 뚱이를 보내기로 결단을 내렸다. 며칠째 고통으로 잠을 못 자는 뚱이를 붙잡고 있는 게 내 욕심이란 생각에 이르렀다. 남편은 처음 병원에 다녀온 날부터 이미 각오를 하고 있었다.

"이제 우리를 떠날 때가 됐나 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없다."

13년이나 동고동락한 사람의 입에서, 게다가 제 발로 가서 강아지를 사 온 사람의 입으로, 당신을 제일 잘 따르는 강아지에게 하는 말이라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냉정하고 인정머리 없는 말이다.

거부했다. 나는 뭐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어떻게든 살려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지켜줄게~"라고 수없이 뚱이에게 속삭였다.

하지만 그날은 나도 내 말을 취소해야만 했다. 그렇게 뚱이를 보내기로 마음먹었다.


처음 뚱이에게 이상이 발생한 건 1월 마지막 주였다. 오른 다리를 절룩거리며 걷는 모양이 골절이거나 금이 갔다고 생각했다. 엑스레이 상엔 골절이 아니었다. 다행이지만 의문이다. 의사 선생님은 조심스레 노화로 인한 신경계 이상일 수도 있다며 큰 병원으로 가 보길 권하셨다.

그동안 건강하게 자라 예방주사와 미용 때 외엔 병원 갈 일이 없던 녀석이었다. 특히나 이런 종합병원은 우리도 저도 낯설다. 대기시간이 길어 주차장에서 산책을 시켜주는데, 앞다리에 힘을 못 주고 자꾸만 꼬꾸라진다. 집을 나설 때만 해도 이렇진 않았는데, 잠시 주차장을 돌아다녔을 뿐인데 다리랑 몸이 시커메졌다.

"신경계 이상으로 보이는데, 멘탈엔 이상 없는 것 같으니 일주일 치 약을 먹으면서 지켜보도록 해요."

의사 선생님도 일주일이면 나을 것 같단 말씀을 하셨다. 하지만 뚱이는 일주일 만에 네 다리를 다 쓰지 못하게 굳어버렸다. 그렇게 건강하던 녀석이, 제 나이도 모르고 씩씩하게 뛰어다니던 녀석이 어떻게 일주일 만에 못 일어날 수 있단 말인가? 우리의 발버둥과 노력과 상관없이 뚱이의 몸은 점점 굳어갔다. 일주일 후, 대기하는 강아지가 많아 할 수 없이 다른 병원을 갔다. 우리 강아지만큼이나 연세 드신 할아버지 의사 선생님이셨다.

"나이가 많아서 그래, 어쩔 수 없어. 순리대로 해~"

아등바등하는 나에게 선생님은 받아들이라고 하셨다. 본인이 본인의 나이 듦과 나약해짐을 받아들이시듯, 나에게도 그 마음을 낼 것을 강조하셨다.

선생님이 처방해 주시는 약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뻣뻣하게 굳은 다리는 접어지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의식은 멀쩡해 대소변 실수를 하고 싶지 않은 눈빛을 보낸다. 걸을 수 없는 몸을 화장실로 밀고 가려고 애를 쓰는 모양이 가련하다. 그 자존감을 인정해 주고자 화장실에 안고 가면 비명과 함께 대변 한 덩어리를 눴다. 그러나 그것도 며칠 가지 못했다. 몸이 따라주지 않는 현실을 뚱이도 받아들였다. 종일 누워있으려니 온몸이 붉은 반점이 나기 시작하고 기저귀 발진도 일어났다. 중풍 환자 돌보듯 떨어지지 않고 돌봤다. 햇살 따뜻한 날에 옥상에 안고 가 쫓아다니던 새들을 보여줬지만 눈부심에 그저 귀찮은 내색만 보였다. 살아도 살았다고 할 수 없었다.


밤마다 고통으로 짖어대는 바람에 안방을 나와 둘이서 거실 잠을 잤다.

스스로 몸을 뒤척이지 못하니 장판이 조금만 뜨거워도 운다. 오줌을 눠도 아프고 대변을 눌 때면 더욱더 비명을 질렀다. 건강할 땐 많이 먹이지도 못한 통조림을 처음엔 반갑게 받아먹더니 그것마저 거부했다. 고개가 뻣뻣해서 먹이를 먹는 것도 힘들어졌다. 물마저 거부했다. 결국 혈변과 혈뇨를 누기에 이르렀다.

한숨도 자지 못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그래, 이건 고통이다. 보내자.


"괜찮겠나?"

남편은 내 마음을 다시 한번 확인한다. 남편은 일찌감치 마음을 접었고 내가 결정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영원히 곁에 두고 싶지만 고통을 없애주는 것도 도리란 생각에 이르렀다.

할아버지 의사 선생님을 찾아갔다.

차갑고 휑한 진료실, 그곳에 뚱이를 눕혔다.

선생님은 어려운 결정을 한 우리를 다독여주신다. 사람을 보내는 것처럼 마지막 절차를 예를 갖춰 진행해 주셨다. 좋아하던 이불에 폭 쌓여 누운 마지막 모습에 안녕을 고할 시간이다. 선생님은 번복할 의사가 없는지 마지막으로 다시 확인하신다. 마음 같아선 안고 뛰쳐나가고 싶지만 큰마음을 가지고 왔다.

선생님은 잘 가라는 인사말과 함께 목덜미에 주사를 주셨다.

영문도 모른 채 안겨온 곳, 뚱이는 주사를 맞자마자 짧은 비명을 질렀고 곧바로 호흡이 가빠져왔다. 눈알만 굴리며 분위기를 살피던 뚱이는 놀란 눈을 번뜩이며 '이게 무슨 주사냐고' 우리에게 묻는 듯하다. '난 아직 준비가 안됐다'라는 듯 애원의 눈빛을 보낸다. 뚱이가 놀라지 않도록 소리 내지 않으려 하지만 터진 울음을 걷잡을 수 없다.

주체 못 하는 나를 두고 남편이 뚱이를 안는다. 불안한 뚱이를 감싸 안아준다. 생과 사 그 간극의 짧음이여, 긴 고통마저 생명이라서 이어가길 바랐던 것이 주사 한 방으로 이 모든 것을 끝내 버린다.

마지막 눈빛에 나는 죄의식을 느꼈다. 떠났지만 마지막 비명이 떠나질 않고 내 뇌리에 남아 단죄처럼 고통을 받아야 했다. 엄마는 '죄가 아니라, 죄를 사한 거다'라고 위로해 줬지만 한 생명의 마감을 내가 결정했다는 죄책감이 떠나질 않았다. 차라리 생명이 끝나는 마지막까지 기다렸어야 했단 후회가 밀려왔다.


개가 죽고

감나무 밑에 빈 개집

빈 개집 앞에 개밥 그릇만 놓였습니다.

바닥이 반질반질한

개밥 그릇만 놓였습니다.


빈 개집을 들여다보던 할머니가

개밥 그릇에 떨어진 땡감을 주워 듭니다.

할머니가 빈 개집 안을 들여다봅니다.


꼭 꼬리 치며 나올 것 같아서

컹컹 짖으며 드러누울 것 같아서


없는 개는

없는 개지만

없는 채로도

아직 개집 안에 삽니다.


송진권- <없는 개>


뚱이가 떠난 지 1년이 됐다.

여전히 외출하고 돌아오면 현관에서 꼬리를 흔들며 기다릴 것 같다. 졸리면 내 팔을 파고들며 팔 베개를 해 달라던 폭신한 감촉도 여전하다. 화장실에 똥 싸고 간식 달라고 펄떡이던 녀석은 아직도 여전히 우리 집에 남아있다.

없는 개는, 없는 개지만 영원히 내 발에 걸리적거리며 우리 집에 남아 있을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모든 것이 꽃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