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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보다 마흔 Mar 13. 2022

봄의 서약

부지런해지기 약속



어제 딸아이 파마하러 간다고 같이 나갔다가 생각지 못한 봄을 만났다. 집안에서 웅크리고 있느라 알지 못했던 봄이 어느새 가까이 와 있었다. 기온이 훅 올라 입고 나간 패딩이 민망해졌다. 옷을 벗기는 바람과 해님 이야기처럼 어느새 옷이 더워짐을 느꼈다.

'아, 봄이구나. 만사 제쳐두고 나가야겠다.'

집에 돌아와 봄에 걸맞은 옷차림을 하고 공원으로 나갔다. 미처 깨닫지 못한 봄을 직접 내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역시나 봄이 맞았다. 노크도 없이 다가와 있는 걸 나만 모르고 있었다.

 매화가 이미 거의 다 열려 있었다. 가지 끝엔 아직 봉오리인 채 있었지만 나를 기다리지 못하고 다 펴 있었다. 상춘객들이 모두 꽃을 모델 삼아 사진사 놀이를 하고 있다. 꽃도 그들도 이쁘다.


  봄꽃 중에 목련을 제일 좋아한다. 꽃집에 있는 꽃 외에 제일 좋아하는 꽃이기도 하다. 목련은 거룩하다. 잎 작은 매화나 벚꽃에 비할 바가 못 된다. 더 작은 산수유는 어림없다. 사람으로 치자면 큰 엄마 같다. 소박하고 작은 마음이 아니라 큰 마음을 담고 있는 어른 같은 꽃이다. 남의 말과 생각에 좌지우지되는 우매함을 찾을 수 없다. 천상천하 유아독존 같은 신비로움이 있지만 거만하지 않고 고매하다. 목련의 하이라이트는 펼쳤을 때 보다 펼치기 직전에 있다. 길쭉한 물방울 모양을 한 봉오리는 엄마 뱃속에 웅크린 태아처럼 꿈속이다. 호기심이 잔뜩 깃들어 있다. 온갖 잡음을 잠재우듯 눈을 감고 차분하다. 한껏 꿈꾸고 일어난 봉오리는 드디어 때가 됐음을 안다. 한 잎  한 잎을 치맛자락처럼 펼치면서 깨어난다. 새하얀 웨딩드레스처럼 우아하다. 얇으리한 레이스가 아니라 탑 여배우들이 입는 베라왕 웨딩드레스다. 도톰한 잎사귀에 봄꽃을 대표하는 품격이 깃들어 있다. 감히 진달래나 민들레가 흉내 내기 어려운 두께다. 드레스 두께만큼이나 목련의 마지막도 무겁다. 바람을 타고 훨훨 날아가는 가벼운 꽃잎에 비하면 큰 사람의 비애다. 그 자리에 나서 그 자리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올곧고 한결같은 사람에게서나 볼 수 있는 묵직함, '내가 조선의 국모다'하던 명성황후의 담대함이다.


 봄비가 내린다. 참 오랜만에 우산을 꺼냈다. 그만큼 가물었다. 강원도 산불이 오래도록 진화가 안 된 이유가 있었다. 도서관 들렀다 친구랑 커피 한잔하기로 한다. 신발이 젖는 건 싫지만 오랜만의 비라 우산 쓰고 걷는 것도 나쁘지 않다. 차 타고 나가 바람 쐬고 오자며 친구가 차를 가지고 나왔다. 봄비도 오고 기온도 낮지 않다. 실내에 사람도 많아 테라스에 자리를 잡았다. 빗소리와 음악소리와 봉곳한 카푸치노, 더 부러울 게 없다. 완벽하다. 겨우 며칠 안 봤을 뿐인데 쉬지 않고 할 이야기가 나온다. 봄만큼이나 신비롭다. 주고받고 나오던 말이 밑천이 보일 때쯤 비가 그친다. 차는 그대로 두고 한 바퀴 대학교 교정을 거닐기로 한다. 비가 그치자 우리처럼 산책 나온 사람이 제법 많다. 봄꽃을 보며 '시'가 생각난다는 중년 여성에게서 사랑을 느낀다. 한국만큼 시인 많은 나라도 없고 한국처럼 시집이 안 팔리는 나라도 없단다. 전 국민이 시인에 가까운 나라다.

 어머나 세상에, 저 멀리 새하얀 목련이 어느새 활짝 피어 반가움보다 아쉬움을 자아내게 한다. 미처 보지 못한 꽃봉오리에 대한 야속함이다. 집 앞 놀이터 목련만 보며 때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여긴 어느새 만개다. 해마다 꽃들이 부지런해지고 있다. 내가 더 부지런해져야 함을 느낀다. 1년을 꼬박 기다려야 만날 수 있는, 인간이 가공해 내지 못하는 꽃에 대한 미련이다.


 오늘, 활짝 핀 목련을 보고 왔음에도 기쁨보다 아쉬운 마음이 더 크다. 뭐 한다고 바쁜척했던지 스스로가 얄밉다. 용서해 주기 싫다. 집에 돌아와 노트북을 열고 차를 꺼낸다. 차를 준비하며 생각을 정리한다. 주제와 구성을 생각해 본다. 며칠 전 블로그 이웃이 원두커피를 보낼 거라며 댓글로 주소를 물어왔다. 커피 머신도 없으면서도 좋아서 넙죽 받겠다고 했다. 블로그 언니는 커피뿐만 아니라 이름도 예쁜 벚꽃차, 목련차도 같이 넣어서 보내줬다. 봄에 봄을 선물받았다. 복도 많다. 오늘은 기필코 목련차여야 한다. 티포트에 목련차를 넣고 우린다. 천천히 목련이 피어나는 동안 따뜻한 주전자를 감싸고 기다린다. 튀지 않는 은은한 도 같이 우러난다. 살아서 그 화려함에 비하면 소담스러운 향이다. 그래서 더 좋다.


 어머님은 살아생전 가정에 충실하지 못한 아버님을 일러 말씀하시길, 바람이 부는 걸 내 마음대로 조절하지 못하듯 사람에게 오는 바람도 당신 힘으로 조절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하셨다. 모진 비바람 다 겪으신 후에야 받아들인 절망과 좌절, 억울 그리고 겸허한 마음이시다.

 바람이 불어오는 건 내 손으로 막을 수가 없다. 계절이 바뀜도 내 의지로 되는 게 아니다. 인간이 아무 짓을 하지 않고도 저 누릴 수 있는 혜택이 바로 자연이다. 때가 되면 알아서 꽃을 피우고 차례대로 잎을 내 보낸다. 어느 한 나무도 어느 풀 하나, 휴직계 낸 걸 보지 못했다. 들리지 않고 보이지 않는 것 중에 가장 부지런하고 유일한 것일 테다.

인간만이 인간을 통제하고 자연마저 통제하는 지상 생물 중 가장 건방진 생명체가 아닐까? 봄꽃이 돋아나는 걸 막을 수 없고 나 바쁘다고, 나 춥다고 기다려 달라는 부탁을 할 수도 없다. 그들의 순리에 따르는 것이 내 순리다.


 이슬아 작가님의 '부지런한 사랑'처럼 올봄 부지런을 떨어 보기로 작정한다. 미처 보지 못한 목련 봉오리가 가져다준 오기와 미련이다. 앞으로 펼쳐질 벚꽃의 향연이 남았다. 쑥의 용솟음도 남았다. 세상일에 바빠 또 자연이 차려주는 축제 구경 못할까 봐 부지런을 다짐해 본다. 그들의 순리에 내가 철저히 맞출 것임을 서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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