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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보다 마흔 Mar 15. 2022

이 좋은 술

첫 술에 배부르랴



 김혼비 작가의 아무튼 시리즈 중 하나인 '아무튼 술'을 읽었다. 아무튼 비건부터 메모, 무대, 여름.... 아무튼 시리즈로 엄청난 책을 펴 내셨다. 문장이나 구성, 아이디어, 문체가 젊고 싱싱하고 기깔나고 재미나다. 트렌드도 무척 잘 읽는 작가라는 생각도 든다. '나는 주류(酒類)다.'라는 문장은 '시즌 비시즌'을 가수 비에게 빗댄 표현처럼 적절하고 맛나다. 나에게 특히 부족한 점이기도 해 부러움도 크다. 내실도 중요하지만 그 못지않은 포장도 중요한 시대인 걸 더욱 실감하게 되는 책이다. '아무튼 술'을 읽고 나도 작가님처럼 '술'로 한 꼭지 써 볼까 생각해 봤지만 그건 또 쉽지 않은 일이었다. 부사로 시작되는 제목부터 흉내 내기 쉽지 않다. 동시 대상을 받았을 때도 축하 이면엔 '동시, 그까짓 것' 하는 시선도 있었을 테다. 하지만 쉬워 보이지만 한 줄도 쓰기 힘든 게 바로 동시다. 읽기엔 쉽지만 쓰기 어려운 것 중 대표적인 게 동시일지도 모른다. 읽을 땐 특별할 것 같지 않았던 김혼비 작가님의 글도 막상 흰 백지를 마주하자 손가락이 꿈쩍을 못한다.


 매일 에세이 쓰기, 오늘 193일 차다. 하루도 빼먹지 않고 지난 9월 1일부터 써 오고 있다. 누군가 주제를 던져준 것도 아니었다. 쓰기 만큼 힘들었던 소재와 주제 정하기도 혼자서 고민하고 이겨냈다. 결국은 혼자 해야 할 일이기에 '겪어냈다'라는 표현이 적절하겠다. 하지만 밤이 깊도록 소재를 못 정하는 오늘 같은 날에는 SOS를 친다. 7명이 있는 단체 카톡 방에 소재를 급구한다.

'글쓰기 소재 하나 던져주세요~'

그마저 읽고도 넘겨버리는 사람이 대다수다. 그중 한 분이 구사일생으로 던져주신 소제가 오늘 주제 '술'이다. 아무튼 오늘은 술이다. 결국 술을 써야 한다.


 내가 처음으로 술을 마셔본 건 학력고사를 100일 남겨 둔 날 저녁이었다. 1992년 9월쯤이었나 보다. 후배들이 100일 주 사 주는 풍습이 있어 은근히 기대했던 날이었다. 마을 동생 녀석들이 까만 봉지에 맥주와 안주를 사서 우리 집 작은방으로 찾아왔다. 몇 명만 둘러앉아도 꽉 차는 방이다. 맥주잔이란 게 있을 리 없다. 온갖 물 컵을 다 꺼내 동생 손님들을 대접했다. 처음 마셔보는 술에 기대감이 컸다. 합격을 기원하며 다 같이 건배했다. 맥주 광고 모델처럼 시원하고 진한 맛을 느껴보고 싶었다. 캬~하는 소리가 절로 나오는 상큼함을 기대했다. 그러나 처음 마셔 본 맥주는 상큼함이 아니라 우웩,이었다. 첫 목 넘김에 나는 맥주 대신 다른 걸 삼켰나? 하는 의문이 들었다. 과연 이게 사람들이 그렇게 좋아하는 맥주 맛인지 의아했다. 첫 맥주는 오줌 맛이었다. 무향 무취가 아니라 그보다 못한 맛. 오줌을 먹어 본 기억은 없지만, 요강 단지에 있던 노란 오줌을 마시면 아마도 그 맛일 듯했다. 시원하기라도 했다면 나았을 텐데 텁텁해서 그랬던지 지금 느끼는 맥주 맛은 전혀 느낄 수 없었다. 100일 합격주를 마시며 대학 합격 기원보다, 다시는 맥주를 마시지 않으리란 굳은 다짐을 했다.


 술의 허점 중의 하나가 잊어버리기다. 100일 합격주 그날의 굳은 맹세는 어느새 잊어버렸다. 처음으로 술에 취한 건 대학 들어가기 전 겨울이었다. 오줌 맛을 보고 난 후, 불과 몇 달도 지나지 않은 때였다. 그날, 시골 친구들이 김해에 모두 모였고 대학 합격을 자축하며 오줌 맛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내 취기가 몇 잔에 나타나는지 검증도 하기 전에 흥에 취해 버렸다. 아마도 몇 잔 마시지도 않고 혀가 꼬였을 테다.

"우리 엄마 아빠한테 나 취했다고 일러주면 안 된다, 너희들."

술에 취한 나는 녹음된 카세트테이프처럼 늘어지게 술주정을 했다고 한다. 버스를 타고 부산으로 오는 중에 계속 반복했다 하니 친구들이 어느 역에 나를 버리지 않은 것만도 다행한 일이다. 취한 사람은 부끄럼도 없었으니 이 좋은 술의 장점이다.


 '첫 술에 배부를까?'의 술은 숟가락의 술이 아니라 술(酒)이었을까? 첫 술에 배부르지 않았던 술은 어느새 내 삶 깊숙이 들어와 있었다. 처음으로 술에 취해 남자한테 업혀 간 건 스물세 살 때였다. 오줌 맛에 불과했던 맥주는 하루를 달래주는 노란 비타민이 돼 주었고 허기를 면해주는 밥처럼 퇴근 후 갈증을 해소해 주었다.

 그날, 친구랑 둘이서 술을 마시다 취했던 모양이다. 결혼을 반대하는 부모님과, 헤어질 수 없다는 남편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서로의 고민을 나누다가 술을 이기지 못하고 테이블을 베개처럼 껴안고 잠이 든 모양이다. 난감해진 친구는 25년째 동거 중인 이 남자에게 전화를 해 도움을 요청했다. 집에 있다가 연락을 받은 남편은 바로 달려와 나를 들쳐없고 집으로 데려다주었다. 그때만 해도 야윈 남편과 내 몸무게가 얼마 차이 나지도 않을 때였다. 자기만큼 무거운 여자를 깃털처럼 업고 가는 남편을 보고 내 친구는 '멋지더라'라는 표현을 했었다. 동갑과 연애 중이던 친구 커플은 젊고 산뜻했던 반면 이기적인 남자친구 때문에 고민하던 중이라, 세상 많고 많은 부러움 중에 남자 등에 업힌 늘어진 쌀자루 같은 그 여자가 부러웠다고 했다.

 잠든 여자친구를 번쩍 들쳐업었던 힘은 어디서 나왔을까? 부끄러움이었을까? 그때보다 더 후덕해진 남편에게 그때와 같은 몸무게인 나를 업으라고 한다면 글쎄다,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체중으로 업었던 건 아닌 것 같다.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에 가시가 돋는다.'라는 안중근 의사의 말은 우리 식구에게는 통하지 않는 문구다. 단 하루라도 책 읽는 모습을 보지 못했으니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모르겠다. 안중근 의사의 명언을 남편에게 '술'로 바꿔보라 했더니 '하루라도 술을 마시지 않으면 입에 곰팡이가 핀다'라고 재해석한다. 하루도 책을 읽지 않은 머리에서 나온 것치고 기발하다는 듯 흡족한 미소를 띤다. 행여나 조물주가 창조하신 신체에 곰팡이라도 슬까 봐 꾸준히 알코올을 복용하시는 남편다운 해석이다.

 소주 한 병은 거뜬히 마시던 나도 결혼을 하고 연년생 육아를 하며 이 좋은 술은 점점 멀어져 지금은 쏘맥 두어 잔이면 충분한 주량이 되었다. 김혼비 작가님의 말처럼 주류에서 비주류가 되었다. 하지만 남편에게 술은 여전히 주류고 피보다 진한 보약이라 잊지 않고 챙겨줘야 한다. 술로 하루하루를 버텨내니 보약이 틀림없다. 하루라도 책과 하루라도 술, 인간의 다양성이 바로 우리 가정에 존재한다. 아이들에게 다양성의 바로미터가 되고 있다.

 나사 하나를 살짝 풀어주는 이 좋은 술, 유용한 삶의 도구로 적극 이용하고 있다. 얼른 글 마치고 이 좋은 술과 함께 토요일 밤을 보내려 한다. 주류가 돼도 좋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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