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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보다 마흔 Apr 12. 2022

친구의 축사

친구에게 말하는 3가지 조언



대구 퀸벨호텔, 1층 카페에서 글을 쓰고 있다. 우리 동네 친한 언니네 아들이 결혼하는 날이라 관광버스를 타고 같이 올라왔다. 코로나로 한동안 제한적인 결혼식을 했었는데 이젠 방역 체크도 자율에 맡기고 인원 제한도 두지 않는 일상적인 결혼식을 올린다. 다만 의자를 한 칸씩 띄워 거리 두기는 하고 있다. 결혼식이 끝나고 간단히 점심을 먹고 카페로 내려와 관광버스가 출발할 시각을 기다리고 있다.


결혼식에 참석하면 매번 눈물이 난다. 굳게 마음먹고 오지만 백발백중이다. 딸의 손을 잡은 아버지를 볼 때 이미 가슴이 말랑해지고 부모님께 인사드리고 서로 안아드릴 땐 겨우 참고 있는 눈물을 우르르 쏟는다. 오늘 혼주인 언니는 젊은 날 사별을 하고 홀로 남매를 키웠다. 감사하게도 경제적 어려움을 겪진 않아 몸 고생을 하진 않았으나 남편 없이 아이들 키우느라 빈자리를 많이 느꼈을 테다. 아이들 역시 아버지의 부재에 허전한 날들 많았을 테다. 결혼식 내내 싱글벙글하던 신랑도 부모님께 인사하는 시간이 되자 순간 표정이 굳어졌다. 예상치 못한 울컥함이 보인다. 행여나 신랑이 울지는 않을지 지켜보는 내가 조마조마하다. 아니나 다를까 내 쪽에선 뒷모습만 보이는 굳건한 언니도 어느새 눈물을 찍어내고 있다. 늘 흥겹고 씩씩하던 언닌데, 만감이 교차했나 보다. 다른 식구 앉히지 않고 비워둔 아버지 자리가 더 허전해 보여 참고 있던 눈물이 마스크 사이로 흘러내린다. 나와 같이 동행한 언니도 안경을 들어 올려 눈물을 찍어낸다. 이 좋은 날, 돌아가신 분의 부재와 혼주의 만감이 조금은 공감된다.


오늘 결혼식은 사회자가 주례사 역할까지 도맡아 진행한다. 신랑 신부 측에서 축사, 축가를 해줬다. 친구들의 축사는 낯설지만 인상적이고 감동이었다.

먼저 신부의 고등학교 친구가 준비해 온 편지를 읽었다. 서로의 별명을 부르며 그동안의 추억을 나누었고 시작하는 커플들에게 행복과 축복을 기원해 주었다.

신랑 측에서도 친구가 나와 주례사 버금가는 귀한 마음을 나눠주었다. 친구의 축사는 이미 결혼생활 25년 차인 나에게도 귀감이 되었다. 신랑과 중학교 때부터 친구라고 자신을 소개한 친구는 일찍 결혼해 벌써 8살, 5살의 자녀가 있다고 말했다. 신랑보다 잘하는 것도 없고 가르쳐 줄 것도 없지만 단지, 먼저 결혼한 선배로서 친구에게 세 가지 조언을 하겠다며 시작했다.


우선 '비교하지 말라'라고 한다.

아내를 다른 여자랑도 비교하지 말고, 나 자신을 다른 사람과도 비교하지 말라고 한다. 아내와 나는 '나'로서 이미 충분하다며 서로를 그 자체로 바라보고 사랑하고 존중하길 바란다는 조언을 했다.

두 번째는 '제대로 싸워라'라고 한다.

얼핏, 이해되지 않는 말이었지만, 그는 금방 해석을 붙였다. 서로 상충되는 일들에 충분히 대화하고 절충해야 똑같은 일로 싸우지 않는다며 회피하지 말고 제대로 해결하기 바란다는 말이었다. 화난다고 폭력을 휘두르거나 욕을 하거나 문을 닫고 나가지 말라는 직접적인 말로 피부에 와닿게 말해준다. 내 귀엔 쏙쏙 들어오는 말이었는데 이제 시작하는 커플에게도 와닿는 말일지는 모르겠다.

세 번째는 '비상금을 만들어라'라고 말한다.

아내에게 월급 다 맡기고 한 달 20만 원 용돈으로 살다 보니 아내 생일이나 아이들에게 선물을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할 때가 있다고 한다. 비자금이 아니라 비상금은 꼭 필요하다며 찐친으로서 하는 충고가 한편 짠하게 다가왔다. 잘 살기 위해 허리띠를 조으고 사는 우리네 가장의 모습이다.

이 조언은 친구에게 전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며 진심과 감동을 전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신랑에게 당부할 게 있다며 이어갔다. '신랑은 오늘부터 기독교인이 돼라'라는 종교 발언을 했다. 무교인 언니 집안에서 들으면 의아할 말이었다. 하지만 친구는 바로 설명을 덧붙인다. 신부 이름이 '이 하나'였다. 하나님만 믿고, 하나님만 따르며 하나님만 의지하고 하나님만 바라보고 살라며 센스 있는 마무리를 했다. 듬직한 청년의 말이 공감돼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그 원고를 좀 들여다보고 싶었다.


결혼식에 가면 주례사를 집중해서 듣는 편이다. 지루하고 뻔한 말씀이지만 들을 때마다 고개가 끄덕여진다.

내 결혼식 주례사의 말씀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그날도, 지금도 생각할 때마다 놀라운 말씀이다. 부부의 인연이란 하늘에서 비행기를 타고 가다가 떨어트린 실이 땅에 있는 바늘귀에 들어가는 것과 같이 어렵고 귀한 인연이라고 말씀하셨다. 불가능할 것 같은 예를 들어 귀한 인연을 더 강조하신 듯하다. 이 나이가 되니 가만히 있는 바늘귀에 실 끼우기도 어려운데 하늘에서 떨어진 실이 바늘귀에 들어간다니, 톰 크루즈의 불가능한 미션만큼이나 어려운 게 부부의 인연인가 보다.


젊고 이쁜 커플을 만나고 왔다. 젊고 예뻤던 우리의 그날도 떠올랐다. 그날의 다짐만큼 매일매일을 아름답게만 살지는 못했지만 바늘과 실 세트가 되어 서로가 서로를 따라다니고 있다. 비교하지 않기, 대화로 문제 해결하기, 적절한 비상금 챙기기.

거기에 하나 더 덧붙이자면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를 얘기해 주고 싶다. 기대는 실망을 불러오고 실망은 포기를 가져오기도 한다. 배우자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게 함정이다. 어쩌면 부부의 인연만큼이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일지도 모른다. 서로 다른 점에 매력을 느껴서 만났으나 그 다름이 결혼생활을 힘들게 하는 요인이 된다. 매력이 곧 다름임을 수긍하는 것이야말로 결혼생활의 노하우일 테다.

탄생된 커플의 행복한 삶을 응원한다. 남아있는 우리의 날도 응원한다. 그땐 매력이었으나 지금은 미움의 원흉인 그의 고집이, 그땐 매력이었으나 지금은 주름으로 전락한 내 전도연과 다르지 않음을 받아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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