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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보다 마흔 Apr 19. 2022

그녀, 고수다

고수와 하수의 구별법




한근태 작가님의 <일생에 한 번은 고수가 되어라>는 처음부터 끝까지 고수와 하수를 비교하면서 고수에 이르는 방법을 알려주신다. 읽는 내내 고개를 끄덕거리며 공감하게 되는 책이다. 그중에 인상 깊은 것 중의 하나는 '언어 습관을 고쳐야 한다'라는 부분이다.


'긍정적이기 되기 위해서는 긍정적인 단어를 골라 사용해야 한다. 누군가 안부를 물을 때 '그저 그렇습니다.'라고 답하는 사람과 '참 좋습니다.'라고 말하는 사람 둘 중에 누가 성공 확률이 높을 것인가? 볼 것도 없다. 긍정적으로 말하는 사람이다. 뇌는 현재와 미래를 구분하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긍정적으로 말하면 무의식적으로 뇌는 이 사람은 성공했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행동하게 만든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된다.'


성공과 실패를 떠나 긍정의 언어는 삶에 유용한 도구 중의 하나이다. 가급적이면 좋은 면을 보고 이왕이면 긍정적으로 사고하려고 한다. 잘 버려지지 않는 '덴~장~'을 제외하곤 말이다.

내 주위에 남동생의 부인, 올케를 자랑하는 언니가 있다. 그분의 얘기는 들을 때마다 같은 며느리 입장에서 존경스럽다. 그런 올케를 둔 언니가 샘이 난다. 그런 사람이 가족으로 들어오면 좋겠다는 욕심도 부려본다. 착하고 성격도 털털하고 수더분해서 관계를 잘하는 모양이다.

하루는 동생네 가족이 이사를 해서 부모님을 모시고 방문했다고 한다. 집이 크지도 않을뿐더러 서로 편하고자 근처에 숙소를 정해놓고 갔다고 한다. 집에 들러 놀다가, 잠은 밖에서 잘 요량이었다. 이 사실을 안 올케는 말도 안 되는 일이라며 손사래를 쳤다고 한다.


"아니, 형님 무슨 소리 하십니까? 우리 집 대궐입니다. 스무 명도 더 잘 수 있습니다."


설령 밖에서 자더라도 말만 들어도 이쁜 올케다. 내 것 다 줘도 아깝지 않을 것 같다. 만날 때마다 입이 바가지만 해져서 자랑할 만하다. 34평을 대궐로 보는 사람, 시댁 식구 방문에 방문을 활짝 열어 줄 수 있는 올케, 그녀가 진정 고수다. 시댁 식구들 초대를 귀찮고 어렵게 여기지 않는 마음, 이쁘고 귀감이다.

또 얼마 전엔 시어머님이 임플란트 상담을 하러 치과 가셨다는 얘기를 듣고선 돈 얘기는 꺼내지도 않았는데 통장에 천만 원을 입금해 놨다고 전화가 왔다며 자랑했다. 물론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으니 할 수 있는 일이긴 하지만, 설령 돈 있어도 마음을 내지 못하면 불가능한 일이다. 올케란 말은, 시댁에서 뒷 수발하느라 올케(옳게) 밥 먹지 못한다고 올케라던데 이 올케는 밥이 문제가 아니라 만날 때마다 미담이 이어진다. 또 얼마 전엔 올케네 가족이 부산에 내려와 다 같이 식사를 하러 갔다고 한다. 맏이인 언니가 계산을 하려고 하자 어느새 그녀가 쫓아와서는 언니를 밀쳐내고 계산을 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형님, 우리가 계산할 겁니다. 형님 동생, 연봉 셉니다."

예술이다. 같은 며느리 입장에서 혀를 내두른다. 듣는 언니는 계산도 계산이지만 동생 연봉 운운하는 올케가 마냥 이쁘기만 하다. 자기도 돈 잘 벌지만 동생 연봉 덕에 계산할 수 있다는 듯 말할 줄 아는 그녀, 프로고 고수다.


부럽다. 나도 한 번 따라 해 봐야겠다. '우리 집 대궐입니다'라는 말은 미처 못 해봤지만 '동생 연봉 셉니다.'는 한 번 써먹어 봐야겠다. 드디어 기회가 왔다. 큰 시누이네가 부산에 내려와 바닷가로 식사하러 모시고 갔다. 미리 뒷주머니에 카드를 넣어뒀다가 계산을 하러 갔다.

"아니다 올케야, 내가 계산할 거다."

큰 시누이가 손을 흔들며 달려왔다. 하지만 시누이의 걸음은 반박자 늦었고 내 카드는 이미 마그네틱을 읽히고 말았다. 시누이는 마치 대단한 일을 놓인 듯 아쉬워하며 잘 먹었다는 인사를 했다. 이제 마지막 한 마디만 하면 나도 멋진 올케가 될 수 있다. 두고두고 회자될 올케가 될 타이밍이다. '형님, 동생 연봉 셉니다.' 하지만 1초면 끝날 그 말은 기어이 내 입에서 튀어나오지 않았다. 급한 일이 생긴 것도 아니고 발음이 꼬인 것도 아니다. 실제로 연봉이 세지 않은 것도 있었지만 그 연봉이 줄줄이 사탕이 될까 봐 미리 가림막을 치는 치사한 내 모습을 봤다. 결국 난 고수도 못 되고 카드 결제만 했고, 동생 연봉은 아직도 비밀에 부쳐져 있다. 고수와 하수의, 비교 체험 현장에서 덜미를 잡혔다. 고수와 하수의 차이는 절대로 돈으로 구분 짓는 게 아님을 굳이 카드를 써 가며 배웠다.


그녀, 고수다. 한근태 님이 말씀하신 긍정의 언어 이전에 주위 사람을 기분 좋게 하고 칭찬받기에 충분한 사람이다. 말의 쓰임, 말의 가치를 제대로 쓸 줄 아는 사람이다. 이 마음으로 사는 데 인생이 꼬인다면 모순이다. 세상의 이치가 한치도 어긋남이 없어 보인다. 남편은 회사에서 인정받아 승진했고 올케가 하는 사업은 사업대로 번창하고 아이들도 이쁘게 잘 자란다. 시부모님들 역시 이쁜 며느리 자랑에 침 마를새 없고 언니도, 뭘 해줘도 아깝지 않은 사람이라며 칭찬한다. 사람이 하는 일이 일방적이진 않겠지만, 한 사람으로 인해 한 집안이 편안한 모양을 보니 부럽기만 하다.


"마음을 열면 온 우주를 다 담을 수 있지만 마음을 닫으면 바늘 하나 꽂을 자리 없습니다."

법륜스님 말씀이다. 갈비뼈 안에 든 작은 마음을 활짝 열면 시댁뿐 아니라 온 우주를 다 담을 수 있지만, 마음을 닫으면 바늘 하나도 꽂을 수 없다는 말씀이 곧 진리이자 이치다. 우주와 바늘을 가르는 마음이란 먼 나라에 있는 게 아니라 우리가 내뱉는 말 한마디에 있지 않을까 싶다.

말 한마디로 고수가 되기도 하수가 되기도 한다. '동생 연봉 셉니다.' 그 말 한마디가 어려운 내 마음자리는 언제쯤이면 꽃대궐이 될 수 있을지 뾰족한 이 마음을 쓰다듬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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