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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나무 Feb 07. 2017

미소 한 잎, 웃음 한 다발.

벵갈루루, 시티 마켓




무연히 하루가 또 지나고 달은 하늘로 풍덩 빠졌습니다.

비 내리지 않는 날들을 간신히 견디는 중이에요. 

빗소리로 귀를 적시고 싶은 날입니다.     



느낌의 옷은 더디거나 간혹 너무 빠르거나 차이가 있을 뿐 모든 건 지나가지요. 

더딘 것도 싫지만 너무 빨리 지나가는 시간의 옷도 힘든 건 마찬가지입니다.

아직 도착하지 않은 시간에게 천천히 오라 부탁하고 싶은 새벽이네요.

첸나이 역사 지붕 위로 해가 떠오릅니다.


기차역은 여전히 바닥에 누워서 자는 사람들로 북적였습니다.

5년 전 처음으로 뭄바이 역에 도착했을 때의 느낌을 이렇게 썼었지요. 


- 역사로 들어서는 순간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수적으로 많다는 것은 차치하고 크고 까만 눈들이 일제히 우리에게 향하는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비쩍 마른 사람들이 건조를 위해 널어놓은 멸치처럼 대합실과 플랫폼 온 바닥에 여기저기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다. 충격이다. 인도 최대의 경제 중심지인 뭄바이에는 아이러니하게도 세계 최대의 빈민촌이 있다고 하더니 홈리스들이 이렇게 많은가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은 단지 기차를 타기 위해 기다리는 승객들이었다.  - 아슬아슬 인디아 중


전광판을 확인하고 플랫폼 2A로 찾아갔지요.

용모 반듯한 청년 둘에게 확인차 또 물어보았습니다.

맞다고 하더군요.

인도는 열차가 취소되거나 열차 시각 또한 수시로 변동된다 하니 플랫폼도 예외는 아니겠다는 걱정 때문입니다.

그런데 출발 시각 10분 전임에도 기차가 들어오질 않는 겁니다.

내가 플랫폼 번호를 물었던 청년 둘이 내게 다가와 말합니다.

플랫폼이 바뀌었으니 따라오라는 거였지요.

그런데 그 거리가 상당히 멀어요.

이게 무슨 사기 납치는 아니겠지? 의심 반, 고마움 반으로 열심히 따라갔어요.

coach 번호를 묻기에 알려주니 기차 출입문 옆에 붙여진 예약자 이름을 가르치며 확인하라고 했습니다.

E-티켓에 적힌 좌석 번호에 이름이 쓰여있더군요.

안도감과 함께 서둘러 기차에 탔습니다.

긴장한 탓인지 허기가 느껴지더군요.

호텔에서 마련해 준 샌드위치를 먹었습니다.




인도는 기차역에 에스컬레이터가 없습니다. 당연히 엘리베이터도 없지요. 

철로가 단선이 아닌 이상 플랫폼은 여러 개, 밖으로 나가려면 지하도나 구름다리를 건너가야 합니다.

그 많은 계단을 오르내리며 무거운 러기지를 옮길 방법이 없습니다.

그때 필요한 사람이 있습니다. 이름하여 'Helper'

5년 전 기억이 떠오르더군요.

헬퍼를 찾아다닐 필요는 없습니다.

기차에서 내리자마자 매의 눈으로 캡처한 헬퍼가 잽싸게 다가오니까요. 

공식적으로 등록된 사람만 일을 수 있는 빨간 재킷을 입은 헬퍼들은 러기지를 가뿐하게 들어 머리에 이고 성큼성큼 걸어갑니다.

가뿐해 보일 뿐 절대로 그렇지는 않겠지요.

그리고는 100루피(2,000원)를 받습니다.

나를 짐만 있다면 그들에게는 꽤 쏠쏠한 벌이일 터입니다.


인도 IT산업의 중심지, 도시 한가운데 푸른 숲과 정원을 갖고 있는 벵갈루루는 메트로를 운행하는 큰 도시입니다. 

그곳에 들른 이유는 야간열차를 피하려는 방편이었지요. 

호스펫으로 가는 중간 기착지로서 일정에 넣은 것이었어요. 

다음 날 야간열차를 탈 때까지 시간이 꽤 많았습니다.


마이소르 왕국의 지배자였던 티푸 술탄이 지은 궁전으로 갔어요.

궁전이라기보다는 골조가 남아있는 정도인데 반질반질 닳고 낡아 칠이 벗겨진 오래된 나뭇결이 아름다웠습니다. 아치형 발코니가 이슬람 사원임을 알려주었죠. 마치 오래된 한옥의 대들보와 대청마루를 보는 느낌이었어요. 궁전 옆으로 벤카테스와르 사원이 담 하나 사이로 붙어있는데 이미 문을 닫아 들어가진 못했습니다.



지도를 보니 근처에 시티 마켓이 있더군요, 그쪽으로 발길을 옮겼습니다. 

집을 짓던 아저씨들이 사진을 찍어달라고 하네요. 흔쾌히 찍어주고 다시 걷습니다.

시장이 시작되는 곳에 뭔가 범상치 않은 건물이 보였습니다.

입구 옆에 벵갈루루 요새라고 쓰여있어요.

걷다가 우연히 만난 곳이지만 오래된 돌담과 벽에 새겨진 조각이 꽤 운치가 있어요.

입장료도 없고 사람도 거의 없어 한가로운 게 더 맘에 들더군요.

카메라에 어린 남매의 미소를 담았어요.

해가 소나기처럼 쏟아지고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방울처럼 딸랑거렸습니다. 

아이들의 웃는 얼굴로 내 마음도 그만큼 밝아졌답니다.

웃는 얼굴은 누구나 아름답습니다.


                      

인도는 약 2억 명의 인구가 고기를 먹지 않는 세계 최대의 베지테리안(채식주의자) 국가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낮은 육류 소비국가라는 특징처럼 시장은 온통 채소와 과일이 넘쳐납니다.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고수 같은 향신채소와 한쪽에서 썩어가는 채소들이 경쟁하듯 뿜어내는 냄새가 호흡을 곤란하게 만들어요. 

하지만 찡그리거나 코를 틀어막지 못했습니다. 

그 냄새들을 마다하지 않고 시장 구석구석을 걸어 다닐 수 있었던 건 간간히 전해지는 사람들의 미소 한 잎 때문이었습니다.

파스텔 가루처럼 고운 입자의 다양한 커리와 커민 가루가 그림 재료처럼 쌓아 올려져 있어요. 

감탄이 나올 정도로 예쁘네요. 

그렇습니다.

좋아하는 것은 이유가 있음이요, 사랑하는 데는 이유가 없음입니다.

내가 여행을 좋아하는 건, 그 순간 그곳에서 만나지는 그들이 있음이요, 

그들이 바닥에 앉아 채소와 과일을 파는 건 오직 그들 삶을 사랑할 뿐입니다. 





쌓아놓은 콩 꼬투리 위로 참새들이 몰려와 쪼아 먹고 있어도 쫓지 않습니다.

그 순간 콩의 주인은 참새가 되지요.

입 벌린 석류 알갱이가 내겐 루비보다 더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사진을 찍는 내게 빨간 별 같은 석류알을 떼어 건네는 손이 고목 껍질처럼 거칠거칠합니다.

그러나 웃음이 번지는 노파의 주름진 얼굴은 마냥 흐뭇한 표정입니다.

날 것 그대로 부려진 파인애플들이 넉넉합니다. 

기름에 찌든 재킷을 입은 백발의 할아버지는 머리카락보다 수염이 더 길게 늘어져있습니다. 

라임이 잘 팔리지 않는지 시선을 허공에 던져놓고 손가락 끝에서 타들어가는 담배를 잊은 듯합니다. 

할아버지에게 그 순간은 어떤 색깔이었을까요?

바닥에 벌려놓은 호박, 당근, 파프리카 색깔을 닮은 빛 고운 천막이 제멋대로 늘어져 있습니다.

핑크 셔츠와 푸른 줄무늬가 있는 도티를 매치한 아저씨의 컬러 감각이 탁월하네요.

팔다만 사탕수수를 지팡이처럼 딛고 앉아 친구와 이야기를 나눕니다.

- 요즘 장사가 영 시원치 않아~

붉은색 나일론 실로 구멍 난 대바구니 위에 마대자루를 덧대어 듬성듬성 꿰맨 모양새가 분명 허접하고 누추하지만 제 눈엔 그저 따뜻한 삶의 흔적으로 보였습니다.

근거 없는 낙관이 대책 없는 비관보다 나은 법이니까요.



시장을 벗어나는데 지는 해가 노란색 담장에 근사한 나무를 선사했습니다.

무시로 어디건 멋지게 그림을 그려내는 태양은 실력 좋은 화가이기도 합니다.

 



다시 아침입니다.

하루가 24시간이 아니라 36시간이면 좋겠어 생각하다가 12시간인 게 아니라 다행이지 생각합니다.

모닝 짜이를 마시러 나갑니다.

동네 한 바퀴 돌아봐야죠.

아~ 그런데 여기 벵갈루루는 아침저녁으로 한기를 느낄 정도로 서늘합니다.

한국에서 입고 온 얇은 패딩을 입고 나갔는데도 썰렁해요.

그곳은 해발 940m의 데칸 고원에 위치하기 때문이지요.

사람들은 빵모자를 쓰거나 팔짱을 끼고 잔뜩 움츠린 모습입니다.

발리우드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인도 영화는 유명하지요.

뭄바이는 1년에 1000편 이상의 영화를 제작한다고 합니다.

도시나 시골, 어디든지 벽에 붙은 화려한 영화 포스터를 보는 일도 흥미롭네요.

몬드리안의 그림 같은 벽이 이채롭습니다.

그곳을 찍는 동안 개가 지나가고 아저씨가 지나갔습니다.

가판대에 신문이 빨래처럼 걸려있고 조간을 보는 사람들이 심심찮게 보입니다.

우리나라에선 이미 오래전에 사라진 풍경이지요.

상견례라도 가시는지 아침 일찍부터 부지런하게 이발소로 면도하러 간 아저씨가 기분 좋은 표정으로 손을 흔들어줍니다.

튀김 빵인 뿌리와 짜파티를 파는 아저씨가 있네요.

커리나 밥도 함께 팔고 있지만 짜파티 한 장만 달라고 헸어요.

가장 깨끗한 접시라는 바나나 잎에 얹어주시네요.

발효 잘된 표시로 구멍이 숭숭 뚫린 짜파티 한 장을 손가락으로 떼어먹었습니다.

담백하네요.

간이식당 벽엔 힌두교 신들의 사진 액자가 걸려 있어요.

시골집마다 어김없이 걸려있는 가족사진 액자처럼요.


호텔 바로 옆에 사람이 오래도록 살지 않은 것으로 짐작되는 집이 하나 있어요.

정면에 두 개의 돌기둥을 중심으로 반듯한 것이 썩 맘에 들어요.

굳게 닫힌 철문에 인도 글씨가 쓰여있는데 무슨 뜻인지 궁금해요.

세일, 또는 렌트가 아닐까?

하지만 궁금한들 뭐하겠어요?

내가 그 집을 빌리거나 살 건 아니잖아요.

그런데 이유 없이 그 집이 너무 맘에 들어요. 

들어가 보고 싶고 잘 닦고 손질해서 멋지게 꾸미고 싶은 생각이 들어요.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어 친구에게 보내줬더니 해석이 일품입니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소설 <백 년의 고독>이 생각나는 집이네.'



영국 윈저 성을 모티브로 지었다는 뱅갈 루르 궁전입니다. 

인도는 인디언과 외국인의 입장료가 현저하게 다릅니다.

마말라뿌람의 사원은 인디언은 30루피인데 외국인은 500루피를 받더군요.

뱅갈 루르는 그래도 양호한 편이네요. 인디언은 230, 외국인은 460 루피니 까요.

문제는 카메라 피가 685루피, 1145 루피면 2만 원이 넘는 금액이니까 어마어마하게 비싼 궁전입니다.

궁전 외관을 사진 찍는 것도 제지시키는 사람이 있을 정도였어요.

그런 경험은 처음이에요.

릭샤왈라가 하도 조르기에 그가 인도하는 기념품 샵에 도착했습니다.

어마어마한 크기의 주물 제품과 카펫, 금은보석, 카슈미르 산 파시미나 등 한눈에 딱 봐도 단체 여행자들 필수 코스로 들르는 샵처럼 호화찬란한 물건들이 그득했습니다.

호기심을 자극할 물건을 단 하나도 없었지요.

수박 겉핥기 식으로 한 바퀴 휘돌아 나왔습니다.

큐본 공원으로 간 후 릭샤를 보냈습니다. 



큐본 공원의 크기는 정말 어마어마하더군요. 

120헥타르나 되는 대지에 촘촘한 나무들은 도시의 허파나 마찬가지입니다.  

샅샅이 돌아보려면 하루 종일 걸려도 부족할 정도로 넓은 부지였습니다. 

수피의 색은 거무죽죽하고 대나무처럼 마디가 있어 처음엔 오죽인가? 했던 것이 사탕수수더군요.

사탕수수를 기계에 넣어 그 즙을 음료수로 파는 장사들이 많아요.

마셔보니 달큼함이 생각보다 깔끔한 편이었어요.

화장실을 찾다가 붉은색이 칠해진 도서관이 있어 잠시 들어갔는데 공공 화장실을 가르쳐 주더군요.

다섯 살이나 되었을까?

여자 아이 혼자 앉아 아빠 것으로 보이는 헬멧을 쓰다가 저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잘못을 들켜버린 양 배시시 웃는 모습이 하도 예뻐 사진을 찍어 보여주었더니 또 수줍게 웃어요.



대나무 숲이 멋들어지게 휘어 있어요. 

공원을 나오니 출구 건너편에 맥도널드가 보입니다.

더운 지역이라 그런지 특히나 향신채가 강한 남인도의 식사를 하다 보니 맥이 구세주처럼 반갑더군요.

오랜만에 맛있는 점심을 먹을 수 있었습니다.

마이소르 주의 정부청사와 법원이 도로를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있어요.

이탈리아 석조 건물을 떠오르게 하는 건물의 크기나 위용이 대단합니다. 

걷다 보니 역시 붉은색이 칠해진 주립 박물관이 있어 들어갔지요.

역사적인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지만 진열 상태나 보관 상태가 썩 좋아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거리엔 과일을 깎아 먹기 좋은 크기로 자른 후 1회용 접시에 모둠으로 파는 과일 장사가 많아요.

하지만 쉽게 사 먹을 수 없던 것은 매연과 흙먼지 때문이었어요.

친구들과 어울려서 몰려다니며 한참 까르륵거릴 나이의 소녀가 길바닥에서 기념품을 팔고 있어요.

그녀의 집안에도 뭔가 어려운 일이 있음일 터입니다.

안타까운 맘에 조악하지만 조그만 주물 컵 두 개를 샀지요.

  

대로변에 커피숍이 보여요.

이번 여행에서 이런 모양새의 서구적인 스타일의 커피숍은 처음 발견했습니다.

쉼표를 찍기에 안성맞춤인 곳이었죠.

넓은 공간과 화려하고 푹신한 카우치, 유니폼을 입은 종업원들이 많습니다.

세계 유명 산지들의 다양한 커피가 고르게 준비되어 있어요.

메뉴를 세계 지도의 대륙별로 구분해 놓았는데 쉽게 선택할 수 없어 종업원 아가씨의 도움을 청했습니다.

몇 가지 좋아하는 맛을 물어보더군요.

다행히 그녀가 권해 준 커피 맛이 아주 훌륭했습니다.

 



벵갈루루에서 최신식 건물이 많은 곳은 MG road라고 하더군요. 여기서 MG는 마하트마 간디의 줄임말입니다.

백화점 같은 쇼핑몰인데 그리 크진 않지만 꽤 고급스러웠어요.

그곳에 간 이유는 한국 식당이 목적이었는데 7시 30분에 오픈한다는 거예요.

꼭대기 층에 펍은 열었다는 귀띔을 하기에 그곳으로 갔습니다.

'타오 테라스'는 옥상에 만들어진 펍인가 싶었는데 중국 음식이나 간단한 서양식 안주도 있는 고급 레스토랑이더군요. Tao는 중국어로 '길'이라는 뜻인데 인테리어 소품은 다름 아닌 부처님이에요.

술집에 불상들이 죽 앉아있는 것이 아이러니했지요.

호텔로 돌아가 러기지를 챙겨 야간열차를 타러 가야 하니 시간이 그리 많지는 않습니다.

그런 이유로 타오에서 딤섬과 맥주로 요기를 했지요.



- 택시를 어디서 타죠?

- 여기는 택시가 많지 않아 예약을 하거나 우버 택시를 불러야 해요.


내게 우버 앱은 있었지만 데이터를 차단해서 사용할 수가 없었고 내게 대답해준 아저씨는 폴더폰을 쓰는 분이었어요.

마침 스마트폰을 보며 걸어가던 학생에게 도움을 청했어요.

아저씨가 옆에서 거들었죠.

학생은 흔쾌히 택시를 불렀고 내가 차에 탈 때까지 함께 기다려주었어요.

볼이 통통한 게 귀여운 남학생은 9학년이라고 하더군요.

우버 택시의 장점은 미터기를 사용하는 거예요.

호텔까지 30분 이상 소요된 꽤 먼 거리였지만 153루피 그러니까 3,000원도 안 되는 요금이 나왔습니다.

그동안 다닌 생각을 하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저렴한 금액이었어요.

외국인에게는 무조건 미터기를 꺼버리는 오토 릭샤나 택시 기사들에게 그동안 얼마나 많은 기부를 했는지 알 수 있었지요.  


호텔에서 대충 씻고 옷을 갈아입었습니다.

밤 기차를 타야 하는데 기온이 급격히 떨어진 벵갈루루의 저녁은 서늘했거든요.

호텔에서 불러준 택시로 역에 도착했는데 거스름돈이 없다고 합니다.

돈을 바꾸기 위해 매표소 앞에 줄을 섰지요.

내가 서있는 줄의 매표원은 중년 여성이었는데 앞사람들에게 꽤 퉁명스러운 게 보여 걱정이 앞서더군요.

안 바꿔주면 어쩌지? 하는 걱정을 하며 미소를 한껏 머금고 말했어요.

- 잔돈으로 바꿔주실 수 있어요?

그녀는 미소와 함께 친절하게 기꺼이 돈을 바꿔주더군요.

외국인이어서였는지, 내 미소 때문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다행입니다.


그날 역시 포터가 러기지를 옮겨주었어요.

포터는 기차 안 까지 러기지를 옮겨주어야 하기 때문에 기차를 기다리는 동안 몇 마디 얘기를 나눌 수 있었어요.

훤칠한 키에 용모 반듯한 그 청년은 대학생이었어요.

아버지가 기차 사고로 다리를 잃으셔서 아버지 대신 일하는 중이라고 하더군요.

착한 아들이라고 하니 고맙다는 말을 하는데 얼굴이 수심이 가득해 보였어요.




어떤 아저씨가 셀피를 찍자고 해요.

그러더니 당신 폰이 아이폰 7이다, 호스펫에서 호텔을 운영한다. 묻지도 않은 말을 줄줄 쏟아내더니 이젠 질문이 이어집니다.

어디로 가냐, 호텔은 어디냐, 그다음엔 어디로 가느냐...

호텔 이름을 알려줬더니 폰으로 몇 가지 검색을 하더니 전화를 겁니다.

그러더니 그 호텔 지배인에게 전화했으니 아침에 도착하는 즉시 체크인할 수 있을 거라고 해요.

당신이 운영하는 호텔은 작은데 '로열 오키드'는 아주 큰 호텔이라는 말을 덧붙이며 호텔에서 운영하는 택시는 비싸니까 자기한테 연락하면 좋은 가격에 해주겠다며 내 전화번호를 알려달라는 거예요.

뭔가 수상한 낌새가 팍팍 느껴지는 사람이었어요.

필요하면 호텔에 문의하겠다며 알려주지 않았지요.

코치 넘버가 뭐냐고 묻기에 생각 없이 알려줬더니 자기는 몇 호 차라고 말합니다.

플랫폼에 있는 상점에서 뭔가를 사서 건네기에 잠시 망설이다 조금 떼어먹었어요.

포터에게도 건네니 그는 사양하더군요.

내가 포터에게 눈짓을 보냈습니다?


- 이 사람 수상하지? 그렇지?

- 맞아요. 조심하세요.


무언의 대화가 오갔고 기차가 왔습니다.

나는 자연스레 포터와 기차에 올랐고 러기지를 침대 아래쪽에 넣은 후 포터 청년이 내게 당부를 하더군요.

인도에서는, 특히 기차역이나 기차 안에서 인도 사람이 건네는 음식이나 음료수를 절대로 먹지 말라는 내용이었지요. 

그때부터 걱정이 시작되었습니다.

내가 묵는 호텔과 며칠 동안 있을 거라는 알고 있는 그 수상한 남자가 뭔가 꾸밀 것 같은 시나리오가 머리 속에 펼쳐지기 시작하는 거예요.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묻는 대로 순진하게 다 말해준 게 무척 불안했습니다.

그 밤, 내가 잠든 사이 그의 똘만이들이 귀신같이 내 물건들을 훔쳐갈 것만 같았어요.

카메라를 파우치에 꼭꼭 싸서 머리맡에 두었죠.


그때 내 맞은편 위쪽 침대 손님이 왔습니다.

깔끔한 외모에 지성미가 풍기는 노인이었어요.

그에게 Sir라는 존칭을 하는 남자가 가방을 들고 따라왔습니다.

카스트 제도가 사라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불가촉천민이 존재하는 나라가 인도잖아요.

그는 노인의 하인이라는 걸 알 수 있었지요.

위층 침대에 오른 노인은 누런 봉투에 담겨있던 하얀 면시트를 잠자리가 될 매트 위에 깔기 시작했습니다. 

느리지만 침착한 손놀림에서 품위가 느껴졌습니다.

맞은편 low seat에 앉아 하릴없이 그 모습을 바라만 보고 있는 게 도리가 아닌가 싶어 '도와드릴까요?' 하고 물었더니 극구 사양하더군요.  물어본 게 무안할 정도였으니까요.

2등석 AC기차는 시트 두 장과 담요가 있고 거울과 콘센트, 물병을 꽂을 수 있는 걸이와 작은 테이블까지 그래도 있을 건 다 있습니다. 

통로 전등과 머리맡 램프까지 끄고 누웠는데 불안함이 떠나질 않습니다.

기차는 안내 방송도 없이 어딘 가 이름 모를 역들에 한 없이 정차하다가 떠나기를 반복했어요.

그때마다 기차의 움직임이 늙고 병든 소가 앉았다가 일어서듯 힘겹고 묵직했습니다.



달이 속살을 보이다 비치다 합니다.

구름이 옷을 입혔다 벗겼다 했지요.     

달은 맨살일 때 가장 아름답더군요.      

그렇게 구름과 달의 애무를 한동안 바라보다 보니 사위가 캄캄해집니다.

새벽이 오고 있음이지요.

하루 중 가장 어두운 때는 태양이 뜨기 직전이라고 하더군요.

사람도 그렇지 싶습니다.

해가 뜨고 기차는 호스펫 정션에 도착했습니다.

다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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