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근두근 57세, 홀로 캐나다(재스퍼)
소란은 고요를 낳는다고 했다. 그걸 알지만 견디기 어려운 시간이었다. 그 날을 쓰려하니 그때 그 소란이 고스란히 떠올라 맘이 편치 않다. 나의 평정심이나 평상심이 고작 그것밖에 되지 않았던 것에 대한 자괴감 또한 적지 않다. 그러나 지나간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아쉽고 아깝다. 소란 속에 절여졌던 정신과 달아난 생각과 느낌들이...
- 기차역이 어디 있는지 아니?
-그럼요, 캠룹스에 기차역이 하나지 두 개 겠어요?
-Kamploops North던데?
-그래요? North는 처음 듣는데~ 알아볼게요.
그곳에서 14년을 살아온 중년의 부부는 새벽 6시에 내가 기차를 타야 할 north역을 알지 못했습니다. 얼마나 치열하게 살아왔는지 짐작되는 부분이었지요. 물론 자동차를 주로 이용하니 기차역을 모를 수도 있었겠지만요. 밴쿠버에서 토론토까지 동서를 횡단하는 기차는 일주일에 3회 운행합니다. 그러므로 다음 날 새벽 기차를 타지 않으면 거기서 3일을 지내야 하니까요. 역으로 가는 도중 캐나다의 스타 벅스 격인 Tim Hortons에서 Drive thru로 커피를 사고 North역으로 향했습니다. 도무지 기차가 다닐 것 같지 않은 황량 하고 삭막한 길을 한참이나 달려 도심과는 뚝 떨어진 곳에 조그만 역사가 보이더군요. 역 내에는 작은 벤치만 있을 뿐 기차표를 파는 창구나 매점 같은 건 없습니다. 오래된 시골 간이역의 모습입니다. 나이가 지긋 해 뵈는 안전 조끼를 입은 남자가 다가오더니 어디로 가느냐고 묻더군요. 자기는 여행자들의 가방, 그러니까 수화물을 담당하는 사람이라고 해요. 비아 레일은 수화물 칸이 따로 있습니다. 비행기처럼 짐을 붙이는 거죠. 남자는 러기지에 이름표를 붙이고 수화물 표를 내게 건넸습니다. 승객들이 하나둘 나타나더니 드디어 멀리서 기차 오는 게 보입니다. 머나먼 이국이 그들의 나라가 되어 버린 부부와 헤어져 기차에 올랐습니다. 그렇게 이번 여행의 첫 번 째 비아 레일을 타고 재스퍼로 향합니다.
밴쿠버에서 전 날 저녁 8시에 출발한 기차는 밤새 달려 새벽 6시 캠룹스에 도착한 터였습니다. 이코노미석은 보통 기차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객차에 들어섰을 때 대부분의 젊은 배낭 여행자들이 의자에 앉은 채로, 또는 마주 보고 있는 의자와 의자 사이의 바닥에 침낭을 깔고 잠을 자고 있었어요. 아직 이른 새벽이지만 몇몇은 책을 보거나 창 밖에 시선을 둔 사람도 보였지요. 그런데 유난히 시끄러운 얘기 소리가 들렸습니다. 한껏 기대에 부풀어 올라탄 새벽 기차의 이미지와는 영 어울리지 않게 유독 왁자지껄한 대화가 한국말이라는 것, 문제는 그 시끌벅적한 사람들이 앉아있는 좌석의 통로 건너편이 바로 내 자리라는 것입니다.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남편과 충청도 사투리를 쓰는 부인, 역시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남편과 서울 말을 쓰는 부인의 대화는 자연스레 내 귀에 들어와 앉았지요. 두 부부의 나이는 60대 후반쯤, 나와 10년 차이가 날 듯 말 듯할 것입니다. 미국에 이민하여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부부들로 한인회에서 주관하는 단체 여행으로 밴쿠버에서 재스퍼까지 기차를 타고 가는 중인 듯했습니다. 가이드가 쓸데없이 팁만 요구하는 사람이라는, 최고 좋은 좌석이라며 너스레를 떨며 안내했지만 다른 자리와 다를 바 없다는 불만, 현 한인 회장의 인품이 어떻고, 최 사장 네 빨래방이 어찌 돌아가는지, 전혀 궁금하지도 않고, 알고 싶지도, 알 필요도 없는 이야기들이 끊임없이 들려왔지요.
그들의 대화는 주파수 잘 맞는 라디오 방송처럼 너무도 또렷하게 내 귀를 점령했습니다. 말소리는 물론이요, 웃음소리의 피치 또한 탤런트 전원주 뺨치게 높았고 데시벨 또한 최고였지요. 그들은 미국에서 어렵게 이룬 부? 와 능력? 에 스스로 만족하며 즐거워했고 부부동반 여행에 한결 업되어 있음이 분명했습니다. 그러나 수 십 년의 미국 생활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체득되지 못한 밀폐된 공공장소에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매너와 에티켓이 존재하지 않는 그들로 인해 말할 수 없는 스트레스를 받았지요. 기차가 도착하는 순간까지 10시간 내내 이어지는 입심을 보면 에너지가 넘쳐나는 사람들입니다. 재스퍼에 도착할 때까지 그들을 단 한 번도 쳐다보거나 곁눈질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그들과 같은 나라 사람이라는 게 창피한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까요. 가끔 저를 흘낏거리며 쳐다보기에 혹시나 말을 걸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어 아예 눈길도 주지 않았습니다. 화장실에 가거나 식당에 갔던 두 번, 돔 카에 가려고 자리에서 일어날 때 자연스레 그들의 외모를 언뜻 볼 수 있었지요. 몇 마디만 들어도 그 사람의 인품이나 교양을 느낄 수 있습니다. 불과 몇 초였지만 옷차림 조차 품위나 고상함을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끊임없이 떠들던 수준과 다르지 않아 보였지요.
호수가 펼쳐지고 나무들이 지나가며 설산이 나타났지만 도무지 감흥이 느껴지질 않았습니다. 이어폰도 도움이 되지 않았지요. 아침 7시 반, 기차에 탄지 1시간밖에 안되었지만 귀가 시끄러워 견딜 수가 없습니다. 잠시 피신하는 의미에서 식당칸으로 갔지요. 샐러드를 곁들인 오믈렛과 소시지, 커피를 주문했어요. 소박한 식당 칸은 이코노미 석과 어울리게 가격이 저렴했지만 이미 만들어놓은 도시락이 아니라 주방에서 바로 만들어주어 따뜻하고 맛있었습니다. 각종 잼이나 커피와 뜨거운 물은 자유롭게 셀프서비스할 수 있어서 편리하고요. 30분쯤 있었을까? 식사할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더군요. 몇 개 밖에 되지 않은 식당칸의 테이블을 양보하고 2층으로 올라갔습니다. 기차 지붕까지 유리로 덮인 돔 카에 앉아 있다 보니 바람이 솔솔 들어와 후드 집업을 입고 있음에도 몸이 덜덜 떨릴 정도로 한기가 느껴졌습니다. 추위를 이기지 못하고 좌석으로 돌아갔지요. 얼마 후 두 부부는 가방에서 주섬주섬 뭔가를 꺼내는 기색이더니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식당 칸은 비싸기만 하고 먹을 것도 시원찮어, 컵라면이나 하나씩 먹고 오자고...' 그들이 떠난 후 객차는 비로소 고요를 찾을 수 있었지요. 마치 갑자기 정전된 방처럼 고요가 낯설 정도였지요. 그러나 평화는 10분을 넘기지 못했습니다. 어느새 복귀하신 분들의 라이브 토크 쇼가 시작되었으니까요. 그렇게 그들이 줄기차게 떠드는 동안 나의 스트레스 게이지는 상승했으며 비아 레일에서 즐겨야 할 아름다운 풍경은 소리의 태풍에 휩쓸려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창 밖으로 보이는 불 탄 나무들처럼 내 맘이 타들어가고 있습니다. 기차에서 멀미를 느낀 건 처음이었지요. 스카프를 목에 감고 배낭에 있는 옷을 있는 대로 껴입은 후 피난할 요량으로 다시 돔 카에 오르니 중국 단체 여행자들로 가득 차 앉을자리가 없습니다. 어려운 시간을 맞이할 때마다 모든 시간은 지나간다는 말을 되새깁니다. 그토록 기대하던 재스퍼로 가는 기차 여행은 고통의 시간으로 점철되어 끝이 나고 말았습니다. 기차에서 내리는 순간까지도 그들은 이야기는 계속됩니다. '아이고 저기 우리 가이드 보이네, 그래도 다시 보니 반갑네 그려. 오늘 저녁에는 김치찌개 같은 한식 좀 먹자고 하자고...'
드디어 소란에서 석방되었습니다. 몸이 가벼워진 듯한 것도 잠시였어요. 현기증이 느껴져서 잠시 건물 벽을 잡고 서있었지요. 러기지를 찾아 역사를 벗어났습니다. 재스퍼는 노르웨이의 플롬에 도착해서 기차에서 내렸을 때를 떠오르게 했습니다. 역 앞을 중심으로 많은 레스토랑과 기프트 샵 등이 즐비하고 사람들이 붐비고 있었지요. 평소 같으면 걸어갈만한 거리에 숙소가 있었지만 택시를 탔습니다. 재스퍼를 대표하는 멀린 협곡과 멀린 호수, 그와 이름이 같은 멀린 로지가 3일간 묵을 곳입니다. 침착한 자태로 모서리 없이 둥글게 느껴지는 방이 아늑했지요. 저녁도 먹을 겸 재스퍼 시가지가 어떤 모습인지 살펴보고, 렌터카 지점이 어디쯤 있는지 알아볼 겸 시가지로 산책을 나갔습니다.
역의 뒤쪽 도로를 따라 걸으니 주택가입니다. 집집마다 독특한 모양의 번지수가 붙어 있어요. 대부분의 호텔이나 숙박업소엔 No Vacancy(빈 방 없음)라는 팻말이나 LED 전광판에 명시되어 있습니다. 건국 150주년 기념하는 해인 데다 로키의 여름은 1년 중 극성수기에 해당하니까요. 여행자들이 무척 많습니다. 저녁을 먹으려는 사람들이 줄 서있는 맛집들이 여기저기 보였고, 내가 찾아간 재스퍼 최고의 빵집인 Bear's Paw는 영업시간이 끝났더군요.(06:00-18:00) 캐나다에 온 후 즐겨 찾는 A&W에서 스파이시 치킨 버거로 저녁을 해결했습니다.
여행을 하는 동안 입맛이 없거나 잠이 오지 않거나 하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그 또한 고맙고 다행한 일입니다. 다섯 시 반, 자연스레 잠에서 깨어 목에 머플러를 둘둘 감고 후드 집업을 걸치곤 산책을 나갔습니다. 어제저녁 줄 지어 서 있던 맛집도, 역 앞에 전시된 검은색 기차 앞도 텅 비어 있습니다. 그 호젓함을 좋아하기에 새벽을 걷습니다. 하지만 Bear's Paw에는 나처럼 빵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벌써 줄을 서 있어요. 먹음직스러운 빵들이 수북합니다. 먹어보고 싶은 게 너무나 많았지요. 시나몬 번, 블루베리 스콘, 상호와 똑같은 이름의 Bear's Paw, 애플 크랜 베리, 갈릭 치즈 스틱 등 욕심껏 여덟 개나 되는 빵을 고르고 커피 한 잔 까지 주문했는데 깜짝 놀랐습니다. 우리 돈으로 약 18,000원, 캐나다는 물가가 무척 비삽니다. 게다가 맛있기로 소문난 베이커리인데 가격이 너무 저렴해서 놀란 거죠. 하지만 맛 또한 명불허전, 재스퍼에 있는 동안 내내 기쁨을 주었습니다.
아침 10시, 렌터카를 받은 후 재스퍼를 돌아보기로 합니다. 다음 날 아침 10시에는 멀린 레이크 크루즈를 한 시간 반 동안 탈 예정이고 오후 4시에는 콜롬비아 아이스필드 글레시어 투어와 스카이 워크 투어가 예정되어 있으니까요. 좁은 렌터 카 사무실에는 차를 빌리려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예약을 하지 않은 사람은 아쉬운 발길을 돌리기도 하더군요. full 커버가 되는 보험을 들고 싶다고 하니 하루에 13불 정도, 그러니까 1주일에 100불 정도 추가하면 가능하다고 해서 주저 없이 계약했습니다. 예약한 차는 클라이슬러 화이트였는데 그들이 준비한 차는 산타페 블랙이었어요. 렌터 카라는 것이 동급의 차량에서 차종이 변경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캐나다에서까지 현대 차를 타게 된 것이 조금 아쉽긴 했지만 익숙하다는 장점도 있겠지 하며 긍정적으로 생각했지요. 재스퍼와 레이크 루이스, 밴프를 거쳐 몬트리올로 떠나게 될 캘거리 공항까지 K-76106은 튼튼하고 안전하며 부드러운 발이 되어주었고 많은 동물들을 만나는 순간들을 함께하는 친구가 되었습니다.
지도를 보고 가장 가까운 패트리샤 호수와 피라미드 호수로 가기로 했지요. 좁고 꼬불꼬불한 오르막 길로 올라가는 동안 서너 대의 자동차를 만났을까? 길은 한가하고 호젓했습니다. 자작나무 숲을 지나 한 장의 호수 앞에 섰지요. 패트리샤 호수 건너편의 나무들이 단풍처럼 군데군데 붉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로키 산맥의 많은 면적이 소나무 재선충으로 죽어가는 나무들이었어요. 피크닉을 나온 가족들이 나무 테이블에 가져온 빵과 과일을 펼쳐놓고 호수를 즐기고 있습니다. 옥색의 호수 속에 산과 나무가 첨벙 빠져 있어요. 피라미드 산 앞에 있다고 붙여진 이름의 피라미드 호수는 그곳에서 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뭔가 심심한 느낌이 들어요. 호수 건너편에 보이는 리조트 쪽으로 가니 그제서 호수가 제대로 보이더군요.
멀린 캐년은 다음 날 크루즈 투어를 할 멀린 호수로 가는 길목에 있습니다. 그러니 굳이 오늘 갈 필요는 없었지만 시간도 여유 있겠다 가다가 맘에 드는 곳이 있으면 들러봐야지 하는 생각입니다. 탁 트인 2차선 도로로 접어든 순간부터 단 한 곳도 비슷한 표정을 하지 않은 산들이 희끗희끗한 빙하를 걸치고 나타납니다. 간간히 지나가는 자동차 중에 거의 반은 캠핑카라는 게 놀랍지도 않은 곳이 로키입니다. 몇 번이고 차를 세우고 사진을 찍었지요. 산을 이루고 있는 암석의 모양이나 색깔이 모두 달랐어요. 고도가 높아서인지 날씨도 자주 변했지요. 먹구름이 몰려와 빗방울 몇 번 뿌리다가 이내 파란 하늘이 나타나면 기분도 그만큼 맑아지곤 했습니다.
* 대부분 이동한 순서대로 여행기를 씁니다. 하지만 이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기차에서 겪었던 악몽 같던 10시간이 고스란히 떠올랐습니다. 여전히 그 소란 속에 들어있는 것 같은 착각 때문에 계속 쓸 수가 없었지요. 그 기분에서 헤어나고자 오를레앙 섬을 먼저 썼음을 밝힙니다. 멀린 레이크 크루즈에서 만난 한국 여행자들로 인해 또 한 번 고비를 넘겨야 했고요. 해외 여행지에서 한국 사람을 만나면 반가워야 할 일인데 두렵습니다. 이런 생각이 나 혼자만의 것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