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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나무 Jul 03. 2016

장한나가 낭송한 세 편의 ‘첼로 詩’

장한나 무반주 첼로 리사이틀

 





파란 사과를 먹었다. 

매년 파란 사과를 처음 먹는 날, 나의 가을이 시작된다. 

비는 내리지 않았다. 

이젠 비가 어떤 모습인지도 잊은듯하다. 밤엔 귀뚜라미가 울고 한낮의 매미 합창이 뜸한 걸 보면 가을이 오긴 오나…, 

장한나는 첼로였다. 

아니 첼로가 한나였는지도 모른다. 

장한나라는 이유 하나로 흥분되고 기다리던 연주회, 오늘 이 감정을 오래도록 추억할 듯하다.  


무대엔  등받이 없는 의자 하나만 단정히 앉아있다. 스물두 살 장한나는 어떤 모습일까?

적잖이 궁금했다. 무대에 모습을 드러낸 첼리스트는 가슴이 깊게 파인 검정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자연스러운 갈색머리 한쪽에 작은 머리핀이 꽂혀있고 화장기 없는 얼굴이 유난히 하얬다. 


첼로 홀로서기, 피아노와 헤어진 첼로. 연주 프로그램은 세 곡 모두 무반주 독주곡이었다.

바흐를 제외한 리게티와 브리튼의 곡은 알지 못하는 곡이다. 전곡 모두 무반주라는 사실이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그러나 그건 적어도 음악을 듣기 전의 생각일 뿐이었다.


첫 곡 리게티의 무반주 첼로 소나타, 다이얼로그와 카프리치오 두 개 악장으로 구성된 곡이었다. 헝가리계 유태인인 리게티의 이 곡은 초기 작품이다. 그래선지 젊음에 기반한 자유로운 감정 표현이 느껴졌다. 


1악장 다이얼로그 시작 부분은 다성의 피치카토가 마치 가야금을 발현하는 음색이다. 장한나 특유의 불 뿜는 거친 운구에 활 털이 여럿 끊어졌다. 한나 뺨의 얇은 피부가 음악과 함께 풍선처럼 들어가고 나오고를 반복했다. 무아지경의 연주자를 보며 내 몸 또한 경직되었다. 좀처럼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었다.


2악장 카프리치오는 헝가리 민속음악을 느낄 수 있는 아주 빠른 곡이었다. 시종 눈을 감고 미로 같이 빠른 페세지를 찾아가는 마술 같은 두 개의 팔, 어떤 말로도 명명할 수 없는 모양과 빛깔의 소리를 들려주었다. 그렇게 첫 곡이 낯가림을 할 틈도 주지 않고 흘러갔다.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 3번,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들을 때면 그 음악이 바흐라는 사실이 언제나 놀랍다. 300년의 시간이 느껴지지 않을뿐더러 바로크라고 하기엔 너무나 느낌이 쿨 하기 때문이다. 안너 빌스마의 고악기 연주를 들으면서 바흐를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장한나의 바흐는 더욱더 새로웠다. 단지 로스트로포비치를 보기 위해 콩쿠르에 나갔다는 한나의 바흐는 스승의 것과는 달랐다. 그렇다고 다른 어떤 첼리스트의 바흐와도 비슷하지 않았다. 그건 그녀가 짠 소리와 모양이었다. 







한나의 연주는 다색의 색실뿐 아니라 시냇물과 바다를 가지고 있었다. 굵은 현으로 가는 소리를, 가는 현으로 굵은 소리를 낼 줄 알았다. 빙하 같은 피아니시모에서 허리케인의 포르테시모까지 아우르는 연주를 했다. 거침없이 긁어내리는 대담함이 있는가 하면 숨이 끊어질 듯한 긴장감도 안겨주었다. 특히 알라망드나 부레 등의 풍부한 폴리포니는 장한나의 카리스마가 그대로 느껴졌다. 쿠랑트를 연주할 때 벌써 목과 가슴엔 땀방울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그녀의 귀에 달린 이어링과, 오른손 중지에 껴진 반지보다 더 반짝였다. 

다이아몬드 같은 땀방울이 흐르도록 혼신의 힘을 쏟고 있었고 청중들의 몸은 굳어지고 있었다.


이미 8세 때 하이든의 첼로 협주곡을 협연했던 장한나, 그녀의 하이든 첼로 협주곡 1악장에서 느껴지는 그 힘차고 거친 운궁이 바흐에서도 그대로 나타났다. 바흐의 무반주 첼로는 또 다른 음악처럼 그렇게 새로 태어나고 있었다.

하이든 첼로 협주곡 1번 1악장



  마지막 곡 역시 무반주 첼로 모음곡, 브리튼이다. 로스트로포비치의 열정적인 연주가 영감을 주어 작곡하였다 한다. 3개의 모음곡 모두 그에게 헌정하였다고 한다. 그렇게 로스트로포비치와 브리튼의 우정이 키워져 슈베르트의 아르페지오네 소나타(로스 첼로, 브리튼 피아노) 같은 명반을 있게 했는가 보다. 6개 악장으로 되어있는데 리게티보다 더 현대적인 느낌의 음악이다. 독특한 주법이 많았다. 가령 활의 등으로 몇 개의 현을 동시다발적으로 두드린다든가, 가야금 농현 같은 표현, 또는 포르타멘토와 피치카토를 함께 하는 등...  


그중 세레나타는 모두 피치카토였다. 부분적으로 어린이 손가락 같은 소프트함과 힘센 청년의 하드함이 어우러졌다. 보르도네는 시종 한 개의 현이 마치 백파이프처럼 지속음을 내며 다른 멜로디를 연주하는 특이한 주법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울리는 2-3개음이 피치가 맞지 않거나 흔들려서 불안감을 주는 부분은 어디에도 없었다.            


장한나는 연주가 끝나면 박수가 나오기도 전에 벌떡 일어서서 단 위에서 내려왔다. 세 곡 모두 그랬다. 박수를 빨리 치지 못한 건 첼로에, 아니 장한나에게 최면이 걸린 듯 한 느낌에서가 아닐까? 청중들이 그 감정에서 채 벗어나기도 전에 장한나는 왼손으로 첼로를 번쩍 들고 성큼성큼 무대 뒤로 사라지는 것이었다. 가끔씩 웃어 보일 땐 아직도 어린아이 같은 해맑음이 퍼졌다. 첼로만 잡으면 마술에 걸리는 장한나. 목을 한껏 빼어 고개를 젖히고 눈을 감은 미간 사이엔 주름이 진다. 한 순간도 놓치지 않는 호흡을 담은 얄포롬한 입술의 쫑긋거림. 그건 가르치거나 배워서 되는 게 아니지 않은가? 그를 쳐다보는 내 몸이 자꾸 경직되어 몇 번씩 릴랙스 시켜야 했다.   


연이은 커튼콜에 앙코르를 두 곡 연주했다. 첫 곡 프로코피에프의 '행진곡'은 귀에 익은 주제의 변주였는데 웃는 모습의 한나처럼 아기자기하고 예쁜 연주였다. 두 번째 곡 카사도의 무반주 소나타 중 3악장이 이어졌는데, 가히 환상적이라 할 만큼 신비로운 음색으로 청중들을 휘어잡았다. 코드 잡듯 4개의 현을 차례로 피치카토 하는 부분은 기타같이 맑은 음색이 참 듣기 좋았다.  


6살 때 자클린 뒤프레의 연주를 듣고 첼로를 시작했다는 장한나. 어림짐작을 해 보니 그것은 뒤프레가 세상을 떠난 1987년쯤인 것이다. 뒤프레와 장한나의 바통 터치처럼 연결시키니 그것도 흥미롭지 않은가?.  


이제 스물둘의 장한나가 앞으로 보여줄 음악적 발전은 무엇일지 자못 궁금하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아우라가 터져 나오는 장한나! 그녀가 오늘 낭송한 ‘첼로의 시’ 세 편은 哲學徒다운 독백이었다.

                                                                                                                   (2004.08.15 예술의 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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