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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나무 Jul 03. 2016

백건우체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백건우 피아노 리사이틀






  파리 동남쪽 외곽의 뱅센느 숲 근처에 있는 5층짜리 아파트에 28년째 살고 있는 피아니스트, 쉼도 외도도 없이 피아노에 올인한 백건우를 만난 건 4 사자 3층 석탑의 적멸보궁, 화엄사를 다녀온 다음 날이었습니다. 그의 연주를 들으며 선(禪)이라든가 도(道)의 의미, 또는 그 도구가 될 수 있는 건 따로 정해진 게 아니란 걸 느꼈습니다.      


  흔히 신약성서에 비유하는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32개 전곡을 7일 동안 연속으로 연주한다는 건 어쩌면 무모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의 베토벤에 대한 목표가 하루 이틀 사이에 이루어진 건 아닙니다. 인기나 부와 상관없이 음악을 하는 사람, 나서거나 내세움 또는 어떤 꼼수도 없이 오직 피아노 속으로 들어갈 뿐인 연주자. 그가 섭렵한 작곡가의 수는 많습니다. 그의 느리고 어눌한 말처럼 서두르지 않는 피아노 인생은 경주에서 토끼를 제치는 거북이를 닮았죠. 일테면 그는 동시에 여러 권의 책을 펼쳐놓고 이것 조금 보다가 저것 조금 읽다 하는 게 아닙니다. 한 권의 책을 완전히 정독해야만 다른 책을 집어 드는 거와 만찬 가지죠. 그가 거의 전곡 완주를 한 작곡가는 이미 여럿입니다. 라벨, 스크리아빈, 프로코피에프, 리스트, 드뷔시, 뿔랑, 라흐마니노프, 바흐 부조니 편곡집, 포레, 쇼팽까지… 그건 초대형 용량의 증명과 동시에 예술적 고통과 환희의 접목인 베토벤을 만나기 위한 과정이었다고 생각했습니다.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은 약 3시간 동안 연주됩니다. 바그너의 오페라 링은 4일간 16시간 동안 연주하죠. 대단한 만큼 누구도 선뜻 임하지 못합니다. 연주가 좋고 나쁨을 떠나서 말입니다. “cycle in 7 days”, 시간과 거리상의 문제에 봉착하여 하루를 택해야 한다는 건 종합 선물세트에서 단 한 개의 과자만 집어야 하는 아이의 마음이랄까요? 제가 선택한  베토벤은 16, 17, 22, 23번이었습니다.      

쇼팽 녹턴 9-1


  음악회 시작 전에 여유가 있어서 어떤 장인의 도자기전을 둘러보았습니다. 전시회장 한쪽엔 그동안 수없이 깨트렸을 사금파리 일부가 그의 살점처럼 유리 상자에 담겨있었습니다. 무릇 아름다움은 두려움의 시작이라고 한 릴케의 말이 실감으로 다가왔지요. 한 번에 완성되는 예술은 없습니다. 그림이나 글, 악기를 연주하고 곡을 만드는 사람들 모두 셀 수 없는 반복과 고침을 거듭하기 마련이죠. 창작은 고행입니다. 그러기에 예술이 아름다운 건지도 모르죠.     



  그의 연주는 사찰음식처럼 담백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현란하거나 화려한 치장이 없었죠. 올곧고 투박했습니다. 피아노는 그만큼 정직한 소리를 냈지요. 수학 정석처럼 백건우는 베토벤의 정석을 쓰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악기는 스스로 소리 내지 않습니다. 밟으면 가고 밟으면 멈추는 자동차와 같은 이치죠. 어떻게 운전하느냐에 따라 악기는 그저 그대로 소리 낼 뿐입니다. 그날의 첫 곡 16번은 비창에서 고별까지 8개의 소나타를 쏟아낸 전날의 여독이 남은 듯 핑거링의 오타가 있었지만 중요치 않았습니다.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을 수 있는 소리가 펄펄 살아나기 시작했거든요. 희고 검은건반이 쏟아내는 소리는 오직 흑백뿐이었습니다.      


  17번 템페스트를 들을 땐 이전에 들었던 다른 피아니스트들의 연주들은 망각한 채 오직  그의 베토벤을 스포이드처럼 빨아들였습니다. 마침내 수십만 개의 음표형 도미노는 베토벤의 초상을 완성했습니다.     


  함정임의 소설 “인생의 사용”이라는 말처럼 “손의 사용”이란 말을 생각해봅니다. 23번 열정 소나타에선 백건우 자신이 열정이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1악장에서 2악장으로 넘어가는 막간의 정적, 그 순간은 객석의 모든 사람들이 함께 숨을 멈추고 귀와 눈을 같은 코드에 맞추고 있었죠. 3악장 내내 소름이 돋아나 어찌할 바를 모르겠더군요.      



  꾸밈없는 아름다움을 지어낼 줄 아는 사람, 흰 터틀넥에 치장하지 않은 머리칼로 무대에 오르지만 실상 빛바랜 트렌치코트가 잘 어울리는 연주자. 그러나 제겐 다른 모습이 연상되었습니다. 그가 두루마기까지 제대로 갖춘 한복을 입고 커다란 붓으로 백건우체 피아노를 쓰고 있는 것을요. 음악도 그림처럼 캔버스를 가득 채워야 하는 건 아니라고 말했듯 여백의 미를 느낄 수 있는 백건우체 베토벤은 그렇게 온몸을 빌어서 손가락 사이로 쏟아져 나오고 있었습니다.      


  그의 연주는 최근 지인이 낸 책의 제목처럼 지난 했던 한 해를 갈무리해주는 ‘위로’ (김미라 저)가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당분간 그의 연주를 CD로 만나야 합니다. 그에겐 쉼의 여백이 필요하거든요. 백건우의 Beethoven cycle in 7 days 중 오직 하루, 베토벤의 응답처럼 느껴지는 겨울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2008.12.8-14 예술의 전당)


부인 윤정희씨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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