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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나무 Jul 25. 2022

2.Colmar,  호스트의 차를 빌리게 된 사연

알자스, 꼴마르





여행은 계절을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끝난 것 같지만 다시 시작되고 다시 돌아옴이 그렇다.

굳이 어디가 예쁜 가를 찾을 필요가 없다.

어느 쪽으로 고개를 돌려도 한숨이 나오게 예쁜 컬러와 무늬, 집의 모양이 자연스럽게 아름다운 그런 마을이 있다.

세상의 그 어떤 최고의 카메라도 우리의 눈으로 보는 그 이상을 담아낼 수는 없다.

오감이 주는 기쁨은 저마다 다르지만 그래도 으뜸은 보는 즐거움이 아닐까 싶다.


1월의 꼴마르는 오가는 사람이 드물어 고적했다.

무겁게 가라앉은 겨울 공기는 차분하고 상큼한 레모네이드처럼 청량해서 좋았다.

작은 운하의 보트는 멈춰 있었고 힘없는 햇살이 드문드문 낡은 벽과 빈 나뭇가지를 비추고 있었다.

여행지에서는 대체로 아쉬움이 많기 마련이다.  


'지금도 이렇게 이쁜데 봄엔 어떨까?'

'우리 꽃필 때 꼭 다시 오자'




그게 7년 전이다.

일종의 바람이던 그 말은 지켜졌다.

꽃이 지천으로 피어있는 5월,  닷새 동안 꼴마르에서 지내기로 했으니 말이다.


여행을 떠나는데 설렘이 없다면 즐겁지 않다는 증거일 것이다.

5월이 오긴 올까? 하는 의문은 그만큼 기다림이 절절했기 때문이다.

공항버스 노선이 중단되어 처음으로 공항철도를 이용했다.

불편할 법도 한데 그저 행복하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으로 항로가 변경되어 비행시간이 두 시간이나 늘어났지만 그 어느 때보다 지루하지 않았다.

정신이, 아니 감정이 몸을 지배하는가 보다.

기내식이 형편없어도 한글 자막 지원이 되는 영화가 많지 않아도 그저 신이 났다.

그렇게 오랜만의 여행은 우리를 한없이 너그럽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프랑스로 입국하는 경우 꼴마르로 가려면 대부분 파리 리옹역에서 기차를 타고 스트라스부르로 간다.

그리고 다시 기차를 바꿔 타고 꼴마르까지 간다.

그러자면 드골 공항에서 파리 리옹역까지 이동해서 또다시 기차를 타고 가야 하니 시간과 경비가 많이 든다.

프랑크푸르트를 경유하여 파리로 가는 여정인 우리는 굳이 파리까지 갈 이유가 없었다.

프랑크푸르트에서 기차를 타면 스위스 바젤을 거쳐 꼴마르로 직접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프랑크푸르트 중앙역 앞의 호텔은 무엇으로 보나 훌륭했다.

역을 나오자마자 100M 거리의 가까운 위치, 작은 거실이 딸린 디럭스 트윈 룸은 시원시원하게 넓었다.

이방 저 방, 방 세 개를 차례로 구경하며 어린아이들처럼 즐거워했다.

게다가 꽤 수준이 높은 무료 조식에 모두들 만족도가 높았다.

시작이 좋다.



프랑크푸르트 중앙역
프랑크푸르트 Steigenberger Metropolitan 호텔 룸에서 보이는 중앙역



이번 여행 일정은 소도시 중심이었기에 렌터카가 필수이다.

이러저러 꼼꼼하게 구글링을 해보았지만 알자스의 히보빌레(Ribeauvillé), 리꿰위르(Riquewihr), 에기솅(Eguisheim) 같은 작은 마을들은 차가 없으면 거의 불가해 보였다.

로컬 버스가 다니긴 하지만 운행 시간이 맞지 않아 시간 허비가 많을 것이 예상되었다.

 

엑상 프로방스와 노르망디 지역은 우리가 원하는 차를 렌트할 수 있었지만

알자스 지방에서 자동 기어를 가진 9인승 밴커녕, 7인승 미니밴도 찾을 수 없었다.

게다가 꼴마르에 도착하는 날이 토요일 오후 3시라 대부분의 렌터카 영업소는 문을 닫는 형편이었다.


'소형차 두 대를 빌려야 하나?' 하는 생각을 하다가 호스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 알자스의 쁘띠 빌리지를 대중교통으로 다닐 수 있는지...

- 7인승 미니 밴을 렌트할 수 없는데 어떻게 해야 좋을지...


호스트의 답은 명료했다.


'그곳들을 다닐 수 있는 대중교통이 없습니다.'


그리고는 l 'Alsaciette라는 곳을 소개했다.

웹사이트를 찾아 이 메일로 문의하니 기사가 포함된 맞춤형 여행 상품을 안내했다.

우리가 원하는 시간, 원하는 지역을 태워주는 방식이다.

비용이 매우 고가인 데다가 완벽하게 자유로울 수 있는 여행이 아니라 내키지 않는 터였다.

그러던 중 호스트에게 뜻밖의 메시지를 받았다.


'차를 사용할 일정을 디테일하게 알려주세요. 어쩌면 해결책이 있을 수 있습니다.'


나는 자세한 일정을 알려주었고 그는 본인이 갖고 있는 7인승 오토메틱 자동차를 빌려줄 수 있다고 한다.

단 보험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알아보고 연락을 주겠단다.


'세상에 하늘이 우리를 도왔어, 이럴 수도 있는 거야?'


거듭 감사의 말을 전했다.


보험을 알아보겠다던 미셸은 한 달이 넘도록 가타부타 아무 말이 없었다.

그 후 2~3회에 걸쳐 메시지를 보냈으나 감감무소식이었다.

답답하기 그지없었다.


프랑스로 떠나기 1주일 전, 드디어 메시지가 왔다.

그런데 당신들은 우리가 꼴마르에 도착하는 날 파리에 있을 예정이라며 셀프 체크인 방법만 명시되어 있다.

내가 자동차를 재차 언급하니 그때서야 아무 일도 없었던 듯 대뜸 원하는 금액을 얘기하란다.

다른 지역에서 빌린 렌터카 기준의 금액을 제시했다.

하지만 그는 내 제안과 달리 72시간 사용하는 조건으로 현금 600유로에 디포짓 400유로를 원했다.

다소 비싸긴 하지만 대안이 없으므로 흔쾌히 오케이를 했다.

집은 예상한 대로 운하가 가깝고 유료이긴 하지만 집 앞이 바로 주차장이라 편리하겠다 싶었다.



꼴마르 숙소 전경

                                                           



'코로나가 뭐예요?'

'왜 마스크를 끼고 다녀요?'

하듯 그곳은 코로나와는 상관없는 별개의 세상 같았다.

진짜 딴 세상에 와있는 비현실감이 들어서 적응 시간이 필요했다.

어딜 가나 여행자들이 바글바글했지만 마스크를 착용한 사람은 없었다.

마치 그동안 우리가 한국의 코로나 뉴스에 속아온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혹시나 중국인으로 오해당하여 불이익을 당하는 불상사가 있을까 봐 배낭에 붙일 작은 태극기 와펜도 준비했지만 봉쇄 중인 중국인들은 어디에도 없었다.


꼴마르의 목골 주택(꼴롱바주)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노랗고 빨갛고 보라보라 하는 작은 꽃들이 지천에서 방실거린다.

리틀 베니스라 불리는 작은 운하에는 사람들을 태운 조각배가 연신 분주하게 미끄러져 내려갔다.



해질 무렵 보트 투어

                                                          

마치 영국의 코츠월드를 연상시키는 풍경의 작은 다리


무서울 정도로 보트를 졸졸 따라다니던 백조


나는 여행지에서의 새벽 산책을 즐긴다.

산책이라는 이름을 붙이지만 대부분 사진을 찍기 위해서다.

사람이 많으면 시야를 가리는 단점도 있지만 뭔가 집중이 안되고 의욕이 떨어진다.

새벽 사진은 빛의 효과를 보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아예 동트는 새벽이 아니라면 태양이 어느 정도 올라와야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한적한 골목들을 천천히 구석구석 누비는 맛을 알고 나면 나가지 않고는 못 배긴다.

 

 

저녁 무렵


이른 아침



호스트가 우리에게 자동차를 빌려줄 수 있던 것은 그들이 주말 동안 파리에 가게 되어서였다.

자동차를 인계해 줄 누군가를 찾지 못한 미셸은 자동차 키를 숙소 안에 두고 떠났다.

그리고 다음의 사진을 보내왔다.



미셸이 보내온 자동차 정보 사진



- 그의 집에 두고 간 자동차 키로 보아 차종은            peugeot(푸조)

- 7인승 SUV

- 프랭클린 루스벨트가의 어떤 나무 아래에 주차되어 있음

- 기름이 가득 채워져 있음


우리가 사진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다만 이뿐이었다.

주차된 곳을 검색하니 숙소에서 도보로 8분 정도의 거리였다.

아마도 무료 주차인 곳이라 그곳에 두고 갔을 거라 짐작했다.

다음 날, 루스벨트가를 찾아 나섰다.

그곳은 한적한 주택가였고 예상대로 무료 주차 지역이었다.

그런데 아뿔싸~

루스벨트가에는 수십 대의 자동차들이 도로 양쪽에 빼곡하게 주차되어 있었다.

자동차를 찾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어딘가에 있을 미셸의 자동차를 향해 키를 눌러댔지만 삐빅하는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미셸은 고등학교 교사이고 캐시는 의사인 호스트 부부는 우리를 위해 최소한 자동차 넘버는 알려줘야 했다.

그렇게 주차된 사진의 나무의 방향과 집을 유심이 들여다보며 마침내 차를 찾을 수 있었다.


이게 프랑스식인가?

뭔가 불편하고 깔끔하지 못한 그들의 소통 방식이 좀처럼 이해되지 않았다.

그래도 무사히 차를 찾았고 이제 쁘띠 쁘띠한 마을들을 찾아 나서기만 하면 되었다.

미션 성공! 을 외치며 우리는 룰루랄라 차에 올랐다.


하지만 그것이 아주 사소한 시작에 불과하다는 걸 우리는 짐작하지 못했다.


  

알자스에서 우리의 발이 되어준 푸조
쁘띠 베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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