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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나무 Jul 26. 2022

3. 내비게이션 읽어주는 여자

프랑스 히보빌레, 리퀘위르, 케제르베르그




여행을 하는 동안 친구들은 나를 대표님이라고 부른다.

여행의 주동자이며 주모자, 지역 선정, 일정의 플랜, 숙소와 교통수단 예약, 음악회 티켓 예약, 후기 작성까지 맡고 있다.

쉽게 말해 여행의 독재자인 셈이다.

이름의 이니셜을 딴 SK여행사는 나 혼자 운영한다.

스스로 자처한 일이며 금전상의 이익은 없다.

오로지 친구들의 기쁨과 행복, 만족을 위해 함께 할 뿐이다.

이렇게 얘기하니 비록 독재자지만 조금의 용서가 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대표라는 타이틀 외에 포토그래퍼라는 이름도 있다.

친구들의 인생 샷을 목표로 하는 사진을 찍는다.(아마추어라 아직 성공 못했지만 어느 정도 만족도는 있어 보인다)

여행이 끝나면 애프터서비스처럼 음악을 얹은 포토 슬라이드 쇼를 만들어주기도 한다.(그 또한 스스로 자처한 일이다.)


그런 내게 새로운 이름이 생겼다.

내비게이션 읽어주는 여자.

자동차에 내비게이션이 있지만 언어 설정도 그렇고 경험 상 구글 맵이 편하고 익숙하다.


유럽은 round about, 즉 회전 교차로가 많다. 좌회전 신호가 별도로 없는 곳이 대부분이다. (우리나라의 비보호 좌회전) 그러므로 유럽에서 운전하기란 생각보다 만만치 않다.

더구나 꽤 넓은 자전거 도로가 차로와 함께 있으며 일방통행은 물론이요, 일방 버스 전용 차로 등 우리와 다른 것이 많다.


신호등 높이도 그렇다.

우리나라처럼 높이 달려 있지 않고 나지막하게 옆에 서있어 놓치기 십상이다.

유료도로에서는 진입하는 차량들이 아주 빠르고 짧게 치고 들어온다.   

그러다 보니 내비게이션을 봐주는 조수가 있다면 운전자의 긴장감을 조금 덜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비교적 렌터카 경험이 많고 구글맵을 익숙하게 본다는 미명 하에 나는 내비 읽어주는 여자가 되었다.

렌트는 내 이름으로 했는데 정작 알자스에서는 운전대를 잡아보지 못했다.


내비 읽어주는 사람에게는 몇 가지 고통이 따랐다.

프랑스의 자동차는 우리와 달리 대부분 유리창의 선팅을 하지 않는다.

선글라스 대신 돋보기를 껴야 폰이 보이므로 차창으로 쏟아져내리는 UV를 차단할 방법이 없다는 것,

수없이 이어지는 교차로에서 빠져나갈 도로의 구멍을 잘 찾기 위해 온 신경을 곤두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독일과 인접한 알자스의 쁘띠 빌리지


리보빌레(Ribeauvillé )라고 읽히지만 프랑스는 R이 ㅎ발음에 가깝기 때문에 현지에서는 히보빌레 라고 발음한다.

꼴마르를 기점으로 알자스 지방의 예쁜 마을은 수 없이 많다.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의 배경지, 또는 자유의 여신상을 조각한 바르톨디의 고향이자 하울의 움직이는 성, 미녀와 야수의 배경이 된 곳 등등 이곳을 찾는 각각의 이유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 것들과 관계없이 구글에서 예쁜 마을을 검색했다.

그리고 근거리에 모여있는 마을 세 곳을 골랐다.

꼴마르에서 20km 안팎의 가까운 거리에 있기에 하루에 돌아보기로 했다.

제일 먼저 찾은 히보빌레, 아침 일찍 도착해서 운 좋게 무료 주차장에 차를 댈 수 있었다.

한쪽 벽에 Centre ville을 가리키는 화살표가 보인다.


벌써 예쁘다.

한눈에 보아도 오래된 집이지만 깔끔하게 유지 보수해온 벽들은 저마다 맑게 페인트칠을 했다.

화려하지 않은 기품이 맘에 든다.

고상한 립스틱을 바른 듯 창턱에는 컬러와 채도가 각기 다른 붉은 제라늄들이 까르르 웃는다.

커튼 자락처럼 창문을 둘러싼 초록의 아이비,

주황색 벽에 아이보리 창문, 보랏빛 벽에 빈티지한 나무 덧창들이 저마다 다른 무늬의 목골과 어우러져있다.

마치 symphony of houses같다.



유난히 클래식 미니 올드카들이 많았다.
중세 분위기가 물씬 나는 색조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 같은 컬러



테두리를 핑크색 수를 놓은 듯 예쁜 그림이 그려진 시계탑의 이름은 부셰( La Tour des Bouchers).

탑 아래는 아치 형태의 문이 있는데 그 옆 쪽으로 'Au passage de la tour'라는 레스토랑이 있다.

사람들이 몰리기 전에 조금 이른 점심 식사를 하고 다음 마을로 가기로 했다.

탑으로 인해 살짝 가려져 완전히 오픈되어 있지 않아 비교적 안정된 느낌을 주며 한적한 것이 맘에 들었다.

테이블과 좌석이 있는 쪽이 그늘이 지고 예쁜 시계탑이 보인다는 이유도 한몫했을 것이다.

예상대로 우리가 자리에 앉기 무섭게 사람들이 몰려들어 이내 만석이 되었다.



부셰탑 ( La Tour des Bouchers)



음식은 더할 나위 없이 훌륭했고 와인 가도인 만큼 알자스의 피노 그리와 피노 블랑은 맛이 깊었다.

함박 스테이크처럼 다진 고기로 만든 음식은 작은 항아리 스타일의 자기에 샐러드와 감자가 곁들이로 나왔는데 감자가 담백하면서 고소한 게 자꾸 손이 간다.

프렌치프라이를 곁들인 수제버거는 폴란드 브로츠와프의 파시 부스(PASIBUS)에서 맛보았던 버거 버금가게 육즙이 풍부하고 느끼함 없이 고소하다.

후에 검색해보니 그곳은 평점이 꽤 높은 맛집이었다.

비둘기들이 아치 아래 나무 선반에서 휴식을 취하고 간간이 지나가는 꼬마 기차의 여행자가 손을 흔들어준다.

일상에서는 겪을 수 없는 풍경이다.

그런 사소함에 기뻐하고 소소함에 감동하는 게 여행이 맛이 아닐까 싶다.




'Au passage de la tour에서의 lunch



히보빌레는 매년 9월 메네트리에(Fête des Ménétriers)라는 전통 축제가 열린다고 한다.

600년 동안 이어지고 있는 이 행사는 중세 시대의 분위기를 재현하면서 온 마을을 꽃으로 단장한다고 한다.

이 축제의 기원은 마을에 서 있는 피리 부는 소년의 동상과 관련이 있다.

1390년 어느 날, 왕이 히보빌레를 지나다가 한 소년이 부러진 피리를 손에 쥔 채 울고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이유를 물어보니 피리가 부서져서 가족의 생계가 막막해졌다는 거다.

소년의 이야기를 들은 왕은 피리를 살 수 있도록 도와주었고 소년은 기쁨과 감사의 뜻으로 피리를 연주하여 그때부터 거리 축제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전설로 전해지는 피리 부는 소년
메네트리에 축제(Fête des Ménétriers) - 사진 출처 google



히보빌레에서 리퀘위르(Riquewihr)까지는 5km 남짓이니 바로 옆 동네다.

도로에 뭔가 쓰여있는 글씨가 희미하게 지워졌는데 그게 payant(유료주차장)이려니 여기고 주차를 했다.

그 순간 자전거를 타고 가던 아주머니께서 멈추더니 웃으며 다가오셨다.

프랑스어로 무슨 말을 하시는데 우리가 못 알아들으니 도로 옆에 세워진 표지판을 가리키셨다.

알고 보니 그곳은 거주자 주차 공간(reserve aux residents)이었다.

payant이 쓰여있는 유료 주차장을 찾아 주차를 한 후 근처의 있는 발권기(티켓 머신)에서 티켓을 뽑아 운전대 위에 놓아두었다.

주차 발권기를 사용하려면 우선 차량의 번호를 입력한 후 주차할 시간에 맞는 금액의 동전을 집어넣으면 영수증이 프린트되어 나온다.     


유료주차 공간의 표시
주차요금 정산기


리퀘위르는 온통 보랏빛 꽃송이가 포도처럼 주렁주렁, 등나무 꽃이 지천에 피어있다.

비교적 윗동네에 주차를 해서 그냥 쭉 직선으로 이어진 길을 내려오면 되었다.

와인과 아이스크림, 아기자기한 소품들을 파는 상점들이 즐비한 거리는 동화 나라 버금간다.

다채로운 컬러 때문인지 향기가 날 것 같은 분위기이다.

하나하나 모두 다른데 어쩌면 다 예쁠 수 있는지 어디로 눈을 돌려도 그저 비현실적이다.



등나무 꽃
와인 샵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의 게트라이데 거리는 철제 간판으로 유명하다.

문맹인 사람이 많던 중세 시대 글자가 아닌 그림으로 간판을 만들어 사람들이 쉽게 알게 했다고 한다.

이곳 역시 중세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어서인지 철제 간판이 많다.

 

호텔 간판
앙증맞은 철제 간판
영화 세트장 같은 컬러의 집



Hotel de ville(시청)이 보인다.

아마도 그 거리의 끝인가 싶다.

왼쪽으로 고개를 돌렸는데 골목 끝에 각각 다른 푸름의 조화가 탄성을 지르게 만들었다.

몇 조각의 하얀 구름 두둥,

그 아래로 코발트 색 하늘 아래 언덕에 초록의 포도나무가 줄지어 서있는 것이다.


와인을 만드는 포도나무는 자갈이 많고 척박한 땅일수록 좋은 와인을 만들어낸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

그런 땅에서 자라는 나무는 가지는 굵어지지만 키는 작다는 것이다.

그런데 생각했던 것보다 정말 작다.

포도나무의 목대는 노인의 툭툭 붉어져 나온 손가락 관절을 닮았다.

저마다 지팡이에 몸을 의지하듯 그 작은 키를 지지대에 받혀져 잎을 키우고 열매를 맺는 중이다.



Riquewihr  Hotel de ville
포도밭
포도밭의 원두막


예쁜 배경이 나타나면 독사진을 안 찍을 수 없다.

여러 컷을 찍다 보니 시간도 만만치 않다.

오가는 사람들을 기다리고 피하다 보면 더더욱 그렇다.

여섯이 한꺼번에 모두 찍는 건 더 어렵다.

보통 한 사람이 빠지고 번갈아가며 다섯이 찍게 된다.


5월의 나뭇잎을 닮은 연둣빛 목골 벽을 배경으로 하나둘 사진을 찍고 있었다.

지나가시던 할머니께서 우리의 사진을 찍어주겠노라고 하신다.

여섯이 쪼르르 신나게 웃으며 메르씨~

찰칵!

그 사소한 친절에 우리들의 마음도 흰구름 따라 두둥~이다.



빈티지 나무 화분과 제라늄



케제르베르그(Kaysersberg)로 향하는데 좁은 갈림길에서 길을 잘못 들었다.

하지만 똑똑한 내비게이션은 또 다른 방향의 길로 안내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새롭게 안내한 길은 뜻밖에도 조금 전 우리가 올려다보던 포도밭의 꼭대기로 향하고 있었다.

뜻밖의 행운에 잠시 주차하고 저 아래 내려다 보이는 리퀘위르와 포도밭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저 멀리 코끼리 열차가 뒤뚱뒤뚱 올라오는 모습이 보인다.

그러니까 우리는 길을 잘못 든 게 아니라 메인 코스로 제대로 찾아 들어간 것이다.

한바탕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포도밭을 무사히 벗어나 다음 빌리지에 도착했다.




포도밭
포도밭에서 내려다본 Riquewihr



케제르베르그(Kaysersberg)는 독일식 이름이다.

알자스가 독일과 경계에 있기 때문에 건축 양식도 콜롱바주가 많은 것처럼 마을의 이름도 독일식이 많다.

이곳의 마을들이 예로부터 독일이었다가 프랑스였다가 하는 굴곡을 겪은 이유도 있다고 한다.

2017년에 프랑스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마을로 선정되었다는 표식이 마을 입구에 붙어 있다.

프랑스 방송국에서 매년 ' 프랑스인이 가장 좋아하는 마을' 3개를 선정하는데 케제르베르가 2017년에 1위로 선정된 것이다.  

알자스 전통의 목조 가옥들은 15세기와 18세기 사이에 지어졌다고 한다.

어딜 가나 집들은 세월의 흔적이 고운 결을 품고 있음이 놀라웠다.

낡음은 곧 기나긴 시간과 같은 의미이다.

지난한 시간을 품고 왔기에 더 소중하고 깊이가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2017 프랑스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마을 1위 선정 표식
케제르베르그 중심거리
마을을 흐르는 Weiss 강
돌확과 여리여리한 풀꽃의 조화가 플로리스트의 작품보다 아름답다
케제르베르그 : 박물관이 된 알베르 슈바이처 (Albert Schweitzer)의 생가

   

예쁜 것을 마다할 사람이 있을까?

눈이 호강하고 입이 즐겁고 마음이 기쁘니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다.

내비게이션을 읽어주는 시간이 뿌듯했음을 밝힌다.



 


  

 

 

  

히히 보 빌레, 리퀘위르, 케제르베르그보빌레, 리퀘위르, 케제르베르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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