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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나무 Jul 28. 2022

5. 엑상프로방스의 천사들

Aix-en Provence






카 렌탈을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여행자들이다.

그러므로 렌터카 사무실은 공항이나 기차역에 몰려있다.

소유하고 있는 자동차의 종류나 숫자도 가장 많다.

엑상 프로방스에 도착하는 날, 자동차를 기차역에서 픽업하기로 했다.


현지인들은 엑상프로방스를 짧게 '엑스 Aix'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엑스는 라틴어로 '물'이라는 뜻인 아쿠아 AQUA에서 유래되었다.

그러므로 엑스는 '프로방스에서 물이 나는 곳'이라는 뜻이고 중심 대로인 미라보 거리에는 17세기에 만들어진 분수들이 많다.

엑스는 나폴레옹이 프랑스를 통일하기 전 프로방스의 수도이기도 했다.


엑스는 엑스 테제베 역과 엑스 역이 따로 있다.

테제베 역은 중심가에서 약 20km 떨어져 있고 엑스 역은 시내 중심가에 위치한다.

우리는 꼴마르에서 테제베를 타고 엑스 테제베 역에 도착할 예정이다.

그러므로 테제베 역에서 렌터 카를 받아서 숙소로 이동해야 한다.

여섯 명이 여행을 하기에 9인승 밴을 렌트해도 캐리어 여섯 개에 여섯 명 모두 탑승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런데 7인승 미니밴 밖에 구하지 못했다.

그러므로 일단 렌터카에 캐리어를 싣고 세 명은 탑승, 나머지 세 명은 우버를 이용하여 숙소로 이동하기로 했다.   



엑상 프로방스 테제베 역 내부
엑상 프로방스 테제베 역 외부



추가 운전할 친구와 나는 렌터카 사무실로 향했다.

사무실은 브리지를 건너 역의 반대편이었다.

스페니쉬 계로 보이는 Enterprise 사무실의 아가씨는 친절하고 상냥했다.

우리의 질문과 요청을 귀담아 들어주고 자상하게 설명해주었다.

당초 계약에서 빠져있던 풀 커버 보험과 엑스트라 드라이버 등록을 마친 후 차량이 있는 곳으로 찾아 나섰다.

역의 뒤편에는 수 없이 많은 차량들이 고객을 기다리고 있었다.



프로방스는 우리나라의 햇살과 다르다.

5월 한낮 기온은 약 23도,

쾌적한 기온이다.

하지만 태양은 순도 높은 맑은 공기를 그대로 투과해서 내려 꽂혔고 바늘처럼 강렬했다.

이미 땀이 삐질삐질 배어 나왔다.

계약한 자동차는 시트로엥이었으나 포드를 받게 되었다.

자동차 외부의 스크래치들을 꼼꼼하게 사진 찍고 사인까지 마쳤다.


이제 숙소를 향해 출발하면 되지만 먼저 친구들이 기다리고 있는 곳까지 가야 한다.

그런데 몇 가지 문제가 있다.


- 그쪽이 역의 앞인지, 뒤인지 확실하지 않다.

- 그러므로 내비게이션에 입력할 명칭이 정확하지 않다.

- 캐리어를 싣자면 시간이 한참 걸릴 텐데 주차할 공간이 있을지 모른다.

- 잘못했다가는 엉뚱한 곳으로 가서 헤맬 수 있다.


그러니 좀 불편하지만 친구들에게 돌아가 캐리어를 끌고 자동차가 있는 곳까지 오는 것이 안전하겠다는 의견이 모아졌다.

이과 출신 2명과 이과 사고를 가진 문과생 한 명의 의견이 모아진 결론이다.

친구들이 기다리고 있는 곳까지의 거리는 꽤 멀었다.

게다가 시간이 꽤 흘렀다.

마치 사막에서 2박 3일 동안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한 사람처럼 갈증이 심했다.

작은 시골 마을에서 살다가 대처에 오니 정신을 못 차리는 격이다.




엑상 프로방스 테제베 역


드디어 캐리어를 모두 싣고 숙소까지 운전할 J와 내비녀인 나, 그리고 짐꾼을 자처하는 D가 렌터카에 탑승,

남은 셋은 우버를 타고 숙소에서 만나기로 했다.

엑스의 중심가 미라보 광장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숙소는 1655년에 건축된 건물로 샹들리에가 멋진 복층이다.

이제 럭셔리한 집에서 올리브와 치즈를 접시에 예쁘게 담아 와인 한 잔 마시며 로통드 분수를 내려다보는 호사를 누리면 되리라 생각했다.  

그렇게 다 끝난 줄 알았다.



엑상 프로방스 숙소


 

약간의 정체 구간이 있었지만 비교적 수월하게 숙소 근처까지 갔다.

그런데 내비게이션이 안내한 곳은 일반 차량의 통행을 제한하는 쇠 막대기로 가로막혀 있다.

게다가 그곳은 아주 좁아 작은 차를 돌리는 것도 만만치 않은 위치인데 우리 차는 덩치 큰 밴이 아닌가.

다행히 따라오는 차가 없어 후진으로 차를 돌려 다른 통로로 나갔지만 역시나 내비게이션을 다시 그곳으로 안내했다.

숙소를 예약할 무료 주차장을 필터에 넣고 검색하지만 유럽은 오래된 주택을 그대로 사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한국처럼 지하 주차장 같은 건 없다.

호스트는 집에서 300m 떨어진 유료 주차장을 알려주었었다.

하지만 우리는 숙소 앞에 잠시 정차하여 캐리어를 내려놓고 주차장으로 향할 요량이었다.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주변을 빙빙 돌다 정확한 숙소의 위치를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차에서 내렸다.

50m 남짓한 좁은 골목을 벗어나니 대로가 나왔는데 한 눈에도 그곳이 미라보 거리라는 걸 짐작케 했다.

띄엄띄엄 오래된 분수들이 보이고 키가 큰 플라타너스들이 줄지어 서 있다.

햇살 가득한 거리를 걷는 사람,

노천 카페에서 차를 마시거나 식사를하는 사람,

인라인 스케이트 타는 아이들 등 한없이 평화롭고 활기가 넘쳤다.



세잔과 에밀 졸라의 단골 카페 Les Deux Garçons
미라보 거리에는 18세기에 만들어진 분수가 곳곳에 남아있다.



숙소의 위치는 우리들의 자동차가 서있는 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어떤 사람은 차가 들어올 수 있다고 하고 어떤 이는 차가 다니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그 넓은 도로에 일반 자동차는 보이지 않고 식당 앞에 짐을 내리는 작은 트럭이 보였다.

보행자 전용도로라는 걸 짐작했다.


그러나 저러나 마음이 급했다.

마땅하게 세울 자리를 찾지 못하고 이리저리 빙빙 돌며 운전을 하고 있을 친구를 생각하니 어떻게든 방법을 강구해야만 했다.


다짜고짜 지나가는 사람에게 말을 걸었다.

'실례지만 저 좀 도와주시겠어요?'

그는 흔쾌히 그러겠다고 한다.

전후 사정 이야기를 들은 남자는 현재 자동차의 위치를 물어보았다.

그와 함께 차가 있는 골목길로 들어섰다.

차의 위치를 보고 잠시만 기다리라고 하더니 마침 근처에 세워둔 자신의 오토바이 트렁크를 열었다.

그리고 손에 들고 있던 샌드위치를 집어넣고 돌아왔다.

그곳은 소방차나 구급차 같은 긴급사안이 있을 때만 통과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므로 숙소 앞에 차를 세우고 러기지를 내릴 수 없다는 것이다.

오직 유료 주차장에 파킹하고 숙소로 가는 방법 밖에 없다며 자신의 휴대폰으로 검색을 시작했다.

그리고 가장 가까운 주차장의 이름을 찾아서 알려주곤 자동차가 잘 빠져나갈 수 있도록 주변을 살펴보며 수신호를 해주었다.

그렇게 좁은 골목에서 후진을 하거나 갈 곳 몰라 헤맬 때 뒤에 따라오는 자동차들은 그 누구도 경적을 울리거나 재촉하지 않았다.


그가 알려준 s e m e p a parking mignet는 공교롭게도 호스트가 알려준 유료주차장이었다.

그런데 주차장 입구에 members only라는 문구가 쓰여있고 차단기가 내려져 있는 것이다.

그나마 그 앞 도로가 Payant이라 주차해도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빈자리가 없던 차에 마침 은발의 할머니가 주차된 작은 차로 다가서기에 다급하게 물었다.



s e m e p a parking mignet



'저곳에 우리의 자동차가 있는데 혹시 이곳에 주차해도 되나요?'

'그러믄요 되다말다요, 내가 지금 떠날 거니까 여기다 주차하슈.'


그런데 공교롭게 할머니 차 뒤에 주차를 기다리는 차가 서있었다.

할머니는 차에서 내리시더니 그 차로 다가가신다.

그리고 뭔가를 말씀하시니 대기 중인 자동차가 떠나는 것이다.

할머니는 내게 다가오시더니

'여기에 주차하면 돼요.' 하고 거듭 말씀하신다.

추측 건데 할머니는 이 외국인을 위해 주차를 양보해달라고 말씀하신 게 아닌가 싶었다.


나는 할머니께 메르씨를 거듭하며 끝없이 꾸벅이며 인사를 했다.

얼굴 가득 환한 미소를 띤 은발의 할머니는 손을 흔들며 떠나시고 우리는 그 자리에 무사히 주차를 할 수 있었다.


입이 말랐다.

곧 쓰러질 것 같은 피곤함이 엄습했다.


우버를 타고 간 친구들은 숙소에 잘 도착했다는 연락이 왔다.

친구들에게 우리가 있는 위치를 전달하고 나서 나무에 기대어 털썩 주저앉았다.

어마어마한 긴장과 초조함속에서 대담하고 침착하게 운전한 친구 J의 얼굴도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친구 역시 그제서 물을 마시곤 내 옆에 털썩 주저 않았다.

얼마 후 세 친구들이 주차장으로 찾아왔고 기진맥진 캐리어를 밀며 숙소로 향했다.


아찔하고 막막한 순간들을 무사히 넘길 수 있도록 도와준 엑상 프로방스의 천사들에게 다시 한번 감사의 말을 전한다.


 

네 마리 돌고개 분수 place des Quatre-Dauphins
이른 아침 돌고래 분수 앞에서 그림을 그리는 남자 (허락을 얻고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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