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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나무 Aug 07. 2022

14. 음악은, 언제나 문이 열려있는 성당같은

파리 필하모니 드 파리




필하모니 드 파리, 그랑데 살레 삐에르 불레즈(Grande Salle Pierre Boulez)입구



솔직히 이번엔 파리의 <오페라 가르니에>에서의 공연을 볼 수 있었으면 하고 바랐어요.

오페라 가르니에는 나폴레옹 시대에 서른 다섯 살의 건축가 장 루이 샤를 가르니에(Jean-Louis-Charles Garnier, 1825~1898)가 설계를 맡아 1875년에 세워진 극장입니다.

내부의 화려함이 그 어느 궁전 못지않은 아름다운 곳이죠.

그리고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의 배경이 된 곳이기도 합니다.

파리에 머무는 일정에서 딱히 볼만한 프로그램이 없었습니다.

금속 조각을 이어 붙여 만든 형상이 무슨 우주선이 엎드려 있는 것 같은 필하모니 드 파리보다 오페라 고풍스럽고 화려한 가르니에가 훨씬 파리답습니다.

필하모니 드 파리는 비상하는 새의 모티브를 딴 25만여 개 은회색 알루미늄 타일이 건물 전체를 감싸고 있는 모습이거든요.

그러나 어쩌겠어요.

차선으로 필하모니 드 파리 홈페이지를 찾아 들어갔지요.

그곳에서는 6년 전, 파보 예르비 지휘의 라디오 프랑스 필 연주와 루도비코 에이나우디 공연을 본 경험이 있습니다.



오페라의 유령(앤드류 로이드 웨버)
오페라 가르니에 극장
가르니에 2층 공연장으로 가는 중앙 계단
2층 홀
공연장 내부
천장화는 샤갈의 그림(꿈의 꽃다발)



'오호~ 역시 난 콘서트 운이 좋아'


첼리스트 고티에 카푸송과 라디오 프랑스 필이 연주하는 심포니크와 말러 교향곡 5번이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틀 후에 예정된 피아졸라 6중주의 탱고 공연도 구미가 당겼지요.

친구들의 의향을 물어보니 역시나 OK사인을 보내왔어요.


로열석이 보거나 듣기에 최고 좋은 좌석이라는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

그 로열석이 우리 돈으로 7만 원도 안 합니다.

그들이 서울에 공연을 오면 3층 꼭대기 가장 값싼 좌석 가격이지요.

기분 좋게 예매를 했습니다.

피아졸라 6중주 역시 제일 좋은 좌석을 선점할 수 있었어요.

게다가 이건 또 무슨 일입니까?

알고보니 필하모니 드 파리가 숙소에서 걸어서 15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였던 것입니다.


여행을 하면서 공연장을 찾아다닌 것은 2003년 시카고 시빅 오페라 하우스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 후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마린스키 극장, 밀라노 라 스칼라, 빈 슈타트 오퍼, 베를린 필 오케스트라 콘서트 홀, 프라하 루돌피눔, 잘츠부르크 모차르트 축제 극장, 런던 라이시엄 극장 등 세계 유수의 공연장들을 찾아다녔습니다.

그러니까 나의 여행에서 음악회는 실과 바늘 같은 관계라고 할까요?

배운 게 음악이고, 수십 년 동안 음악을 업으로 살다 보니 그에 대한 관심과 사랑은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친구들과 나는 옷을 단정하게 차려입고 숙소를 나섰습니다.




필하모니 드 파리 지붕
필하모니 드 파리 지붕
필 하모니 드 파리 내부


첼로가 독주 악기로 부각되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바이올린이나 피아노 협주곡의 작품 수에 비하면 현저히 적지요.

네메 예르비(Neeme Jarvi, 1937 -  )와 파보 예르비(파보 예르비 Paavo Järvi, 1962-  )는 부자 지휘자로 유명합니다.  

그런데 오늘 협연할 첼리스트는 고티에 카푸송(GAUTIER CAPUÇON, 1981-  프랑스)은, 그의 형 바이올리니스트 르노 카푸송(Renaud Capucon, 1976-  프랑스)과 함께 프랑스를 대표하는 현악기 연주자입니다.



고티에 카푸송
르노 카푸송


'그랑데 살레 삐에르 불레즈(Grande Salle Pierre Boulez)'는 필하모니 드 파리에서 가장 큰 홀의 이름입니다.

Grande는 '큰'이라는 뜻, salle는 '방' 그러니까 영어의 홀입니다.

그리고 Pierre Boulez(1925-2016)는 금세기 프랑스를 대표하는 지휘자이며 작곡가입니다.


고티에 카푸송이 연주할 곡은 대니 엘프만(Danny Elfman)의 심포니크, 연주 형태는 첼로 협주곡입니다.

사실 엘프만은 처음 듣는 이름이었습니다.

막연히 현대 작곡가인가 보다라고 여겼지요.

음악을 들어보니 느낌이 오더군요.


'이건 클래식이라기보다 애니메이션 배경 음악처럼 판타지 한데?'


나중에 검색을 해보니 엘프만은 유명한 영화 음악 작곡가였습니다.

영화를 좋아하는 내가 그를 몰랐던 데는 이유가 있더군요.

배트맨, 가위손,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빅 피시, 찰리와 초콜릿 공장 등 그가 참여한 영화 중 단 한 편도 본 영화가 없었으니까요.

쉽게 말해 제 취향의 영화가 아니었으므로 몰랐던 거예요.

영화감독 팀 버튼과 환상의 드림팀으로 함께 일을 하는 음악가더군요.

그렇다고 그의 음악이 나쁘다는 건 아닙니다.

다만 내가 좋아하는 영화 음악의 취향은 이탈리아의 '루도비코 에이나우디'와 프랑스의 '알렉상드르 데스플라' 쪽이지요.


고티에 카푸송과 르노 카푸송은 일찍이 잘 알고 있었고 연주도 많이 들어봤던 연주자입니다.

여행지에서 길거리에 붙어 있는 그들의 공연 포스터를 발견하고 한참 동안 발걸음을 멈추고 자세히 들여다 보기도 했었지요.


고티에 카푸송의 연주는 뭐랄까 날 것의 냄새가 납니다.

황야의 무법자처럼 거침없지요.

작은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가 보고 듣는 이에게 고스란히 전달되더군요.

그날 엘프만의 첼로 협주곡은 프랑스 초연이었는데 고티에 카푸송은 성공적으로 연주를 마쳤습니다.


  

지휘자 안드레스 오로즈코 에스트라다(좌), 작곡가 엘프만(가운데), 첼리스트 고티에 카푸송(우)
심포니 연주 전 튜닝하는 라디오 프랑스 오케스트라



이제 말러 5번 교향곡입니다.

말러 심포니는 대편성 오케스트라 구성이라 일단 소리가 시원시원하고 금관의 소리가 빵빵하지요.

원래 예정되어있던 지휘자 미코 프랑크가 급작스런 문제가 생기는 바람에 대타 지휘자인 안드레스 오로즈코 에스트라다(Andres Orozco-Estrada, 1977-  콜롬비아)가 포디엄에 섰습니다.    

콜롬비아 출신인 이 지휘자에 대한 정보도 전혀 없는 상태였습니다.

음악을 들어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의 음악적 능력과 음악 스타일을 말이죠.



안드레스 오로즈코 에스트라다



말러 5번 교향곡의 1악장 첫 소절은 들을 때마다 늘 조마조마합니다.

물론 완벽한 연주를 들려주는 음반을 얘기하는 게 아니고 실연을 말하는 겁니다.

베토벤 5번 교향곡처럼 3연음이 빠르게 반복되는 트럼펫 솔로로 시작됩니다.

그러니가 빠바바 밤~ 하는 부분의 그 '빠바바'가 늘 문제입니다.

첫 음부터 솔로인데다가 여리면서 뼈가 들어있는 짧은 세 개의 음을 매끄럽게 넘어가기 아주 어렵습니다.

역시나 그날의 트럼펫 수석은 첫 소절은 기름에 미끄러지는 만두처럼 유연하지 못했지요.

그러나 그는 들을수록 상상을 초월하는 기량을 가진 연주자였습니다.

뒤로 갈수록 감탄을 거듭했으니까요.

그래서 더 안타깝고 속상하더군요.

필하모니 드 파리의 음향은 베리 굿입니다.

더구나 로열석 센터에 앉았으니 사운드의 조화는 잘 비벼진 비빔밥 같이 찰지고 맛있었지요.


현악기와 하프가 아다지에토로 시작되는 4악장입니다.

가슴을 후벼 파는 슬픔이 전해집니다.

어떻게 형태 없는 소리가 이미지를 만들고 마음을 흔드는지 모를 일니다.

대타 지휘자인 안드레스 오로즈코 에스트라다는 자상한 아빠이다가 친절한 오빠이기도 한 그런 지휘자였습니다.

지휘하는 손 모양이 흡사 발레리노처럼 부드러워 따라 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지요.

5악장이 모두 끝났습니다.

연주도 음향도 관객도 모두 훌륭했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나 수석 트럼펫터에게 박수를 보내고 또 보냈습니다.

첫 소절의 실수를 맘에 두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라디오 프랑스 필 오케스트라



'영혼이 풍요로워졌다'는 거창한 말은 마땅치 않습니다.

피톤치드 가득한 숲에 다녀온 정도라면 괜찮지 싶습니다.

음악은 만국 공통어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청중들 모두가 말 한마디 섞지 않고 대사 하나 없는 말러 교향곡 5번을 한 시간이 넘도록 듣고 이해했으니까요.  

 

이미 제목을 알고 있는 곡,

처음 들어보는 곡,

들어봤어도 제목은 모르는 곡,

여러 종류가 있지요.

하지만 들꽃의 이름을 안다고 더 예쁜 것은 아닙니다.

그저 물처럼 흘러가는 음악에 귀를 담그고 편안하면 된 겁니다.

예술이 다 그렇습니다.


내게 음악은 언제나 문이 열려있는 성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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