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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나무 Aug 10. 2022

17. 내 마음이 만든 행복

Etrtat






'만지지 말고 기다리세요.'

아주머니는 나무라듯 냉랭한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각종 채소와 과일, 그리고 조개류 등 식료품을 파는 작은 상점이었습니다.

문이 활짝 오픈된 상점 매대에는 감자, 양파, 마늘 등 기본 채소와 블루베리, 딸기 등 과일이 진열되어 있었지요.

카르푸 익스프레스로 가던 길에 발견한 그 그로서리의 채소와 과일들은 꽤 신선하고 튼실해 보였기 때문에 들어섰던 겁니다.

감자 한 알 들었다 놓았을 뿐입니다.     

머쓱해진 우리는 뭔가 억울했지만 참았습니다.


잠시 후 아주머니의 딸 뻘 되는 아가씨가 다가와 필요한 것을 묻더군요.

손으로 만졌다가는 또 혼날 것 같아 손가락으로 하나하나 가리키며 감자와 양파, 마늘, 블루베리 등을 샀습니다.


대체 뭔데 그랬을까 싶어 구글링을 해보았습니다.

그야말로 조사하면 다 나오는 세상이니까요.

자부심이 대단해 보이는 그 상점은 가족들이 직접 유기농으로 농사를 지어 판매하는 집이었습니다.

깐깐하게 굴었던 것만큼 채소와 과일은 맛있었습니다.

함께 산 홍합과 조개에 페페론치노를 넣고 끓인 조개탕은 시원하면서도 감칠맛이 그만이었지요.

역시 우리의 미슉랭은 오늘도 최곱니다.



La Ferme Aux Petits Oignons



7년 전, 몽생 미셸만 훌쩍 다녀갔습니다.

가지 못한 에트르타와 옹플뢰르는 마음속의 VIP 금고에 꽁꽁 쟁여두었죠.

코끼리가 코를 바다에 담그고 서있는 하얀 절벽 그림을 본 후 에트르타라는 이름은 머릿속에 남아있었지요.

모네 그림이었습니다.


몽마르트르에서 에릭 사티가 살았던 집의 담벼락만 쳐다보고 온 적이 있습니다.

똑같은 양복 열 두벌과 일곱 개의 우산을 쟁여놓았던 에릭 사티의 생가가 있다는 옹플뢰르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은 그렇게 아껴두었던 그곳에 가는 날입니다.


노르망디 일정을 함께 할 자동차는 하이브리드였는데 확실히 연료 소모가 적더군요.

M이 핸들을 잡았습니다.


왜 그러 거 있잖아요.

아마 대부분 그런 노래 한 두 개쯤은 있을 겁니다.

가사가 무슨 내용인지도 모르면서 흥얼거리는 팝송이요.

그처럼 우리 주변에는 특별한 이유 없이 좋아하는 게 있습니다.

물론 이유 있는 것도 많지만요.


여행은 저마다 많은 이유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내 경우 스토리에 끌리는 타입이랄까?

어떤 이의 삶이라든가 작품에 깃든 이야기, 그런 게 궁금해서 찾아가게 되는 경우가 많지요.

무엇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축복입니다.

그런데 같은 장소를 가도 저마다 보는 것이 다르지요.

서로 다른 시각으로 보면 같은 것도 다르게 느껴집니다.

프랑스의 지방도로를 달리며 스쳐가는 소소한 풍경을 바라보는 사소함 조차 즐겁습니다.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이 다는 아니니까요.

여행은 시간을 마디게 쓰게 되는 점이 맘에 듭니다.


작은 마을들을 지나는데 도무지 바다가 나타날 것 같지 않습니다.

'이쪽은 르 아브르로 가는 길인데?'

하며 어찌 어찌 찾아간 주차장은 벌써 만차입니다.

혹시 모르니 재빠르게 내려 주차장 안쪽까지 뛰어가 보니 주차 티켓 머신 옆에 소형차 한 대는 가능하겠다 싶은 여유 공간이 있었습니다.

M에게 손짓을 했지요.

주차할 때는 소형차가 딱이더군요.

럭키하게 주차를 마쳤습니다.


유럽 국가 중에서 가장 큰 면적을 가진 프랑스는 6각형 모양입니다.

그중 3면은 바다, 3면은 육지로 면해 있어요.

3면 중 남쪽으로는 스페인, 동쪽으로는 벨기에, 독일, 스위스, 이탈리아와 국경이 닿아있습니다.

그중 북쪽 해안가인 에트르타는 웬만한 프랑스 지도에 표시되지 않는 작은 마을입니다.

바다로 향하는 방향을 짐작할 수 없어 사람들 뒤를 쫄래쫄래 따라갔지요.

차도를 벗어나 골목으로 들어서니 백 년은 되었을 목조 건축들이 젊잖은 노인의 표정으로 서있더군요.

그 끝에 가로등 곁으로 사람들이 한쪽 방향으로 서 있는 모습이 보입니다.

저너머에 바다가 있겠구나 싶었지요.





계단 너머로 해안



계단을 몇 개 올라가니 바라만 봐도 마음이 뻥 뚫리듯 툭 터진 바다가 나타났습니다.

그곳을 보통 에트르타라고 부르지만 그 바닷가 이름은 알바트르 해안입니다.

예를 들어 강릉 '경포대' 하는 식이죠.


왼쪽을 바라보면 큰 코끼리 바위가,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작은 코끼리 바위가 보입니다.

'드디어 왔어'

5월 하순인데 흐릿한 하늘에 바닷바람은 차가웠지요.

사람들의 옷차림은 패딩이나 가죽 점퍼를 입고 있어요.

옷만 보면 거의 겨울입니다.

우리는 스카프를 목에 두르고 머리카락이 날리지 않도록 비니를 썼습니다.


알바트르 해안에는 양쪽으로 언덕이 있습니다.

오른쪽 팔레즈 다발(Falaise d'Aval)에 오르면 엄마 코끼리가 보일 것이고, 왼쪽 팔레즈 다몽(Falaise d'Amom)으로 오르면 아빠 코끼리가 보이겠죠.

양쪽 다 꽤 멀어 보이지만 올라가야 한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벌써 정상에는 부지런히 오른 사람들이 깨알같이 보였지요.


'한쪽만 갈까? 양쪽 다? 어느 쪽으로 먼저 가는 게 좋을까?


아빠 코끼리를 볼 수 있는 오른쪽, 그러니까 팔레르 다몽 쪽을 먼저 오르기로 했습니다.

언덕 위에 떡 하니 서 있는 성당이 아름다워 더 끌렸을지도 모릅니다.

한 곳을 올라보고 다른 한쪽을 올라갈지 말지 결정하기로 했지요.


다녀오려면 한참 걸릴 테니 에너지를 충전하기 위해 카페로 갔습니다.

보통은 야외 테이블에 앉지만 바람이 차서 실내로 들어갔지요.

커피와 케이크의 조화는 언제나 옳습니다.

유리창 밖으로 한 무리의 싸이클링 하는 사람들이 나타났습니다.

그들은 단체복을 입고 있는데 어림짐작으로 평균 나이가 70세는 넘어 보였지요.

그들의 싸이클링 경로가 얼마나 되는지 몰라도 자전거를 못 타는 내 눈에는 그저 존경스럽더군요.

유럽은 노부부들이 여행하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대부분 손을 잡고 서로에게 의지하며 느릿느릿 발걸음을 이어갑니다.

반려라는 낱말이 참 아름답다는 걸 보여주는 모습이었죠.  

 



팔레즈 다발(아래쪽 절벽이라는 뜻)
알바트로 해변



팔레즈 다몽(Falaise d'Amom)은 위쪽 절벽, 팔레즈 다발(Falaise d'Aval)은 아래쪽 절벽이라는 뜻입니다.

언덕을 오르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어요.

그 이유는 주변 풍경이 너무 아름다웠기 때문입니다.

몇 걸음 오르다 뒤를 바라보고 또 몇 거름 오르다 아래 한 번 쳐다보고...

날씨도 한몫했습니다.

바람이 불긴 했지만 끈적임 없이 상쾌하고 약간 흐릿한 하늘과 적절한 기온 때문입니다.

소요 시간 10분이라는 안내판이 있었지만 그보다 훨씬 오래 걸린 건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팔레즈 다몽 가는 길
팔레즈 다몽에서 바라본 팔레즈 다발
에트르타 마을



비탈길을 오르니 밑에서 보는 것과 달리 꽤 넓은 평원이 나타났습니다.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우뚝 선 노트르담 교회가 언덕의 황량함을 아름답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언덕의 풍광과는 어울리지 않게 생뚱맞아 보이는 뾰족탑이 있는데 그것은 1927년 그곳을 날아 대서양 횡단에 도전했던 낭주세르와 콜리를 기리는 탑이었어요.

해변 뒤편으로는 룩셈부르크의 주택을 연상시키는 회색 집들이 올망졸망 늘어서 있는 마을이 보였습니다.

마을에서 해안으로 이어지는 길은 모파상을 기념하여 ‘기 드 모파상 길’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해요.

팔레즈 다몽에는 꽤 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드문드문 보일 정도로 면적이 광활합니다.

비교적 체력이 약한 LJ는 올라오느라 힘들었을 텐데 지친 기색 없이 너무 좋다며 싱글벙글 미소를 멈추지 않더군요.

갈매기에게 손을 흔들고 만세를 하고 빙글빙글 돌기까지 합니다.

'너무 좋아'




노트르담 드 라 가르드 성당 (La Chapelle Notre Dame de la Garde)
노트르담 드 라 가르드 성당 (La Chapelle Notre Dame de la Garde)
팔레즈 다몽의 정원 내부의 조각
두 비행사
팔레즈 다몽 절벽
석회암 절벽




커다란 카메라를 갖고 다니다 보니 간혹 사진 촬영을 부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마도 전문 포토그래퍼로 착각하고 부탁하는 거겠죠?

노부부의 부탁을 받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할아버지께서 우리 셋의 사진도 찍어주겠노라 자처하십니다.

스마트폰을 드렸고 할아버지는 폰의 액정을 열심히 아주 꾹꾹 몇 번을 누르셨지요.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사진을 확인했습니다.

아뿔싸!

할아버지가 열심히 찍은 사진은 단 한 장도 없었습니다.

살짝 터치해야 되는 폰의 액정을 너무 세게 그리고 길게 눌러서 한 장도 찍히지 않은 거였습니다.

황당하고 우습기도 하지만 충분히 이해되는 해프닝이었습니다.


수직으로 깎아지른 하얀 절벽에는 작은 야생화들이 거친 바람에 사정없이 흔들립니다.

부드러우면 꺾이지 않는다는 말을 온몸으로 증명하듯이요.

 

에트르타는 괴도 루팡의 소설가 르블랑(1864-1941)의 고향이며 기 드 모파상(1850-1894)이 자란 곳입니다.

모파상의 소설 '여자의 일생'에서 잔느가 자살하려고 올라갔던 곳도 이 절벽이지요.

트로트 노래 제목으로 딱 어울리는 '여자의 일생' 

이 소설의 제목은 프랑스어로 <Une vie>, 즉 '어느 인생'입니다.

우리말로 번역되기 전 영문판 책 제목이 'Life of a woman'이었기 때문에 잘못 오역이 된 것이라고 해요.

 

발표하는 소설마다 베스트셀러가 되었던 모파상은 일찍부터 부와 명예를 거머쥐었어요.

지중해에는 그의 전용 요트가 떠있고 노르망디에는 저택을, 파리에는 고급 아파트를 소유했었지요.

파리에 머무는 동안에는 흉측한 에펠탑을 안 보기 위해 에펠탑 꼭대기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즐겼다는 일화가 유명합니다.


앙드레 지드는 이곳에서 결혼식을 올렸고 모네, 마티스, 쿠르베, 외젠 부댕 등 많은 화가들이 이곳의 바람과 빛과 물결을 캔버스 속에 담았던 곳입니다.

또한 루이 16세의 아내였던 마리 앙투와네트는 이곳의 굴을 좋아하여 전용 굴 양식장을 두었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토록 많은 예술가들이 사랑한 곳이라 더더욱 유명세를 탔을지도 모릅니다.

과연 절벽 위에서 바라보는 바다와 바위, 갈매기, 푸른 초원은 두말할 나위 없이 아름답고 평온했습니다.


잔디에 앉아 대서양을 바라봅니다.

아무 생각이 없습니다.

그냥 좋았습니다.

페르난도 페소아의 말이 떠올랐습니다.


'지금 이 순간 주의를 기울이는 일은 내게 중요하지 않다.     

나는 시간을 한껏 잡아 늘이고 싶고, 아무 조건 없이 나 자신이 되고 싶다.'



Falaise d'amount
Falaise d'Aval



에트르타의 절벽을 그린 화가들은 많습니다.

그중 귀스타브 쿠르베(Gustave Courbet 프랑스, 1819-1877)의 그림을 좋아합니다.

그림과 화가의 이야기에 관심이 많은지라 미술 관련 책을 즐기는 편이지요.

그림 속에 들어있는 이야기는 소설 못지않게 흥미로운 게 많습니다.

독일과 오스트리아, 이탈리아가 클래식 음악을 대표한다면 미술은 당연 프랑스가 강국입니다.

쿠르베 역시 프랑스를 대표하는 화가 중 한 사람인데요.


'텅 빈 커다란 작업실에 뚱뚱하고 지저분해 보이는 한 남자가 흰색 물감이 담긴 팔레트와 나이프를 들고 텅 빈 화폭 앞에 서 있다. 유리창에 얼굴을 갖다 대고 폭풍우가 몰아치는 바다를 관찰하기 위하여 가끔 왔다 갔다 하면서... 파도는 집을 삼켜버릴 듯 코 앞까지 몰아치고, 소금기 머문 바닷물이 벽과 타일 위에 흰 서리처럼 내려앉는다. 벽난로 위에는 시드르가 반쯤 채워진 술잔과 술병이 놓여있다. 쿠르베는 가끔씩 몇 모금을 마시고는 다시 작품 앞으로 다가선다.'  출처-줄리아의 친절한 미술관


1865년 에트르타를 방문한 후 그 풍경에 매료된 쿠르베는 자신의 신념을 에트르타에 아낌없이 쏟아부었습니다.

이곳 풍경을 무려 스물아홉 번이나 화폭에 담았다고 합니다.

쿠르베는 행락객들이 떠난 후 황량해진 노르망디 바닷가의 모습을 마치 기록사진을 촬영하듯 묘사했습니다. 이상적 아름다움이나 낭만적 정서가 아닌 현실이 그 모습 그대로 정확하게 담겨 있어 원시적인 절벽의 모습과 바닷바람의 축축한 느낌이 그대로 전해지는 것 같습니다.


쿠르베에 대해 관심을 갖고 좋아하게 된 것은 이 한 장의 그림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Bonjour Monsieur Courbet, 만남, 쿠르베 씨 안녕하세요, 1854



쿠르베가 1854년에 그린 작품 '안녕하세요, 쿠르베 씨'는 화가의 성격을 단번에 보여준다. 그림 왼쪽엔 잘 차려입은 남자 두 명이 있다. 오른쪽엔 평범한 일상복을 입고 화구를 짊어진 남자가 있다. 그는 구두를 신은 왼쪽 두 남자와 달리 흙이 묻은 지저분한 신발을 신었다. 옷도 군데군데 해졌다. 이 인물은 쿠르베 자신이다. 왼쪽 두 남자는 쿠르베의 후원자였던 사람과 그의 하인이다. 제목처럼 두 남자는 쿠르베를 환대하고 있다. 하인은 고개를 숙인 채 인사를 하고, 후원자는 모자까지 벗으며 쿠르베에게 예의를 갖추는 중이다.     

반면 쿠르베는 살짝 턱을 들고 두 남자의 인사를 받는 중이다. 살짝 거만해 보인다. 그림을 자세히 뜯어보면 왼쪽 두 남자는 그림자에 파묻혔고, 쿠르베는 온전히 햇살을 맞고 있다. 쿠르베는 이 작품에 '천재에게 경의를 바치는 부(富)'라는 부제를 붙였다. 쿠르베는 후원자와 화가 중 고마워해야 할 사람은 후원자 쪽이라고 봤다. 보통 사람이라면 자신에게 물질적인 지원을 하는 사람 앞에서 본능적으로 주눅 든다. 하지만 쿠르베는 정반대였다. 그는 오히려 자신과 같은 천재를 지원하는 것 자체가 영예라고 여겼다.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당시 프랑스에서 미술을 향유하는 사람들 대다수는 기득권이었다. 그들은 하층계급을 그린 쿠르베 작품 앞에서 당황했다. 시골 마을 평범한 장례식 풍경화 앞에서도 고개를 저었다. 그들에게는 밑바닥 삶이란 굳이 알고 싶지 않은 진실이었다. 그들은 쿠르베에게 "당신의 그림은 예술이 아니다"라며 공격했다.     

쿠르베는 의기양양했다. 추한 그림을 멈추고 종교화나 그리라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에게 천사를 보여 달라! 그러면 천사를 그리겠다." 쿠르베가 남긴 이 말은 화가의 철학을 요약한다. 그는 자신의 망막에 비친 현실만 그리기로 했다. 쿠르베는 힘겨운 노동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을 봤다. 이것이 현실이고, 그것을 그렸다. 단 한 번도 주인공이었던 적이 없었던 평범한 사람들이 쿠르베 그림에 등장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인물을 소재로 삼는 것만으로도 쿠르베는 이단아가 됐다. 쿠르베 스스로도 자신이 규칙을 깨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확실하게 인식했다.  출처 : 매일 경제



인내심이 많았던 모네는 자신이 바라는 그림이 그려지지 않을 때는 같은 시각 같은 장소에서 같은 그림을 그리고 또 그렸습니다.

그렇게 그려진 에트르타의 절벽은 연작이 아니라 장소와 시간과 날씨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 풍경화일 뿐입니다.

진정한 바다의 모습에 마음의 눈이 더해진 풍경을 담기 위해 매 순간 같은 곳에서 같은 주제를 여러 번 그렸던 것입니다.

모네의 그림 '루앙 성당'이나 '수련'을 연작이라고 표현하지만 정확히는 연작이라고 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화가의 마음에 들 때까지 그리고 또 그렸던 게 아닐까 합니다.

나의 개인적인 생각일 뿐입니다.



Claude Monet  The Cliffs at Etretat  1885
Gustave Courbet - Cliffs at Étretat
Gustave Courbet    Bay with Cliffs  1869
Gustave Courbet  The Cliff at Etretat after the Storm  1870
Claude Monet  Etretat the Aval door fishing boats leaving the harbour   1886
Claude Monet  The Cliff Etretat, Sunset  1885
Étretat. The Cliff of Aval Eugène Boudin



시장기가 느껴졌습니다.

시계를 보니 벌써 시간이 꽤 흘러 점심시간이 훌쩍 지났더군요.

내려갈 때는 꼬마 기차를 타기로 했습니다.

한동안 기차를 기다렸지만 운행시간을 알 수 없기에 얼마나 더 있어야 할지 모릅니다.

한참을 기다리다가 결국 걸어가기로 했지요.  


100m쯤 내려왔는데 바로 아래 모퉁이에서 빽빽~ 하는 기적 소리가 울리는 겁니다.

그와 동시에 꼬마 기차가 얼굴을 빼꼼히 보이며 막바지 힘을 내서 언덕으로 올라오는 게 보였지요.

냅다 뒤돌아서서 꼬마 기차를 따라 가파른 언덕길을 올라갔습니다.

그렇게 헉헉대며 가까스로 기차를 탔습니다.

기차는 우리가 올라온 보행로가 아닌 차도로 내려가 기차역에 정차한 후 시가지 중심에 도착했습니다.






몇 군데 되지 않는 음식점은 이미 만석이고 웨이팅 하는 사람들까지 보였습니다.

프랑스 사람들은 워낙 식사를 오래하니 기다릴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조그만 광장 벤치 주변을 보니 사람들이 삼삼오오 뭔가를 먹는 모습이 보였어요.

바로 앞에 크레페 가게가 있는데 사람들이 줄을 서 있더군요.


크레페를 사긴 했는데 광장엔 앉을만한 자리가 없었지요.

원래는 교회였지만 지금은 시장으로 영업을 하는 마켓 뒤로 돌아가니 걸터앉을만한 한가한 장소가 있더군요.

호시탐탐 우리의 점심을 탐하려는 날치기 갈매기를 경계하며 늦은 식사를 했습니다.


 

꼬마 기차
옛날에 교회였으나 현재는 시장
시장 내부
작은 광장에 앉아 간단히 식사하는 여행자들
크레페에 눈독 들이는 갈매기



해안 지방은 날씨 변동이 심하지요.

바람이 굵어지는 걸보니 곧 비를 뿌릴지도 모릅니다.

팔레즈 다발에는 오르지 않기로 하고 주차장으로 향합니다.

아쉬움 없는 시간이었습니다.

많은 예술가들의 발길을 잡아끌었던 마법 같은 바닷가에서 맘껏 웃고 맘껏 보았으니까요.

걸을 수 있고 볼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벅차게 감사합니다.


'인생은 그렇게 즐겁지도 불행하지도 않다. 그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은 오직 자신 뿐이다.' -기 드 모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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