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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나무 Jul 04. 2016

느림과 비움이 행복한 아다지오 풍 영화

카모메 식당, 안경






  멋진 것을 보면 흔히 영화 장면 같다고 말합니다. 아주 잘 생기거나 예쁜 사람을 보면 영화배우 같다고도 합니다. 그러나 근사한 집이나 경치, 멋지고 섹시한 배우가 나오지 않지만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번지는 영화를 보았습니다. 뭐랄까 금방 딴 사이다 같은, 고드름 열린 겨울 아침의 냄새가 느껴진다 할까요? 


  1972년생의 오기 가마 나오코가 감독한 영화 ‘카모메 식당’이 긍정의 힘을 느끼게 했다면 ‘안경’은 느림과 비움의 미학이었습니다. 두 영화는 배경이 바닷가라는 것, 등장인물이 적다는 것, 주연 배우가 같다는 것, 지극히 단순한 화면처리와 적은 대사 등이 공통적입니다. 종합예술을 모노로그 화한 것이 다분히 매력적이었죠.


  

  핀란드 헬싱키, 어느 한적한 골목에 카모메(일본어로 갈매기란 뜻) 식당이 있습니다. 정갈하고 단순하며 아담한 식당의 외관이나 내부는 주인공 고바야시 사토미(사치코 분)와 꽤 닮았습니다. 한 명도 찾아오지 않는 손님이 언젠가는 오리라 생각하며 매일 신선한 재료를 구하러 시장에 갑니다. 그녀는 괴롭지도 초조하지도 우울해하지도 않습니다. 사용하지 않은 접시와 컵, 하얀 테이블을 늘 반질반질 닦습니다. 투명한 유리병엔 싱싱한 흰 꽃이 담겨 있고 손님 없는 식당을 늘 가득 채우는 게 있으니 그건 햇살입니다. 스칸디나비아풍의 식당 유리창으로 훤히 들여다보이는 그 작은 공간을 궁금해하는 낯선 눈초리들이 서넛 있지만 선뜻 들어오지 못합니다. 그래도 그녀는 언제나 미소로 화답하지요. 일본과 핀란드인들이 담백한 연어를 즐긴다는 공통점 한 가지로 식당을 시작한 여자. 가쓰오 부시와 연어, 절인 매실을 넣고 만든 주먹밥 오니기리를 소울 푸드로 사람들에게 주고 싶어 하는 여자, 마침내 어느 날 그곳에 한 청년이 들어왔습니다. 그는 카모메의 첫 손님이라는 이유로 평생 무료 손님이 되지요. 


 

  

  


  우연히 알게 된 미도리를 집에 데려와 첫 식사를 합니다. 그런데 미도리가 밥 한 젓가락 뜨고는 목이 메어 아무 말도 못하며 눈물을 흘립니다. 사치코는 미도리에게 왜 그러냐고 묻지 않더군요. 정말 다행이다 싶었습니다. 두 여자는 새로운 메뉴로 계피 롤을 만들어 굽게 됩니다. 빵을 굽는 고소한 냄새에 늘 기웃거리기만 하던 여자 손님 셋이 드디어 카모메에 들어오게 되지요. 반짝반짝 윤이 나는 스테인리스 주전자에 물을 끓여 드롭기에서 커피를 거르는 아날로그적인 모습이 참 정겨워 보였습니다. 무선 포트나 전기 커피머신의 삭막함을 배제하므로 슬로 라이프가 더 살아나고 있었죠. 사치코는 단지 하기 싫은 일을 하지 않을 뿐이라고 말합니다. ‘세상 어디에 있어도 외로운 사람은 외롭고 슬픈 사람은 슬퍼요’라고 하던 그녀의 카모메 식당은 어느새 북적거리는 사람들로 빈자리가 없게 됩니다.  


  영화를 보고 몇 년 후 헬싱키에 갔습니다. 영화의 효과로 일본인 여행자들이 유난히 많더군요. 당연히 찾아간 카모메 식당에선 영화의 느낌을 찾을 수 없었지만 사치코가 만들어준 양 밥을 먹었습니다. 







  휴대전화가 터지지 않는 조용한 곳으로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 있으세요? 그런 생각을 가진 주인공 고바야시 사토미 (타에코 분)가 어느 날 남쪽 바닷가의 조그만 마을로 여행을 떠나며 시작되는 영화 ‘안경’입니다. 그곳에서 맘씨 좋은 민박집주인 유지와 매년 찾아오는 수수께끼 빙수 아줌마 사쿠라, 시도 때도 없이 민박집에 들르는 생물 선생님 하루나, 그리고 타에코 교수를 찾아온 제자, 이들 다섯 명의 등장인물 모두는 안경을 썼습니다. 아름다운 바다와 파도소리, 새소리, 그리고 바닷가 모래사장에서 녹음된 피아노 반주에 맞춰하는 메르시 체조, 돈이 아닌 어떠한 것이든 값을 치르면 먹을 수 있는 빙수 한 그릇, 장기를 두고 만돌린을 켜고 이상한 수레가 달린 자전거를 말없이 타고 다니는 사람, 잡히는 물고기가 없어도 즐거운 낚시, 한쪽 다리를 들고 낮잠을 자는 개, 그 바다 앞에서 마시는 맥주와 붉은 랍스터, 그곳엔 아무도 재촉하지 않는 자유와 텅 비어 있어 기분 좋은 충만함이 있습니다. 기다림과 버림, 사색으로 채울 수 있는 미학을 아는 사람들이 지내는 장면 하나하나에서 쉼(休)이 느껴집니다. 다음 봄, 빙수를 만들어 팔기 위해 사쿠라가 다시 찾아옵니다. 타에코가 빙수 값으로 준 주황색 손뜨개 머플러를 목에 둘둘 감고도 질질 끌려서 모래 위에 줄무늬를 내면서요. 


  

  평범과 특별의 경계는 멀지 않습니다. 느림과 비어있음이 행복함을 알게 하는 아다지오 풍 영화 ‘카모메 식당’과 ‘안경’. 문득 시작되지만 영원히 지속되지 않기에 훌쩍 떠나는 여행을 가고 싶습니다. 그리고 푸른 시험지 같은 바다에 좀 더 너그럽고 느리고 자유로운 뭔가를 기다리며 사색의 즐거움을 누리고 싶은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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