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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나무 Jul 04. 2016

스페인의 빛(sol)과 그림자(sombra)

영화 그녀에게






  두 여인은 흡사 몽유병의 여인 같았지요. 마드리드 라라 극장의 커튼이 열리고 흰색 슬립을 입은 중년의 두 여인이 눈을 감고 춤을 춥니다. 무용극 ‘카페 뮐러’죠. 둘 중 마른 여자가 세계적인 현대 무용가 피나 바우쉬입니다. 춤도 춤이지만 그때 흐르는 처연한 음악, 헨리 퍼셀의 요정의 여왕 중 황녀의 탄식 ‘O Let Me Weep, For Ever Weep' 그 노래 탓에 첫인상은 더 강렬했습니다. 


  

Oh! Let me weep - Henry, Purcell





  무용극이 펼쳐지는 소극장에 앉아 감동의 눈물을 흘리는 남자(여행기자 마르코)와 그를 바라보는 또 한 명의 남자(간호사 베니그노)의 외로운 사랑. 즉 혼수상태(코마)에 빠져 있는 여자들을 사랑하고 있는 두 남자가 친구가 되는 내용이 영화입니다. 베니그노는 교통사고로 코마 상태가 된 알리시아(발레리나)를 돌보며 하루를 보냅니다. 마르코 역시 연인 리디아(투우사)가 식물인간이 된 후 절망에 빠져 살아가지요. 똑같은 아픔을 나누며 친구가 된 두 사람, 그러나 세상의 이해를 얻지 못하며 베니그노의 무모한 사랑은 위기를 맞게 됩니다. 




  영화는 서로 언어를 주고받지 않아도 소통이 가능하다는 남자를 통해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두고 있습니다. 각각 투우사와 발레리나였던 두 여성의 매혹적인 육체가 만들어내는 신비로움 또한 매력입니다. 스페인의 거장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독특한 연출 스타일이 한껏 빛을 발하는 영화 <그녀에게>는 곳곳에 감독이 선택한 문화적 요소들로 가득 채워져 있습니다.  


  저녁 석양이 강하게 비쳐 장내가 빛(sol)과 그림자(sombra)가 양분될 때 시작되는 투우가 그 첫 번째 요소입니다. 스페인 신문들은 투우 기사를 스포츠면에서 다루지 않고 문화면에서 다룬다고 합니다. 투우는 복장을 입는 것조차도 일종의 의식이더군요. 먼저 튤립수가 놓인 산호색 스타킹을 신습니다. 무릎에서 가슴 바로 밑까지 올라오는 실크 바지 탈레궐라는 금박수와 보석이 박혀 있어서 입혀줘야 할 정도로 딱딱하고 타이트하니까요. 짧은 상의와 조끼, 장식이 달린 공단과 망토 레이스로 만든 셔츠웨이스트를 입고 굽이 없는 평평한 검은색 덧신을 신습니다. 한 갈래로 따 내린 검은 머리에 검은색 세닐 실뭉치로 만든 모자인 몬테라를 쓴 리디아는 정말 투우사 같았어요. 그러나 그녀가 500Kg이 넘는 황소와 어떻게 대적하는지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두 번째는 브라질 국민가수 카에타노 벨로소의 노래입니다. 영화 프리다 칼로의 엔딩 크레디트에 흐르던 그의 ‘burn it blue’를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베어버릴 것 같은 시선과 동시에 허허하는 웃음으로 넘어갈 것 같은 표정이 생의 비극과 희극을 대변하듯 했습니다. 기타와 첼로의 선율에 벨로소의 음색이 얹혀 부르는 ‘쿠 쿠루 쿠쿠 팔로마’, 그 곡이 그토록 슬플 수 있다는 것에 새삼 놀랐습니다. 소리를 깊숙이 밀어 넣으며 살짝 위로 튕겨내는 맛이 무거우면서 깃털처럼 가볍고 부드럽다 라는 삶의 뜻으로 느껴졌습니다. 


 

Cu-cu-ru-cu-cu Paloma



영화 중간에 들어있는 7분 분량의 흑백 무성 영화 <애인이 줄었어요(Shrinking lover)>는 만화적인 요소로 은밀한 부분을 코믹하게 그리고 있습니다. 알리시아와 영원히 하나가 되고 싶은 베니그노의 마음을 극단적으로 표현해주는 상징이며 일종의 장치 역할이 아닐까 했습니다. 그리고 알리시아의 발레 선생 역으로 '제랄딘 채플린'(찰리 채플린의 딸)이 출연했는데 영화 속에 녹아드는 연기가 깊은 잔상을 남기더군요.   


  마지막 장면에서 마르코가 알리시아와 함께 보는 공연 '마주르카 포고' 역시 피나 바우쉬가 파두와 남미의 탱고. 삼바 등이 어우러지게 만든 무용극입니다. 역동적인 음악은 바우의 '라켈(Raquel)'인데 칙칙한 하늘의 먹구름을 싹싹 비질하듯 침체된 기분을 맑고 청명해지게 해주었습니다. 


  

  음악이든 소설이든 그림이든 첫인상과 마무리는 중요합니다. 오프닝과 엔딩 시퀀스인 '카페 뮐러'와 '마주르카 포고'라는 두 공연이 영화로 들어가는 문과 나오는 문이 되어주며 아름답고 낭만적으로 표현해 주었지요. 뿐만 아니라 영화 전체를 아우르는 음악과 미장센 또한 더 없이 예술적이었습니다. 좋은 영화의 필수 요건 하나, 음악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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