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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나무 Aug 15. 2022

21.Ne Me Quitte Pas(날 떠나지 말아요)

Caen, 하우메 플렌자(Jaume Plensa)





이 여행의 마지막 도시 생 말로(Saint malo)로 향합니다.

옹플뢰르에서 생 말로까지는 232km, 3시간쯤 걸릴 예정이라 중간쯤에 있는 캉(Caen)에 들러 잠시 쉬며 점심을 먹기로 했습니다.

캉으로 들어서자 오른쪽으로는 성벽이 왼쪽으로는 성당이 보였습니다.

마침 근처 도로에 유료 주차장이 있어서 차를 세웠지요.

그리고 주차 머신에 차량 번호를 입력하고 주차 시간을 정한 후 동전을 집어넣었습니다.

그런데 주차증이 안 나오는 겁니다.

주차 시간이 프린트된 작은 종이가 출력되면 자동차 앞 유리창에 놓아주어야 하는데 말이죠.

M이 다시 한번 자동차 넘버와 주차 시간을 입력해보았지만 이미 결재가 되었다는 메시지가 나올 뿐 여전히 주차 영수증은 나오지 않았지요.


오가는 사람은 없고 길 건너편에 앞치마를 두른 청년이 음식점 앞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더군요.

그에게 물어보니 멋적은듯 손사레를 치면서  모른답니다.

아마도 영어를 못 알아들었거나 설명할 자신이 없거나 했겠다 싶었지요.

그는 내게 미안하다고 하고 나는 그에게 고맙다 합니다.

그쪽에도 주차 머신이 있었는데 마침 아저씨 한 분이 주차를 하고 기계 앞에서 정산을 시작하더군요.

기다렸다가 물어보니 그곳은 종이 영수증이 출력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기계에 자동차 넘버와 주차비를 계산했으면 그것으로 끝이라는 거예요.

본인도 지금 주차 계산을 했지만 종이 영수증은 받지 않았다면서 그냥 가면 된다고 설명했습니다.

한 번도  그래 본 적이 없어 미심쩍었습니다.

주변에 주차된 차의 유리창을 살펴보았지요.

정말 다들 주차증을 놓아두지 않았더군요.

그제서야 안심이 되었습니다.



다들 커피가 필요했습니다.

주변 골목에는 몇 개의 레스토랑이 있지만 오픈한 곳이 없더군요.

하는 수 없이 Tabac(담배와 잡지, 로또 등 잡화점)으로 갔습니다.

간식으로 먹을 샌드위치나 빵이 있는지 물어보니 바게트만 있다고 합니다.

그거라도 먹어야겠다 싶어 달라고 했지요.

그래도 아저씨는 친절하게도 바게트를 자르고 버터와 함께 주셨습니다.

커피는 이탈리아 라바짜 잔에 담겨나왔는데 라바짜라는 선입견 때문일까요?

맛이 훌륭했습니다.

그리고 캉의 구름도 여전히 예뻤지요.







잠깐 들렀다 가는 곳이지만 거리 구경을 나섰습니다.

자동차가 다니지 않은 메인 도로는 한적했습니다.

여행자가 몰리는 관광지가 아니어서인지 그냥 평범한 거리예요.

프랑스에서 렌트 카를 이용할 때 주의 사항으로 꼭 따라다니는 것이 있습니다.


'주차할 때 자동차 안에 그 어떤 것도 두고 내리지 마라.'


그만큼 분실할 가능성이 많고 그러자면 자동차의 파손이 따르기 때문이지요.

캐리어는 어쩔 수 없이 두고 내렸지만 카메라는 그럴 수 없어 목에 걸고 왔는데 다른 곳과 달리 그 어느 피사체도 내 눈길을 잡아 끄는 게 없었습니다.

'비비안 마이어'처럼  '셀프 포트레이트'를 찍었습니다.



selfportrait
selfportrait



밋밋한 길의 끝에는 오래된 법원이 있었습니다.

캉의 주요 건축물은 고성(Château de Caen)과 수도원 (Abbey of Saint-Étienne, Caen), 그리고 성당(Cathedral)입니다.

그런데 이 세 개의 건축물 놀랍게도 윌리엄 (노르망디의 윌리엄)에 의해 지어진 겁니다.

윌리엄은 영국을 성공적으로 정복한 정복자라는데요.

세 건축물의 크기를 볼 때 대단한 인물이었다는 게 짐작됩니다.


수도원은 1063년 노르망디에서 가장 중요한 로마네스크 건물 중 하나인데 노르망디 상륙작전 당시 캉의 주민들은 교회로 피신했고, 옥상에는 (폭격을 피하기 위해) 병원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시트를 십자가 모양으로 만들고 핏물에 적신 붉은 십자가를 걸어두었었다고 하네요.



Caen 법원
수도원 (Abbey of Saint-Étienne, Caen)


점심을 먹어야 하는데 마땅하지 않습니다.

LJ가 약간 체기가 있다고 하여 밥을 먹기로 했지요.

smiley라는 이름의 초밥 집으로 갔습니다.

테이크 아웃이나 배달을 전문으로 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2층에 넓은 홀이 있더군요.

손님은 우리뿐이었지요.

따뜻한 미소 된장국을 먹으니 뱃속이 편안합니다.

   






컨디션이 좀 안 좋은 LJ는 잔디밭에서 쉬기로 하고 M과 나는 고성에 올라가기로 했습니다.

그곳은 서유럽에서 가장 큰 성 중 하나인데 올라가 보니 아래서 보고 추측했던 것과 달리 무척 넓은 대지였습니다.

그리 높지 않은데도 캉의 시가지가 시원하게 내려다 보였습니다.


성의 안쪽에 있는 보자르 미술관(Musee de beau art)에는 15세기에서 18세기의 작품들이 있다고 하는데 들어가 보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그 시기의 그림들은 주로 성화에 대한 내용이 많은데 개인적으로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였죠.

노르망디 미술관도 있고 무슨 영화에 관련된 전시도 하더군요.





St Peter 성당



눈에 익숙한 조형물이 있었습니다.

아는 작품처럼 자꾸 눈길이 갔습니다.

어디서 봤더라?

그 조각상 뒤의 보자르 미술관 벽에 커다란 현수막이 붙어 있는데 아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Ne Me Quitte Pas!'


갑자기 떠오르는 그 노래, 느므 끼뜨 빠!

'똥 블라 네주(tombe la neige), 눈이 내리네'와 더불어 어릴 때 즐겨 듣던 샹송,

'느 므 끼뜨 빠'(Ne Me Quitte Pas)는 '날 떠나지 말아요'라는 뜻이죠.

'If you go away'라는 제목의 팝송으로 새롭게 태어난 그 노래는 전 세계 많은 가수들이 커버송으로 불러 더 유명하게 알려진 노래이기도 합니다.

말 그대로 진짜 추억의 샹송, 추억의 팝송이네요.




'느 므 끼뜨 빠'(Ne Me Quitte Pas) 자끄 브렐 노래
If you go away  닐 다이아몬드
tombe la neige 아다모



그땐 ' 느므끼뜨 빠'가 단순히 그 조각상의 제목인가? 생각했습니다.

여인의 두상 작품의 제목은 '루' <Lou>

4.5미터 높이의 주철상으로 여성의 온화한 얼굴 모습입니다.

그 조각상은 바로 앙티브의 해안에서 알파벳으로 만든 조형물의 작가인 하우메 플렌자(Jaume Plensa)의 작품이었습니다.



알고보니 그 작품에 사연이 있더군요.

'Ne Me Quitte Pas'는 캉의 시민들이 'Lou'에게 보내는 메시지였습니다.

2018년 현대미술관 렐롱에 의해 노르만 미술관에 대여된 작품 Lou는 2022년에 계약 기간이 끝나 캉을 떠날 예정이었답니다.

하지만 캉 시는 그 도시의 예술적 경관의 일부가 된 그 작품을 구입하고 싶다는 의사를 발표했습니다.

그리고 문화부, 노르망디 지역, 캉 시 등에서 주요 후원자들을 모집하고 기부를 요청하기를 했지요.

작품의 가격은 60만 유로(한화 7억 8천만 원)


Caen의 시의회는 인수를 위해 20만 유로의 예산을 승인했고 문화부는 30만 유로를, 노르망디 지역이 2만 유로를, 그리고 지역 기업이 6만 유로를 기부했다고 합니다.

나머지 20,000유로의 모금을 위해 2022년 2월 14일부터 캉의 시민들에게 온라인 청약이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지난 7월, 마침내 그들의 바람은 이루어졌습니다.

시민들의 적극적인 도네이션으로 인해 루는 캉의 그 자리를 지키게 된 것이죠.

캉 시는 주민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는 표지판을 설치했습니다.

나와는 무관한 일이련만 뭉클해지는 건 왜인지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바람을 멋지게 이뤄내는 걸 보면 왜 프랑스가 예술의 강국인지 알 것 같습니다.




Jaume Plensa – 조각상  Lou
'Ne Me Quitte Pas'
캉 시민들에게 보내는 감사의 메시지



하우메 플렌자(Jaume Plensa)의 창작물은 주로 도시의 풍경에 설치된다고 하는데요.

가장 최근 작품은 뉴욕 록 펠러 센터에 설치된  Behind the Walls입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기반을 둔 이 조각가는 시카고의 밀레니엄 공원, 뉴욕의 허드슨 야드, 영국의 요크셔 조각 공원을 포함한 전 세계 도시에 공공 예술 작품을 설치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때때로, 우리의 손은 가장 큰 벽입니다. 그것들은 우리의 눈을 가릴 수 있고, 우리는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많은 것들에 대해 우리 자신을 맹목적으로 볼 수 있습니다. 나에게 그것은 안에 메시지를 가지고 아름다운 물체를 창조하려는 집착입니다.'


라고 Plensa는 말합니다.

때때로 우리의 손은 가장 큰 벽이다 라는 말이 공감이 되었습니다.



Behind the Walls



90층짜리 빌딩인 뉴욕의 허드슨 야드 30번지 로비에는 Voices라는 제목의 작품이 설치되었다고 합니다.

각각 크기가 다른 11개의 강철 오브제가 매달려 있는데 무게가 400~5000파운드에 달한다고 하네요.

각 오브제에는 그의 시그니처 같은 레터링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기 다른 세계의 글자들을 섞어 만들었습니다.

서로 다른 언어에 의한 세계적인 통일감을 가져오는 뜻으로 목소리들이라는 제목을 붙였겠다 상상하니 참 멋진 발상이구나 싶습니다.



Voices
Voices



또한 그는 허드슨 강 수변에서 손가락을 입술에 대고 있는 한 여성의 거대한 머리 조각상을 공개했습니다.

높이가 80 피트(2.44m)인 작품 <Water's Soul>은 지금까지 작품 중 가장 대작이라 맨해튼과 저지 시티에서도 보인다고 합니다.


하우메 플렌자는 이 작품에 Water Soul이라는 제목을 붙이게 된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물이 움직일 때, 특별한 소리를 냅니다'라고...


'내가 제일 잘 나가' 하는 2NE1의 노래처럼 현재 세계에서 제일 잘 나가는 조각가가 아닐까 합니다.


캉에서 예기치 않게 만난 하우메 플란자의 작품, 이제 그의 작품을 어디서 만나게 되도 금방 알 수 있을 거라 믿습니다.

미술 작품 또한 하나하나의 시가 아닐까 합니다.




Hudson River Waterfront - Water soul
Jaume Plensa(19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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