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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나무 Jun 17. 2023

'수상한 커플?'

8. Catania




시라쿠사에서 타오르미나까지는 약 2시간이면 충분하다.

중간쯤에 있는 도시 카타니아에 들러가기로 했다.

카타니아는 시칠리아에서 두 번째 큰 도시로 공항이 있다.

수백 년 동안 에트나 화산 폭발로 피해를 많이 입은 도시이다.


시칠리아의 이동 경로를 구글 지도로 그려보니 이런 모습이다.

지도에서 보이듯 시칠리아 섬을 크게 한 바퀴 도는 일정이라 해안도로가 대부분이다.

봐도 봐도 바다는 질리지도 않았다.



시칠리아 이동경로


1. 팔레르모 - 2. 에리체 - 3. 아그리젠토 - 4. 라구사 - 5. 시라쿠사 - 6. 노토 -7. 카타니아 - 8. 타오르미나 - 9. 메시나 - 10. 체팔루 -11. 팔레르모

 


카타니아는 팔레르모 다음으로 큰 도시이다.

주차앱으로 찾은 주차장은 이번에도 구 시가지와 아주 가까워서 도착하자마자 쾌재를 불렀다.

'오늘도 성공!'

바로 옆이 어시장이었지만 시라쿠사에서 인생 새우를 맛보았던 터라 크게 관심을 갖지 않았다.


아치형 문을 통해 들어가니 세인트 아가타 대성당과 광장 한가운데의 유명한 코끼리 분수가 있지만 보수 중이라 윗부분만 조금 보일 뿐이다.



세인트 아가타 대성당 "Saint Agatha'


아가타 성당 광장
보수 중인 코끼리 분수




성당을 나온 후 광장에 있는 카페 Gulien으로 갔다.

커피와 함께 주문한 디저트는 영화 아마데우스에서 살리에리가 모차르트 부인에게 대접했던 바로 그 케이크이다.

한번 들으면 잊지 못할 이름 'Nipples of Venus' (Capezzoli di Venere), 비너스의 젖꼭지이다.

영화에서는 살리에리가 모차르트 부인에게 '설탕을 졸여만든 로마 밤'으로 설명한다.

하지만 화이트 초콜릿으로 덮인 밤과 브랜디가 들어간 초콜릿 트리플이다.

카타니아의 성 아가타 축제 기간에 만들어진 시칠리아의 전통 과자로 유명하다.

크기와 모양은 파는 곳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는데 그곳의 것은 정말 매끈하고 예뻐서 포크로 부서트리기가 아까웠다.

맛 또한 나무랄 데가 없어서 타오르미나로 떠나는 길에 그곳에 다시 들러 디저트 케이크를 몇 개 사기까지 했다.




'Nipples of Venus'

광장 한쪽에 아메나노 분수가 있다.

그 앞에 한 노인이 미동도 없이 서 있었다.

'사람이야, 마네킹이야?'


Fontana dell’Amenano 아메나노 분수
아메나노 분수의 오른쪽 석상


중절모에 은빛 더블 슈트를 입은 모습이 매우 단정하고 깔끔했다.

한참을 바라보았는데 움직임이라곤 없었다.

키는 150cm가 채 되지 않을 정도로 체격이 아주 작았지만 45도로 고개를 살짝 쳐들고 서 있는 포스가 남달랐다.

표정이 하도 진지하여 연기를 하는 사람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길거리 퍼포먼스를 하는 사람이라고 하기엔 차림새가 젠틀하고 진지하며 멀끔하다.

그런데 이상하게 묘한 아우라를 풍긴다.

본능적으로 발길이 그쪽으로 향했다.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물었다.


'실례합니다. 사진 찍어도 될까요?'


말을 건네니 나를 바라본다.

앙 다문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 미소를 머금은 듯한 표정으로 말없이 눈을 지그시 감으며 역시나 슬로 모션으로 고개를 아주 살짝 끄덕였다.

찰칵, 찰칵 몇 번의 셔터를 누르는 동안 자세나 포즈를 바꿀 법도 한데 처음 그 자세 그대로다.


어느 순간 할아버지는 시선을 앞으로 돌렸다.

그리고 내 옆에 서있는 친구들에게 곁으로 오라는 손짓을 했다.

친구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기꺼이 한 명씩 그의 포토 파트너가 되었다.

갑자기 길거리 사진관이 오픈되었다.


묘한 커플 사진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키가 작은 할아버지는 곁에 선 친구를 향해 고개를 쳐들어 빤히 바라보았다.

그 시선은 강렬하고 짜릿했다.

웃음이 절로 나오는 광경이 이어졌다.

D와 LJ는 능숙한 사진 모델처럼 할아버지와 눈을 잘 맞추었다.

하지만 J는 차마 눈을 맞추지 못하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오매불망 '제발 나 좀 한 번만 바라봐주오.' 하듯 J를 계속 바라보았지만 그녀는 끝까지 눈길을 주지 않았다.

이상한 퍼포먼스를 구경하는 듯 어느새 우리 주변에는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사진을 찍은 후 손거울을 선물로 드렸더니 그저 고개를 한 번 까딱이셨다.

그 흔한 '그라찌에'라는 말씀도 없었다.

우리가 그 자리를 떠나고 다른 사람들이 연이어 그와 사진을 찍었다.

그분은 왜 그 자리에 그 차림으로 서있는 걸까?


촬영이 끝나고 J에게 물었다.


'왜 할아버지를 안 쳐다보았어?'

'할아버지가 내 허리에 손을 살포시 얹으셨는데 쑥스러워서 도저히 못 쳐다보겠더라고...'


'살포시'라는 그 말의 뉘앙스가 귀여웠다.


쿠바의 트리니다드에서 만난 시가 할아버지가 생각났다.

그들처럼 사진 모델이 되어주고 푼돈을 버는 것도 아니요, 치매 노인이라고 하기엔 눈망울이 너무 초롱초롱하고 차림새가 깔끔하다.

그 궁금증은 풀지 못했지만 즐거운 해프닝이었다.


사진의 제목은 '수상한 커플'



수상한 커플의 친구 D



카타니아 역시 곳곳에 동상들이 있다.

그중 알만한 사람은 두 명,

이탈리아 왕국의 통일에 기여를 했던 가리발디와 오페라 노르마 중 유명한 아리아 '정결한 여신'과 '몽유병의 여인'으로 유명한 빈센초 벨리니였다.

벨리니가 이탈리아 사람인 건 알고 있었지만 카타니아가 고향인 줄은 몰랐다.

동상의 얼굴을 자세히 살펴보니 39세로 사망한 독일의 미남 작곡가 멘델스존이 떠오른다.

너무도 앳되고 선이 고운 청년의 모습이다.

알고 보니 그는 33세로 요절했다.

카타니아에서 알게 된 사실이다.

사람들의 기억에 곱고 예쁜 얼굴로 남아있으니 일찍 죽는 것도 나름 나쁘지 않은 부분도 있겠구나 싶었다.



   

빈센초 벨리니 동상
가리발디 동상


길거리에는 오렌지나 석류를 착즙 해주는 상인들이 많았지만 장사가 신통치 않은지 무료해 보인다.

웬만한 도시에서는 쉽게 볼 수 있는 꼬마 기차 모양의 투어자동차도 보인다.

기차를 타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면 언제나 경쾌하고 편하고 행복해 보인다.

다른 곳에서 몇 번 경험한 적이 있다.

그때마다 별로 신통치 않았다.

그러나 망각에 길들여진 우리는 오렌지와 석류 빛깔이 곱게 장식된 그 꼬마 기차를 타기로 했다.


이번에도 역시 감탄을 자아내는 볼거리는 없었다.

에트나 화산이 인접한 곳이라 그런지 건물들을 우중충하며 아주 오래된 집들이 많았다.

화려하고 말끔하게 치장해 놓은 중심가와는 판이하게 다른 풍경이 이어졌다.

아주 좁은 골목을 회전할 때마다 아슬아슬, 가끔씩 뿜어내는 매연과 소음 등 눈으로 보이는 낭만보다는 불편함이 더 많았다.

그러나 예정된 45분은 금방 지나갔다.

역시 관광도시의 꼬마 기차는 다른 사람들이 타고 다니는 모습을 보는 것으로 만족하는 게 좋겠다.


이제 숙소 안내를 도와줄 키아라가 기다리는 타오르미나로 출발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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