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전나무 Nov 29. 2023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의 두 여인

5. Shakespeare and Company






세계적으로 유명한 서점 중 하나가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입니다.

파리에 가면 한 번쯤 들러보는 곳이죠.

책은 아니더라도 에코백이나 굿즈 한두 개씩은 사 갖고 오는 곳이기도 합니다.

몇 년 전에는 일반 서점처럼 쓱 하니 들어가면 되었는데 열 명이 넘는 사람들이 줄을 서 있고 문 앞에는 입장을 통제하는 직원이 서있더군요.

요즘 보기 드물게 내부 사진 촬영은 금지되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막연히 알고 있는 정보는요.

헤밍웨이를 비롯해서 당시 오갈 때 없는 가난한 작가들이 좁은 서점 귀퉁이나 다락방에서  글도 쓰고 책도 읽고 쪽잠을 자며 문학의 꿈을 이어간 곳이라고 알려져있죠.

그러나 지금은 파리 여행 기념으로 책이 아닌 티셔츠나 모자, 가방등을 사기위해 들르는 일종의 기념품샵 같은 느낌이 들더군요.

손님이 많다보니 결재 카운터도 여러곳이었어요.


그곳은 1951년에 미국인 조지 휘트먼(George Whitman)이 오픈했고 지금은 그의 딸 힐러리 휘트먼과 그녀의 사업 파트너가 운영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습니다.

궁금한 게 몇 가지 있었지요.


1. 셰익스피어는 과연 파리에 가본 적이 있을까?

2. 파리에 있는 서점을 왜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라고 했을까?


서점의 역사는 1919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리고 책을 사랑한 두 여인의 러브 스토리가 있더군요.


- 셰익스피어는 파리 여행을 했을까?


1. 셰익스피어가 1585년에 파리를 여행했다는 추측이 있습니다.

당시 파리는 유럽에서 가장 국제적이고 문화적으로 풍부한 도시 중 하나였습니다.

셰익스피어의 삶에 대한 설명에서 그가 젊었을 때 도시에서 시간을 보냈다고 언급하는 내용이 있다고 합니다.

물론 이것이 결정적인 증거는 아니지만 셰익스피어가 생애 어느 시점에 파리로 여행을 갔을 가능성은 확실히 있습니다.

만일 그가 여행을 했다면 셰익스피어는 도시의 웅장함과 학문과 문화의 중심지로서의 명성에 깊은 인상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는 또한 영국에서 익숙했던 연극과는 다른 스타일의 연극을 접하게 되었을 것이며, 이것이 그의 작품에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습니다.

셰익스피어가 실제로 파리를 여행했든 아니든, 이 도시는 의심할 여지없이 그의 삶과 작품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헨리 5세'에는 파리에 대한 언급이 여러 차례 나오는데, 셰익스피어는 파리에 대해 잘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의 연극에는 프랑스어 단어와 문구도 여러 개 있는데, 이는 그가 언어에 어느 정도 노출되었을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그러나 셰익스피어가 파리에 갔다는 확실한 증거는 없으며 그 문제는 여전히 수수께끼로 남아 있습니다.(google, chaletcouleursdefrance.com)


2. 셰익스피어는 영국 이외의 지역을 여행한 적이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의 해외여행에 대한 기록은 없습니다.

그와 함께 여행한다는 친구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전통주의자들은 셰익스피어가 프랑스와 이탈리아에 대한 모든 지식을 런던에 거주하는 외국인과의 대화나 독서를 통해 얻었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google, Sarah Smith)


그러므로 셰익스피어가 파리에 갔었느냐는 확실히 알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William Shakespeare



- 파리에 있는 서점을 왜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라고 했을까?


서점에는 실비아 비치(Sylvia Beach 1887-1962, 미국)와 아드리엔 모니에(Adrienne Monnier 1892-1995, 프랑스 파리)라는 두 여인의 러브 스토리가 있습니다.

두 사람의 만남은 1917년 파리 오데옹 거리.

한 여인의 모자가 바람에 날아가자, 다른 여인이 그 모자를 잡으려고 쫓으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시골 아낙과 수녀의 옷을 혼합한 듯한 스타일의 긴 스커트와 흰색 실크 블라우스, 그리고 그 위에 몸에 꼭 맞는 회색 벨벳 조끼를 입고 있던 아드리엔 모니에,

실비아 비치는 스페인 스타일의 망토를 걸치고 모자를 쓰고 있었는데 모니에는 그녀가 미국인이라는 걸 단박에 알아챘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지요.   

'J'aime beaucoup l'Amérique'(나는 미국을 좋아해)

그러자 비치는 'J'aime beaucoup la France'(나는 프랑스를 아주 좋아해)라고 대답했지요.

그렇게 첫 만남이 시작된 두 사람은 1955년 Adrienne가 사망할 때까지 36년 동안 부부처럼 살았습니다.




(좌) 아드리엔 모니에, (우) 실비아 비치



실비아 비치(Sylvia Beach)는 1887년 볼티모어에서 태어나 뉴저지에서 자랐습니다.

1901년에 장로교 목사였던 그녀의 아버지가 파리에 있는 미국 교회의 부목사이자 미국 학생 센터의 책임자로 임명되어 가족 모두 프랑스로 이주했습니다.     

실비아는 프랑스에서의 생활을 즐겼지요.

몇 년 후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돌아갔지만 비치는 현대 프랑스 문학을 공부하기 위해 파리로 돌아가기로 결정했습니다.

비치는 파리 국립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다가 프랑스 문학 저널에서 대출 도서관 겸 서점인 La Maison des Amis des Livres에 대해 읽었습니다.

그곳은 놀랍게도 통통한 미녀 아드리엔 모니모가 운영하는 서점이었어요.


모니에는 1915년 11월 15일 파리 오데옹 거리에 서점 겸 대출 도서관인 "La Maison des Amis des Livres"를 열었습니다.

프랑스 최초로 서점을 연 여성이었지요.

여성이 독립적으로 서점을 차린 것은 이례적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사이자 문학 비서로 일했던 모니에는 문학의 세계를 사랑했고 서적 판매를 직업으로 삼기로 결심했습니다.

많은 남성들이 군대에 입대하기 위해 서점 운영을 그만뒀던 시기였기 때문에 서점은 절실히 필요했고 작은 자본으로 서점을 여는 게 가능했습니다.




아드리엔 모니에의 서점 "La Maison des Amis des Livres"




그리고 2년 후 모니에와 비치가 만나게 된 거지요.

그녀는 비치에게 서점을 열 것을 권유했고 비치는 모니에의 서점 길 건너편에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라는 이름의 서점을 열게 됩니다.(1919년)

영어 도서의 필요성을 느낀 비치는 영국과 미국에서 출판된 도서 판매를 전문으로 했습니다.

이는 파리에 거주하는 대규모 미국 국외 거주자와 영어 문학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는 프랑스 고객들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곳은 당시 라틴 쿼터(Latin Quarter)의 심장부로 두 서점 모두 프랑스, 영국, 미국 작가들이 모이는 장소가 되었습니다.

독서를 후원하고 작가와 독자 사이의 비공식적 대화를 장려함으로써 두 여성은 서점에 우정과 문화 교류를 장려하는 장을 만들었지요.



실비아 비치의 서점 Shakespeare and Company



비치의 서점에는 파리에 있는 미국과 영국 작가 세대의 허브가 되었습니다.

스콧 피츠제럴드, 거트루트 스타인 같은 저명한 작가들이 책을 사고 빌리고 문학 문제에 대해 토론하기 위해 방문했습니다.

실비아의 가게는 작가들 사이에서 너무나 잘 알려져 있었기 때문에 책을 내고 인세를 기다리고 있는 가난한 작가들에게 자금을 지원하고 프랑스 프랑으로 대출도 해주었습니다.     

비치는 프랑스 시인이 주최한 디너파티에서 아일랜드 작가 제임스 조이스(James Joyce)를 만났습니다.

그가 율리시스(Ulysses)를 출판하려다 실패했다는 걸 알게 된 비치는 그의 출판을 도왔제임스는 1922년에  상당한 명성과 부를 얻었습니다.


     

제임스 조이스, 실비아 비치, 아드리엔 모니에(셰익스피어 초상화가 걸려있는 서점)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Shakespeare and Company)는 1930년대 대공황 기간 동안 재정적 어려움을 겪었지만 부유한 친구들의 지원을 계속 받을 수 있었습니다.

1936년 비치가 이제는 정말 가게를 닫아야겠다고 생각했을 때 앙드레 지드는 Friends of Shakespeare and Company라는 작가 클럽을 조직했습니다.

그들은 서점에서 열리는 독서에 참여하기 위해 연간 200프랑을 지불했습니다.

비록 스토어가 수용할 수 있는 최대 인원인 200명으로 제한되어 있었지만, 그 2년 동안 낭독에 참여한 프랑스와 미국 작가들 제임스 조이스, DH 로렌스, 어니스트 헤밍웨이, 에즈라 파운드, TS 엘리엇, 발레리 라보, 손턴 와일더, 앙드레 지드, 거트루드 스타인, 맨 레이 등의 명성은 서점에 상당한 관심을 끌었습니다.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Shakespeare and Company)는 파리 함락 이후에도 계속 문을 열었지만 1941년 말, 제2차 세계 대전 중 나치 독일이 파리를 점령하자 강제로 문을 닫아야 했습니다.     

1944년 파리가 해방되자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상징적으로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를 다시 열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비치는 다시 서점을 열지 않았습니다.


비치는 서점을 닫았지만 모니에는 계속 서점을 운영하며 독자들에게 책과 위안을 제공했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모니에는 서점 운영뿐 아니라 수필가, 번역가 일을 계속했습니다.

모니에는 1954년, 균형과 청력에 영향을 미치는 내이 장애인 메니 에르병 진단받았습니다.

극심한 망상에 시달리던 모니에는 1955년 6월 19일, 수면제를 과다 복용하여 자살했습니다.


모니에가 자살한 후 말년에 비치의 수입은 적었지만 율리시스를 출판하고 야심 찬 작가들을 지원한 것으로 유명인이 된 작가들로인해 명예를 얻었습니다.

비치는 1956년에 양차 대전 기간 동안 활기 넘치는 파리 문학계의 자신의 삶과 사랑을 자세히 설명하는 회고록을 출판했습니다.


1962년 6월 16일, 그녀는 더블린의 샌디코브(율리시스의 오프닝 장면이 설정된 곳)에 박물관을 열었습니다.

그리고 1962년 사망할 때까지 파리에 살았습니다.    

 


제임스 조이스 율리시스 초판본 표지 카피



오늘날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Shakespeare and Company)라는 서점은 1951년 미국인 조지 휘트먼(George Whitman)이 처음에 미스트랄(Le Mistral)이라는 이름으로 서점을 열었지만 실비아 비치를 기리기 위해 그녀가 열었던 이름과 같은 Shakespeare and Company로 이름을 바꾸게 된 것입니다.(1964년)

그리고 그들 역시 카페, 문학 축제, 글쓰기 대회 등의 사업과 팟캐스트를 통해 무료로 제공되는 정기적인 문학 행사를 계속 개최하며 두 여인이 사랑한 서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미국을 사랑한 아드리엔 모니에, 프랑스를 사랑한 실비아 비치, 두 여인을 알아가는 시간이 설레면서 뿌듯했습니다.

또한

낡은 피아노와 푹 꺼진 소파, 쿰쿰한 책냄새가 나는 좁은 서점의 구석 구석을 서성거리며 가난했지만 책  속에서 행복했을 글쟁이들을 상상하는 시간이 의미있는 시간이었어요.


     


  

(좌) 실비아 비치,   (우) 아드리엔 모니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